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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없음2012.12.07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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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3 - [분류 전체보기] - 수십년된 스위스ubs은행 금괴[골드바], 올초부터 갑자기 시중유통 - 비자금인듯[사진]

걸프사가 1969년 박정희 방미자금으로 스위스 UBS 계좌에 20만달러를 송금한 것으로 확인된 데 이어 걸프사가 1970년 3백만달러를 박정희 정권에 전달할 때도 스위스의 UBS 계좌로 전달됐다고 뉴욕타임스가 지난 1976년 보도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밥 도시 걸프사회장 증언록, 뉴욕타임스 보도, 워싱턴포스트 보도, 하단 전자책형태 게재및 다운로드가능한 원문파일첨부]

 

 

2012/12/10 - [분류 전체보기] - 박정희정권 스위스비자금의혹 총정리파일 FROM A - 다운로드 가능

2012/12/08 - [분류 전체보기] - 걸프,미국정치인에게는 불법자금 반환요청-박근혜에게 4백만달러 반환요청하면 어떡하나?

 

이는 이미 밝혀진 20만달러의 푼돈이 아니라 40년전으로서는 거액인 수백만달러대의 불법자금이 세계최대의 프라이빗은행인 스위스 UBS 에 개설된 박정희정권의 비자금계좌에 입금됐음을 보여주는 정황입니다.

 

1975년 미 증권거래위원회는 미국기업들의 해외뇌물이 기업의 건전성을 해친다며 조사에 나섰고 상원 외교위원회 산하 다국적기업소위원회도 기업총수들을 소환, 대대적인 청문회를 연뒤 만페이지가 넘는 17권의 보고서를 발표했었습니다.

 

1960년대 한국에 진출한 걸프사도 해외에 뇌물을 준 사실이 적발돼 1975년 2월 증권거래위원회의 조사를 받은 데 이어 1975년 5월 16일 밥 도시 걸프사 회장이 다국적기업소위원회 청문회에 출석, 증언하기에 이릅니다.

 

이 청문회에서 밥 도시 회장은 걸프사가 해외 70여개국에서 사업을 벌이면서 모두 5백만달러를 정치자금으로 제공했다고 밝히고 이중 5백만달러의 80%인 4백만달러를 한국의 공화당에 전달했다고 증언했습니다.

 

 

2012/12/07 - [분류 전체보기] - [걸프4백만불]박정희'나는 모르는 일' vs 걸프사 '두차례 모두 박정희가 감사표시'-미국무부 비밀전문

2012/10/10 - [대통령 후보] - [미의회가 밝힌 박정희정권 스위스계좌 4] 박종규 스위스계좌는 BAGEFI - 박동선 계좌내역서에 19만달러 송금기록 정확히 드러나 : 박동선 계좌내역서 첨부

2012/10/09 - [대통령 후보] - [미의회가 밝힌 박정희정권 스위스계좌 3] 박종규도 스위스 비자금계좌 별도관리 - 19만달러 예금인출선 서명은 '진' : 류재신-박동선 의회증언록등

2012/10/07 - [대통령 후보] - [미의회가 밝힌 박정희정권 스위스계좌 2]걸프사,박정희방미자금 20만달러 스위스비밀계좌에 입금-UBS계좌번호는 626,965.60D: 스위스UBS입금전표,걸프사진술서등 첨부

2012/10/03 - [대통령 후보] - [미의회가 밝힌 박정희정권 스위스계좌 1]'박정희자금 이후락이 스위스계좌에 예치- 김성곤이 육영수에게 돈 상납' : 이게 프레이저보고서 원문

 

2012/12/05 - [최재경 ] - 삼성장학생 최재경, 삼성채권수사하며 이학수등 모두 불기소-그때는 몰랐는데 약국이 있었네

2012/12/04 - [최재경 ] - 최재경,2002년 법무부 검찰국 검사때 국내최고임대료 삼성사옥서 약국시작 -삼성장학생의 생얼굴?

2012/12/02 - [최재경 ] - 최재경 중수부장 이럴수가.,알고보니 삼성장학생?-부인이 타워팰리스 맞은편 삼성빌딩서 노른자위 약국임대운영

 

 

 

 

 

도시회장은 1967년 대통령선거와 관련 19666년에 백만달러, 1971년 대통령선거와 관련해 1970년에 3백만달러를 공화당정권에 전달했으며 1970년 김성곤 공화당 재정위원장으로 부터 천만달러제공압력을 받았지만 협상을 통해 3백만달러로 낮췄다고 밝혔습니다.

