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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 유족이 저에게 전달한 김형욱 딸 김신혜 결혼식때의 사진입니다.

아래왼쪽 첫번째 김형욱 장남 고 김정한씨, 아래두번째 김형욱 비서 [처가친척] 김용길(현 김길 목사.현재 한국체류)
위 왼쪽 첫번째 김형욱 비서 고 이백희씨, 위 두번째 김형욱 비서 이모씨


 

연미복 차림의 김형욱 뒤로 이후락의 옆모습이 보이고 10,26당시 김계원 비서실장의 얼굴이 보입니다.

 

2009/09/06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어디 있소, 아는 것 없소' 국무부 비밀해제문서 1

2009/09/08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이게 바로 김형욱 사망 판결문

2009/09/11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브루스 커밍스, '김형욱 청와대 지하에서 죽었다'

2009/09/20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전 중정부장 여기 잠들다 - 실종 30년만에 뉴저지서 발견

2009/10/04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미국 법원, 김형욱 사망판결 근거는 무엇인가

2009/10/05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71년이전부터 치밀한 망명준비 -71년 1월 부인명의 호화주택 준비

2009/10/05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72년 1월 변호사통해 법인 설립 -알고보니 사장은 김형욱 부인

2009/10/06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실종 30년 - 방준모 전 감찰실장 육성증언

2009/10/11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실종 직전-직후 김영순명의 땅 구입 - 회고록 협상 대가인가?

2009/10/12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실종뒤 유족들 경제적으로 풍족 - 개인적으론 아픔도

2009/10/12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재산 천5백만-3천5백만달러 추정 [미국언론등 종합]

2009/10/25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유언장 원문 : 아내와 3자녀에게 나눠주되 만약 모두 죽으면 '이백'에게 맡긴다

2009/10/25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유언장 증인 3명은 누구인가? '이백'은 이백희씨

2009/10/28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부인 김영순씨, 1981년 5월 12일 유언장 집행인 지정 판결

2009/10/28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유족, 1981년 4월 유언장 집행 재판청구

2009/11/03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에게 돈 빌려준 사람 다 나오시오' 채권자신고 광고

2009/11/04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며느리, '유언장 존재 사실 몰랐다' 법정 진술

2009/11/04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외동딸, '큰 오빠 정한도 유언장 존재사실 알았다' 법정 진술

2009/11/04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차남, '형 정한 유언장 존재 잘 알았다' 법정 진술

2009/12/21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어떻게 죽었나 - 1981년 3월 31일 데이빗 뉴스타트기자

2009/12/22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어떻게 살해됐나 - 1981년 4월 1일 스타레저

2009/12/30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비밀은 없다 -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의 미국 주식투자내역서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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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의 사망판결과 관련, 미국 언론에 보도된 내용입니다
미국법원이 김형욱의 사망을 선고한 배경을 어렴풋이 나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간단한 번역본과 신문 복사본을 첨부합니다 

2012/10/07 - [대통령 후보] - [미의회가 밝힌 박정희정권 스위스계좌 2]걸프사,박정희방미자금 20만달러 스위스비밀계좌에 입금-UBS계좌번호는 626,965.60D: 스위스UBS입금전표,걸프사진술서등 첨부

2012/10/03 - [대통령 후보] - [미의회가 밝힌 박정희정권 스위스계좌 1]'박정희자금 이후락이 스위스계좌에 예치- 김성곤이 육영수에게 돈 상납' : 이게 프레이저보고서 원문

2012/10/06 - [대통령 후보] - 이정현, 우리는 [박근혜의 대변인이지] 박정희의 대변인이 아니다 : 분명한 선긋기?

2009/09/20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전 중정부장 여기 잠들다 - 실종 30년만에 뉴저지서 발견

제가 며칠뒤에 뭐 하나 보여드리면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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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중앙정보부장 사망 선고

1981 3 31일 데이빗 뉴스타트

 

전직 중앙정보부장이며 코리아게이트의 핵심증인인 김형욱이 청와대 지하에서 박정희대통령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는 사실이 어제 법정에 제출된 문서에서 밝혀졌다

 

이 문서는 자신의 남편의 법적인 사망선고를 구하려고 소송을 제기한 김형욱의 부인 김영순이 법정에 제출한 증거의 일부이다

 

목격자들의 증언과 증거서류들은 1979 10월 파리에서 실종된 김형욱이 박정희에 대한 회고록을 준비중이었음을 보여줬으며 하비 스미스판사는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의 법적인 사망을 선고했다

 

이 판결에 따라 김형욱의 유족들은 천5백만에서 2천만달러에 이르는 재산을 상속받게 된다

 

