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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5월 16일 군사혁명이 일어나자 CIA 한국지부는 본부에 전문을 보냈고 CIA본부는 각국 정보를 취합해 5월 18일자
전체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CURRENT INTELLIGENCE WEEKLY SUMMAY' 라는 이 문서는 각국에서 활동하는 CIA 지부가
본부에 타전하는 '주재국 현안에 대한 주례 정보보고서'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문서는 모두 23페이지로 이뤄져 있으나 표지 전체와 2페이지 한국정부부분 일부, 그리고 5페이지만
비밀해제돼 공개되고 나머지 부분은 모두 검게 칠해져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박정희에 대한 개인 신상 부분은 마지막 7페이지에 드러납니다
516에 대한 한국의 전체적인 상황을 언급하면서 두번째 문단에 박정희 신상이 언급됩니다

그대로 번역하자면 이렇습니다

'박정희는 일본군 장교출신으로 1946년 한국군에 합류했다. 2년뒤 좌익활동혐의로 체포돼 10년형을 받고 수감됏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발발되자 1950년 다시 복직됐다. 그가 다시 공산당 조직을 재건했는지 여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2012/10/07 - [대통령 후보] - [미의회가 밝힌 박정희정권 스위스계좌 2]걸프사,박정희방미자금 20만달러 스위스비밀계좌에 입금-UBS계좌번호는 626,965.60D: 스위스UBS입금전표,걸프사진술서등 첨부


2012/10/03 - [대통령 후보] - [미의회가 밝힌 박정희정권 스위스계좌 1]'박정희자금 이후락이 스위스계좌에 예치- 김성곤이 육영수에게 돈 상납' : 이게 프레이저보고서 원문


2012/09/17 - [대통령 후보] - [박정희X파일]'4대의혹' 재판도 사전조작- 박정희 승인하에 김형욱-길재호가 구형량 결정 :미대사관 면담보고서


2012/09/16 - [대통령 후보] - 안치용,‘박정희 대미로비 X파일’출판 : 미국의 청와대도청은 실재- 박정희 방탄차 알고보니 CIA가 제공


2012/09/18 - [대통령 후보] - [박정희X파일] 1962년 월남군사고문단파견 사전통보하자 미국, '왜이러지?'갸우뚱-미국무부 비밀전문



얼마전 숨진 이후락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다시 이 비밀문서가 소개되고 CIA의 이러한 보고를 바탕으로
이후락이 박정희의 사상을 감시하는 CIA 의 첩자였다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미 오래전 알려진 문서지만 원문을 누구나 공유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원문 전체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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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락 장남 이동진 - 옥로 부부는 여러 법인을 설립, 자신들의 부동산을 법인으로 이전하는등
활발한 부동산 거래를 합니다

이후락 장남부부는 1981년 1월 7일 각각 16만5천달러에 매입했던 알파인 나대지 2필지를
1983년 5월 3일 22만달러에, 또 1983년 5월 18일 21만달러에 각각 매도합니다

또 자신들이 크레스킬에 매입해 뒀던 부지 2필지도 매도합니다
이 크레스킬 땅은 이 부부가 언제 매입했는지 잘 나타나지 않지만
이 땅을 매도할때 이들 부부가 주인인 것이 드러납니다

크레스킬 부지 2필지는 1985년 3월 8일 각각 15만달러에 매도됩니다
이중 한 필지는 우리도 잘 아는 공직자 겸 정치인에게 팔렸습니다

이들 부부는 뉴저지 포트리 블록 4101 랏 35 부동산도 소유했던 것으로 드러납니다
GLEN INVESTMENT COMPANY INC라는 법인이 이 부동산을 소유했으며
이 회사는 이동진씨 소유였습니다

1988년 12월 16일 GLEN은 회사 소유주 이동진에게 1달러라는 가격으로 넘겼습니다
그러나 최초 GLEN 이 얼마에 이 부동산을 사들였는지는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첨부파일 참조]

이후락 장남 부부 198812.jpg -
이 부동산은 이동진 사망 직전인 2004년 4월 24일  다시 '310 MAIN ST LLC' 라는 법인에
1달러에 매도됩니다   [첨부파일 참조]

