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2006년 아내를 수사하면서 너무 강압적이었어요. 서울경찰청 등 여러 기관에 진정을 넣어도 아무런 반응이 없어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이택순 경찰청장에게 부탁한 적이 있습니다."
원본출처 조선일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8/13/2010081301408.html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 파문을 계기로 불거진 '남경필 한나라당 의원의 수사 외압설'과 관련, 남경필 의원이 2006년 당시 이택순 경찰청장에게 부인 사건을 청탁했다고 '고백'했다.
11일 기자와 만난 남 의원은 "당시 국민권익위원회에 진정까지 냈는데 수사관이 부인을 조사하면서 변호사 도움을 못 받게 하고 긴급 체포하겠다고 협박했다"며 "정확한 시점은 기억나지 않지만 이택순 청장과 통화한 후에 내 보좌관을 청장실로 보내 '억울하게 수사받고 있다'는 취지의 진정서를 전달했다"고 했다. 부인 이지씨는 보석사업 동업자와 여러 소송에 얽혔고, 2006년 당시 이씨는 동업자로부터 피소된 상태였다. 그러나 이 전 청장은 12일 통화에서 "남 의원이 사건을 부탁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부당한 지시를 내린 일도 없다"고 개입설을 강력하게 부인했다.
여러 증거를 들이대도 '나는 모른다'는 게 정치인들 생리인 법. 그런데 남 의원은 의외로 경찰청장에게 사건을 부탁한 사실을 말했다. 이 과정을 부연설명하면 이렇다.
지난달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남경필 의원의 부인을 사찰했다는 검찰 수사 내용이 공개되자 기자에게 여러 제보가 들어왔다. 제보 중에는 "민간인 사찰도 문제지만 남 의원 역시 부인의 피고소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관에게 외압을 넣은 것이 실체적 진실이다", "남 의원 부인이 보석을 밀수한 의혹이 있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기자는 약 2주에 걸쳐 이 제보 내용을 확인했다.
취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남 의원에게 마지막 확인작업을 남겨둔 지난 11일. 그에게 반론을 듣기 위해 전화로 연락을 취했다. 그러자 남 의원이 기자를 찾아왔다.
남 의원은 왜 '수사 외압설'로 비화될 문제를 직접 말했을까. 자신과 주변을 탐문한 총리실 불법 사찰 보고서에 이 같은 내용이 담겨 있고, 이게 여러 곳으로 퍼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남 의원은 "사찰 보고서가 나중에 정치적으로 이용될 바에야 이참에 속시원히 모든 것을 털고 가는 게 낫다고 본다"면서 "그 부분에 대해 수사하겠다고 나서면 나도 피하지는 않겠다"고 했다.
검찰이 총리실 컴퓨터에서 복구한 A4 용지 3장짜리 사찰 보고서는 남 의원 부인 이지(45)씨와 동업자였던 이은아(44)씨가 맞고소한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남 의원이 이택순 청장에게 외압을 행사한 것으로 결론 내리고 있다. '남 의원이 부인을 수사하던 정모 경위에 대해 서울경찰청 감찰반에 진정을 냈으나 무혐의 처리되자 이택순 청장에게 외압을 행사하여 담당 수사관을 박모씨로 교체했다'는 것이 보고서의 요점이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이택순 청장은 남 의원 부인에 대한 수사방식을 비판하면서 정 경위에 대한 강도 높은 감찰을 주문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이택순 전 청장은 "내가 그럴 이유가 뭐가 있느냐"고 반박했다. 정 경위는 이 일이 있은 뒤 사건에서 손을 떼고 경찰청으로 전보됐다.
압력 행사, 왜 했나
남 의원이 이 청장에게 부탁했던 '부인 사건'은 어떤 것일까.
