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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없음2013.02.23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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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직인수위원회 해단식 이후 다시 야인으로 돌아온 첫날, 김용준 전 인수위원장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편안해 보였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자신에게 익숙한 천직으로 돌아간 사람의 얼굴이었다. 23일 중앙SUNDAY와 인터뷰하기 직전 김 전 위원장은 자신의 서류 바인더에 써놓은 문구를 보여줬다.
“칼에 베인 상처는 일주일이면 아물지만 말에 베인 상처는 평생 간다.”
김 위원장은 “이 글귀는 1월 6일 인수위원장에 취임할 때 나와 인수위원들의 좌우명으로 삼기 위해 써둔 것”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원본출처 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aid/2013/02/24/10376030.html?cloc=nnc&total_id=10768117


-이 문구의 의미가 뭔가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 관계자로서 전임 인수위나 정부를 비판하지 말고, 박근혜 정부가 어떻게 갈 것인가만 생각하자는 취지로 쓴 것이다. 정권이 바뀌면 전임 정권을 헐뜯어 이미지에 득을 보려는 경우가 많지 않나. 그건 올바른 일이 아니다 싶어 이렇게 다짐하고, 다른 인수위원들도 마음에 새기도록 한 것이다. 이 문구를 두고 마치 내가 언론의 의혹 제기에 유감을 품고 쓴 것인양 보는 시각이 있는데 전혀 아니다.”

-김 전 위원장의 총리직 사퇴에서 가장 먼저 불거진 게 두 아들의 병역 면제 논란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이를 미리 알았나.
“지난달 중순 박 당선인이 ‘총리를 맡아 달라’고 전화를 해왔다. 나는 ‘적법하게 이뤄진 것이긴 하지만 두 아들이 모두 병역면제입니다. 청문회에서 이런 사실이 거론되는 자체가 누가 될 수 있습니다’라며 고사했다. 박 당선인은 바로 ‘문제없습니다’라고 하더라. ‘이회창 전 총리는 두 아들의 병역 면제로 인해 대선에서 두 번이나 패배했는데 괜찮겠습니까’라며 재차 고사했다. 하지만 당선인은 ‘이 전 총리와 위원장님은 경우가 다릅니다’라며 뜻을 굽히지 않더라. 더는 고사할 수 없어 수락한 거다.”

“말에 베이면 평생” 문구는 인수위 다짐

-그 뒤로 언론에서 의혹 제기가 잇따랐는데 당선인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
“전혀 동요하지 않더라. 내가 ‘누를 끼쳐 죄송합니다’라고 하니까 ‘아무 문제 없습니다’라며 도리어 격려해 줬다. 내가 귀가 좋지 않아 박 당선인과 통화하다가 큰 소리로 되묻는 바람에 이혜진 동아대 교수가 법질서·사회안전분과 인수위원 후보에 오른 사실이 중앙일보에 보도된 날이었다. 아침에 신문을 보고 놀라 당선인에게 ‘신문 보셨느냐’고 전화했더니 ‘신문에 뭐가 났나요?’ 되묻더라. 전말을 보고했더니 ‘우리가 무슨 못할 말을 했습니까? 괜찮습니다’라고 하더라. 몇 시간 뒤에 이혜진 교수가 그대로 인수위원으로 발표됐다. 인수위 사람들이 ‘역시 박근혜 당선인이다’라며 탄복했다.”

-귀가 좋지 않아 ‘보청기 쓰는 총리 후보자’로 화제를 많이 낳았다.
“박 당선인이 지난해 대선 직후 전화를 걸어 ‘인수위를 맡아 주십시오’라고 제의했는데 나는 잘 안 들려서 ‘네? 운수업요? 저는 운수업은 하나도 모르는데요’라고 되물어 당선인이 한참 웃은 일이 있다. 나는 휴대전화는 아예 없고, 급한 통화는 집사람이나 운전기사 겸 비서 것을 쓴다. 그러다 보니 당선인이 불편하셨을 것이다. 인수위원장이 된 지 얼마 안 돼 당선인께서 ‘휴대전화 하나 장만하시고 보청기도 비싸고 좋은 걸로 바꾸시라’고 말씀하더라. 바로 다음날 내 명의로 휴대전화를 마련하고 보청기도 고급형을 산 뒤 당선인에게 보고했지. 한 가지 유감스러운 건 TV에서 자꾸만 내 보청기를 부각해 보여주는 것이었다. 또 어느 신문 칼럼에선 ‘보청기 총리는 안 된다’는 식으로 비판한 것도 서운했다.”