이후락 장남 부부 198812.jpg -
이당시 이동진은 한국에서 요양중이었으며 사망에 임박해 부인에게 위임장을 작성해 주는등
재산을 정리한뒤 2004년 5월 8일 사망했습니다

장남 사망 1년 6개월뒤인 2005년 12월 19일 부인 옥로는 테너플라이 자신의 집을
LEE MARTIAL TRUST 라는 법인에 1달러에 매도하며 이 매도서류에 장남의 사망일자등이
기록돼 있습니다

이 집은 2006년 6월 30일 백5만9천달러에 팔립니다  [첨부파일 참조]

이후락 장남 부부 200404 집 이마샬트러스트.jpg -
그뒤 이옥로는 2007년 3월 2일 뉴저지 테터플라이 주택을 2백15만달러에 사들입니다

아직 법인소유의 부동산들은 조사해 보지 않아 정확한 규모를 알 수 없습니다  [첨부파일 참조]

이후락 장남 부부 200703 새집 매입.jpg -
이외에도 장남은 그 자신의 독특한 취미[?]를 즐기기 위해 큰 돈을 탕진했다[?]
하는 것이 잘 알려진 소문이며 여러 증언들이 많으나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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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락 외동딸 부부인 정화섭 정명신 부부는 1981년 1월과 4월 백48만달러를 들여
두건의 부동산을 매입했었습니다

그뒤 약 2개월뒤인 1981년 6월 15일 이후락의 장남 이동진은
GAINES CAPITAL CORPORATION 과 함께 뉴저지 잉글우드 클리프의 부동산을
사들입니다

장남과 함께 부동산을 사들인 GAINES 라는 회사는 바로 이후락 사위
정화섭의 회사였습니다

이후락 장남과 이후락 사위가 공동출자해 부동산을 사들인 셈입니다

부동산 매입가격은 백60만달러,
부동산 주소는 뉴저지 잉글우드클리프 블록 411 랏 19였습니다

백60만달러는 지금도 적지 않은 돈이지만
28년전 백60만달러는 그야말로 엄청난 거금이었습니다

결국 이후락 외동딸 부부는 부분적으로 장남과 행동을 함께 하면서
1981년에만 3백8만달러의 부동산을 매입한 것입니다

이후락 정화섭 이동진 1981년 백60만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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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락의 외동딸 부부인 정화섭-이명신부부는 1975년과 1977년 집을 구입한뒤
부정축재자 발표직후인 1980년 7월부터 부동산 매입을 본격화합니다

신군부가 부정축재자를 발표한 것은 1980년 6월 17일,
이때 이후락은 울산의 학교등 모두 194억원을 환수당합니다

그러나 외동딸 부부의 미국 부동산 매입은 공교롭게도
부정축재자 발표로 재산을 환수당한 바로 그 다음달부터 급격히 늘어납니다

이후락 외동딸 부부는 1980년 7월 7일
뉴저지주 포트리의 221 메인스트릿 부동산을 매입합니다
매입단가는 22만5천달러였습니다

이후락 사위 정화섭 1980년대 1 -
이후락 외동딸 부부는 1980년 8월 25일
하와이주 호놀룰루의 이라카이 아파트먼트 빌딩 1426호를 매입합니다
매입단가는 34만2천달러였으며 8만여달러를 먼저 지급하고
향후 3년에 걸쳐 매년 8만여달러를 납입합니다 [하와이 부동산 계약서는 이미 공개함]

이후락 외동딸 부부는 1980년 12월 15일
뉴저지 크레스킬 블록 210 랏 25와 랏 26등
나대지 2필지를 매입합니다
매입단가는 18만달러였습니다
훗날 이 나대지 2필지는 이후락 장남 이동진을 거쳐
우리가 잘아는 정치인에게 매도됩니다

이후락 사위 정화섭 1980년대 2 -
이후락 사위 정화섭은 1980년 12월 22일
이후락 장남 이동진과 공동명의로
뉴저지주 포트리 블락 4805 랏 3의 부동산을 매입합니다
매입단가는 11만5천달러였습니다

