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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이슈 언론보도2010.07.13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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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에게 거짓말 이미지, 고달이미지를 각인시킴으로써 이정권에 계산불가능할 정도의 큰 피해를 입힌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의 언론관을 볼 수 있는 한대목, “청와대 출입기자는 그 정부와 영욕을 같이 하는 것”
출입기자를 청와대 홍보실 직원으로 생각하는 이런 마인드로 뭐가 될까요
어쨌든 mb는 참 인복이 없습니다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이 13일 수석 인선을 발표하면서 짤막하게 퇴임의 변을 밝혔다.

이 수석은 “2007년 7월1일 대선캠프에 참여해 지난 3년여간 이 대통령의 입 역할을 해왔다”며 “인생에 있어 가장 열심히 산 기간이었다. 농담을 좀 섞으면 아내가 '진작에 그렇게 열심히 하지 그랬느냐’고 말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난들 왜 신성일, 김진규 역할을 하고 싶지 않겠느냐”며, “하지만 드라마에는 허장강, 박노식 역할을 하는 사람도 있고 어쩔 수 없이 그런 역할에 몰리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대표적인 인적 쇄신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데 대한 감정을 우회적으로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이 수석은 “청와대 출입기자는 그 정부와 영욕을 같이 하는 것”이라며 “비판할 건 하더라도 앞으로도 격려해주고, 야단치더라도 흠집내는 기사는 자제해 달라”고 말했다. 이 수석의 후임은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유 전 차관이 고사해 이번 인사에 포함되지 않았다.
핫이슈 언론보도2010.07.12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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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신임 정책실장에 백용호 국세청장이 내정된 것으로 13일 알려졌다.

이명박 대통령은 13일 오후 2시 청와대 수석급 일부에 대해 인사를 단행할 것으로 전해졌다.

윤진식 전 실장의 충북 충주 보선 출마로 공석중인 청와대 정책실장에 내정된 백용호 국세청장은 충남 보령(54) 출신으로 중앙대 경제학과와 뉴욕주립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경제 과외선생'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이 대통령의 경제철학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중 한명으로 꼽힌다.

이 대통령의 서울시장 재임 때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을 맡았고 이 대통령의 자문기구인 바른정책연구원을 이끌어왔으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위원으로도 참여했다.

이명박 정부 초대 내각에서 공정거래위원장으로 임명됐다가 지난해 7월 국세청장을 맡아 국세청 개혁을 이끌었다.

홍보수석에는 유진룡 전 문화관광부 차관이 내정됐다.

유 전 차관은 충북 충주(54)에서 태어나 서울고와 서울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1978년 행시(22회)에 합격해 문화공보부 사무관으로 관계에 첫발을 내디딘 뒤 문화관광부 문화산업국장, 정책홍보관리실장, 차관을 거친 정통 문화 및 언론 분야 공무원이다.

유 전 차관은 사행성 게임인 '바다이야기' 논란때 게임허가에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고 참여정부 말기 청와대 홍보수석실이 아리랑TV 임원 인사를 청탁했다고 주장했다가 경질됐다.

현 정부들어서는 을지대 성남캠퍼스 부총장과 한국방문의해 추진위원회 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으로 활동중이다.

정무수석에는 3선 의원(비례대표)인 정진석 국회 정보위원장이 내정됐다.

초대 청와대 참모진 인사때부터 줄곧 유력한 정무수석 후보로 거론돼왔던 정 의원은 충남 공주 출신(50)으로 성동고와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일보 정치부 기자와 워싱턴 특파원을 지냈다.

1999년 자민련 명예총재특보로 정치권에 입문한 뒤 2000년 16대 총선에서 내무부 장관을 지낸 부친 정석모 전 의원의 지역구(충남 공주.연기)에서 자민련 간판으로 처음 금배지를 달았다.

2005년 공주.연기 재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 뒤 자민련의 후신격인 국민중심당 최고위원과 원내대표 등을 거쳐 2007년 대선 직전 한나라당에 입당, 2008년 18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당선됐다.

