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분류없음2010.12.02 08:54
Loading

동아원 상장회사 맞나 - 나라푸드 미국법인은 큰딸,전두환 며느리 이름으로 http://andocu.tistory.com/3165

'근근이 산다던' 전재용, 미국서 벤츠타고 '씽씽'  http://andocu.tistory.com/3126

'전재만부부 식사권'이 최소 5천달러 - 세인트헬레나병원 이사 됐다 http://andocu.tistory.com/3092
이희상 동아원회장, 외화밀반출 부동산매입일지 : 추징금내고 1년만에 또 법 어기기도 http://andocu.tistory.com/3090

이희상 외화도피 한건 더, 처남 정소영 장관재직때 법어기고 미국주택구입  http://andocu.tistory.com/3086

국세청, 재벌 해외비자금 정조준 … “1조원 이상 추징 자신”
2010-12-02 오후 12:52:00 게재


홍콩·상하이·LA 등에 전담요원 파견

국세청이 대기업과 재벌가의 해외비자금을 추적하고 관련 정보 수집을 임무로 하는 동향파악요원의 해외파견을 추진키로 했다. 지난 10월 이현동 국세청장이 역외탈세를 강력 경고한 데 이어 국세청이 "1조원 이상 추징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어 추이가 주목된다.

원본출처 http://www.naeil.com/News/politics/ViewNews.asp?nnum=584415&sid=E&tid=9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2일 국세청이 역외탈세 관련 정보활동을 위해 요청한 예산 8억원을 58억원으로 증액, 예산결산특별위원회로 넘겼다고 밝혔다.

예산에는 국세청 전담요원의 체류경비 22억원과 정보활동을 위한 특정업무비 36억원이 포함됐다. 이 예산이 예결위 최종 심사를 통과할 경우 국세청은 홍콩, 상하이, LA 등 국제 금융중심지와 우리 기업 진출지역, 한인밀집지역 등지에 전담요원을 파견해 비자금을 추적하게 된다.

국세청은 리히텐슈타인에 본사를 두고 있는 프라이빗뱅킹(PB) 그룹 LGT은행의 전직 직원으로부터 계좌정보 1400건을 500만유로(70여억원)에 매입해 2억유로(3000여억원)을 추징한 독일 사례를 염두에 두고 있다. 해외 동향파악요원들이 정보 루트와 인적네트워크를 구축한 뒤 비자금 관련 계좌정보를 구입하는 방안이 추진되는 셈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올초 최소한의 정보활동으로 4개기업 해외 은닉자산 1500억원을 파악, 3392억원을 추징한 바 있다"며 "정예요원을 배치, 효과적인 정보활동을 전개할 경우 최소 1조원 이상의 추가적인 역외탈세 추징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국세청은 1차 해외비자금 추적 대상으로 재벌가를 지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현동 청장이 지난 10월 "우리나라 역외탈세는 기업의 해외투자나 해외투자법인과의 특수거래관계를 계기로 이뤄지며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기업의 대주주나 그 가족들이 관련되어 있다"고 밝힌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를 위해 국세청은 장기 파견형식의 실무요원 배치와 함께 현지 투자은행의 PB업무와 현지 한국계 기업상황에 정통한 '유급정보원(paid informant)'도 운용하기로 했다. 또 국내 고액체납자의 해외 은닉재산을 추적하기 위해 외국 민간재산조사 업체와 채권추심기관도 활용할 방침이다.

국세청의 움직임에 재계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해외비자금 추적의 최종 기착지는 결국 '대주주'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비자금 조성에 대한 국세청의 정당한 징세활동은 막을 도리가 없지만 정상적인 기업활동까지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성조 기획재정위원장은 "천문학적 규모로 추정되는 역외탈세에도 불구하고 현지 정보 부족으로 조세정의를 실현하는 데 미흡한 부분이 있었다"며 "관련 예산이 상임위를 통과한 만큼 차질 없는 사업추진으로 불법 재산반출과 역외탈세를 예방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허신열 기자 syheo@naeil.com