이후락 사위 정화섭 1980년대 2 -
이처럼 이후락 외동딸 부부는 부정축재자로 재산이 환수당한 다음달부터 시작해
1980년에만 4건의 부동산을 매입합니다
이 4건의 매입금액은 하와이 부동산의 전체금액을 합산한다면
87만달러에 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1981년에 접어들면 그 규모가 더욱 커집니다
내일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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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 직계가족의 미국 부동산 내역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오늘 뉴저지 버겐카운티 등기소를 방문해 부동산 관련 서류 일부를 복사해 왔습니다
서류가 워낙 많아 정리에 시간이 걸리므로 일단 시기를 나눠서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1970년대입니다

이후락 전 부장의 외동딸 부부인 정화섭- 정명신이
미국에 첫 부동산을 구입한 것으 1975년으로 추정됩니다

이들 부부는 1975년 11월 3일 8만3천달러를 주고
뉴저지주 테너플라이 22 LESLIE PLACE 주택을 매입합니다



이들 부부는 이 주택을 2년이 채 지나지 않은
1977년 7월 26일 9만5천달러에 매도합니다

이들 부부는 테너플라이 주택 매도에 앞서
1977년 2월 1일 뉴저저주 크레스킬 주택을 매입합니다

매입가격은 15만3천달러로 1년 3개월전 테너플라이 주택매입때보다
약 2배정도 많은 금액이며
주소는 32 EISENHWER DRIVE, CRESSKILL, NJ 입니다



이들 부부는 뉴저지주 알파인으로 이사가기 전까지 이 집에 거주합니다

과연 1970년대 중후반 8만여달러, 15만여달러의 가치가 어느 정도였을까
1970년대가 미국이민자들에게 허용된 외환반출한도가 70달러에 시작해
백달러로 늘었다가 2백달러까지 가능했다고 하니 매우 큰 돈임에 틀림없습니다

1970년대 부동산 거래는 뉴저지 버겐카운티의 경우
2건 매입, 1건 매도 였습니다

매우 특이한 것은 이들 외동딸 부부의 부동산 거래가 1980년 초부터 
급격하게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매입건수는 물론이고 한건당 금액도 크게 늘어납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시해사건을 계기로 정권을 찬탈한 신군부는 
광주민주화운동때인 1980년 5월 16일 김종필 이후락등을 연행합니다 

약 한달간의 조사뒤 1980년 6월 중순 이후락이 1백94억원정도의 
부정축재를 했다고 발표합니다 

그러나 바로 이 이후부터 이후락 직계가족, 외동딸 부부와 장남 부부의
미국내 부동산 매입이 크게 늘어납니다 

신군부는 분명히 탈탈 털어 조사해 백94억원 전액을 국고로 환수했는데
이후락 직계가족들이 그 이후부터 미국내 부동산을 대거 사들이는 것은
어떻게 설명이 가능할까요 
정말 미스테리한 일입니다 

스위스은행 비밀계좌에 예치된 돈일수도 있고
혹시 신군부가 이후락의 부정축재액을 축소해 백94억원만 발표하고
군부등에 이후락씨등의 영향력을 의식해 적당한 선에서 타협,
일부는 그대로 돌려준 게 아닌가 하는 의혹도 있습니다 

만약 부정축재액중 백94억원만 환수하고 일부는 다시 돌려주었다면
또 다른 일부를 신군부가 가져갔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부분을 밝혀내는 것이 또 하나의 숙제이며
부정축재 조사를 담당한 전두환등이 입을 열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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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의 외동딸 부부뿐 아니라 장남 이동진-서옥로 부부도
미국에 적지 않은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외동딸 부부가 장남 부부보다는 부동산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후락 전 부장의 장남 이동진씨는 몇년전 작고했으며 
동진씨 작고뒤 서정귀 호남정유 회장의 딸인 옥로씨는 뉴저지에 새 집을 구입했습니다

이옥로씨는 2007년 3월 2일 뉴저지 테너플라이에 2백15만달러의 집을 매입했습니다
이 매입계약서는 뉴저지 버겐카운티 등기소 디드 제9271권 제47페이지에 첨부돼 있습니다