이번 청와대 조직개편에서 신설된 사회통합수석에는 박인주 평생교육진흥원장이 내정됐다.

박 원장은 시민단체, 교육계, 정계 등에서 다양한 활동을 해왔고 이념적 스펙트럼이 넓어 사고의 유연성이 있는데다 시민사회단체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60세인 박 원장은 경북 칠곡 출신으로 경북고와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경북대 교육대학원 사회교육학과를 졸업하고 흥사단 이사장, 월드리서치 대표, 통일교육협의회 상임의장, 공명선거시민실천협의회 상임대표, 안양대 경영학부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다.

사회통합수석은 청와대 조직개편 작업 막판까지 신설할지, 아니면 기존 시민사회비서관을 확대할지 여부를 놓고 많은 토론이 벌어진 끝에 결정됐고 이번 개편의 '키워드'인 소통.통합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자리인 만큼 시민사회단체와의 인맥, 경륜, 인품 등을 두루 감안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인선 작업이 쉽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사회통합수석은 산하에 국민소통비서관을 선임으로 두고 정무수석실에서 시민사회비서관, 민정수석실에서 민원관리비서관(옛 민원제도비서관)을 이관받아 통할하게 된다.

미래전략기획관에는 김상협 미래비전비서관, 정책실장 산하의 정책지원관에는 김동연 국정과제비서관이 유력한 상황이다.

인사기획관과 기획조정실장, 대변인은 이날 오후 발표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인사기획관에는 김두우 메시지기획관과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 등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홍보수석 내정자가 언론인 출신이 아니어서 대변인으로는 언론인 출신을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여성대변인이 많이 활약하고 있는 정계 현실을 감안해 17대 국회의원을 지내 정무 및 공보경험이 있는 김희정 인터넷진흥원장도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핫이슈 언론보도2010.07.04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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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가 지난 3일 이명박 대통령이 정치적 영향력이 가장 큰 정치적 영향력이 가장 큰 정치인인 반면 신뢰도는 이에 크게 못미치는 4위에 그쳤다고 보도했습니다

중앙일보의 중앙선데이가 동아시안연구원, 한국리서치등과 공동 조사한 결과라고 합니다
중앙일보 여론조사 결과 http://news.joins.com/article/589/4288589.html?ctg=1000&cloc=home|list|list1

특히 MB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2007년 조사에서 1위였으나 2009년 조사에서 3위로 추락한데 이어 올해는 4위로 평가되는등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더하다 하겠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MB에 대한 신뢰도추락은 MB 개인의 불행일 뿐 아니라 국가운영에도 큰 영향을 미쳐 국민 개개인에게도 불행한 일일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MB는 왜 신뢰도 4등일까, 왜 신뢰도 1등에서 3등으로, 또 4등으로 하락했을까?
중앙일보 보도를 계기로 한번 곰곰히 생각해 봤습니다
1차적으로 MB 자신에게 신뢰도 하락의 원인이 있습니다만 정치전문가가 아닌 평범한 국민의 한사람이 보기에는 청와대 홍보담당자에 대한 불신이 MB에게 전이됐기 때문이다, 홍보담당자에 대한 불신을 MB가 뒤집어썼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홍보담당자를 중용한 것도 MB 이기에 이 또한 궁극적으로 MB 책임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다면 청와대 홍보담당자는 왜 불신을 받나,
그동안 실수이든, 고의이든 조금은 잘못 전달된 사실들을 이제는 국민이 모두 알게 됐고 이동관 홍보수석은 이유야 어찌됐건
잦은 고소를 통해 국민들이 매우 좋지 못한 이미지를 갖게 됐다, 이 두가지 요인이 불신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청와대 홍보담당자들이 잘못 전달한 것들은 최근만 해도 MB의 BBC 대담내용의 그릇된 전달, MB-오바마 전화통화 발표중
일부 내용의 오류등에서 부터 법정스님 열반뒤 출판사와 책이름을 거꾸로 발표하는 코미디를 연출하는가 하면 지방선거 참패와 관련한 MB의 대국민담화 전문을 청와대 웹사이트에 게재하면서 대통령 인사말에 물음표를 찍는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하기도 했습니다

