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강찬호 기자의 칼럼입니다 http://news.joins.com/article/033/4374033.html?ctg=10&cloc=home|showcase|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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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개각을 통해 남북 정상회담의 모멘텀이 다시금 살아나고 있다. 임태희 대통령실장은 지난해 싱가포르에서 북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과 비밀리에 만나 정상회담을 교섭했던 인물이다. 특임장관에 내정된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 이재오 한나라당 의원도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 그는 2008년 미국 ‘유배’ 당시 중앙일보 워싱턴 특파원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대통령) 특사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전임자 두 명이 모두 성사시킨 남북 정상회담을 이 대통령에게도 실현시켜주고 싶은 건 두 사람뿐 아니라 측근이라면 누구나 품어봄 직한 꿈일 것이다. 이 대통령 임기가 반밖에 남지 않은 만큼 늦어도 내년 중 회담을 성사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이들의 마음은 급할 수 있다. 하지만 정상회담 교섭에 나서기 앞서 명심해둘 것이 있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회담 대화록을 읽어본 이 대통령의 탄식이 그것이다. 극비 중 극비로 분류된 이 대화록을 읽고 나서 이 대통령은 “기가 막히다. 이럴 수가 있나”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한쪽은 고개를 숙이는 수준을 넘어 아예 애걸하는 모양새였고, 한쪽은 그게 당연한 것인 양 시종일관 고압적인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전자는 두툼한 대북 지원 보따리를 들고 간 우리 대통령들이었고, 후자는 그걸 받는 입장인 김 위원장이었다고 한다.
대화록은 극비이기에 그 내용을 밝히기는 어렵다. 그러나 최종 합의문 서명 과정에서 김 위원장 측이 우리 대통령을 아랫사람처럼 보이게 하려고 꼼수를 부리려 들었다는 얘기, 우리 대통령이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우려를 표시하려 하자 김 위원장 측이 의전상 있을 수 없는 무례한 방식으로 일축했다는 얘기 등등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런 식의 정상회담이라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게 이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한다. 사실이라면 지극히 옳은 판단이다.
무릇 정상회담은 빈손 털고 일어나도 상관없다는 배짱과 확신이 있는 쪽이 유리하게 돼 있다. 또 자신이 얻어내려는 최소한의 목표에 대해 상대방에게 불확실성을 증폭시킬 줄 알아야 성공한다(데이비드 레이놀즈, 『정상회담』). 하지만 지난 두 번의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을 보면 이 두 가지 전술을 잘 구사해 한몫을 챙긴 쪽은 북한의 지도자였 다. 한정된 임기 내에 회담을 통해 가시적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에 쫓긴 우리 대통령들은 그런 부담이 전무한 김 위원장의 무례하고 비상식적인 공세에 밀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지난 두 번의 정상회담은 분단 60년 만에 남북 간 대화의 문을 열고, 정례화시켰다는 점 자체로 소정의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세 번째로 열릴 정상회담은 달라야 한다. 두 지도자가 상대를 존중하면서 실현 가능한 합의를 끌어내지 못하면 역풍만 자초할 것이다. 김 위원장은 달라진 현실을 인식하고 남측 파트너를 예와 신의로 대하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이 대통령도 좌파들의 ‘묻지마’식 정상회담 요구에 밀리기만 할 게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는 ‘제대로 된 정상회담’의 비전을 국민에게 밝히고, 이해와 협조를 구하는 노력부터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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