김형욱가족의 변호사인 알란 싱거는 김형욱의 재산이 그렇게 많지 않으며 김형욱 재산을 추정한 은행직원은 추정치를 철회했다고 주장했다

 

김형욱은 알파인저택을 27만달러 현금을 주고 구입했고 은행계좌를 푸에르토 리코와 라스베가스의 카지노에서 백40만달러를 잃었음을 알 수 있으며 전세계 카지노에 그의 계좌가 있었다

 

김형욱은 한국정부와 협상을 벌여 회고록을 출판하지 않는 대가로 한국정부가 2백만달러를 그의 스위스은행계좌에 입금하기로 했다고 주장했다

 

김형욱은 생전 인터뷰[.프레이저 청문회 인터뷰로 추정됨]에서 그의 월급은 천달러였지만 부동산 투자, 고금리로 돈 빌려주기, 선물등을 통해 부를 축적했다고 설명했었다

 

1963년부터 1969년까지 김형욱은 중앙정보부장을 역임하며 1973년 도망전까지 한국의 2인자였다. 김형욱은 박정희가 1972년 헌법개정[.유신헌법]을 통해 무한의 권력을 잡게 되자 박정희와 갈라섰다

 

1977년과 1978년 김형욱은 한국정부가 박동선을 통해 미국 국회의원들을 매수하려한 코리아게이트에 대한 의회 청문회의 핵심증인이었다

 

박정희는 김형욱의 증언과 회고록에 대해 우려했으며 김의 유족들은 박정희가 김형욱을 납치, 살해하라고 지시를 내린 것으로 믿고 있다, 박정희는 새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살해된다

 

일본 교도통신이 한국 망명자로부터 입수한 문서에 따르면 김형욱의 의회증언직후 오작교 작전이 시작됐으며 닥터 하인즈란 암호명으로 불린 김형욱은 그 작전의 첫번째 희생자였다

1979년 정태동 주미공사는 뉴저지주 알파인의 한 식당에서 김형욱을 만나 회고록 포기대가로 50만달러를 제의했지만 김형욱은 2백만달러를 자신의 스위스은행 비밀계좌에 예치시키라고 요구해 협상이 결렬됐다

 

두사람은 다시 만나 2백만달러 지급에 합의했으나 지급방법에 대해서는 이견을 보였다

그후 김형욱은 2백만달러를 수용하기로 했으며 프랑스로 가서 이상열공사를 만나기로 합의했다

 

이상열은 1963년 군부내에서 계획돼던 반혁명음모를 제보해 대령으로 승진했다

 

김형욱은 1979 8월 유럽으로 가서 이상열을 만난 자리에서 김대중 납치사건을 언급하며 나는 김대중처럼 납치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이상열은 우리는 김대중 납치사건처럼 뼈아픈 시련을 되풀이 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

증거문서는 이말이 김대중처럼 납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모르게 죽여버린다는 말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이상열은 중앙정보부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하면서도 김형욱의 의심을 불식시키기 위해 망명을 고려하고 있다는 말까지 했다

 

김형욱은 9 30일 콩코드기를 타고 파리에 도착해 (회고록 포기대가의) 돈 송금방법등을 어레인지하기 위해 이상열을 만났다

 

중앙정보부는 김형욱의 가족들에게 알리지 말고 김형욱의 호텔을 옮기라고 지시했고 김형욱 이상열 두사람은 10 8일 스위스로 떠나기에 앞서 10 7일 카지노에서 도박을 했다

 

그랑세롤카지노에서 큰 돈을 잃은뒤 이상열은 일본인여성이 운영하는 프라이빗 클럽으로 가자고 제의했다

 

이상열은 일본인 중정요원인 그 여성에게 예약을 빌미로 전화를 해 그들이 갈 것임을 알렸다

 

중앙정보부 가옥으로 드러난 프라이빗 클럽에서 김형욱은 마취됐고 항공화물로 포장돼 한국항공기에 실려 한국으로 보내졌다

 

부산에서 학생시위가 격화된 10 16일 김형욱은 청와대 지하실로 끌려갔고 박정희는 김형욱에게 더러운 배신자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김형욱은 당신이 배신자다, 나는 내 조국을 배신하지 않았다고 맞받아쳤다

 

박정희는 김형욱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지하사격장에서 김형욱에게 두발을 발사했다

그뒤 이상열은 서울로 돌아와 지부장으로 승진했다고 증거문서는 주장했다[.이상열의 전주지부장 승진을 의미]

 

김형욱유족의 변호사인 알레인 치럿은 이 문서가 부정확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핵심사항은 프랑스 르몽드지의 보도로 입증됐다고 말했다