Loading

'근근이 산다던' 전재용, 미국서 벤츠타고 '씽씽' - 미국법원기록 http://andocu.tistory.com/3126

전두환 손녀 19살때 허브빌리지 매입 - 자금출처 의혹 [전두환 등기부등본 http://andocu.tistory.com/3132

유럽A씨, 국정원 전간부소개로 YS 혼외부인과 친아들 만났다 http://andocu.tistory.com/3130

전두환 등기부등본 : 왜 전재국 전재용에게만 줬을까 - 전재만에게는 다른 것 줬나 http://andocu.tistory.com/3132

이희상 외화도피 한건 더, 처남 정소영 장관재직때 법어기고 미국주택구입  http://andocu.tistory.com/3086

이희상 동아원회장, 외화밀반출 부동산매입일지 : 추징금내고 1년만에 또 법 어기기도 http://andocu.tistory.com/3090

'전재만부부 식사권'이 최소 5천달러 - 세인트헬레나병원 이사 됐다 http://andocu.tistory.com/3092

MB, 실정법위반 이희상 와인 G20만찬주선정 - 공정사회 자기발등 자기가 찍다 http://andocu.tistory.com/3088

이희상동아원회장 '백60억 아버지가 준것'주장하다 '내가 산것, 세금 돌려달라'소송 http://andocu.tistory.com/3099


미국에서 '근근이' 벤츠를 몰고 다녔던 전두환의 2남 전재용은 조지아주에서 OR 솔류션이라는 회사를 설립했다가 검찰의
전두환 비자금 수사가 시작되자 회사 대표이사등을 급하게 변경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전재용이 박상아와 함께 지난 2003년 8월 11일 존 케리 당시 민주당 대통령후보에게 각각 2천달러씩의 정치헌금을 합니다
이미 여러차례 보도된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첨부사진 1]

전재용의 정치헌금 서류를 보면 OR SOLUTIONS INC 의 PRESIDENT 겸 CEO로 기재돼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 조지아주 법무부에서 이 회사를 검색해보자 약식 등본에는 전재용이라는 이름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2003년 4월 8일 등기된 OR SOLUTIONS INC 는 약식조회에서 JOE YOUNG, CORRINE EAGLE, JIN AHN 이라는 전혀 다른 세사람이 최고경영자와 재무관계자등을 맡고 있었습니다 [첨부사진 2]

이 법인은 전재용 비자금 수사가 진행되면서 지난 2005년 7월 9일 법인등록이 취소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법인등록 서류를 찾아봤습니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전재용의 이름이 나타났습니다 [첨부사진 3]
이처럼 처음 등록서류에 전재용의 이름이 있었지만 조지아주에서 회사를 운영한다는 소문이 돌자 자신의 이름을 빼고
다른 사람을 내세운 것으로 추정됩니다

조지아주 법무부에 4월 6일 제출된 서류에는 원래 이 회사이름이 SOLORA INCOPORATED 이며 회사 이사로
RICK I YI와 CHUN JAE YONG  두사람이 등록돼 있었습니다 [첨부파일 1]
이 법인의 등록번호는 0321526입니다
전재용과 박상아가 라스베가스에서 혼인신고를 한것이 2003년 5월 12일 이므로 회사를 세운뒤 한달뒤 결혼한 셈입니다

이 법인은 2003년 7월 11일 조지아주 법무부에 법인이름 명경신청을 통해 SOLORA INC 에서 OR SOLUTIONS INC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첨부파일 2]

그이후 2003년 8월과 2003년 11월에도 두건의 서류를 제출합니다만 이때 회사 경영자들의 이름이 전재용에서
JOE YOUNG등으로 바뀐 것으로 보입니다
2003년 11월 이후에는 이회사가 법무부에 제출한 서류가 전혀 없으므로 전재용이 미국에 체류중일때
임원이 변경된 것입니다

이시기는 전재용 비자금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되던 시기이며 전재용의 자진입국을 촉구하던 때입니다
전재용씨는 회사 임원등을 바꾼뒤 다음해인 2004년 2월 귀국해 수사를 받고 구속됐었습니다

