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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파일'에 해당되는 글 18건

  1. 2010.01.31 도감청대상 알아맞추기 퀴즈 : 최■선이 애인으로 추정되는 여성에게 ‘이번 개각에서 내 새끼들이 다 되었다, (2)
  2. 2010.01.31 불법 도감청 : 신건-임동원 전 국정원장 1심 판결문 전문 2006년
  3. 2010.01.10 Inside the White House: The Marine Sentries[영상] - 백악관 지킴이 해병초병
  4. 2009.09.26 친일파 재산 삼청장, 홍석현회장이 감정가 절반에 낙찰 (9)
  5. 2009.09.10 나는 이건희의 알바였다 (9)
  6. 2009.09.06 김병국 전 청와대 수석 : 미국서도 부동산 투기 [시리즈 9] : 공부하러 갔나? 콘도사러 갔나? (9)
  7. 2009.09.06 김병국 전 청와대 수석 : 미국서도 부동산 투기 [시리즈 8] : 공부하러 갔나? 콘도사러 갔나?
  8. 2009.09.06 김병국 전 청와대 수석 : 미국서도 부동산 투기 [시리즈 7] : 공부하러 갔나? 콘도사러 갔나?
  9. 2009.09.06 김병국 전 청와대 수석 : 미국서도 부동산 투기 [시리즈 6] : 공부하러 갔나? 콘도사러 갔나?
  10. 2009.09.05 “X파일 폭로 이후 4년은 대한민국 성역을 확인한 과정” [한겨레21]
  11. 2009.09.04 김병국 전 청와대 수석 : 미국서도 부동산 투기 [시리즈 5] : 공부하러 갔나? 콘도사러 갔나?
  12. 2009.09.03 보스턴 한국인 주택 소유주 리스트 : 해외부동산투자 (1)
  13. 2009.08.31 김병국 전 청와대 수석 : 미국서도 부동산 투기 [시리즈 4] : 공부하러 갔나? 콘도사러 갔나?
  14. 2009.08.31 김병국 전 청와대 수석 : 미국서도 부동산 투기 [시리즈 3] : 공부하러 갔나? 콘도사러 갔나?
  15. 2009.08.31 김병국 전 청와대 수석 : 미국서도 부동산 투기 [시리즈 2] : 공부하러 갔나? 콘도사러 갔나? (2)
  16. 2009.08.31 김병국 전 청와대 수석 : 미국서도 부동산 투기 [시리즈 1] : 공부하러 갔나? 콘도사러 갔나?
  17. 2009.08.29 박상아 전재용 X 파일 - 전두환 며느리 아틀란타 주택 소유권 내역[증거자료 첨부] (8)
  18. 2009.08.29 그걸 왜 케리를 줘, 29만원 시아버지를 줘야지 - 박상아 정치헌금 내역 공개 [자료첨부] (1)
분류없음2010.01.31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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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지난 2005년 신건, 임동원 전 국정원장에 대한 불법도감청관련 공판 판결문입니다
이 판결문에는 실명이 삭제된 채 주요 도감청 내용이 간략하게 언급돼 있습니다
비 실명처리된 주요 도감청 대상자는 누구일까요
네모나 세모등으로 표시된 주요 도감청 대상자의 실명을 아시는 분은 댓글에다 적어주십시요
지금 이시간에 또 얼마나 많은 이들의 통화를 엿듣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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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 8국장이 2001. 4.경 최■선이 애인으로 추정되는 여성에게 ‘이번 개각에
서 내 새끼들이 다 되었다, 김□신 국방장관과 피고인 신건이 그 사람들이다, 이제 그
새끼도 끝장이다’고
[24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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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0. 10.경부터 2001. 3.경까지 사이에 지만○이 햇볕정책 등을 비판하고 다닌
다는 이유로 지만○과 성명불상자 간 ‘햇볕정책 비판, 강연회 일정’ 관련 통화 내
용을 수회 감청하고,

(2) 2000. 10.경부터 2001. 3.경까지 사이에 최■선이 각종 이권에 개입하는 등 문제
를 일으킨다는 이유로 최■선과 성명불상의 내국인들 간 ‘금전관계, 사무실 운영
관계, 여자관계, 자기 과시 내용’ 등 관련 통화내용을 수회 감청하고,

(3) 2000. 말경부터 2001. 초경까지 사이에 정부의 대북지원 정책과 관련하여 통일부
장관 박□□, 통일부 간부 김형기 등 통일부 공무원들의 대북지원 관련 통화내용
을 수회 감청하고,