남 의원 부인 이지씨는 이은아씨와 2002년 8월부터 2년간 동업했다. 두 사람은 대학 동문 사이로 이은아씨는 보석 가공·유통업체를 운영해왔고, 이지씨가 여기에 지분 50%를 얻고 수억원을 투자했다. 당시 남 의원도 이 업체를 여러 차례 방문했다.
둘 사이가 틀어진 건 2004년. 회사 자금이 자꾸만 없어졌다고 한다. 둘은 서로 상대방이 회사 자금을 빼돌린 것이라고 의심했다. 이지씨가 이은아씨를 먼저 고소했고 이은아씨도 맞고소했다. 그러나 이 사건에 관여했던 경찰관은 "처음에 회사 자금을 횡령한 사람은 남 의원 부인도 이은아씨도 아니었던 것 같다. 회사 내의 다른 간부가 돈을 빼돌렸을 가능성이 높았다"고 했다.
- ▲ 남경필 한나라당 의원을 사찰한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홍콩 C사가 발행한 ‘인보이스’(왼쪽)를 근거로 남 의원 부인이 보석을 밀수한 의혹이 있다고 봤다. 그러나 남 의원측은 구입한 보석은 모두 세관 신고를 거쳤고, 문제의‘인보이스’는 가격 흥정을 위한‘견적서’에 불과하다는 C사의 영문확인서(오른쪽)까지 갖고 있다고 밝혔다.
남 의원측이 고소한 사건에서 이은아씨는 처음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남 의원측은 이에 불복해 서울고검과 대검에 잇따라 재수사를 요청했고 이게 받아들여졌다. 2009년 3월 이은아씨는 사기 혐의로 기소됐다. 하지만 1심 법원은 검찰 수사가 부실했다는 취지로 지난 4월 30일 이은아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이 남 의원 부인측 인사의 진술에만 의존해 기소했고 그 진술마저 엇갈리는 등 이은아씨가 사기를 저질렀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은 현재 2심 판결을 앞두고 있다.
이은아씨가 남 의원 부인을 고소한 사건은 강남경찰서에서 진행됐다. 남 의원이 이택순 청장에게 부탁한 바로 그 사건이다. 경찰은 당시 남 의원 부인뿐 아니라 남 의원에게도 일부 혐의가 있다고 보고 검찰로 사건을 넘겼다. 하지만 검찰은 관련자 전원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은아씨는 이에 불복해 검찰과 법원에 이의를 제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사건은 지난해 종결됐다.
이후 이은아씨는 "검찰이 수사에 미온적이었고 남 의원이 영향력을 행사해 수사관이 교체됐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한다. 정 경위 역시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남 의원 부인 사무실에 대해 신청한 압수수색 영장을 검찰이 7차례나 기각했다"며 당시 검찰 수사 태도를 문제 삼았다. 정 경위가 이지씨 사무실에서 확보한 대책 문건도 논란이 됐다. '급선무는 정 경위에게서 사건의 조사권을 다른 사람에게로 넘겨 조사받는 게 좋을 듯함'이라는 내용이었다. 총리실 사찰 보고서는 바로 이런 정황을 기술하며 남 의원이 수사에 외압을 행사한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은아씨는 최근 검찰에 재수사를 촉구하는 진정서를 냈다.
엇갈리는 밀수 의혹
'남 의원 부부가 2005년 세 차례에 걸쳐 홍콩에서 보석을 구입해 인천공항 VIP 게이트를 통해 세관 검사를 받지 않고 밀반입한 의혹이 있다'는 제보 역시 사찰 보고서에 들어 있던 내용. 검찰도 최근 당시 남 의원 부인이 구입한 것으로 알려진 보석 리스트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밀수 의혹은 홍콩에 있는 보석 완제품 판매업체인 C사가 발급한 인보이스(invoice)에서 비롯된다. 인보이스는 매매계약의 조건을 정당하게 이행했다는 뜻을 수출업자가 수입업자에게 전달하는 서류로 일반적으로 발송장이라고 한다. 화물 내용명세서나 대금청구서 역할도 하며, 견적을 내기 위해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본지가 입수한 C사 인보이스에는 남 의원 부인이 2005년 7월(1만9000달러)과 9월(1만9000달러) 12월(7000달러) 등 세 차례 4만5000달러어치의 보석 완제품을 구입한 것으로 되어 있다. 3500달러짜리 다이아몬드 귀고리, 5860달러짜리 다이아 브로치 등 모두 22점이었다.