이들 부부는 외동딸 부부와 같은 시기인 1975년 첫 집을 구입했으며
1980년에는 외동딸 부부와 함께 하와이 호놀룰루 이라카이 아파트를 매입했었습니다

지난 9월 29일 뉴저지 버겐카운티 등기소에서
이동진 이옥로씨의 부동산 거래서류를 조회했으나
역시 그양이 만만치 않아 현재는 목록만 가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조만간 관계서류를 확보해 공개하겠습니다

이동진-옥로 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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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년 이후 대통령 비서실장을 하면서 이후락의 이른바 ‘떡고물’ 정치가 본격화됐다. 그것은 비단 국내에서만이 아니었다. 이후락은 자신의 아들·딸·사위 등을 모두 미국에 보내놓고 미국에서조차 축재에 열을 올렸다.사위등은 LA 현지에 은행을 설립해 주주로 참여했고 교포방송인 LA 방송국을 설립하기도 했다. 이같은 재력을 기반으로 그의 사위는 LA한인회장에 당선되기도 했다. 그는 또 LA의 부자동네인 윌셔 브루버드에 당시 돈으로 3,000만 달러를 주고 빌딩을 사들여 이것을 한국교포들에게 세를 놓았다.

  당시 교포들 사이에 “이 빌딩은 실은 이후락 것이다”하는 소문이 나 현지의 민주화운동 그룹들이 “이후락의 부정부패와 해외 재산도피의 산 증거인 문제의 건물을 불태워 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훗날 코리아게이트 조사과정에서 FBI가 조사에 들어갔을 때 그는 빌딩을 매각한 뒤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70년 중앙정보부장에 취임한 이후락은 그 해 12월 정보 무경험자인 사위를 중정 국제담당 2국장으로 앉히고 둘째아들도 자신의 비서로 임명해 72년 남북회담 당시 모두 북한까지 자신을 수행토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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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락03-단독보도 이후락 금고지기 은행지점장 출신 S씨 실종미스터리

2008.07.23 16:13 | 정보&관심 | 진의꿈

http://kr.blog.yahoo.com/yyba21/1359068 주소복사

단독보도 이후락 금고지기 은행지점장 출신 S씨 실종 미스터리

‘돈세탁 의혹’ 누가 거짓 사망신고 했나?

▣ 글 윤지환 기자 jjh@ilyoseoul.co.kr

2008-07-01 10:46:38

지난 1970년대 박정희 정권 당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 그는 권력의 중심에 있으면서 막대한 비자금을 빼돌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일요서울은 지난 호<7월 3일자 739호>를 통해 전 상업은행(현 우리은행) 지점장이었던 S씨가 이 전 부장 비자금 조성 의혹의 핵심인물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후 일요서울은 S씨의 행방을 추적했다. S씨가 이 비자금 의혹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확인결과 S씨는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망증명서를 살펴보면 S씨는 1997년 10월 16일 위암으로 사망한 것으로 기록돼 있었다. 이렇게 되면 직계 가족 등을 통해 아직까지 영향력을 잃지 않은 이 전 부장이 과거에 비자금을 얼마나 어떻게 빼돌렸는지 확인할 길이 없어진다.

그러나 S씨의 부인인 O씨는 남편이 아직 죽지 않고 어딘가에 살아 있다고 확신하고 있어 그 내막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키고 있다. 놀라운 것은 O씨가 상당한 근거를 통해 이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전 부장의 막대한 비자금을 둘러싸고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는 검은 커넥션. 그 실체를 가리고 있는 흑막을 들춰보았다.

S씨는 60년대 후반 전 상업은행 울산지점장을 거친 뒤 70년대 초 같은 은행 종로지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S씨의 부인인 O씨는 “남편은 전북이 고향이다. 그 지역에서 은행에 입사했다”며 “당시엔 일반적으로 은행지점장은 출신지역을 중심으로 자리를 옮기는데, 어느 날 느닷없이 울산으로 발령이 나서 의외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부인 O씨도 모른채 누군가에 의해 접수된 S씨 사망신고서 사본(왼쪽). 지인 결혼식장에 나타나 방명록에 이름과 부조금을 적었다. (오른쪽)


S씨 막대한 재산 빼돌려

S씨가 본격적으로 수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한 것은 울산지점장이 되고 나서 부터다. 알 수 없는 어음을 수도 없이 발행하고 부동산을 사들이는데 열을 올렸다. 생활도 방탕해졌다. 가정을 돌보지 않고 나중에는 거의 집에도 들어오지 않았다고 O씨는 전했다.