전재용이 자신의 이름을 감추기 위해 회사 임원들을 새로 선임했고 약식조회에서는 가장 최신의 자료만 등재되기 때문에
소기의 목적을 이뤘다고 볼 수 있습니다만 법무부가 보관중인 최초 법인등록서류까지 숨길 수는 없었습니다

전재용 정치 기부금 납부

전재용 미국법인 OR SOLUTIONS INC 약식조회

전재용 미국법인 OR SOLUTIONS INC 설립신고서

전재용 법인설립신고서

전재용 법인등록서류
전재용 법인명칭 변경신고서

전재용 법인 이름변경
핫이슈 언론보도2010.09.04 18:32
Loading
시공사(時空社). 1990년 만들어져 올해 20년이 된 꽤 잘나가는 출판사 이름이다. 600명이 넘는 직원에 매출액이 2000억원을 넘는 커다란 회사다. 이 회사가 더 유명해진 건 오너 때문이다. 전재국(全宰國·51)씨. 제5공화국의 문을 연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이 바로 그다. 지난 1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출판단지에 있는 시공사 건물로 찾아가 그를 인터뷰했다. 전직 대통령의 아들로서, 국내 굴지의 출판사 사장으로 살아온 그의 삶을 듣고 싶었다.
그는 출판인으로서는 크게 성공한 셈이지만 출판계의 작가들도, 언론도 그와 맞대면하기를 좀 꺼렸던 게 사실이다. 아직도 논란이 계속되는 그의 아버지에 대한 부담 때문일 것이다.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는 그를 더 만나고 싶었다
원본출처 http://news.joins.com/article/719/4432719.html?ctg=1200&cloc=home|list|list1
● 회사 이름이 특이하게 시공(時空·시간과 공간)이다. 소설가 이병주씨가 지어줬다던데 맞나.

“이름은 내가 지었다. 1989년에 아버지와 함께 백담사에 있을 때 지었으니 불교와 관련이 있을 거다. 작고한 소설가 이병주 선생이 당시에 백담사에 자주 들렀는데 시공사라는 이름으로 출판사를 하겠다니까 말리더라. 그런 이름의 출판사가 옛날에 망했다면서. 그런데 며칠 뒤 전화를 하셔서 ‘전군아, 곰곰 생각해 보니까 벼락 맞은 대추나무가 두 번은 안 맞는다니까 시공사도 괜찮겠다’고 하시더라.”

● 원래는 군인이 되고 싶었던 걸로 안다.

“어려서부터 군인만 보고 살았다. 푸른 제복이 멋있어 보였다. ROTC(학군장교)를 하려고 했는데 포기했다. 제가 79학번이데, 현직 대통령 아들이 군대 가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겠나. 하지만 서울에서 대통령 아들로 지내는 게 너무 답답했다. 어떻게 해서든 유학을 가려고 생각했다. 군대는 석사 마치고 돌아와서 파주시 법원리에서 석사장교를 했다.”

● 얼마를 가지고 출판사를 시작했나.

“5000만원이다. 서울 동숭동에서 직원 2명으로 시작했다. 삼성전자에 다니던 대학 동창도 합류했다. 그 친구가 지금 계열사 사장이다. 처음엔 일본 책을 다루려고 했다. 일본이 출판이 대단하다고 해서 일본에 가서 배낭 메고 서점을 돌아다녔다. 일본말도 잘 못하면서 하루 종일 서점에 앉아서 책 구경을 했다.”

● 5000종 정도의 책을 냈는데 뭐가 가장 기억에 남나.

“첫 번째 낸 책이 사르트르가 쓴 『아랍과 이스라엘』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냈다. 그땐 책만 만들면 교보문고에서 팔아주는 줄 알았는데, 대형 서점에 들어가는 것도 큰일이더라. 마침 무슨 전쟁이 나서(1차 이라크 전쟁을 지칭) 꽤 많이 팔렸다. ‘출판도 괜찮은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 최대 히트작은 어떤 것인가.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다. 100만 권을 넘게 팔았다.”