남 의원 부인이 운영하던 보석업체는 홍콩에서 보석 재료나 완제품을 수입해 이를 재가공하거나 유사제품을 만들어 백화점 매장 등에 팔고 있다. C사는 단골 거래처였다.
남 의원측은 인보이스에 적혀 있는 보석에 대해 정당하게 세관 신고를 거쳐 수입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세관에 신고된 보석 매입 가격은 인보이스 금액과 차이가 있다. 2005년 7월에 거래한 인보이스에는 남 의원 부인 명의로 1만9000달러어치의 보석을 산 것으로 되어 있지만 남 의원측이 제시한 수입신고필증에는 7600달러어치를 수입한 것으로 쓰여 있다.
세 차례의 거래 내역이 담긴 인보이스 금액은 모두 더해 4만5000달러였지만 세관에 신고된 금액은 두 차례 1만5640달러. 인보이스대로 거래가 이뤄졌다면 2만9360만달러(3480만원 상당)어치의 보석은 밀수를 했거나 세관에 축소 신고한 셈이 된다.
남 의원측은 "문제의 인보이스는 견적용이다. 실제 거래에선 값싼 원석을 사용하는 방법으로 금액을 많이 깎아 구입했다"며 "C사가 항공특송회사를 통해 물건을 보내주기 때문에 밀수입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했다. 몸에 지니고 들여온 게 아니라 항공 택배를 통해 물건을 받았다는 것이다. 남 의원측은 또 "2006년 보석 밀수 의혹이 일부에서 제기돼 C사를 찾아가 문제의 인보이스가 실제 거래 내역이 아니라는 담당자 확인서까지 받아 왔다"고 했다. 확인서엔 인보이스 금액과 달리 남 의원측이 실제 거래했다고 주장한 보석 매입 가격이 적혀 있었다.
그렇다면 문제의 인보이스는 남 의원측 주장처럼 가격 흥정을 위한 단순한 '견적서'였고, 남 의원이 제시한 확인서는 정확한 것일까.
본지 특파원이 홍콩 현지의 C사를 찾아가 두 종류의 문서를 제시했다. 노스포인트의 킹스로드에 있던 사무실은 2주 전 약 2㎞ 떨어진 왓슨로드로 이사한 상태였다. C사 관계자는 인보이스에 대해 "거래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의 '견적서'라기보다는 보석을 건네줄 당시 작성한 '거래내역서'나 '영수증'으로 보인다"면서도 "당시 거래를 담당한 A씨가 회사를 나가 더 구체적으로 확인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남 의원측이 제시한 확인서에 대해 C사측은 "A씨의 사인이나 확인서 양식이 모두 우리 회사 것이 맞다. A씨가 그런 내용을 써줬다면 그쪽(남 의원측) 말이 맞을 것"이라고 했다. C사 입장에서는 이쪽도, 저쪽도 옳다는 얘기다.
밀수문제의 핵심을 확인하려면 두 문서의 진위 여부는 물론 거래 내역을 알고 있는 A씨의 신병을 확보하는 것. 그러나 A씨는 수개월 전 C사를 퇴사하고 보석업계를 떠났다. C사측은 A씨의 연락처에 대해 "프라이버시 문제로 알려주기 곤란하다"고 했다.
남 의원은 "검찰은 이 기회에 불법 사찰뿐 아니라 밀수 의혹에 대해서도 진위 여부를 밝혀 달라"고 했다. 남 의원의 '베팅'이 이제 막 시작되려는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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