-총리 후보 지명 후 닷새 만에 사퇴했는데 결심은 언제 했나.
“하룻밤 자고 나면 근거 없는 의혹 제기가 잇따라 나는 물론 가족들이 너무 힘들어했다. 그런 가운데 후보 지명 나흘 만인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처음으로 당정 회의를 했다. 새누리당 의원들하고만 한 시간가량 했는데 나오면서 ‘여당하고만 해도 이 정도로 힘든데 총리가 돼서 야당까지 상대하면 정말 하기 힘들 것 같다’는 회의가 들었다. 다음 날(지난달 29일) 아침에도 신문에 의혹 제기가 이어지는 걸 보고 물러나기로 결심했다. 이날 박 당선인이 인수위 사무실에 출근했다. 내가 독대를 청해 ‘총리직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 같습니다’라고 얘기했다. 그러자 당선인이 ‘절대 무너지면 안 됩니다’라고 강하게 막더라. 그래도 뜻을 굽히지 않으니까 ‘하루만 더 참아 달라’ 하시기에 일단 그러겠다고 하고 나왔다. 그런데 가족들이 난리였다. 아내는 ‘오늘 물러나지 않으면 집에 들어오지 못할 줄 알라.’고까지 했다. 결국 당선인에게 ‘돌발상황이 생겨 하루를 참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 같습니다’라고 연락했다. 당선인이 ‘안 된다’고 했지만 나는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에게 ‘사퇴한다고 발표하라’고 지시해 버렸다. 그런데 한 시간이 지나도 발표가 안 나오더라. 내가 윤 대변인에게 ‘자꾸 늦어지면 내가 직접 기자실에서 발표하겠다’고 통보했다. 그러니까 저녁 7시쯤인가 TV 화면에 ‘김 총리 후보자 사퇴’ 자막이 뜨더라. 그걸 보고 인수위 청사에서 퇴근했지.”

-박 당선인 허락 없이 총리직을 사퇴해 버린 셈인데.
“박 당선인과 그날 밤에 통화했다. 박 당선인이 ‘나는 상상할 수 없는 악성 루머까지 나왔지만 버텼는데 여기서 무너지시면 어떡하느냐’고 하더라. 그래서 ‘총리직은 그만뒀지만 앞으로 늘 당선인을 돕겠습니다. 필요하면 언제든 불러서 써 주십시오’ 하니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킬 수 있겠느냐’고 물으시더라. 그러겠다고 했다. 나랑 당선인 둘이서 울먹이면서 ‘함께 목숨 걸고 나라를 지키자’고 약속했다.”

-그후에도 인수위원장직은 계속했다.
“당선인에게 ‘인수위원장을 계속할지 여부는 당선인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했더니 ‘무슨 상관이 있느냐. 계속 하셔야죠’라고 하더라. 나도 끝까지 일한 게 잘했다고 생각한다.”

-총리 사퇴 이틀 뒤에 언론의 의혹 제기를 조목조목 비판하는 A4 용지 12장짜리 e메일을 기자들에 보내 화제를 모았다.
“당선인이 ‘사퇴하더라도 인민재판식으로 근거 없는 의혹을 몰아붙이는 데 대해선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이틀 연속 강조하더라. 그래서 윤창중 대변인과 상의해 다음날 e메일 형식으로 기자들에게 보낸 것이다. 국민의 알 권리도 중요하지만 근거 없는 보도로 본인은 물론 가족들의 가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내는 건 (언론이) 하지 말아야 한다.”