● 존 그리샴 소설도 많이 내지 않았나.

“그리샴은 원래 지명도가 별로 없었다. 첫 번째 책이 한국에서 나온 뒤, 두 번째 작품을 다른 출판사에서 검토하다 포기해서 우리가 계약했다. 그때는 하루에 주문 1000권이 들어오면 기분 좋아서 회식하고 그럴 때다. 그리샴 책은 책마다 10만 부, 20만 부씩 나갔다. 초반에 우리 출판사가 자리 잡힐 때까지 도움을 많이 받았다.”

● 어떤 책을 낼지 누가 결정하나.

“직원들이 다 같이 읽어보고 의논해 결정한다.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도 무명작가의 책이었다. 그리샴 소설과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잘 나가면서 내 스스로 흥행감각이 있다고 오판했다. 그래서 수업료를 꽤 치렀다. 책은 마케팅을 잘하면 히트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대부분 히트작을 낸 출판사들이 오래가진 않더라. 그래서 스테디셀러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린이물을 생각한 것도 그때다. 어린이 책이 지금 매출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어린이 책을 만들 때는 우리 애들이 어려서 코드를 맞출 수 있었다. 이젠 못한다. 내가 젊은 직원들의 감각을 못 맞춘다.”

● 출판사를 아버지의 비자금으로 시작했다는 의혹이 있다.

“우리 출판사 때문에 번역 로열티가 무지하게 올랐다는 소문도 있었다. 존 그리샴에게 떼돈 주고 번역권을 사왔다는 거다. 제가 명색이 경영학석사(MBA) 출신인데 터무니없이 장사를 안 한다. 오해와 의혹이 많지만 일로 모든 걸 보여주려고 했다. 내 30~40대 시절을 출판사에 쏟아부었다. 시공사는 제 인생과 동의어다.”

● 출판에 대한 철학 같은 게 있나.

“사실은 출판이란 단어 자체가 생명력을 잃고 있다. 종이책만 책이 아니지 않은가. 전자책을 통해 저자와 독자가 바로 소통할 수 있다면 출판사가 왜 필요한가. 음반업계에선 이미 가수가 직접 발매를 한다. 정보기술(IT) 혁명의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는데 어떻게 서핑(파도타기)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이다. 출판사가 직접 콘텐트를 만드는 게 아니기 때문에 결국은 ‘크리에이티브 마인드 네트워크(creative mind network)’를 찾고 만드는 게 생존을 좌우할 것이다.”

●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미국의 ‘스크리브드 닷컴(www.scribd.com)’이라는 회사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보여준다. 기존 출판사는 대개 저자에게 10% 정도 인세를 주는데, 이 회사는 전자책을 만들어주고 저자에게 70%의 인세를 준다. 앞으로 태블릿 PC나 스마트 PC 같은 게 엄청난 파괴력을 가질 것이다. 국내에선 아직 전자책 시장이 부진하다. 교보문고가 1등인데 매출이 연간 50억원이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IT 기기의 종류와 숫자가 늘면 시장도 달라질 것이다. 최근 3~4년간 책을 계약할 때 e-북을 염두에 두고 준비를 많이 하고 있다. 기기 보급이 100만 대를 넘으면 5만 대도 안 되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얘기가 될 것이다.”

● 종이를 기본으로 하는 콘텐트 사업은 끝났다고 보나.

“우리 세대까진 괜찮을 것이다. 그러나 다음 세대는 활자로부터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 책과 글도 호흡이 긴 것보다는 짧은 것 위주로 간다. 여러 패턴의 콘텐트 방식이 공존할 것 같다.”

● 세상이 돌아가는 트렌드를 알기 위해 뭘 하는가.

“보통 하루 2시간 이상 웹서핑을 한다. 밤에 와이프한테 ‘야동 보느냐’는 핀잔을 받기도 했다. 단순한 콘텐트보다는 댓글 같은 반응을 재밌게 본다. 현장에 있는 프로들을 찾기 위해서다. 파워 블로거들이 훌륭한 저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 회사 직원 하나도 채식주의자로 유명해 방송에도 출연한다. 요새는 50세만 되면 직장이 흔들리는데 뭔가 하지 않으면 100세까지 사는 게 지옥일 수도 있다.”