O씨는 “그렇다고 집에 돈을 갖다 주는 것도 아니었다”며 “나는 약국을 운영하며 혼자 가정을 꾸렸다. 그리고 일수놀이와 부동산 투자를 통해 재산을 조금 모았는데 남편은 이것 중 일부를 빼앗아 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S씨가 울산지점장으로 근무하는 동안 주로 이 전 부장의 재산증식과 비자금 조성 업무를 도맡아 한 것 같다고 O씨는 말했다. 이에 대한 근거로 O씨는 이 전 부장의 전 운전기사로 실질적 자금 관리인으로 알려진 박모씨와 S씨와의 미스터리한 커넥션을 들었다.

O씨는 “남편은 은행지점장으로 근무하면서 상당한 재산을 모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의 호사스런 생활에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했다. 주변인들로부터 남편의 재산이 서울 부동산 투자에 쓰였다는 소릴 자주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박씨가 소유한 강남의 빌딩들 중 일부는 남편으로부터 매입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O씨는 이 과정에서 남편이 O씨의 재산까지 몰래 팔아치웠다고 분개했다.

 

O씨는 “남편이 자신의 재산만 팔아치웠다면 지금 와서 내가 문제 삼을 게 없다. 하지만 남편은 내가 애써 모은 재산까지 다른 사람에게 불법적으로 팔아넘겼다”며 “강남의 OO빌딩과 △△빌딩이 서 있는 땅 등은 분명한 내 재산이다. 내가 약국을 운영하며 재테크를 위해 사 놓은 땅을 남편이 나 몰래 팔아치웠다. 내 인감도장도 없고 내가 쓴 계약서도 한 장 없다”말했다.

O씨는 “나는 이 사실을 한참 세월이 흐른 후에야 알게 됐다”며 “그래서 남편으로부터 내 땅을 사들인 사람이 누구인지 일일이 찾아다니며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계약서가 어떤 것인지 확인하고 다녔다”고 그 동안의 조사내용을 설명했다.

O씨는 이렇게 조사하는 동안 깜짝 놀랄 사실을 알게 됐다. S씨가 특정인 한 명에게만 부동산을 팔았으며 그 매입자는 다름 아닌 박씨였던 것이다.

박씨는 70년 초반과 중반에 걸쳐 집중적으로 강남땅을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는 이 전 부장이 중앙정보부장으로 권세를 떨치고 있었고 S씨가 서울 종로지점장으로 근무할 때다.

O씨는 “박씨와 전화연결이 된 적 있어 내 땅을 어떻게 소유하게 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박씨는 S씨로부터 정당하게 매입한 땅이라고 주장했다”며 “이에 내가 ‘어떻게 내 땅을 그렇게 많이 가지고 있을 수 있냐. 그렇다면 그 계약서를 보자’고 말했다. 그랬더니 사본을 보내주겠다고 해놓고 아직까지 소식이 없다. 연락이 완전 두절됐다”고 말했다.

O씨에 따르면 이 전 부장의 집을 방문한 직후 박씨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는 것이다.

홀연히 사라진 S씨 어디로?

S씨는 언제부턴가 집에 아예 들어오지 않았다. O씨는 몇 번이고 서류상으로 부부관계를 정리하려 했으나 주변 친지들의 만류로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다만 S씨에 대한 소문은 계속 듣고 있었다. 1977년 은행에서 퇴직한 S씨는 상당한 호사를 누렸다고 O씨는 말했다.

수 년 전 O씨는 남편에 대한 소식 하나를 접하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 소식은 남편이 사망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남편에 대한 장례식은 없었다. O씨가 이 소식을 접했을 땐 이미 모든 장례절차가 끝나고 묘소가 만들어진 후였다.