 

도시회장은 김성곤은 자기가 만난 사람중 가장 터프한 사람이라고 말했으며 '김성곤이 정치자금을 요구할때 박정희대통령을 언급했느냐'는 상원의원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도시회장은 1960년대 초반부터 대한석유공사와 합작으로 정유공장을 운영했으며 정유공장 확장등을 위해 정부허가를 받아야 하므로 회사를 위해 박정권에 돈을 건넬 수 밖에 없었다고 불가피성을 설명하기도 했고 '박빙의 차이로 박정희 대통령이 승리했는데 걸프사 기부가 이같은 차이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 라는 클라크상원의원의 질문에 도시회장은 '통계적으로 볼 때 당신의 주장이 맞다고 받아들인다' 즉, 걸프사 기부가 박정희 승리를 만들어 냈다는 점을 인정했습니다.

 

도시회장의 진술과 증언록은 상원 외교위원회 다국적소위원회가 1976년 발간한 17권의 보고서중 제12권의 4페이지에서 58페이지에 걸쳐 실려 있으며 하원 외교위 프레이저위원회도 이 증언록 전체를 프레이저보고서의 부록 1권에 156번째 증거서류라고 명시하고 785페이지부터 839페이지에 싣고 있습니다 [ 프레이저위원회가 1977년 10월말 발간한 보고서는 종합보고서 1권과 증거만 수록한 부록 2권, 청문회 회의록과 증언록, 관련증거를 회의일자별로 수록한 부속보고서 8권등 모두 11권입니다. 이 보고서 하단 도시증언록은 프레이저보고서중 부록 1권 수록분이며 이는 상원 다국적소위 보고서 12권 내용과 일치합니다. 도시증언의 상세한 내용은 이미 발간한 '박정희대미로비X파일'에 실려 있습니다.]

 

그러나 도시회장은 당시 증언에서 걸프사가 바하마의 시추회사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밝혔을 뿐 4백만달러가 어떤 경로를 통해 박정희정권에 전달됐는지 구체적 돈흐름을 밝히지 않았으나 뉴욕타임스는 걸프가 1970년 박정희정권에 전달한 3백만달러는 스위스 UBS 계좌에 송금됐다고 1976년 보도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뉴욕타임스는 1976년 11월 8일 코리아게이트사건을 보도하면서 '걸프사가 피츠버그의 멜론뱅크에서 스위스 UBS 계좌로 3백만달러를 송금했었던 1970년 기부는 박대통령이 모를 수가 없을 만큼 거액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는 이 문제가 결코 조사된 적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걸프사는 미국 피츠버그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멜론뱅크또한 피츠버그에 본점을 둔 걸프사의 거래은행이며 스위스 UBS는 현재는 물론 1970년 당시에도 전세계 부호들이 가장 선호하는 은행으로 세계최대의 이른바 프라이빗은행입니다.

 

뉴욕타임스는 이 보도에서 걸프사가 박정희 정권에 3백만달러를 전달할때 스위스 UBS로 송금했다는 내용을 '가정'이나 '추측'등의 용어가 아니라 'WAS TRANSFERED FROM A TO B' 즉 확정적 단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밥 도시회장은 1975년 청문회 증언뒤 이사회를 통해 해임됐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1967년 걸프사의 백만달러 전달이 어떤 경로를 통해 이뤄졌는지는 밝히지 않았으나 1970년 3백만달러가 스위스 UBS를 통해 박정희정권에 전달됐다는 보도는 박정희 정권이 바로 이 스위스 UBS에 거대한 규모의 비자금 계좌를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정황입니다.

 

이보다 1년앞선 1969년에도 걸프사는 흥국상사 지분매입대금중 20만달러를 박정희의 방미자금으로 달라는 이후락의 요구를 받고 이를 스위스로 입금시켰으며 그 스위스의 은행이 바로 UBS 였습니다. 당시 스위스 UBS 계좌의 주인은 서정귀였으며 돈을 인출해 간 사람은 이후락이었습니다. 이같은 사실은 1977년 프레이저청문회를 통해 계좌번호까지 밝혀졌었습니다.

