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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이슈 언론보도2010.07.06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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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은 7일 국정기획수석을 폐지하고, 시민사회를 담당하는 사회통합수석과 서민정책을 담당하는 사회복지수석을 신설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청와대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원본출처 조선일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7/07/2010070700652.html?Dep1=news&Dep2=headline1&Dep3=h1_11

폐지되는 국정기획수석 소관 업무는 과학기술을 중심으로 한 미래전략기획관과 정책실장 직속의 정책지원관에 이관됐다.

또 메시지기획관이 폐지되고 관련 업무는 홍보수석과 대통령실장 직속의 연설기록비서관으로 분리됐으며 홍보수석 산하 2명이던 대변인은 1명으로 조정되고 해외홍보비서관이 신설됐다.

이날 조직개편으로 청와대 조직은 ‘1대통령실장.1정책실장.8수석(정무.민정.사회통합.외교안보.홍보.경제.사회복지정책.교육문화).3기획관(총무.인사.미래전략)’ 체계를 갖추게 됐다.

이는 역시 ’1대통령실장.1정책실장.8수석(정무.민정.외교안보.경제.국정기획.사회정책.교육과학문화.홍보).3기획관(총무.인사.메시지)’인 기존 조직체계와 같은 것이어서 조직개편에도 불구하고 외면적인 규모는 그대로 유지했다.
분류없음2010.07.06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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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주요직위명부록에 나타난 이인규
지난 2003년 9월 중앙인사위원회에서 발간한 2003 국가주요직위명부록을 살펴봤습니다
명부록 268페이지 노동부 기획관리실 란에서 이인규라는 이름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요즘 언론에 거론되는 이인규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입니다

명부록에 따르면 이인규씨는 2003년 9월당시 노동부 기획관리실 행정정보화담당관 이었습니다
이인규씨가 이 자리에 온 것은 2002년 5월 27일이었으며 직급은 사무관보다 한단계 높은 서기관 이었습니다

이인규씨가 공직윤리지원관으로 뽑혀 오기전에는 노동부 감사관을 지냈다고 하는데
2003년에는 행정정보화담당관이었나 봅니다

또 자칭 노무현정권의 반대를 무릎쓰고 mb정권의 출범을 도왔다고 주장한 박명재 전 영포회 회장은
이당시 차관급인 중앙공무원교육원 원장을 맡았던 것으로 기재돼 있습니다

한가지 2003년 국가주요직위 명부록에 있어서 특이한 점은 국무조정실이나 국무총리 비서실의
주요직위 재직자는 모두 망라돼 있으나 대통령 비서실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 누락돼 있었습니다

당시 조창현이란 분이 중앙인사위원장을 맡았다고 하는데 도대체 왜 대통령 비서실은 기재하지 않았는지
물어보고 싶군요




핫이슈 언론보도2010.07.06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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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청와대는 '개판 5분전'이 아니라 '완전 개판'이다
다 형님 탓이다. 대한민국을 코오롱보다 하챦게 봤다. 독하게 독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작년 10월 초의 일이다. 청와대 비서실 건물인 위민관에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사회정책수석실 소속 L 비서관이 경제금융비서관 사무실로 들이닥쳐 한 행정관을 찾았다. 그는 "이 XX 누구야? 나와. 가만 안 두겠다"고 소리를 질렀다. 그 행정관이 일부 장관들의 대통령 보고 일정을 자신과 상의도 없이 마음대로 조정했다는 게 이유였다. L 비서관의 상관인 청와대 정책실장까지 나서서 말렸는데도 막무가내였다고 한다. 그를 진정시키기 위해 경제수석실 직원 몇명이 나서자 그는 "우리 방 행정관들 다 내려오라"고 소리쳤다. 청와대에서 정말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황당한 사건이다. 그런데 이 사건은 L 비서관을 '서면 경고'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원본출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7/06/2010070602036.html?Dep1=news&Dep2=top&Dep3=top