대통령의 발언과 다른 홍보는 금방 알려지게 되고 불신으로 이어집니다

여러차례 실수[?]가 나오면서 이제는 백약이 무효일 정도로 어처구니 없는 일들도 나옵니다
죽자 사자 실수를 없애려는 필사적인 노력도 이미 그들 내부에 깊숙이 침투한 기강해이의 무드를 잠재우지 못하는 것같습니다


또 이동관 홍보수석은 워낙 붙임성이 좋은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만 언론들은 2년간 5차례 고소를 한 그를 일컬어 고소의 달인, 고달이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평가합니다

잠잠해지려하면 청와대 홍보수석이 고소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또 며칠 지나면 청와대 홍보수석이 어떤 말을 했다더라는 아름답지 못한 이야기가 나오는가 싶으면 곧바로 고소기사가 뜨는 고소의 악순환이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그 자신도 '검투사론'을 말했지만 좋은 말로 하면' 과격-거친' 이미지로 다가온 이재오씨와 비슷한 이미지, '제2의 이재오다' 뭐 이런 이미지가 된 것 같습니다 
,
청와대 홍보수석이 MB만큼 유명한 사람이 됐고 그 자신이 뉴스메이커가 됐지만 안타깝게도 아름답지 못한 내용으로 유명한 사람이 됐고, 아름답지 못한 내용으로 뉴스메이커가 됐습니다 

물론 청와대 홍보수석도 억울한 일을 당하면 당연히 고소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한번 할 때 그럴수 있지 하던 국민들도 3번 4번 5번 되다 보니 '도대체 뭐야 이거'하고 색안경을 쓰고 보는게 인지상정이요 어느새 화까지 납니다

올해초에는 MB도 이동관수석의 대구경북발언과 관련,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같은 기사가 났겠느냐, 당장 고소를 취소하라'고 질책했다지만 별무효과였습니다
며칠뒤 우리에게 들린 소식은 또 '고소의 달인'이 다른 고소를 했다는 기사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도 아니고 청와대의 입이며 MB의 입인 사람이 이런 이미지로 비쳐지다보니 본인에 대한 불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청와대 발표 전체에 대해 불신하는 사람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 고소를 5번 하는 것과 국민에게 신뢰를 주며 정책을 홍보해야 하는 홍보수석이 고소를 5번 하는 것은 많이 다르다 생각합니다

홍보수석이 MB의 입이기에 결국 홍보수석에 대한 불신을 MB가 뒤집어쓰면서 MB에 대한 신뢰도가 4위로 추락한 것이다
이렇게 생각됩니다
불행한 일입니다, MB도 그렇지만 청와대와 대통령에 대한 불신은 국가전체의 불행입니다

이동관수석의 해명도 이해가 됩니다
언론보도를 보면 [이 수석은 “나도 원래 성격이 둥근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욕을 많이 먹는 걸 안다. 사람들은 검투사에게 ‘왜 멋지게, 우아하게 칼싸움을 하지 못하냐’라고 말할 수 있지만 링 위에 올라 있는 검투사에겐 한가한 얘기다. 찌르지 않으면 찔려 죽기에 때론 살기 위해 뒤에서도 찔러야 하는 게 검투사다. 내가 악역을 맡지 않으면 잘못된 주장 때문에 청와대와 정권이 피해를 보게 된다.”고 말했다.] 이렇게 나옵니다