(4) 2000. 12.경 민주당 소장파 의원들이 권○○ 최고위원 퇴진을 거론하는 등 민주
당 내분사태가 발생하자 2000. 12.경 민주당 소장파 의원들 및 당직자들 간 ‘권
○○ 최고위원 퇴진’ 관련 통화내용을 수회 감청하고,

(5) 2000. 11.경부터 같은 해 12.경까지 사이에 진○현 관련 불법대출, 특혜 의혹 등
으로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자 진○현과 성명불상자 간 ‘진○현의 불법 대출, 구
명 운동’ 관련 통화내용을 수회 감청하고,

(6) 2000. 10.부터 2001. 3.경까지 사이에 북한에서 귀순한 황○엽, 김○홍이 정부의
대북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미국을 방문한다고 하자 황○엽과 이○승 전 의
원, 성명불상의 탈북자단체 간부, 성명불상의 통일문제연구소 간부 등 간 ‘황○
엽의 미국 방문 문제’ 등 관련 통화내용을 수회 감청하고,

(7) 2000. 10.부터 2000. 말경까지 사이에 이○작 등 대통령 친·인척의 행동이 문제
가 되자 이○작, 이○호 등 대통령 친·인척과 성명불상자들 간 통화내용을 수회
감청하고,

(8) 2000. 말경 안기부 비자금의 정치권 유입 의혹 사건으로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자
강○재 의원과 성명불상자 간 ‘안기부 비자금 사건’ 관련 통화내용을 수회 감청하고,

[5-6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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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1. 4.경 최■선과 성명불상자 간 ‘국가정보원장 및 국방부장관 인사’ 관련 통
화내용을 수회 감청하고,

(2) 2001. 4.경 민국당 대표인 김○환과 민주당 의원 성명불상자 간 ‘민주당, 자민련,
민국당의 정책 연합’ 관련 통화내용을 감청하고,

(3) 2001. 5.경 안○수 법무부장관 임명 관련 민주당 관계자 성명불상자 간 ‘인사시
스템 문제’ 관련 통화내용을 감청하고,

(4) 2001. 8.경 한나라당 박○웅 의원과 김○○ 전 대통령 간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
한 항의 단식 농성’과 관련 통화내용을 감청하고,

(5) 2001. 9.경 자민련 이○구 의원과 자민련 관계자 간 ‘통일부 장관 해임안에 대한
자민련의 입장’ 관련 통화내용을 감청하고,

(6) 2001. 12.경부터 2002. 1.경까지 사이에 서울지하철노조 위원장 배○도와 성명불
상의 정치인 간 ‘서울지하철노조 파업’ 관련 통화내용을 감청하고,

(7) 2001. 12.경부터 2002. 1.경까지 사이에 재향군인회장 이○□, 예비역 대령 서정
□과 성명불상자들 간 ‘햇볕정책 비난’ 관련 통화내용을 감청하고,

(8) 2001. 12.경부터 2002. 1.경까지 사이에 대통령 친·인척인 이□□과 성명불상자
간 ‘보물선 인양사업’ 관련 통화내용을 감청하고,

(9) 2001. 12.경부터 2002. 3.경까지 사이에 아태평화재단 간부 이□동과 성명불상의
대기업 간부 간 ‘공사하청’ 관련 통화내용을 감청하고,

(10) 2002. 1. 29. 민주당 정○□ 고문과 한나라당 이□영 의원 간 회동 관련 통화내
용을 감청하고,

(11) 2002. 2. 25.경 남□□ 장관과 이□□ 장관 간 ‘강원랜드 이사의 후속보직’ 관련
통화내용을 감청하고,

(12) 2002. 3. 8. 한나라당 이□□ 의원과 한나라당 서□□ 의원 간 ‘한나라당 대선후
보 경선’ 관련 통화내용을 감청하고,

(13) 2002. 3. 9. 한나라당 양○부 특보와 연합뉴스 기자 간 ‘강삼○ 의원의 경선 불출
마’ 관련 통화내용을 감청하고,

(14) 2002. 3. 11. 한나라당 김원□ 의원과 중앙일보 기자 간 ‘이□창 총재의 당내 인
적쇄신’ 관련 통화내용을 감청하고,

(15) 2002. 3. 11. 민주당 이인□ 고문과 민주당 전□길 의원 간 ‘민주당 대선후보 경
선’ 관련 통화내용을 감청하고,

(16) 2002. 3. 12. 한국광고주협회장 민□○과 동아일보 사장 김□○ 간 ‘정부에 비판
적인 기사 논조’ 관련 통화내용을 감청하고,

(17) 2002. 3. 20. 한나라당 김○제 의원과 동아일보 기자 간 ‘김○제 의원의 탈당 가
능성’ 관련 통화내용을 감청하고,

(18) 2002. 3. 21. 한나라당 관계자와 하○○ 의원 간 ‘한나라당과 자민련 합당’ 관련
통화내용을 감청하고,

(19) 2002. 3. 28. 민주당 이○제 고문과 민주당 전○학 의원 간 ‘민주당 체제개편’ 관
련 통화내용을 감청하여,

통신비밀보호법상의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아니하고 전기통신을 감청하였다.