2012/10/07 - [대통령 후보] - [미의회가 밝힌 박정희정권 스위스계좌 2]걸프사,박정희방미자금 20만달러 스위스비밀계좌에 입금-UBS계좌번호는 626,965.60D: 스위스UBS입금전표,걸프사진술서등 첨부

 

 

 

워싱턴포스트도 1977년 6월 6일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 프레이저소위원회 조사관에게 박정희가 한국에 투자한 외국기업들로 부터 투자금의 5%를 킥백으로 받아 스위스 은행에 예치했다고 말했다'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김형욱이 주장이 잘못된 것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며 조사를 받을때 그가 증거를 제시하지도 못했습니다만 걸프사의 스위스 은행입금 증거, 이후락아들 이동훈의 스위스 비밀계좌 증언등 박정권의 스위스계좌 존재 정황은 적지 않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처럼 박정희 또는 박정희 정권은 스위스의 UBS 은행에 거대한 비자금 웅덩이를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이 큰 것입니다. 그러나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의 총에 맞아 갑작스럽게 숨짐으로써 그뒤 이 스위스 UBS 은행의 비자금 계좌는 미궁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나치에 재산을 강탈당했던 유태인들은 피해자 본인 또는 피해자의 상속권자임을 입증해 스위스은행들로 부터 나치가 강탈한 그들의 돈을 백% 회수하고 있음은 이미 잘 알려진 일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반환신청과 회수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박대통령이 갑작스럽게 숨짐으로써 박근헤 새누리당 후보 또한 스위스계좌의 존재를 몰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박정희 또는 박정희 정권의 스위스은행 비자금계좌의 존재는 사실임을 입증하는 자료들이 계속 발견되고 있으며 논란이 그치지 않는 만큼 박근혜 후보의 사실확인이 필요합니다.

 

이 논란을 그치게 하는 방법, 박근혜 후보가 억울하다고 생각하면 그같은 비자금의 존재가 없다고 입증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법적 상속권자인 박근혜후보가 스위스 금융당국에 계좌유무의 확인을 요청하면 됩니다. 휴면계좌로 존재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면 상속권자인 박후보가 스위스금융당국이 운영하는 휴면계좌 조회사이트를 이용, 이를 조회하고 그 결과를 국민앞에 공개하면 됩니다.

 

프레이저소위원회도 1969년 걸프사가 박정희 방미자금으로 20만달러가 송금된 스위스 UBS의 서정귀 계좌의 정체를 밝히려고 했습니다만 본인 또는 상속권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오로지 본인 또는 상속권자만이 계좌유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박근혜후보의 의지만 있다면 계좌가 없음을 입증하고 의혹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게 공개질문을 드립니다. 오늘 당장 스위스금융당국에 박정희 명의 그리고 친족명의의 계좌유무를 조회, 이를 국민앞에 공개할 용의가 있으신지요?

 

 

워싱턴포스트 킥백 5% 보도 19770606.pdf

걸프 3백만달러 뉴욕타임스_new.pdf

걸프 밥도시 증언록 1.pdf

걸프 밥도시 증언록 2.pdf

걸프 밥도시 증언록_new
걸프 3백만달러 뉴욕타임스_new

 

 

워싱턴포스트 킥백 5_ 보도 19770606

 

 

분류없음2012.12.07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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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3 - [분류 전체보기] - 수십년된 스위스ubs은행 금괴[골드바], 올초부터 갑자기 시중유통 - 비자금인듯[사진]

걸프사가 박정희 정권에 4백만달러를 제공한 것과 관련, 한국정부는 밥 도시 걸프사 회장의 증언전에 걸프측에 '박정희 대통령은 모르는 일'이라는 박대통령의 입장을 전달, 사실상 증언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었다는 사실이 미국무부 비밀전문에 의해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밥 도시회장은 1967년 백만달러, 1970년 3백만달러를 박정희 정권에 전달한뒤 박대통령으로 부터 두차례 모두 고맙다는 인사를 전달받았다는 사실을 상원 증언에 앞서 미 국무부에 털어놨던 것으로 국무부 비밀전문에 의해 드러났습니다.

 

키신저 국무장관은 1975년 5월 9일 서울 주한미국대사관에 보낸 비밀전문에서 밥 도시회장이 한달전인 4월 9일 국무부를 방문, 박정희대통령의 재선을 돕기 위해 4백만달러를 전달한 배경을 설명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전문에 따르면 이날 밥 도시회장은 국무부차관과 에드몬드 동아태 차관보를 만나 미증권거래위원회가 미국기업들의 해외이전자금등을 조사하다 걸프의 정치자금 기부를 알게 됐다고설명했습니다

 

2012/12/08 - [분류 전체보기] - 걸프,미국정치인에게는 불법자금 반환요청-박근혜에게 4백만달러 반환요청하면 어떡하나?