그때 문제를 일으켰던 L 비서관이 요즘 다시 언론에 등장하고 있다. 이번엔 민간인 불법 사찰 의혹으로 총리실검찰에 수사의뢰한 이인규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 사건 때문이다. 이 지원관은 공직 감찰 내용 등을 총리실을 건너뛰어 L 비서관에게 직보(直報)했다고 한다. 두 사람 모두 대통령과 동향(同鄕)인 '영일·포항 인맥'의 핵심들이다. L 비서관과 이 지원관은 모두 국민 세금으로 월급을 받고 있고, 이들의 업무는 모두 공무(公務)다. 그러나 이들은 정권 내 사(私)조직처럼 움직였다. 그동안 관가(官街)에선 이 두 사람에 대한 온갖 구설(口舌)이 돌았다. 작년 10월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서 야당 의원이 "이 지원관이 L 비서관에게 보고한다는 정보를 갖고 있다"며 "비선(��線)조직이냐"고 묻기도 했다. L 비서관이 청와대에서 한바탕 소동을 벌인 것도 그 무렵이었다.

청와대가 L 비서관의 소동에 대해 엄하게 책임을 물었더라면, 국정감사에서까지 나온 '비선 조직' 논란의 실체를 파악하고 바로잡았더라면 지금 이들을 둘러싼 문제가 정권을 뒤흔드는 대형 스캔들로 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정권은 정반대로 갔다. 여권(與圈) 핵심에서 "일부 문제를 일으켰어도 이들만큼 헌신적으로 일하는 사람도 없다"는 말이 나왔다. 이 이야기가 밖으로 퍼지면서 이들은 어느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존재가 됐다. 결국 정권이 신상필벌(信賞必罰)의 원칙을 무너뜨리면서 스스로 화(禍)를 키운 사건인 것이다.

'영일·포항 라인'의 핵심 인물인 박영준 총리실 국무차장은 원래 대통령 친형 이상득 의원의 보좌관 출신이다. 이 의원 곁에서 13년 가까이 일했다. 그는 서울시에서 정무담당 국장으로 대통령과 함께 일하면서 신임을 얻었다고 한다. 박 국무차장은 '왕(王)비서관' '왕차관'으로 불려왔다. 그만큼 실세라는 이야기다. 그는 2008년 6월 청와대 비서관직에서 물러났다. 이 정권의 또 다른 실세인 정두언 의원이 '권력 사유화(私有化)'의 주범으로 공개적으로 그를 지목한 직후였다. 그러나 박 국무차장은 6개월여 만에 정부 정책을 총괄 조정하는 국무차장(차관급)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아무리 권력의 신임이 두텁고 그의 능력이 출중하다 해도, 대통령 친형과의 특수 관계와 그를 둘러싼 논란 등을 감안했다면 핵심요직에 중용하는 일은 피하는 게 상식(常識)이다. 이런 상식을 무시한 결과 대통령과 대통령 형, 그리고 '영일·포항' 출신 공직자 전체가 한꺼번에 난처한 처지에 빠지는 상황을 맞게 됐다.

어떤 권력의 위기도 사전 경고 없이 닥치는 경우는 드물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대통령 친형 건평씨와 대통령의 후원자 박연차씨, 대통령 곁에 포진한 측근들에 대한 우려와 경보(警報)가 정권 출범 때부터 나왔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형과 후원자·측근들을 공개적으로 두둔했고, 그 결과 본인은 자살을 택하고 형과 후원자·측근들은 줄줄이 감옥으로 갔다. 앞선 정권들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같은 현상이 권력의 속성인 양 체념하는 듯한 분위기마저 생겼다.

이제 막 불붙기 시작한 권력 실세 인맥을 둘러싼 의혹과 논란이 어디까지 번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금껏 억눌려 왔다고, 불이익을 당해 왔다고 생각해 온 기관과 사람들이 곳곳에서 등장할 것이다. 그렇다고 불길이 가라앉기만 기다리는 것은 정권의 내리막길을 재촉하는 일이다. 만약 국정 농단(壟斷) 세력이 있었다면 먼저 찾아내 뿌리를 뽑는 비상한 처방을 내려야 한다. 어쩌면 지금 터져나온 의혹들도 훗날 이 정권을 비극으로 몰고갈 사건의 사전 경고일 수 있다.
핫이슈 언론보도2010.07.06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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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민정수석실은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비서관실의 민간인 사찰과 관련해 비선 보고를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청와대 이영호 고용노사비서관에 대해 지난해 구두주의를 줬던 것으로 6일 알려졌다.

