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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75년 1월 김형욱이 작성한 유언장의 증인은 3명입니다

메리로 알려진 외국인 1명과 이담풍씨, 그리고 유봉섭씨가 그들입니다

메리에 대해서는 아직도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유봉섭씨는 김형욱의 아내 김영순씨의 사촌 여동생 남편입니다
유봉섭씨는 현재 하와이 호놀룰루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3명중 가장 중요한 증인은 이담풍씨입니다

이 이담풍씨가 바로 김형욱이 아내 김영순이 숨질 경우 유언장 집행과
자녀양육인으로 지정한 '이백'의 남편입니다

유언장에서 이백으로 등장한 사람은 전 중정요원 이백희씨로
미국이름은 버나드 입니다

스위스와 홍콩, 베트남등에서 근무한 이백희씨는 베트남 근무당시
사우스 베트남 즉 자유월남의 트란 반 투엔씨의 딸과 만나 결혼하게 됩니다

이백희씨의 장인 트란 반 투엔은 1955년부터 1963년까지 월남의 정보부장을 지낸 거물급 인사로
1965년에는 부수상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바로 이 이백희씨의 부인 이담풍씨가 김형욱 유언의 증인이 된 것입니다

트란 반 투엔은 1975년 월남패망직전에 영국 정보기관의 도움으로 월남을 탈출해
홍콩으로 도피합니다

이백희씨는 중정근무당시 외국인인 이담풍씨의 결혼문제로 고민했고
중정내에서 일부 반대가 있었지만 김형욱이 '고위급인사의 사위가 되면
고급정보를 더 많이 얻을 수 있다'고 쾌히 승락함으로써 결혼에 골인하게 됩니다

그뒤 김형욱 미국 망명뒤 김형욱의 부름을 받고 '은혜를 갚는다'는 각오로
미국에서 합류, 김형욱의 미국생활, 특히 스위스 은행 심부름등을 맡게 됩니다

이담풍씨는 미국에 온뒤 뉴욕 퍼처스소재 펩시콜라회사에서 재무소프트웨어담당
고위기술고문으로 일하다 현재 은퇴한 상태입니다

이백희씨의 딸은 존스홉킨스대학과 조지타운대학 로스쿨을 졸업한뒤 변호사자격을 취득,
뉴욕소재 유명 법무법인 변호사로 일하고 있으며 2007년 5월 윌리암 하워드 타프트 전 미국대통령의 
4대손으로 예일대를 졸업한 남자와 결혼했습니다 

지난 2005년 8월 16일 동아일보 자매지 주간동아에 이백희씨 관련 기사가 게재되기도 했었습니다 

내일은 1981년 김형욱 유언장 집행과정과 관련서류를 공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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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5 - [분류 전체보기] - 미국법원 청와대살해설-오작교작전 근거로 김형욱 조기사망선고 - 이게 재판증거 불어문건 원문

 


1979년 10월 7일 프랑스 파리에서 실종된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은 자신의 실종 또는 죽음등을 미리 예견한 탓인지 1973년 4월 5일 미국에 들어온뒤
약 1년 8개월정도가 지난 75년 1월 비장한 마음으로 유언장을 작성했습니다

1975년 1월 25일 뉴저지 테너플라이 트라팔가 자택에서 작성된 이 유언장은
유언내용을 담은 6매의 유언장과 증인 3명의 서명 1매등 모두 7매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 유언의 핵심은 이렇습니다

만약 내가 죽으면 동산, 부동산, 부채등을 포함한 모든 자산의 50%를
나의 아내 김영순에게 주라

나머지 50%는 장남 김정한, 차남 김정우, 딸 김신해등 자녀에게 주라
즉 3 자녀에게 내 자산의 각각 16.65%씩을 주라
 
자녀들이 21세 성년이 되기 전에는 아내 김영순이 관리한다

유언장 집행과 자녀 양육은 아내 김영순에게 맡긴다

만약 나의 아내가 유언장 집행을 하지 못할 경우 '이백'에게 유언장 집행을 맡긴다
또 신탁재산의 관리인으로 '이백'을 지정하며
내 아내 김영순이 사망할 경우 자녀 양육을 '이백'에게 맡긴다

6장의 유언장을 대충 간추리면 이런 내용입니다

김형욱 유언장 7매 -
그 다음 맨뒷장에는 유언장 증인 3명의 이름과 주소 서명이 기재돼 있습니다

메리 앨런 멜버리, 이담풍, 유봉섭씨등 3명입니다
이들은 김형욱이 1975년 1월 25일 뉴저지 트라팔가 주택에서
자신들이 보는 앞에서 유언장을 작성,서명했다고 기록했습니다

1979년 10월 김형욱 실종뒤 1981년 4월 법적인 사망선고를 받게 되고
그해 5월 김영순은 뉴저지 법원에서 이 유언장을 근거로
유언장 집행인의 자격을 획득합니다

내일은 이 유언장의 증인 3명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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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26 으로 잘 알려진 박정희 시해사건이 발생한지 30년이 됐습니다
1979년 10월 26일을 전후한 국무부와 CIA 전문. 즉 국무부의 비밀훈령, 주한 미대사관의 보고, CIA 본부와 한국지부간의 문서등을 한번 정리하고 분석해 보려 했지만 시간관계상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관심있으신 분들이 많으실 것으로 생각돼 극히 짧은 기간 10월 19일경부터 11월2일 정도까지의 전문들만 올려봅니다
글라이스틴대사가 11월 2일께 국무부로 보고한 '미국이 저지하지 않으면 한국은 군사정권으로 회귀할 것이라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있다'라는 전문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또 박정희 사망, 박정희 암살등으로 사건을 표현했지만 '제거' 즉  'REMOVAL OF PRESIDENT PARK'라는 표현도 사용한 대목에서 박정희 전대통령 에 대한 미국의 시각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과도정부를 책임질 대통령대행으로 최규하 전대통령의 이름이 가장 많이 언급되지만 정일권 전총리도 물망에 오른다는 내용도 있네요
1026 전부터, 특히 약 1주일전부터 주한 미대사관 특히 글라이스틴대사의 행보가 빨라지며 박준규 공화당 당의장, 태완선 유정회회장, 이철승, 고흥문, 김영삼등을 빈번히 만나는 것도 인상적입니다
김영삼 전대통령에 대해서는 약간 '고집불통'으로 본 듯한 내용도 있고 한 야당정치인은 한국을 움직이는 4대 파워로
학생, 국민, 정치인 그리고 미국을 꼽았군요
전문을 원본 그대로 전한다는 의미에서 올렸습니다
한번 찬찬히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1026을 거쳐 1212 그리고 518로 이어지는 역사의 분수령, 승자의 기록을 전할 사람들은 아직 많이 생존해 있지만
패자의 진실을 남길 사람들은 이미 너무도 많이 세상을 등졌습니다 
1212 당일밤 전두환등 신군부가 최규하 전대통령을 압박해 정승화 총장 연행에 재가하는 과정을 지켜본 사람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최규하 전대통령은 이미 세상을 떠나셨고 재가 현장에 배석했던 사람은 전두환쪽을 제외하고는 
최광수 당시 비서실장이 유일합니다 
사실 박정희 시해사건이 발생한 궁정동 안가도 최광수 비서실장의 처가쪽 집이었으나 어쩔수 없이 중앙정보부에
매도한 집입니다
최광수 비서실장의 용기있는 증언을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