 

김형욱유족들에 의해 고용된 프랑스 탐정들도 김형욱과 이상열이 그랑세롤 카지노에서 목격됐으나 그 이후 그들의 행적을 찾을 수 없다고 증언했다

 

김형욱의 부인은 한국정부가 회고록을 중단하지 않으면 죽여버릴 것이라는 위협을 받았다고 말했으며 그해 12월 회고록 미완성본이 일본에서 출판되기도 했다

 

김형욱의 유산은 부인에게 절반, 정한 정우 신해등 세 자녀에게 절반이 돌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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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A CHIEF DECLARED DEAD DAVID NEUSTADT 198103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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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 1 21일 김형욱 변호사 명의로 제심리얼티코프 설립

1972 4 3일 뉴욕 웨체스터에 대형 쇼핑센터 매입

1973 8 21일 법인서류에 김영순이 사장임이 드러나

 

김형욱은 1971년 1월 4일 부인명의로 자신이 살 집을 준비한데 이어 72년에도 준비를 늦추지 않습니다

김형욱은 1971 5월 공화당 전국구의원으로 국회에 진출하지만 이때도 미국망명계획을 착실하게 추진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1972 121일 뉴욕주 국무부에 김형욱의 행적을 가늠케 하는 한 법인의 설립신청서가 제출됐습니다. 법인의 이름은 제심리얼티코프. [JESIM REALTY CORP]

제심은 부부나 동기간에 힘을 합쳐 일을 열심히 한다 이런 뜻이라고 합니다

우리말로 풀자면 제심부동산회사인 이 법인은 1972 1 18일 김형욱의 변호사로서 프레이저 청문회등에 동행했던 알란 디 싱거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설립돼 1 21일 뉴욕주 등록을 마칩니다

 

뉴욕주 웨체스터카운티 등기소에 제심법인관련서류를 신청, 2주일뒤 등기소직원이 문서고를 뒤져  찾아온 약 40년된 법인 서류는 모두 3건이었습니다

 

1972 1 18일 법인설립 서류에는 김형욱의 변호사 알란 디 싱거와 김형욱의 처가쪽 친척으로 비서와 경호역할을 담당했던 전 중정요원 김용길의 이름이 기재돼 있었습니다

 

김용길은 1960년대후반 중정요원으로 뉴욕에 파견돼 영사로 일했으며 아마도 김형욱은 친척 김용길을 미리 보내 망명을 미리 준비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 하나의 서류는 제심부동산회사가 김형욱 소유임을 입증하는 결정적 서류였습니다

1973 8 21일자로 된 이 서류에는 김형욱의 부인 김영순이 제심부동산회사의 프레지던트 즉 사장으로서 서명을 한 서류.

 


대리인으로서 이 법인의 지배인역할을 맡은 알란 디 싱거 변호사의 주소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통보한 내용으로 프레지던트가 신영순, 싱거변호사가 세크리테리로 기재돼 있었습니다

김형욱의 치밀한 망명준비 내일도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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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심부동산회사의 존재를 알고 법인등록번호를 어렵사리 찾은뒤 웨체스터 카운티 등기소에
법인서류를 신청할 때만 해도 과연 서류가 제대로 보존돼 있을지 마음을 졸였습니다

또 이 법인과 김형욱과의 연관관계를 입증할 만한 서류가 있을까 노심초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2주간 가슴졸이며 기다린 끝에 다시 찾은 웨체스터 카운티 등기소에서 작은 서류 폴더하나를
통째로 건네 받았습니다

등기소 사무실 앞 열람용 책상에 앉아서 보라며 그냥 서류를 건네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서류폴더를 열때의 떨리는 감정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다행히 첫 등록서류에서 알란 싱거변호사와 김용길의 이름을 찾았고
세번째 서류에서 김형욱의 부인 김영순이 프레지던트로 기재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박정희를 등진, 조국을 등진 김형욱의 치밀한 망명준비와 부정축재의 단서가 드러난 문서였습니다

문서를 조심조심 복사한뒤 가방 깊숙이 넣고 존경하는 선배에게 전화했습니다
'선배 찾았습니다 완벽한 입증관계가 나왔습니다' 라고

사실 올해 5월 중순 첫 방문했던 웨체스터 등기소는 들어가는 입구조차 찾지 못해
그 큰 건물을 세바퀴나 돌며 땀을 뻘뻘 흘릴 정도로 낯선 곳이었습니다