● 파워 블로그들의 책은 성공적인가.

“요리와 인테리어, 빵 만들기 등 취미와 여행·실용서가 인기다. 독자들이 10만 명씩 움직이기도 한다. 옛날에는 문단, 화단 같은 이른바 ‘단(壇)’이라는 게 있었다. 인터넷에 가면 그런 거 없다. 옛날에 강했던 천리안·하이텔·나우누리 같은 건 지금은 없어졌다. 내가 열심히 하면 나는 살고 경쟁업자는 죽는 시대가 아니다. 산업 자체가 동시에 없어지기도 한다.”

● 경기도 연천에서 허브 농장을 하는데 돈 벌려는 비즈니스인가 아니면 개인적인 관심인가.

“둘 다로 보면 된다. 2006년에 시작했다. 총 1만6000평이다. 1년에 7만 명쯤 오는데 내년부턴 수익도 날 것 같다. 우리가 그림책을 워낙 많이 팔아서 그걸 테마로 갤러리 같은 걸 만들려고 했는데 그 아이디어를 허브 농장으로 확대한 것이다. 아이들에게 ‘가드닝’ 체험 같은 걸 해보게 하고 싶다. 허브농장은 내가 평소 해보고 싶었던 것이기도 하다. 기술에 목매지 않고 직접 접하는 ‘로 테크, 하이 터치(Low tech, High touch)’가 필요했다.”

● 당시 언론이 땅투기 의혹을 제기했었는데.

“KTX를 타고 부산 출장을 갔다 오다 TV 보도를 봤는데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 방문한 것보다 내 뉴스가 먼저 나와 어이가 없더라. 물론 그 땅은 가격이 올랐다. 하지만 강남 땅이 더 올랐다. 내가 일주일에 2~3일은 거기서 산다. 시골은 생각보다 할 일이 많다. 잡초도 끊임없이 뽑아야 한다. 새카맣게 타니까 나보고 골프 엄청 친다는데 골프는 거의 안 나간 지 몇 년 됐다.”

● 부인과는 연애결혼을 했나.

“여동생의 동창인데 동생이 소개시켜 줬다. 시카고에서 미술을 전공한 내 딸은 스물여섯인데 직장 다니다 쉬고 있고, 아들은 스물셋인데 공익요원으로 근무 중이다.”

● 자녀들에게 강조하는 가훈 같은 게 있나.

“나에게 기댈 생각 하지 말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 아이들한테 출판사를 물려주고 싶은 생각이 없다. 책을 좋아하지도 않는데 그걸 만들려면 괴롭지 않겠나. 애들이 자기 힘으로 당당한 사회인이 돼서 ‘저 사람이 있으면 좋다’라는 말을 들으며 살면 좋겠다.”

● 이름이 ‘재상 재(宰)’에 ‘나라 국(國)’인데 정치할 생각은 없나.

“엄숙하게 사는 게 내 스타일과는 잘 안 맞는다.”

옛 청와대 생활을 말하다
“아버지 전두환, 손녀 업어주느라 출근 늦기도”


“아버지가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전재국 사장은 부친인 전두환 전 대통령과 얽힌 비화(秘話)와 소회를 거침없이 털어놓았다. 그는 “커다란 아버지 밑에 있다 보니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 많이 만들어지더라”고 했다.

●무슨 뜻인가.

“좀 다른 인생을 택할 수도 있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했다. 태풍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느낌이었다. 89년 백담사에서 생각 많이 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앞으로 이 일은 어떻게 결말이 날까…. 내 인생도 중요하니 뭔가 가치 있고 보람 있게 살아보고 싶었는데, 힘든 상황이 많았다. 그런 점에서 요즘은 편하다.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지만 출판하길 잘한 것 같다.”

●부친은 정치를 한 걸 후회하진 않나.

“그러시지 않는 것 같다.”

●대통령 아들로 사는 게 그리 힘든가.