2012/12/07 - [분류 전체보기] - 스위스 UBS에 박정희정권 비자금계좌 있었다,- NYT보도,'걸프사 1970년 3백만달러도 UBS에 송금':박근혜가 조회하면 당장 확인가능

 

 

특히 밥 도시 회장은 1966년 박정희 재선운동을 도와달라며 백만달러를 요구받고 회사자금을 바하마 시추회사의 사업경비로 처리하는 방법으로 백만달러를 전달했으며 그뒤 박정희대통령이 걸프의 도움에 감사한다며 자신에게 간접적으로 말했다고 국무부에 설명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다시 말하면 '걸프사가 돈을 준 데' 대해 감사하다며 직접적으로 돈을 언급한 것이 아니라 '걸프사의 도움'이라고 언급하며 감사를 표한 것입니다.

 

 

 

또 1971년 한국 대통령 선거당시에는 걸프가 한국에 수억달러를 투자한 상태에서 정유공장 증설등의 허가가 필요했지만 지지부진한 상황이었다며 이때 천만달러를 기부하라는 압력을 받았으나 협상을 통해 3백만달러까지 낮췄으며 돈을 전달한뒤 나중에 감사의 뜻을 전달받았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도시는 1975년 5월 16일 상원 외교위 증언에 앞서 함병춘 대사를 만나 이 사실을 말했고 함병춘은 이를 한국정부에 보고했다고 밝혀 증언전에 한국정부에 이를 알리고 의견조율을 한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키신저가 전문을 보낸 나흘뒤인 1975년 5월 13일 스나이더 주한미국대사는 김동조 외무부장관간의 대화내용을 비밀전문을 통해 국무부에 보고했으며 그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박대통령의 입장은 한마디로 나는 모르는 일 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전문에 따르면 김동조는 함병춘 주미한국대사가 걸프가 상원청문회에서 정치헌금을 밝힐 수 밖에 없다는 도시회장과의 면담내용을 외무부에 보고했고 외무부는 이를 청와대에 보고했다고 밝혔습니다,

 

김동조는 자신이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 직접 이 문제를 의논했으며 이때 박정희는 '놀랍게도' 걸프의 정치자금헌납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박정희는 1967년과 1971년 대통령선거당시 정치자금 모금은 공화당에서 담당했으며 당시 공화당 재정위원장은 김성곤이라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스나이더는 이 전문 마지막에 의미심장한 코멘트를 남겼습니다. 그 코멘트는 '모든 책임을 몇달전 사망한 김성곤에게 덮어씌워서 위기를 모면하려는 작전처럼 보인다'였습니다.

 

 

 

같은 날 알렉산더 쓰로브릿지 한미경제위원회 위원장도 잉거솔 국무부 차관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도시 걸프회장과 통화한 내용을 설명햇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1975년 5월 13일 국무부 비밀전문에 따르면 쓰로브릿지는 박정희가 자신의 재선을 위한 선거운동과 관련, 걸프에 정치자금 헌납을 요구한 사실에 대해 부인하기로 계획을 세웠다고 말했습니다. 쓰로브릿지는 한국정부가 도시회장에게 걸프의 정치자금헌납은 최근 사망한 당시 공화당 재정위원장 김성곤의 책임이라고 말했다고 국무부에 전했습니다.

 

정리하자면 도시회장은 두차례에 걸쳐 박정희의 대통령 선거운동을 위해 4백만달러를 전달하고 박정희로 부터 고맙다는 인사까지 받았지만 문제가 터지자 박정희는 나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발뺌한 것입니다.

 

특히 도시가 증언전에 증언사실을 한국정부에 통보했고 한국정부는 박정희에게 이를 보고하고 박정희가 나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던 사실을 도시에게 알렸습니다. 이는 박정희가 도시회장에게 나는 모르는 일이며 김성곤 책임이라고 의회에서 진술하라고 묵시적으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걸프는 앞서 설명했듯이 한국에 수억달러를 투자한 입장에서 한국정부의 말을 거스를 수가 없는 형편이었기 때문에 상원증언전에 한국정부가 걸프에 '박정희는 나는 모르는 일'이라는 입장을 전달한 것은 이 정도선에서 답변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봄이 타당합니다.