이른바 검투사론으로 '내가 악역을 맡지 않으면 잘못된 주장 때문에 청와대와 정권이 피해를 보게 된다, 살기 위해 뒤에서도 찔러야 된다'고 말했습니다만 그가 말한 대로 '청와대와 정권이 살아난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결과로 보입니다 
'신뢰'를 먹고 살아야 할 청와대의 입이 '악역'[?]을 맡음으로써 결국 '신뢰'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정권출범 2년반만에 MB가 국민의 신뢰를 잃게 하는 결정적 역할을 했고 이것은 사실상 MB 정권의 가장 큰 상처라고 보여집니다

되짚어보면 기본적으로 홍보라는 직책에 대한 진실한 이해, 또 홍보를 잘하겠다는 의지가 부족한 것은 아니었나 의문도 듭니다
홍보를 잘하기 위해, 청와대의 정책을 국민에게 잘 알리기 위해 합목적적으로 접근해야 된다, 어찌됐건 일이 되도록 해야 한다 생각됩니다만 그런 유도리가 부족했다는 느낌입니다
자세히는 알수 없지만 언론보도를 보면 일부사안에 대해서는 이해를 구하기 보다는 일방통행을 했다고 하는데 홍보를 잘 하고
내가 원하는 바를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또 내가 모시는 분의 정책이  잘 알려지기를 원했다면 좀 더 설득하는 노력을 기울였어야 할 것입니다

MB가 나름대로 열심히 뛰는것 같습니다 그러나 열심히 뛴다고 아무리 말해도 우리가 알다시피 평가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그 원인은 홍보수석실이 국민의 불신을 자초했고, 그 불신이 MB에게 전이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를 택한 것이 MB이기에. 또 적절한 컨트롤을 하지 못한 것도 MB이기에, 결국 MB책임이요 '자살골'입니다
여야를 떠나 널리 인재를 구해야 할 시점입니다, 널리 인재를 구해서 신뢰를 회복해야 합니다

대기업 홍보담당자들의 스터디 모임등에서는 청와대의 홍보행태가 실패한 홍보사례로 종종 거론되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청와대의 실패한 홍보사례와 함께 홍보담당자들의 처신등이 심심챦게 언급되고 있다는 귀뜸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핫이슈 언론보도2010.07.03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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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MB도 영포회 활동'의혹 - 박명재 전 영포회회장 지난해 인터뷰서 직접 언급 http://andocu.tistory.com/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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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섭 전 국회의장이 목숨걸고 이후락 김형욱을 찍어낸 것처럼 mb가 아닌 대한민국을 위해 제2의 이만섭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대로 가면 大選도 끝장… 서민 이미지의 후보 내세워야" "이 정권, 정치학 교과서와 반대로 가고 있다"

2008년 6월 7일 청와대가 발칵 뒤집혔다. 집권 100일 동안 권부(權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정두언(鄭斗彦) 한나라당 의원이 폭로했다. 당시 기사의 제목은 "청와대는 일부가 장악…그들이 '강부자 내각'을 만들었다"였다.

원본출처 조선일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7/02/2010070201612.html?Dep1=news&Dep2=headline1&Dep3=h1_04

정 의원은 '그들'이 누구냐고 묻자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의원을 거명했다. 이 의원은 당시 세간에서 실세 중 실세로 통했다. 정 의원은 이 의원의 수족(手足)으로 박영준 총리실 국무차장 등 3명을 꼽으며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비록 이니셜로 처리됐지만 한명은 '욕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2인자 행세를 했다', 또 다른 사람은 '음해·모략·이간질의 명수(名手)'라 평했다. 그는 "그들이 국정은 뒷전인 채 대선 승리의 전리품(戰利品)을 독식하고 있다"고 했다.

정 의원의 취중진담(醉中眞談)으로 청와대와 내각이 개편됐다. 정 의원은 이후 자기가 보낸 세월을 이렇게 표현했다. "모든 이에게 외면당했다. 도사(道士)들만 전화를 걸어왔다. 우리나라에 그렇게 도사가 많은지 처음 알았다."