O씨는 남편이 묻혔다는 묘소를 찾아가 보았다. 여기서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묘소가 있다는 선산에 찾아 갔지만 어떤 묘소가 남편의 것인지 찾을 수가 없었다. 이에 사람들에게 물어 보았지만 남편의 장례를 치렀다는 이들과 사망신고 증명인들의 말이 달라 어떤 게 진짜 남편의 묘소인지 찾을 수가 없었다.

자녀들에게 물어 보았으나 그들도 아버지의 묘소가 어디 있는지 몰랐다. 자녀들은 아예 아버지의 죽음에 관심조차 없어 보였다.

이에 남편의 시신을 매장했다는 이들을 찾아보았으나 그들이 누군지 알 방법이 없었다. O씨는 뭔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판단, 사망증명서를 확인해 보기로 했다.

증명서엔 S씨가 전북 정읍 ○○면에 위치한 집에서 1997년 10월 16일 위암으로 사망한 것으로 돼 있었다. 이상한 것은 사망신고 날짜다. 이 해에 사망한 S씨에 대한 사망신고는 2002년 4월에서야 이뤄져있었다. 신고인은 둘째딸인 A씨로 돼 있었다.

S씨와 O씨 사이엔 아들 2명과 딸 3명이 있다. 이들 중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자녀는 단 한명도 없다는 게 O씨의 주장이다. 그만큼 아버지에 대해 정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O씨는 사망신고 경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O씨는 “사망신고가 이뤄진 날짜도 실제 사망일과 차이가 많이 나고 A는 아버지 사망신고를 하면서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며 “그래서 다른 형제들은 아버지의 죽음을 몰랐다”고 말했다.

O씨는 둘째 아들이 써준 이에 대한 확인서까지 갖고 있었다. 확인서엔 A씨가 자신의 연락처를 알고 있었음에도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알려준 적 없어 직계 가족으로서 시신확인절차도 시행되지 않았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O씨는 “나는 남편이 죽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증거도 있다”며 “남편은 재산문제와 관련해 박씨와 이후락씨 그리고 권력층 인사들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내 생각엔 어떤 목적을 위해 허위로 사망신고를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사망 신고는 분명 거짓말


그는 한 장의 복사본 종이를 내밀었다. 그것은 97년 사망한 것으로 돼 있는 S씨가 98년 11월 가까운 지인의 결혼식장에 나타났다는 증거, 즉 방명록이었다. 그 방명록엔 S씨의 이름과 부조금액수가 적혀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사망신고를 한 A씨에게 확인해 보았다.

A씨는 어머니 O씨에 대한 증오심으로 가득했다. A씨는 친자식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어머니에 대해 험한 말을 쏟아내며 “그 여자는 돈에 미친 사람이다. 오직 돈 밖에 모른다”며 “아버지도 그 여자가 죽인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여자는 아버지의 모든 것을 빼앗고 암에 걸리게 해 죽게 만들었다”고 격분한 음성을 토했다.

아버지 S씨의 사망신고에 대해 A씨는 “아버지를 돌봐주던 친척이 사망사실을 알려왔고 그래서 신고했다”며 “형제들에게 알리지 않은 이유는 그들과 사이가 좋지 않아 별로 알리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O씨는 “나는 평생 자식들을 홀로 키우며 버둥거리며 살아왔다. 남편의 도움을 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며 “내가 남편을 찾아 나선 이유는 사실상 남남임에도 남편임을 내세워 내 재산을 편취한 남편으로부터 내 재산을 돌려받기 위해서다. 어떻게 내 땅이 권력층들의 손으로 넘어가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반드시 진실을 가려낼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O씨에 따르면 최근 S씨는 중국에서 목격됐다. 중국에서 S씨를 만난 O씨의 지인은 S씨가 건강하게 중국에서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고.

S씨가 팔아치운 O씨의 땅은 종로와 강남 등 노른자위의 땅이다.

그 위에 세워진 빌딩의 시가를 감안하면 그 가격이 수천억 원이 훌쩍 넘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