 

도시회장은 4백만달러를 주고 박정희로 부터 감사인사까지 직접 받았다고 국무부에 보고한 반면 박정희는 나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엇갈리는 주장을 했습니다만 스나이더 대사의 냉정한 코멘트가 논란의 종결자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스나이더대사의 코멘트는 이랬습니다. '죽은 김성곤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쒸워서 위기를 벗어나려는 작전같다'

 

2012/12/07 - [분류 전체보기] - 스위스 UBS에 박정희정권 비자금계좌 있었다,- NYT보도,'걸프사 1970년 3백만달러도 UBS에 송금':박근혜가 조회하면 당장 확인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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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7 - [대통령 후보] - [미의회가 밝힌 박정희정권 스위스계좌 2]걸프사,박정희방미자금 20만달러 스위스비밀계좌에 입금-UBS계좌번호는 626,965.60D: 스위스UBS입금전표,걸프사진술서등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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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05 - [최재경 ] - 삼성장학생 최재경, 삼성채권수사하며 이학수등 모두 불기소-그때는 몰랐는데 약국이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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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02 - [최재경 ] - 최재경 중수부장 이럴수가.,알고보니 삼성장학생?-부인이 타워팰리스 맞은편 삼성빌딩서 노른자위 약국임대운영

걸프 김동조 박정희 대담내용 filename_1344640811617_new.pdf

 

도시 국무부 방문 filename_1344638742602_new.pdf

 

한국 부인하고 김성곤에게 책임전가 최근 사망 filename_1344639894787_new.pdf

도시 국무부 방문 filename_1344638742602_new
걸프 김동조 박정희 대담내용 filename_1344640811617_new
한국 부인하고 김성곤에게 책임전가 최근 사망 filename_1344639894787_new
대통령 후보2012.10.10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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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저보고서

박동선 계좌내역서 -하원윤리위 증거 29번 _ 박종규스위스계좌송금내역 박동선 계좌내역서 -하원윤리위 증거 29번 _ 박종규스위스계좌송금내역

 

박동선 계좌내역서[확대] -하원윤리위 증거 29번 _ 박종규스위스계좌송금내역 박동선 계좌내역서 [확대] -하원윤리위 증거 29번 _ 박종규스위스계좌송금내역


박종규가 관리하던 이 스위스 비자금계좌도 박정희 정권의 제3의 스위스 비밀계좌는 박동선의 은행서류로도 그 존재가 정확히 드러납니다

 

박동선은 1972년 3월 21일 '진'이라는 서명이 적힌 박종규관리 스위스계좌의 예금인출서를 들고 이튿날 미국으로 돌아온뒤 그의 부하직원 류재신을 스위스로 보내 19만달러를 자신의 계좌로 송금하게 합니다

 

2012/10/09 - [대통령 후보] - [미의회가 밝힌 박정희정권 스위스계좌 3] 박종규도 스위스 비자금계좌 별도관리 - 19만달러 예금인출선 서명은 '진' : 류재신-박동선 의회증언록등

2012/10/07 - [대통령 후보] - [미의회가 밝힌 박정희정권 스위스계좌 2]걸프사,박정희방미자금 20만달러 스위스비밀계좌에 입금-UBS계좌번호는 626,965.60D: 스위스UBS입금전표,걸프사진술서등 첨부

2012/10/03 - [대통령 후보] - [미의회가 밝힌 박정희정권 스위스계좌 1]'박정희자금 이후락이 스위스계좌에 예치- 김성곤이 육영수에게 돈 상납' : 이게 프레이저보고서 원문

류재신이 이 서류를 은행에 제시하고 박종규가 관리하던 스위스은행 비밀계좌에서 19만달러를 박동선의 에쿼터블 트러스트 계좌로 송금했다는 사실은 하원윤리위원회가 입수한 박동선의 에쿼터블 트러스트 계좌 내역서에서도 확인됩니다

 


박동선이 볼티모어소재 에쿼터블 트러스트에 개설한 계좌는 예금주가 T.S.PARK, 계좌번호는 755-0208-5 였으며 1970년부터 1976년까지의 이 계좌의 입출금내역은 하원윤리위 '한국영향력조사' 청문회가 채택한 증거 29번으로 윤리위 부속보고서 1권 254페이지에서 277페이지까지 24페이지분량이 첨부돼 있습니다.