그가 한나라당 대표 경선(競選)에 뛰어들며 '그 사람 그 후' 인터뷰를 자청했다. 그는 경선에만 관심이 있었고 기자는 권력 사유화(私有化) 발언 2년 뒤인 요즘 한나라당과 청와대에 무슨 변화가 있었는지에만 관심이 있었다.

-6·2지방선거에서 기획위원장을 했습니다. 선거의 패장(敗將) 중 한명인 셈인데 왜 패장이 대표가 돼야 합니까.

"이번에 나선 후보들의 면면이 다 미덥지가 않았어요. 자연스레 '정두언은 뭐 하냐'는 소리가 나왔습니다. 패장이라지만 누구만 패장일 순 없고 다 책임이 있는 거지요."

―다 같이 책임져야 한다는 뜻입니까?

"전 선거전을 시작할 때부터 '우리가 진다'고 했습니다. 남들은 엄살이라 그랬지만요. 전 여론조사에서 12.5%를 빼야 한다고 했어요. 역대 지방선거가 다 그랬거든요."
 
―한나라당이 자만에 빠져 우려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는 얘기네요.

"광역의원과 기초단체장 공천만 해도 그래요. 국회의원들이 경쟁력 높은 사람은 다 제쳐버리고 자기 마음에 맞는 사람으로 바꿔치기했잖아요. 공천에서 밀린 사람들이 다 무소속으로 나와 당선된 것만 봐도 얼마나 공천이 잘못됐는지 알 수 있지요."

―광역의원·기초단체장뿐 아니라 광역단체장도 그렇지 않은가요? 예를 들어 경쟁력 있는 것으로 평가된 김태호 경남지사는 왜 주저앉혔고 아나운서 출신 이계진씨는 왜 압도적인 리드를 지키지 못했나요. 오세훈 시장도 만심했다는 얘기가 들리고.

"김 의원은 더 큰 꿈을 위해 (경남지사 출마를) 포기한 걸로 알고 있어요. 청와대에서 무슨 약속을 했는지는 모르지만요. 김 지사는 외모가 매력적입니다. 다음 대선이나 다음다음 대선 땐 후보의 '섹스어필'이 당락의 중요한 요소가 될 겁니다. 서울도 고전했지만 그건 (오세훈 시장) 개인이 고전한 게 아니고…. 이계진 의원은 워낙 여론조사에서 앞섰어요. 유세할 때 그렇게 못할 줄은 상상도 못했지만요."

―그걸 알고도 가만히 있었습니까?

"제가 중간에 '너무 점잖게 한다'고 얘기했지만 본인은 '(이광재 당선자가) 한참 후밴데…'라고만 하더군요. 본인의 생활철학이 선거와 안 맞은 거지요."

―국회의원들의 제 사람 챙기기와 몇몇 예상치 못한 일들이 선거 패인이란 말입니까.

"근본적인 패인은 중간층과 젊은층이 빠져나갔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집권한 건 노무현 정권의 무능과 부패에 대한 환멸 때문이잖아요. 그러니 노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선 승리의 1등 공신이란 말까지 나왔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어때요. 'MB가 대통령이 돼서 달라진 게 뭐 있느냐'는 말이 나오잖아요. 잃어버린 10년을 얘기하다 10년 전으로 되돌아갔다는 사람들도 많고요."

―중간층과 젊은이들이 등 돌린 게 패인이라고 하지만 골수 우파도 현 정권에 실망하고 있다고 합니다. '비겁한 우파'라고.

"사실 이명박 대통령은 어느 대통령보다 지지기반이 약합니다. YS와 DJ는 지역기반에 민주화 투쟁이란 기반이 있었잖아요. 노 전 대통령도 지역기반이 있고 이념 기반이 있었고요. MB가 가까스로 수도권을 지역기반으로 만들었는데 다 없어진 거나 마찬가지가 됐어요. 그런데 이런 건 있어요. 집권을 하면 중도실용노선으로 나갈 수밖에 없거든요. 근데 현 정권이 필요없는 실수를 여러 번 했어요."

―그게 뭡니까.