“로펌 고문 때 보수 정말 작았다”

-언론의 의혹 제기에 억울한 입장인가.
“내 재산은 1994년 헌법재판소장에 임명됐을 때 밝힌 내용 그대로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이 홍제동 재개발 아파트인데 13년 동안 도배 한 번, 수리 한 번 한 적이 없다. 전기나 가스요금도 제일 적게 내는 집이었고, 아내는 얼마 전까지도 버스를 타고 다녔다. 그렇게 살면서 한 푼 두 푼 모아 땅을 산 게 가격이 오른 것뿐인데 그걸 문제 삼아서….”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의 성적을 스스로 매겨본다면
“학교에서 ‘시험 잘 봤다’고 떠든 친구는 점수가 낮고, ‘못 본 것 같다’는 친구는 점수가 높게 나오는 경우가 많지 않나. 스스로 점수를 매기기보다 역사와 국민에 맡겨야지. 하지만 잘한 게 없지는 않다. 인수위원장직을 수락한 직후에 전임 인수위에서 수백 명에 달했던 자문위원을 폐지하겠다고 당선인에게 건의하니 ‘그렇게 하라’고 하더라. 일부 인수위원들이 자문위원을 존속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밀어붙였다. 그 결과 인수위에서 스캔들이 난 게 없지 않나. 또 간사위원 회의를 많이 열고 ‘예산은 얼마든지 지원해 줄 테니 현장방문을 자주 하라’고 독려한 것도 평가하고 싶다. 솔직히 인수위원들이 고생 많이 했다. 지난 48일 동안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고, 밤 10시 전에 퇴근한 사람이 없었다.”

-인수위원 가운데 평가할 만한 인사가 있다면 누구를 꼽을 수 있나.
“다들 뛰어나고 열심히 일한 분들이다. 굳이 얘기하자면 유민봉 국정기획분과 간사가 능력이 뛰어나 중용될 것으로 봤는데 결국 청와대 수석(국정기획수석 내정자)이 되더라. 이혜진 법질서·사회안전분과 인수위원은 부산 모 법대 교수가 ‘안철수 교수 다섯 명이 나와도 못 당할 만큼 능력 있는 사람’이란 평가를 하더라.”

-세간의 ‘불통 인수위’ 비판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
“언론 통제가 심했다는 지적에 일리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인수위라는 곳이 워낙 정부 부처들의 로비가 심한 곳 아니냐. 부처 사람들이 인수위 들어와선 꼼짝을 못한다. 하지만 밖에 나가면 자신들 이해가 얽힌 사안을 유리하게 이끌려고 언론에 정보를 흘리곤 한다. 이런 걸 막으려면 엄격한 보안조치가 불가피했다.”

-법조계 원로로서 박 당선인이 유독 법조인들을 중용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박 당선인에겐 ‘법치 DNA’가 있는 것 같다. 회의 때마다 ‘헌법, 법치, 질서’ 얘기를 한다. 이렇게 법을 좋아하니 법조인 출신이 많이 중용될 것으로 미리 내다봤었다. 한 가지 얘기하고 싶은 건 전관예우 문제다. 법조인들이 전관예우로 거액을 챙긴다는데 솔직히 요즘 우리나라 어느 분야에서 현직 후배가 전직 선배의 얘길 들어주나. 법조계에선 그런 관행이 없어진 지 오래고, 경제부처 쪽엔 좀 남아 있는 것 같다. 내 경우엔 헌재소장을 마친 뒤 모 로펌에 고문 자리를 얻었지만 정말 작은 액수, 좀 아는 사람들이 알면 놀랄 만큼 작은 액수를 보수로 받았다. 그게 얼마 전 공개됐는데 그런 건 언론이 쓰지도 않더라.”