[8-9 페이지]



국정원 불법감청 판결문 2005고합1132_판결문_ -
분류없음2010.01.31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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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건, 임동원 두 전직 국정원장에 대한 불법 도감청 관련 1심 판결문입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2형사부는 지난 2006년 7월 14일 판결을 통해 두 전직 국정원장에게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습니다
유선대 휴대폰 감청장비인 R2, 휴대폰 대 휴대폰 감청장비인 CAS 등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돼 있고
이들 장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어떤 내용을 도감청 했는지도 열거돼 잇습니다

국정원 불법감청 판결문 2005고합1132_판결문_ -
백악관 엑스파일2010.01.10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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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보름전에 친일파 민영휘의 손자인 민병유와 그의 딸이 뉴욕에 콘도를 두채 소유했었다는 사실을 공개하며
뉴욕시에 제출한 매매계약서에서 그들의 주소지가 해방공간에서 일정역할을 했던 삼청장이었으며
추후 삼청장이야기를 하겠다고 약속드렸었습니다

2011/05/11 - [분류 전체보기] - 홍석현회장 감정가절반에 낙찰 '삼청장' 지난 2월 국가로 소유권이전 - 국유재산과 교환
2011/05/17 - [분류 전체보기] - 홍석현회장 한남동주택 절반은 전시시설 - 주택공시가격은 나머지 절반에만 책정

오늘은 등기부등본과 공매기록등을 중심으로 삼청장 사연을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삼청장의 주소는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 145-20번지입니다
등기부등본을 살펴보면 이 집은 대지가 4백67평에 건평이 88평인 기와집입니다

삼청장은 등기부등본상 첫 주인은 친일파 민영휘의 아들인 민규식으로
1925년 6월 10일 매매에 의해 이 집을 소유하며 이때 자신의 집주소를 삼청동 145-6번지로 기재했습니다
[아래 삼청장 등기부 등본 참조]

1415-1092 MINNKYUSIK SAMCHUNG 145-20 -
그뒤 삼청장은 2002년 8월 27일 상속이 됩니다
민규식의 자녀인 민병순, 일본인 민병서, 민병유가 각각 3분의 1의 지분을 취득합니다만
민병유가 상속이전인 2001년 6월 26일 사망함에 따라 그의 지분은 미망인과 5 자녀에게 대습상속됩니다

인터넷 위키피디아등에 따르면 민규식이 삼청장을 민족지도자 김규식 선생에게 헌납했다고 기록돼 있으나
등기부 등본상으로는 김규식선생이 소유주가 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민규식이 김규식선생에게 소유권을 넘기지 않고 일시적으로 김규식선생에게 거처로만 제공했다'가
정확할 것 같습니다

그러다 2007년 9월 3일 세금체납등으로 인해 종로세무서에 압류처리된뒤
올해 2월 2일 홍석현씨가 공매에 의해 삼청장 소유자가 되며 2월 11일 등기를 완료하게 됩니다

새 주인 홍석현씨는 등기부등본 조사결과 홍진기 전 법무부장관의 아들이며
이건희 삼성회장의 처남인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으로 확인됐습니다

등기부 등본을 꼼꼼히 보면 등기과정에서 작은 소동도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등기부 등본중 소유권 내역을 표시하는 갑구에서 12번 항목을 살펴보면
2007년 9월 12일 종로세무서에서 민병순의 지분을 압류하게 됩니다
그러나 2009년 2월 11일 홍석현회장으로 소유권이 넘어가 등기되는 과정에서
다른 압류는 모두 말소 됐지만 바로 이 12번 항목만 남아있었습니다
그래서 등기부등본에는 다시 2009년 2월 12일 착오발견이라고 명시하고
12번 압류도 말소하게 됩니다

민병순은 다음 글을 풀어가는데 매우 중요한 인물인데 공교롭게도
민병순의 지분압류 - 말소과정에서 해프닝이 벌어져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렇다면 홍석현회장은 얼마에 삼청장을 공매 받았을까?
한국 감정원 평가에 따르면 삼청장의 감정가는 78억6천여만원[7,861,331,200원] 이었으나
홍석현씨는 감정가의 절반인 40억천만원에 낙찰받았습니다 [물건번호 2008-04809-009]