 

이 에쿼터블 트러스트 계좌내역서중 257페이지에 수록된 1972년 초반 거래내역을 보면 1972년 3월 29일 스위스의 한 은행에서 박동선의 계좌로 19만달러가 송금됐다는 사실이 정확히 기재돼 있습니다.


 

이 내역에 따르면 이 돈을 송금한 은행은 BANQUE DE GESTION FINANCIERE [BAGEFI]로 쥐리히에 있다고 기록돼 있으며 스위스 금융당국 확인결과 이 은행은 계좌내역서 기록대로 스위스 쥐리히에 있는 독인계 은행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아마도 이 은행이 박종규의 비밀계좌가 개설됐던 스위스 은행일 가능성이 큽니다.


박동선의 지시를 받고 스위스를 방문했던 류재신은 올해 나이 75세로 현재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인근 모도시에 부인[유O숙씨]과 함께 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진'이라는 서명이 적힌 예금인출서를 직접 봤고 이 인출서로 박동선에게 돈을 송금시킨 류재신은 서명뿐 아니라 박종규가 관리하던 스위스예금계좌의 계좌주가 누구인지도 분명히 확인한 것으로 짐작됩니다.

 

류재신이 이제 입을 열고 그 계좌주를 증언할 것인가, 주목되는 순간입니다. 이제 류재신의 입에 그 비밀이 달려 있습니다.

 

박종규가 관리하던 이 스위스 비자금계좌도 박정희 정권의 제3의 스위스 비밀계좌로 추정됩니다. 그 이유는 박종규가 쌀커미션을 정치자금으로 활용한다는 명목하에 고위층허락을 받고 박동선에게서 쌀중개권을 회수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계좌는 고위층이 그 존재를 알았던 정치자금 관련 스위스은행 비밀계좌로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미의회는 이후락이 박정희를 위한 '정부자금'을 관리하던 스위스 비밀계좌, 걸프로 부터 박정희 방미경비등을 입금받았던 서정귀명의의 스위스 비밀계좌, 박종규가 관리했던 스위스 비밀계좌등 적어도 3개의 스위스 비밀계좌의 흔적을 찾아냈고 일부계좌는 계좌번호까지 확인했습니다. 박정희 또는 박정희 정권의 스위스 비밀계좌가 적어도 3개이상 존재했던 것입니다. 


 

박동선증언 박종규돈 인출관련_new
 
김형욱 박동선증언 19만달러 되찾은 경위_new



대통령 후보2012.10.09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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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저보고서

박정희, 이후락뿐만 아니라 박종규도 스위스에 비밀계좌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미 하원윤리위가 코리아게이트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밝혀졌습니다. 이 계좌는 박종규가 미국쌀 수입관련 커미션등을 관리했던 계좌였기 때문에 이 계좌또한 박정희 정권차원의 스위스 비자금 계좌로 볼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제3의 스위스 비밀계좌입니다.


미 하원윤리위는 코리아게이트 청문회에서 박동선의 로비를 조사하던중 한때 박동선이 쌀중개권을 상실했던 사실을 밝혀내고 그 중개권을 다시 쟁취하는 과정을 살펴보다가 박종규가 관리하던 스위스 비밀계좌를 발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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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7 - [대통령 후보] - [미의회가 밝힌 박정희정권 스위스계좌 2]걸프사,박정희방미자금 20만달러 스위스비밀계좌에 입금-UBS계좌번호는 626,965.60D: 스위스UBS입금전표,걸프사진술서등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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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선은 1968년말 미국쌀 중개권자로 선정됐다가 1970년말 공화당에 정치자금을 제대로 내지 않고 미하원 외국원조심의위원장인 패스만의원이 박동선을 싫어한다는 이유로 박종규가 쌀중개권을 박탈, 자신의 측근인 강선태에게 중개권을 맡겼습니다.

 

이때 박종규는 자신이 직접 쌀중개권을 관리, 그 커미션으로 정치자금을 조성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박동선이 절치부심끝에 1년여뒤인 1972년 3월 21일 다시 쌀중개권을 쟁취하게 됩니다.