-최대석 전 외교안보분과 인수위원이 인수위 발족 직후 돌연 사퇴해 궁금증을 일으켰다.
“본인의 사생활이나 돈 문제로 물러난 건 아니다. 하지만 이유가 밝혀지면 본인의 명예와 제3자의 명예, 그리고 국가안보에 해를 끼칠 수 있어 지금 여기선 말할 수 없다.”

-인수위 활동 과정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뭔가.
“내가 인수위를 해보니까 ‘이런 건 내가 직접 해보면 뭔가 달라질 수 있겠다’는 것들이 보이더라. 하지만 상황(총리직 낙마)이 이렇게 됐는데 굳이 나설 것 있느냐는 생각이 들어 그냥 두었다.”


강찬호 기자 stoncold@joongang.co.kr

분류없음2013.01.30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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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총리 후보직을 사퇴한 김용준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이 위원장직은 계속 유지할 것으로 보입니다.

김용준 위원장은 오늘 오후 서울 삼청동 인수위 사무실에서 열린 정무분과 국정과제토론회에 참석해 박근혜 당선인과 함께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인수위 진영 부위원장과 윤창중 대변인 등은 김용준 위원장이 인수위원장직은 그대로 수행할 것으로 안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따라 김용준 위원장은 다음 달 25일, 박 당선인이 취임할 때까지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보입니다.

원본출처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34&aid=0002462689

분류없음2013.01.28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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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김용준 총리 지명자가 1970년대 중반 친구와 함께 투기목적으로 서초동 땅을 사들였다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김 후보자는 이밖에도 7,80년대 수도권 일대에 10만 제곱미터 가까운 땅을 사들였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탐사보도팀 공아영 기자의 보도입니다.

원본출처 http://news.kbs.co.kr/news/NewsView.do?SEARCH_NEWS_CODE=2604170&SEARCH_CHK=VIEW&PREV_REQ_URL=&SEARCH_SECTION=0001

<리포트>

김용준 총리 지명자의 두 아들 명의로 된 서초동 땅입니다.

400만 원에 산 이 땅은 현재 공시지가만 46억 5천만 원, 김 지명자는 어제 이 땅이 어머니가 손자들을 위해 매입해 준 땅이라고 해명했습니다.

폐쇄등기부등본을 떼 봤습니다.

이 땅을 판 사람은 김모 씨, 회계사였던 김 씨는 김 지명자의 고등학교와 대학 친구였습니다.

<녹취> "땅 부자, 옛날에 이 사람 땅이, 여기 전부 다 이 사람 땅이었어.."

김 지명자가 땅을 산 75년 8월 1일, 또 다른 친구 유모 씨도 바로 옆 땅을 샀습니다.

<녹취> "공동 매입자 친구지간이니까 믿고서 잊어버리고 있던 건데 나중에 등기를 해 주더라고."

이들이 땅을 산 다음날, 서울시는 법원과 검찰 등 공공기관 이전 계획을 보고했습니다.

김 지명자는 이후 15년 동안 이 땅에 대해 등기도 하지 않고 재산세는 친구 김씨가 내왔습니다.

그러던 91년 과도한 택지 소유자에게 거액의 부담금을 물리는 택지소유상한제가 시행된 이후 김 지명자는 이 땅을 아들들의 명의로 등기했습니다.

그리곤 넉 달 만에 5가구 단층주택을 지어 모두 세를 내줬습니다.

<녹취> 구청 관계자: (주택 다섯 가구 이상을 지어 임대를 준다든지?) "그런 건(부담금 부과에서)제외를 시켰습니다."

실제 김 지명자는 93년 관할구청에서 부담금 8000만 원을 부과받았지만 아들들이 임대사업자라며 행정심판을 벌여 전액

돌려받았습니다.

김 지명자가 74년 당시 7살 아들 명의로 산 또 다른 땅, 13살이었던 오모 씨와 이 땅을 같이 매입했습니다.

오 씨의 아버지는 김 지명자와 같이 근무를 했던 법원 서기였습니다.