"정권 출범 후 첫 작품이 중요한 건데 종부세 폐지를 내놓았으니…. 그걸 보고 너무 당황스러웠어요. 부자들만 좋게 만들어줬잖아요. 정부 요직에 있는 한 위원장은 그 제도 덕분에 300만원 돌려받아 다 술 마시는 데 썼대요. 진행자 김제동 건도 외압의 실체가 뭔진 모르지만 사람들이 (외압 때문에 물러난 것처럼) 느끼게 만들었으니…."

―종부세 얘기가 나온 김에 묻겠습니다. 현 정권은 경제성장을 치적(治績)으로 내세우지만 피부로 느끼진 못하지요. 오히려 부동산가격 폭락 같은 게 선거 패배의 원인 아닌가요? 안정을 원했는데 너무 떨어졌으니.

"그 말도 맞아요. 제가 홍은동 벽산 아파트에 살잖아요. 얼마 전 앞 동으로 이사했어요. 근데 51평이 5억3000만원이니 참…. 살던 집은 보러 오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요. 그러니 어쩔 수 없이 1가구 2주택이 됐어요. 이번 선거는 참 희한해요. 아파트에서 전부 진 걸로 나왔거든요. 샐러리맨과 주부들이 다 등을 돌렸다는 얘기지요."

―4대강 문제만 해도 강(江)에 빠져 허우적대는 꼴인데.

"4대강 정비를 하긴 해야 돼요. 환경을 말하지만 정신 나간 정부가 아니고선 어떻게 강을 훼손해가며 토목공사를 하겠어요. 다만 한꺼번에 한 건 무리였어요. 영산강 같은 곳 하나 번듯하게 보여주면 너도나도 하겠다고 했을 텐데. 하지만 어차피 착공을 다 했으니 마무리할 일만 남은 거 아닌가요."

―미디어법만 해도 언론사 약올린다는 말이 많습니다.

"저도 다른 기자들한테 들었어요. 종편 선정 때문에 쓸 기사도 못 쓴다고. 근데 그건 언론사가 창피하게 생각해야 될 일 아닙니까? 정부에 아픈 기사도 막쓰고 그래야지요. 미디어법을 정말 치열하게 통과시켰는데 요즘 들어 이런 생각이 들긴 해요. 왜 우리가 그렇게 치열하게 법을 통과시켰나 하는."

―선거 망치고 지지층 분산되고 4대강에 종교문제까지 계속 삐걱대고. 그럼 인사 쇄신이라도 해야 하는데 대통령은 왜 자꾸 타이밍을 놓칩니까? 혹시 아직도 기업할 때 습관이 남아서 그런 거 아닌가요. 기업은 오너 마음대로 사람 쓸 수 있으니.

"전 이번 대통령의 발표를 보니 인사쇄신의 방향을 잘 잡았다고 보는데…."

―인사쇄신의 방향을 잘 잡긴 뭘 잘 잡았습니까? 얼마 전 청와대 A비서관이 상관 B를 제치고 윗선에 고자질하자 A의 밑에 있던 C가 A의 컴퓨터를 몰래 뒤져 A의 비행을 B에게 일러바쳤다면서요.

"허참…, 그건 드러난 일각에 불과해요. 저도 그 얘길 듣고 놀랐어요. 뭐 궁중야사(宮中野史)를 보는 것도 아니고."

―박근혜 전 대표와도 계속 냉각관계지요?

"박 전 대표도 이젠 방관적 태도를 버리고 대통령을 견제하면서도 협조해야 할 시점이란 걸 알 겁니다. MB가 실패하면 박 전 대표에게도 기회가 없을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대선 후보 경선 때 그리 지독하게 서로의 뒤를 캤는데 그 앙금이 쉽게 가시겠습니까.

"이 정권이 죽을 쑤면 어떻게 될까요. 공멸(共滅)밖에 없잖아요. 마지막 갈 길은 TK야당밖에 없을 거예요."