“너무 힘들었다. 처음에 청와대도 부모님만 가면 되는 줄 알았다. 대학생 때 연애하는데도 늘 경호원들이 따라다녀 스트레스가 컸다. 따돌리고 도망도 가고 그랬는데 감시하는 인원만 늘어나더라. 청와대는 너무 휑해서 가족들끼리도 인터폰하고 혼자 자는데 외롭고 심심했다. 집에 가면 경비원들이 플래시로 얼굴을 확인해 소주 한 잔 마시고 들어가기도 불편했다. 20대 초반을 유쾌하지 않게 살았다. 그런데 아버지가 청와대에서 나오시면 편하겠다 했는데 세상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더라.”

●‘권력’이 뭐라고 생각하나.

“너무 어려운 질문이다. 나는 청와대에서 같이 살았던 동거인에 불과하다. 청와대 관저 2층은 출입구가 식자재가 들어오는 주방 옆 쪽문으로 돼 있다. 왜 그런 데 만들어 놨는지 처음엔 너무 이상했다. 밤이 되면 셔터를 내려 라면도 못 끓여 먹었다. 나는 권력을 행사해 보지 않았지만 ‘이 자리가 뭐가 좋아서 다들 오려고 그럴까. 여기서 사는 게 행복하지 않은데’라고 생각했다. 예전처럼 가족끼리 밥 먹고 같이 떠들고 그런 게 즐거운데. 청와대에선 죽어나간 사람은 있어도 태어난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내가 85년에 딸을 낳았을 때 아버지가 너무 좋아했다. 청와대 생긴 이후 처음 태어난 생명이라고. 아버지가 손녀딸 업어주느라 출근이 늦어진 적도 있었다.”

●동생들은 어렸으니 더 힘들었겠다.

“청와대 들어간 뒤 동생들 보면서 ‘떠날 때까지 평범한 상식을 유지해야 하는데’라고 생각했다. 거기선 자기가 직접 하는 게 없다. 기사와 비서가 있어서 그렇다. 막내 재만이는 초등학생인데 친구도 못 데려오고 혼자 자기 방에 있어 안돼 보였다. 동생들이 사회에서 정상적으로 직업을 가지고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대통령의 집안에서 그러기가 쉬운 게 아닌 것 같다. 다른 전직 대통령의 자녀분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누구나 너무 큰 아버지가 있으면 편치 않다.”

●요즘은 가족들이 자주 모이나.

“일요일마다 연희동 부모님 집에서 형제들과 다 만난다. 우리는 교회에 간다고 표현한다.(웃음) 아침 같이 먹고 오전에 배드민턴 한 게임을 치고 저녁까지 있다 온다. 애들도 다 데리고 간다. 그게 우리 집안 룰이다. 미국에 사는 막내는 MIT대학 석사를 마치고 자기 장인 회사에서 근무한다. 여동생 효선이는 서경대 교수다. 아버지는 요즘 바쁘시다. 결혼식 부지런히 다니고 붓글씨로 축사도 써주고. 그런데 후배가 죽으면 거기는 기분이 안 좋다고 안 가는 것 같다.”

●아들이 생각하는 아버지의 리더십은 뭔가.

“일요일마다 아버지가 집에 오라고 위협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됐다. 아버지는 남자답다. 나는 그런 점에서 아버지를 안 닮았다. 처음 회사를 시작한 뒤엔 사람들 앞에서 말을 못해 힘들었다. 아버지는 주위에 사람이 많은 걸 좋아한다. 용모는 둘째가 제일 닮았다. 머리카락이 제일 없으니까.(웃음) 형제들이 성격은 아버지를 별로 안 닮은 것 같다.”

●아버지를 백담사로 보낸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서운한 감정은 없나.