<녹취> 오 씨: "저는 그 땅에 대해서는 전혀 몰라요. 그걸 제가 어린 나이에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김 지명자는 이밖에 부인 명의로 서울 마천동 밭을, 75년에는 수원 금곡동에 3년 뒤엔 인천 월미도, 88년엔 서울 서빙고동

과 쌍문동, 90년엔 갈현동 주택을 사들였습니다.

KBS 뉴스 공아영입니다.

분류없음2013.01.27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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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넥서스 홈페이지 외국변호사약력법무법인 넥서스 홈페이지 외국변호사약력

 

김용준 총리 후보가 헌법재판소장으로 재직중일때 김후보의 장남이 변호사자격이 없는 상태에서 국내 유명로펌에 취직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김용준후보는 퇴임 5일만에 법무법인 율촌의 고문으로 직행, 처신이 적절하지 않았다는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만 이미 그의 퇴임이전에 미처 변호사자격을 취득하지 못한 그의 장남이 율촌에 입사했음은 그가 헌재소장 재임때부터 이 로펌과 깊은 인연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김용준후보의 장남 김현중씨는 국내에서 사법시험에 합격하지 못하고 미국 뉴욕주에서 변호사자격을 취득, 현재 그의 매형인 최영익변호사가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법무법인 넥서스에서 외국변호사로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법무법인 넥서스 홈페이지에는 김현중씨가 1991년 서울대 법대, 1998년 펜실베이니아대학 로스쿨 1년과정[LLM], 1999년 플로리다대학 로스쿨을 각각 졸업했으며 1999년부터 2000년까지 법무법인 율촌에 근무했다고 돼 있습니다.

 

이 법무법인 율촌은 김용준 총리후보가 2000년 9월 15일 헌법재판소장에서 퇴임한뒤 닷새뒤인 2000년 9월 20일 고문으로 취임한 바로 그 로펌입니다. 현재는 공무원이 퇴임뒤 관련직종에 2-3년내에 취업할 수 없습니다만 당시는 그같은 제한규정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김후보가 헌재소장 퇴임 닷새만에 법무법인의 고문으로 직행한데 대해서도 적절한 처신인지 논란이 있습니다만 그의 장남은 그가 헌재소장으로 재임중이던 1999년에 바로 이 로펌에 취직했으며 특히 로펌입사 당시 국내는 물론 미국 변호사 자격도 취득하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2013/01/27 - [분류 전체보기] - 군검찰 병역비리의혹리스트 '두아들면제 공직자 K씨'가 김용준?[사진]-문화일보 2002년 사회관심자원병적내용 보도

2013/01/24 - [분류 전체보기] - 김용준 장-차남, 93년시세 20억부동산을 7,8세때부터 소유, 20대초반에는 주택신축 - 1993년 재산공개관보 원문

 

 

뉴욕주 법원 행정처를 통해 뉴욕시간 1월 27일 아침, 김현중씨의 변호사 자격을 조회한 결과 김씨는 2002년 뉴욕주 변호사자격[YEAR ADMITED IN NY 은 자격증 취득년도]을 획득했으며 현재는 변호사 등록비를 미납한 상태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뉴욕주 법원 행정처에는 김씨의 주소가 김씨가 2010년당시 재직했던 서울 충무로 3가 극동빌딩의 '리인터내셔널법률그룹'이었으며 김씨 주장대로 펜실베이니아대학 로스쿨을 졸업한 것으로 기재돼 있고 현재 변호사 등록비 미납상태인 김씨는 1967년 5월생이며 등록은 매 2년마다 자신이 태어난 달에 해야하므로 차기등록시기가 2014년 5월로 돼 있는 점등으로 미뤄 이는 김현중씨의 변호사 자격기록이 확실합니다.

 

김씨의 뉴욕주변호사 자격증 번호는 4091534 이며 뉴욕주 변호사자격을 획득한 것은 2002년입니다. 즉 김씨는 1998년 펜실베이니아대학 로스쿨 LLM과정을 졸업했지만 뉴욕주 변호사시험에 합격, 변호사가 된 것은 그로부터 4년이 지난 2002년이었으며 김씨가 율촌에 입사할 때인 1999년에는 국내는 물론 뉴욕주 변호사 자격도 미처 취득하지 못한 때였던 것입니다.