쌀중개권을 되찾는 과정에서 박동선은 미 상하원의원들을 동원해 박정희에게 편지를 보내게 하는가 물론 1972년 1월에는 미 하원의 아태소위원장과 미 하원의 외국원조심의위원장등 2명의 하원의원이 청와대를 방문해 박정희와 담판을 지음으로써 마침내 박종규에게 빼앗겼던 쌀중개권을 회복했고 바로 이때 미 하원의원과 박정희가 나눈 대화가 미국에 도청돼 1972년 2월 3일자로 키신저에게 보고됐었습니다. [FBI정보메모 2012/09/16 - [대통령 후보] - 안치용,‘박정희 대미로비 X파일’출판 : 미국의 청와대도청은 실재- 박정희 방탄차 알고보니 CIA가 제공 ]


박동선은 1972년 3월 21일 쌀중개권을 회복하면서 1971년 박종규가 정치자금명목으로 관리했던 쌀중개 커미션중 일부인 19만달러를 돌려받게 됩니다. 박동선은 김형욱과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등에게 이 돈이 미의원들에게 전달될 돈이라고 말했고 김형욱, 이후락이 중재에 나서 19만달러를 되찾은 것입니다. 1970년 박종규가 받은 쌀 커미션은 약 80만달러로 추정되지만 로비자금 19만달러만 박동선에게 되돌려 준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박동선이 19만달러를 인출하는 과정입니다. 김형욱은 박종규로 부터 서류 한장을 전달받아 박동선에게 전했으며 바로 이 서류가 박종규가 관리하던 스위스 은행 비밀계좌에서 19만달러를 인출해도 된다는 인출지시서였습니다. 이 한장의 서류로 박종규도 박정희 정권 비자금 명목의 스위스 은행 비밀계좌를 관리했음이 드러난 것입니다.


박동선은 1972년 3월 21일 쌀중개권을 회복, 조달청이 발급한 쌀중개인 지정서와 스위스은행 예금인출서를 들고 미국으로 온뒤 자신의 조지타운대학 동창이자 부하직원인 류재신에게 예금인출서를 주며 스위스로 보냈습니다. 류재신은 스위스로 날라가 해당 스위스 은행에 이 서류를 제시하고 19만달러를 박동선의 계좌로 송금한 것입니다.

박종규 스위스계좌관련 류재신증언록 - 1977년 10월 21일 증언 박종규 스위스계좌관련 류재신증언록 - 1977년 10월 21일 증언


류재신은 1977년 10월 21일 미 하원윤리위원회에 출석해 스위스 비밀계좌의 19만달러를 박동선의 계좌로 송금하는 과정을 상세히 증언했으며 이는 하원윤리위 '한국영향력조사' 청문회 부속보고서 1권 192페이지에 기록돼 있습니다.


류재신은 스위스에서 예금을 인출할때 인출서의 서명란을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불행히도 그 서명을 봤다'고 말했습니다. 류재신은 자세한 설명을 요청하자 '서명란에 딱 한글자의 한자가 적혀 있었으며 그 한자는 'JIN'[진] 이었다고 증언했습니다. 


류재신의 이같은 증언은 박동선이 1978년 4월 4일 하원윤리위원에서 밝힌 내용과도 일치하며 이 박동선의 증언은 하원윤리위 '한국영항력조사' 청문회 부속보고서 2권 80페이지에 수록돼 있습니다. 김형욱또한 상원윤리위 청문회에서 1978년 7월 10일 자신이 박동선이 19만달러를 돌려받을 수 있도록 도와준 과정을 증언했으며 이 증언도 상원윤리위 '한국영향력조사' 부속보고서 2권 1108페이지부터 1110페이지에 기록돼 있습니다. [하단 첨부파일 참조]

 

박종규가 관리하던 이 스위스 비자금계좌도 박정희 정권의 제3의 스위스 비밀계좌로 추정됩니다. 그 이유는 박종규가 쌀커미션을 정치자금으로 활용한다는 명목하에 고위층허락을 받고 박동선에게서 쌀중개권을 회수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계좌는 고위층이 그 존재를 알았던 정치자금 관련 스위스은행 비밀계좌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인출서에 나타나는 서명 '진'은 누구의 서명일까요, 하원윤리위원회도 끝내 이 서명이 누구의 서명인지는 밝히지 못했지만 이 계좌가 박종규가 관리하던 계좌라던 사실은 밝혀냈습니다. 박종규가 관리한 박정희 정권의 제3의 스위스 비밀계좌, 이 계좌도 낱낱이 밝혀내야 합니다.

 

박종규의 계좌가 스위스 어느 은행에 개설돼 있었는지는 내일 또 알아보겠습니다.


박동선증언 박종규돈 인출관련_new
 
김형욱 박동선증언 19만달러 되찾은 경위_n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