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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 재산을 둘러싼 소송이 진행되면서 며느리, 외동딸에 이어
차남 김정우도 법정진술을 하게 됩니다

김정우는 외동딸과 같은 날인 2003년 9월 12일 작성된 진술서를 통해
외동딸과 같은 주장을 펼칩니다

형 정한이 유언장 존재를 너무도 잘 알았으며
그동안 한번도 이의를 제가한 적이 없었다 등의 내용입니다

또 형이 결혼뒤 분가했지만 1988년 플로리다로 떠나기 전까지
알파인과 포트리등 집에서 5분 , 많게는 15분 거리에 살아서
매우 친밀했다고 진술했습니다

유언장 복사본 문제에 대해서도 김형욱 실종뒤
변호사가 두터운 종이뭉치를 나눠 줘서
왜 이런 걸 주나 하며 의아해 했던 적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형이 유언장 존재를 알지 못했다는 큰 며느리 주장은 잘못된 것이며
형이 유언장 내용을 알았지만 재산에 대해 한번도 이의제기를 하지 않았다는 요지였습니다


김형욱 재산분쟁 2남 진술 6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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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의 재산을 둘러싼 분쟁이 결국 법정소송으로 이어졌고 김형욱의 큰 며느리가 2003년 7월 3일
재판부에 진술서를 제출하자 외동딸등 가족들도 2003년 9월 진술서를 제출하게 됩니다

쟁점은 '장남 정한이 죽기 전까지 유언장 존재사실을 몰라서 상속을 받지 못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소송이 진행되면서 아무것도 몰랐다는 며느리의 주장에 맞서
외동딸 신해는 2003년 9월 12일 재판부에 진술서를 제출합니다

주된 내용은 '큰 오빠가 유언장 내용을 잘 알고 있었고 재산분배등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며
피고인 어머니 김영순을 옹호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김형욱 재산분쟁 딸 진술 -
주된 내용은 이렇습니다
-1979년 아버지 김형욱이 실종된 당시 나는 19살의 틴에이저로서 큰 충격을 받았다
-오빠들과 엄마등 우리가족은 매우 친밀했지만 실종사건이 더욱 우리를 결속시켰다
-실종당시인 1979년 큰 오빠는 미혼이었고 1980년 결혼했다
-당시 우리가족변호사인 알란 싱거변호사가 끊임없이 우리 집을 방문했다
-싱거 변호사가 큰 오빠를 포함한 모든 가족에게 유언장 내용을 설명했다
-아버지 김형욱도 1975년 유언장 작성뒤 내용을 가족에게 알렸고 그뒤 저녁식사자리에서도 
  유언장내용을 언급했다, 당시 나는 14살 이었지만 분명히 기억한다
-유언장내용은 아버지의 재산 50%는 어머니가, 나머지 50%는 우리 3남매가 가진다는 것이었다
-실종뒤 싱거변호사등으로 부터 유언장 복사본을 받았다
-실종뒤 사망판결 청구소송을 제기하자 재판부가 전가족이 법원에 출두할 것을 명령해
  오빠를 포함한 모든 가족이 법원에 갔다
-한국내 아버지의 재산을 돌려받기위한 소송을 통해 큰 오빠의 부인은 2003년 4월 26만1천여달러를 받았다
-내 일생동안 단 한번도 큰 오빠가 재산분배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적이 없었다

내일은 차남 김정우의 법정 진술을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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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의 부인 김영순은 1981년 5월 12일부터 유언장 집행자가 돼
김형욱 재산 관리에 나섭니다

그러다가 21년이 지난 2002년 9월 장남 김정한이 죽게 되자
큰 며느리등 장남 가족과 김영순 사이에 재산 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김형욱의 큰 며느리는 남편이 생전에 유언장의 존재를 전혀 몰랐다며
이는 시어머니 김영순씨가 유언장 집행자로서의 의무를 수행하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소송으로 이어졌고 2003년부터 뉴저지 버겐카운티 지방법원에서
원고 며느리 피고 김영순씨의 법정공방이 시작됩니다

2003년 7월 3일 원고인 큰 며느리는 재판부에 자신의 진술서를 제출합니다

김형욱 재산분쟁 며느리 진술 5매 -
이 진술서에서 큰 며느리는
- 시어머니 김영순이 유언장 집행자로서 유언장에 기록된 상속인에게 유언장 내용을 설명해야 함에도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 시어머니 김영순은 직장을 다닌 적이 없고 소득소스가 전혀 없다
- 김형욱은 한국의 중정부장으로서 1977년 의회에서 증언을 하기도 했다
-1978년 6월 30일자 워싱턴 포스트지는 김형욱이 7만5천달러를 밀반입하다가 적발됐다고 보도했다
- 이 기사는 김형욱이 시티뱅크 뉴욕에 2천만달러, 해외은행에 6백만달러등을 예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김형욱 본인은 3백50만달러만 인정했지만
- 시어머니 김영순은 1983년부터 알파인 저택 신축을 시작했고 가치는 1천만달러에 이른다
- 시어머니에게 주기적으로 돈을 받았다
- 한예로 뉴저지 테너플라이 P모 은행에 시어머니와 남편이 함께 방문해 세이프티박스에 10만달러를 넣어두었으나
  그뒤 남편이 확인했을때는 5만달러밖에 없었다
- 스위스 은행에 막대한 자금이 예치돼 있다
- 알파인저택은 김형욱 재산으로 건축된 것이다
- 남편과 김정우 김신해등 3자녀가 동일하게 김형욱 재산에 대해 16.65%를 가질 권리가 있다
는 등의 진술을 했습니다

이에 대해 김형욱의 2남 김정우와 외동딸 김신해는 2003년 9월 12일 며느리의 주장을 전면 부인하는
진술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게 됩니다

2남과 외동딸의 진술도 차례로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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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의 부인 김영순은 1980년 5월 12일 유언장 집행인으로 지정된뒤
상속절차에 돌입합니다

이에 따라 1981년 5월 28일 뉴저지 버겐카운티의 지역신문 'THE VALLEY STAR'에
김형욱 채권자 신고를 접수하는 광고를 게재합니다

'PUBLIC NOTICE' 란 제목의 이광고는 1981년 5월 12일 뉴저지 버겐카운티 유산법원 판사의
명령에 따라 김형욱 또는 형욱 김에게 받을 돈이 있는 사람은 뉴저지 알파인에 사는
김영순또는 유족의 변호사에게 청구하시오' 라고 돼 있습니다

이 광고의 FEE는 6.16 달러였으며
해당신문사의 광고게재사실확인서도 첨부, 법원에 제출하게 됩니다



김형욱 김영순 상속광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