―지금까지 한 이야길 종합해보면 2년 전 권력 사유화 발언이 아직도 유효해 보이는데.

"전 정치학 교과서가 있다고 생각해요. 지역편중 인사하면 안 된다, 특정 인맥만 중용하면 안 된다, 국정운영에 친인척이 개입하면 안 된다…. 조선시대 정치학 교과서에 왜 그리 쓰여 있겠어요? 충정(衷情)을 갖고 해도 파행이 반복되기 때문에 강조한 거 아니겠어요? 역대 정권도 다 그걸로 몰락했는데…."

―그게 무슨 뜻입니까.

"지금 정권이 너무 권위주의적이고, 부패했고 부자(富者) 위주고 지역주의가 팽배해 있다는 말을 듣잖아요. 탈권위, 탈지역, 탈부자, 탈이념으로 가야 하는데."

―지금 정권의 위기가 교과서와 반대로 했기 때문이란 말입니까.

"사실 인사와 관련해서 그런 말이 안 나오려면 역차별을 할 수밖에 없어요. 근데 가만히 놔두면 어쩔 수 없이 편중인사가 될 수밖에 없어요. 문 부장도 마찬가질 걸요? 높은 자리 올라가면 고향친구 찾고 학교 선후배 찾을 겁니다. 전 사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이번 대표 경선에 나왔어요. 변화가 없으면 한나라당엔 미래가 없거든요."

―2년 전 풍파 일으킨 뒤 어떻게 지냈습니까.

"세상으로부터 고립되는 기분이었지요. 갑자기 가까웠던 사람들도 다 피하는 것 같았고…. 친구들이 제게 그래요. '넌 왜 난(亂)만 일으키고 성공하진 못하느냐'고. 제가 지금까지 55인 사건부터 비롯해 3번이나 난을 일으켰잖아요. 그럼 전 그러지요. '난을 일으키고도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만도 대단한 거'라고요. 쓴소리 들으면 기분이 나쁘겠지만 대통령은 포용력이 대단한 분이에요."

―그때 어떤 느낌이 들었나요.

"집권엔 두 가지 측면이 있어요. 권력을 누리는 측면, 권력으로 세상을 바로잡는 측면. 그런데 시간이 흘러가면 세상 바로잡는 데 관심이 많은 사람이 정권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어요."

―2년 전 기사에 등장한 게 후회됩니까.

"심각한 문제를 인식하고도 아무 말 않고 있었으면 전 죽었을 겁니다. 스트레스 받아 암(癌)에 걸렸든지 아니면 우울증에 걸려 자살했을지도 몰라요. 그것도 아니면 나쁜 놈들 때려주거나…. 아니? 그것까지 적으면 어떻게 해?(기자가 이 말까지 받아쓰자 정 의원은 황급히 볼펜으로 그 부분을 지웠다)"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과 화해는 했나요.

"인간적으론 그분에게 미안합니다. 인품·경륜이 대단한 분이고 나라를 위해 동생을 위해 선의(善意)로 일하려 한 분이거든요. 본인은 답답해하겠지만 구조적으로 문제가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에요."

―아직 이른 이야기지만 다음 대선은 어떻게 봅니까.

"지금 같아선 가망성이 없지요. 전 다음 대선 땐 한나라당 후보 같지 않은 후보를 내야 한다고 봅니다. 통상적인 한나라당 이미지와 거리가 있는 후보. 역대 사례를 보면 서민 이미지가 없으면 절대 대통령이 될 수 없어요. 이회창(李會昌) 선진당 총재가 두 번이나 실패한 것도 그거 때문이잖아요."

―그럼 김문수 경기도지사?

"아이 참. 여기까지만!"

―변화, 변화 하지만 정 의원도 머리 파마한 거랑 기타 치고 노래 부르고 앨범 발표한 것밖에 없다는 인상을 줍니다만.

"파마는 머리숱이 많게 보이려 한 거고요, 앨범 발표하고 노래 부르는 걸 꼭 문 부장처럼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많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