결국 그 건물에는 입구가 없다는 것을 알았고 큰 길 건너편 법원건물을 통해
겸색을 받아 들어간뒤 구름다리를 통해 등기소건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는 1-2주에 한번씩 들릴때마다 아주 익숙하게 입구를 찾고
저처럼 처음오는 사람에게 안내도 해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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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공지한 대로 김형욱 실종 30년을 맞아 김형욱 관련 문서를 통해 그의 망명과정을 추적합니다
앞으로 4-5회에 걸쳐 일단 치밀한 망명준비 과정을 각종 서류와 함께 전하고 유언장, 유언장의 증인, 김형욱일가의 기구한 사연등 다음 순서로 넘어가겠습니다 안치용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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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 71년 이전부터 부동산구입 망명준비

-1971 1월 부인명의 호화주택 매입

-1972 4월 법인명의 대형쇼핑센터 매입

 

30년전 파리에서 실종된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 망명이전부터 미국에 주택을 구입한 것은 물론 대형쇼핑센터를 매입하는등 치밀한 사전준비를 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은 6년여를 중정부장에 재직하다 1969 10월 해임된뒤 국회의원등을 지내다 1972 10월 유신선포로 국회가 해산되고 1973 3월 유정회 명단에서도 제외되자 박정희로부터 완전히 버림받았다고 판단해 1973 4 15일 미국 망명길에 올랐습니다

 

김형욱의 부인 김영순은 1973 1 5일 시무식의 어수선한 틈을 타 일본인명의의 위조여권으로 미국으로 출국했고 김형욱은 수차례의 간청끝에 간신히 해외여행 승낙을 받아 4 15일 대만으로 출국, 중간에 미국행 항공권을 구입했지만 경유지인 일본공항에서 중앙정보부요원들과 예상치 못한 조우를 하는등 우여곡절끝에 미국에 도착합니다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2007 10월 발간한 김형욱 실종사건 진상보고서에 따르면 김형욱의 미국 망명 결심시점을 1973 3, 빠르게 잡더라도 1972 10월 유신선포에 따른 국회해산 이후로 미뤄 짐작하고 있습니다

 

1973 3월 김종필이 총리로 기용되면서 행동에 제약을 받자 탈출을 구상하게 되고 이때부터 사채를 회수하고 외화를 환전하고 외화밀반출을 했다는 것이 1973 3월설이요, 1972 10 17일 해외국정감사도중 유신선포로 국회가 해산되자 그때부터 영어회화공부에 매달렸다는 것이 1972 10월 결심설입니다

 

1971 1 4일 김영순명의 뉴저지 테너플라이 주택 매입

165천달러짜리 주택 당시 1인당 이민자 외화허용환도가 백달러

 

그러나 김형욱 일가가 부동산등을 구입하며 미국정부에 제출한 계약서등을 중심으로 행적을 추적한 결과 최소한 1971년이전부터 치밀한 미국 망명을 추진했음이 밝혀졌습니다 [계약서 사진 참조]

 

뉴저지주 버겐카운티 등기소를 방문해 확인한 결과 김형욱은 자신의 부인 신영순[미국 서류에서는 신영순과 김영순 표기가 혼재]의 명의로 1971년 이미 호화주택을 구입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신영순 명의로 주택을 구입한 것은 1971 1 4일이며 주택소재지는 뉴저지주 테너플라이 트라팔가로드 60번지, 대지가 1.3에이커로 1,591평 규모에 건평이 81, 매입가는 165천달러였습니다.

 

당시 미국에 이민가는 사람에게 반출이 허용된 이민정착금이 1인당 1백달러였으니 165천달러라면 상상을 초월하는 큰 돈입니다

 

1970년대 후반부터 부동산업에 종사한 한 재미동포는 ‘1971년보다 10년지난 1980년대초까지도 한인이민자들이 구입한 집들이 3-4만달러였다며 1971 165천달러라면 호화주택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했습니다

 

뉴저지주 테너플라이지역은 뉴욕에 주재하는 한국외교관이나 지상사 주재원이 많이 사는 지역으로 공교롭게도 지난 2007 3월 한국정부가 3백만달러를 주고 구입, 현재 모 공사가 살고 있는 집도 바로 김형욱이 1971년 구입한 주택과 이웃해 있습니다 [한국정부 2007년 3월 3백만달러 주택구입 계약서등은 이미 이 블로그에 공개돼 있습니다]

내일은 김형욱이 망명이전에 설립한 법인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앞으로 글 싣는 순서는 - 김형욱 부인명의 법인 설립 - 법인명의로 망명 1년6개월전 대형쇼핑센터 매입
- 김형욱 79년 8월 파리방문직후 현 알파인 주택부지 매입 - 김형욱 실종 50일뒤 김형욱부인 나대지 7필지 구입 등의 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