 

정리하면 김용준후보의 장남 김현중씨는 부친이 헌법재판소장으로 재직중일때인 1999년 국내외 변호사 자격이 없는 상태에서 법무법인 율촌에 취직했으며 공교롭게도 김후보도 1년뒤 헌재소장에서 퇴임하면서 닷새만에 이 로펌으로 직행했던 것입니다.

 

김후보의 장남 김현중씨는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대학 로스쿨, 플로리다대학 로스쿨등을 졸업했기 때문에 로펌의 사무원 자격이 충분한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변호사 자격이 없는 상태에서 로펌의 사무원으로 입사했다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입사때 변호사 대우를 받았다면 이야기는 또 달라지게 됩니다.

 

법조계 관계자는 '국내 사법시험합격자들이 미국변호사시험에 응시, 변호사자격을 취득하는 사례가 많다. 즉 한국-미국 2개국에서 동시에 자격을 획득한 사람이 수두룩한 판에 미국 변호사 자격만으로 국내로펌에 일자리를 얻는 것은 매우 어려운 실정'이라며 이는 법조계 누구에게 물어봐도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하물며 미국 변호사 자격도 없이 로펌에 취직한다는 것은 사실상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김용준후보가 헌법재판소장으로 막강한 파워를 행사할때 그의 장남이 로펌에 취직했다는 것, 특히 당시 그의 장남이 변호사자격을 취득하지 못한 상태였다는 것, 또 이 로펌이 김후보자신이 퇴임 닷새만에 고문으로 직행했던 바로 그 로펌이라는 점에서 김후보 장남의 율촌취업은 공직자로서 김용준후보의 자세를 점검하는 또 하나의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뉴욕주 변호사들은 2년에 한번씩 뉴욕주 대법원 행정처에 350달러의 변호사등록비를 납부해야 하며 납부시기는 자신이 태어난 달입니다. 뉴욕주 변호사법 468조 A항에 따르면 변호사비를 미납할 경우 제재를 받을 수도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자격이 정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뉴욕주 대법원은 법률소비자들이 변호사의 태만정도를 판단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변호사 자격여부를 조회했을때 등록비 미납인 경우 미납이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변호사자격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 즉 프랙티스를 하지 않는 변호사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 등록비를 납부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김현중씨는 2002년에 변호사자격을 획득했으므로 짝수년이 등록비를 납부하는 해이며 최근 주소가 2010년 자신이 재직했던 회사로 돼 있고 현재 미납상태이며 다음납부일은 김씨가 태어난 달인 2014년 5월이므로 2012년에 변호사등록비를 납부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4회까지, 즉 8년간 미납해도 그 이후 다시 납부할 수 있습니다만 5회째에도 이를 납부하지 않으면 뉴욕주 대법원이 소명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또 미국에서 법학박사가 아닌 법학석사 자격으로 변호사시험 응시자격이 주어지는 주는 뉴욕주가 유일합니다. 그래서 국내법대를 졸업하고 미국로스쿨에서 1년만에 법학석사 자격을 따는 LLM과정을 졸업한 학생들은 출신대학을 막론하고 뉴욕주에서만 변호사 자격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른 주에서는 로스쿨 3년과정 즉 법학박사 JD 과정을 거친 사람에게만 시험응시자격이 주어지며 거의 유일하게 위스콘신주는 로스쿨졸업자에게 시험없이 변호사자격을 부여합니다. 김현중씨는 펜실베이니아대학 로스쿨의 LLM 과정을 졸업했으므로 뉴욕주 변호사시험에 응시했던 것입니다.]

 

김용준아들 김현중 뉴욕변호사 자격조회 by

 

 

분류없음2013.01.03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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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준, 오후 4시 인수위원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