원본출처 조선일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7/06/2010070601952.html?Dep1=news&Dep2=headline1&Dep3=h1_08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지난해 이 비서관과 관련된 소동이 있었을 때 자체적으로 조사했던 것으로 안다”면서 “그 때 (비선 보고) 소문이 들려 ‘조심해라, 문제될 소지가 있다’고 주의를 줬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소동이란 지난해 10월 이 비서관이 업무조정과 관련해 다른 직원과 청와대에서 큰 소리를 내며 말다툼을 벌였던 것을 말한다.

이 관계자는 “이 비서관은 비선 보고설에 대해 ‘아무 문제가 없다. 내가 왜 그런 일을 하느냐’고 답했었다”면서 “내사는 아니었고 소문에 대해 확인을 한 것 뿐”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민정수석실이 공직윤리지원비서관실로부터 민간인 사찰 사실을 보고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2008년에 이러한 것을 경찰에 이첩하겠다는 보고를 한 게 있었다”면서 “내사 단계에서 보고한 게 아니라 ‘대상이 민간인이어서 이첩한다’고 알려줬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핫이슈 언론보도2010.07.05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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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포회 이름 내가 만들었다..확대해석에 난감”

참여정부에서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 장관을 역임한 박명재 차의과학대학교 총장은 5일 “이명박 대통령은 영포목우회의 회원도 아니고 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원본출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7/05/2010070501450.html?Dep1=news&Dep2=headline1&Dep3=h1_12

포항 출신으로 영포회 결성을 주도한 박 총장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이 모임은 지난 1984년 저와 다른 한 분이 주축이 돼서 영일.포항 출신의 중앙부처 5급 이상 공무원을 대상으로 만든 것”이라면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자신이 일부 언론과 인터뷰에서 ‘이 대통령과 영포회 활동을 같이 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보도된 데 대해 “영포회가 출발할 때 당시 기업에 있던 이 대통령 등 포항 출신 몇 분을 초청해 인사했다고 밝혔는데 이 게 와전된 것으로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박 총장과 일문일답.

--영포(목우)회가 처음 생긴 배경은.

▲모임의 이름은 목민관(공무원)의 길을 걷는 사람의 뜻으로 제가 직접 붙인 것이며, 친목도모와 지역발전, 그리고 장학사업을 위해 만든 것이다.

그때는 영일과 포항이 합쳐지기 직전으로서 이 지역 출신의 중앙부처 5급 이상 공무원을 대상으로 했다.

--이 대통령과의 인연은.

▲초기에 모임이 출범식을 하면서 지역 출신의 명망가들을 초청했다. 그때 이 대통령이 기업에 있을 때인데 이 대통령을 포함해서 포항 출신들이 많이 왔다. 그때 인사를 나눴고 벌써 20여년이 흘렀다. 그 이후 영포회로 이어진 게 없다.

--현재 모임은 활발히 활동을 하고 있는가.

▲제가 초기에 회장을 하기도 했었는데 90년대 이후에는 모임이 1년에 한 번도 제대로 모이지 않고 흐지부지됐다. 더군다나 지금은 마땅히 회장을 맡을 사람도 없어서 차기 회장을 뽑지도 못하는 등 응집력 있는 조직이 아니다.

--국무총리실의 이인규 공직윤리지원관은 아는 사이인가.

▲잘 모르는 사람이지만 이 일이 있고 나서 들어보니 영포회 회원이 아니라는 것 같다. 순수한 모임으로 출발했는데 이번 사건이 터져서 확대해석 되는 것 같아 난감하고 민망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