“청와대가 무서운 데라는 생각이 든다. 제일 친했던 노 대통령과도 퇴임 뒤 그렇게 되고…. 권력이 뭔지,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고 그랬으면 좋지 않았을까. 출판계에선 70~80대에도 ‘누구 누구야 놀자’라면서 재밌게 사는 분이 많다. 우리 아버지는 60세가 되기 전에 은퇴했고 재밌게 못 산 거 같다. 남자로서 안됐다. 아버지는 워커홀릭이어서 잘 못 노신다. 달리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j 칵테일 >> 백담사 계곡물 속에서 시작된 시공사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8년 정권이 바뀐 뒤 강원도 백담사로 유배를 떠났다. 대학생들이 조직한 ‘전두환 체포 결사대’가 연일 서울 연희동의 사저를 습격하고, 야당이 죽기살기로 공세를 펴던 와중이었다. 차기 대통령이 된 노태우 대통령이 해외로 나가기를 거부하는 전임자를 산중으로 쫓아보내는 고육책을 택한 것이다.

백담사 인근의 계곡.장남인 전재국씨는 그때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와튼스쿨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받은 뒤 공공정책학으로 2년간 박사 과정을 마친 상태였다. 지도교수와 캘리포니아 토지정책 논문을 쓰려고 자료를 준비 중이었던 그는 백담사로 달려가 부친을 만났다. 아버지는 “오지 마라”고 펄펄 뛰었지만 아들은 갔다. 89년 어느 여름날 그는 술 한잔 걸치고 백담사 앞 계곡물에 몸을 담근 채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갈까” 하고 막막한 고민을 하던 중이었다. “마침 집사람이 애들을 슬슬 학교에 보내야 하는데 직업을 뭐라고 적어야 하느냐고 묻더라. 박사과정? 무직? 참 갑갑하더라.”

그렇게 고민하는데 갑자기 출판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고 한다. 그래서 직원 두 명으로 시작한 게 시공사다. “인생에서 어떤 일들은 참 미스터리하게 이뤄지는 것 같다. 내가 출판사 한 것도 그렇고.” 기자는 그의 대답이 조금 실망스러웠다. ‘아들인 내가 좋은 책을 펴내 아버지가 맺은 시대와의 악연을 풀고 싶었다’는 정도의 근사한 답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렇게 시작한 시공사는 9개 계열사를 거느린 커다란 회사로 성장했다. 어린이 책, 추리소설, SF, 연애소설, 무협소설, 만화 등 모든 장르를 섭렵했다. 그간 펴낸 책의 숫자는 6700만 권. 대한민국 인구의 1.5배다. 출판뿐만이 아니다. 이젠 SBG(시공 북 그룹)로 진화했는데, 단행본과 잡지 등만이 아니라 유통업도 하고, 인테리어 사업도 하고 말 그대로 그룹 형태로 바뀌었다.
Loading

전두환 전 대통령의 차남 재용씨가 증여세 80억여원을 취소해 달라고 낸 소송에서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패소했다.

서울고법 행정6부(황찬현 부장판사)는 10일 재용씨가 서울 서대문세무서를 상대로 낸 증여세 부과처분 취소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2000년도 귀속분 증여세 80억여원 가운데 3억여원을 제외한 77억여원을 납부하라"는 1심 판결을 유지했다.


재용씨는 세무당국이 외조부에게 받은 액면가 167억원(시가 119억여원) 상당의 국민주택채권을 전 전 대통령과 외조부에게서 나온 자금으로 마련한 것으로 보고 80억여원의 증여세를 부과하자 소송을 냈다.

앞서 재용씨는 증여세 포탈 혐의로 구속기소돼 2007년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 벌금 28억원이 확정됐다.

원본출처 : 연합뉴스
http://andocu.tistory.com/entry/박근혜-울먹-MB-강도론-답변하다-눈물뺐다
http://andocu.tistory.com/entry/동아원-소송운운-나흘만에-외환거래법-위반-시인
http://andocu.tistory.com/entry/동아원-매입-포도밭일부-알고-보니-원래주인은-이희상
http://andocu.tistory.com/entry/이건희-나는-IOC명예를-실추시키지-않았다-편지-기가-막힌다

이 판결문 첨부해서 미국 LA 집 차압하자
http://andocu.tistory.com/entry/박상아-전재용-로스앤젤레스에도-한채-더-지금도-가지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