공매 과정을 살펴보면 종로세무서로 부터 자산처분을 위탁받은 한국자산관리공사는
2008년 10월 8일 한국자산관리공사 조세정리부 2008년 제20회 압류재산 위탁공고를 냅니다
[아래 한국자산관리공사 2008년 제020회 압류재산 공매공고 참조]

삼청장 압류재산 공매공고 -
공고번호 200810-00456-00인 이 공고는 한국경제신문과 한국자산관리공사 게시판등에 게재됐으며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 145-20 삼청장 건물을 비롯한 압류재산을 공매한다며 입찰일정등을 담고 있습니다
[아래 한국자산관리공사 공매대상 물건목록 참조]

2008년 10월에 앞서 공매공고가 나가고 2008년 7월 24일 최저입찰가 78억6천여만원에 시작해
공매절차가 진행됐으나 이날부터 일주일 간격으로 8월29일까지 6차례의 입찰이 모두 취소됩니다

그뒤 10월 8일 공매공고가 다시 나고 2008년 11월 23일부터 최저입찰가 78억6천만원에 시작해
공매절차가 진행됐지만 이번에는 일주일간격으로 12월 11일까지 모두 5차례에 걸쳐 유찰됐습니다

결국 12월 18일 6번째 경매가 최초 경매시작가격의 절반인 39억3천여만원을 최저입찰가로 해서 시작됐고
이 최저입찰가의 102%인 40억천만원에 낙찰됐습니다
[아래 한국자산관리공사 입찰 결과 참조]

삼청장 12차 입찰결과 종합f -
홍석현회장이 언제 매입대금을 지불했는지 알 수 없으나 천만원이상인 경우 입찰가 10%만 사전 납입하고
나머지 대금을 60일내에 납부하게 규정돼 있으며 올해 2월2일 공매에 의해 소유권을 취득했다는
등기부 등본을 감안하면 올해 2월 2일까지 모두 40억천만원을 납부한 것으로 보입니다

홍석현회장은 감정가 78억6천여만원의 삼청장이 공매에 나왔다가 5차례에 걸쳐 낙찰자 없이
유찰된 탓에 최저 입찰가가 크게 내려갔고 6번째 공매에서 감정가 절반인 40억에 사들인 것입니다
[공매의 경우 최저입찰가 이상으로만 입찰에 응할 수 있음]

한국감정원 평가에 따르면 삼청장은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 서쪽에 있으며 국가주요시설물 옆에 있어
대중교통이 다소 불편할 것이다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아래 한국자산관리공사 삼청장 물건정보 참조]

삼청장 물건정보 -
여기서 국가주요시설물은 청와대를 칭함이며 다소 불편할 것으로 예상된 대중교통은
새 주인과는 특별한 상관관계가 없을 것으로 예상돼 과도한 우려가 아닌가 싶습니다

감정가의 절반에 낙찰받았다고 해도 문제가 있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실제 이날 거래에서 공매된 다른 부동산들도 감정가 절반에 팔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청와대 인근, 수도 서울 한복판의 최고 요지인 점을 감안하면 썩 괜챦은 거래였다 짐작됩니다
한국감정원의 감정가가 78억6천여만원이므로 지금 당장 팔아도 수십억의 차익이 남을듯 합니다

또 하나 친일파 민영휘의 아들 민규식의 재산이 홍석현 회장의 차지가 됐다는 것도 꽤 화제가 될 듯 합니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는 2007년 8월 13일 민영휘의 재산 36필지 시가 56억원 상당을
국가에 귀속시킵니다
하지만 당시 이 삼청장은 포함되지 않았고 약 20일뒤 종로세무서가 세금체납을 이유로 이 삼청장을
전격 압류하게 됩니다 
[아래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 제2차 국가귀속결정 현황자료 참조]

민영휘재산 국가귀속 2차현황자료 -

재산조사위원회 발표자료에도 '민영휘는 일체의 재산을 자신의 명의로 하지 않고 민대식, 민규식등 
아들의 명의로 신탁하고 동인의 명의로 신고를 하여 사정을 받았음' 이라고 명시돼 있음에도 
삼청장은 첫번째 귀속대상에서는 제외됐습니다  
민영휘의 재산은 위원회 발표대로 2006년 7월 24일부터 10차례에 걸쳐 세밀하게 조사됐음에도 말입니다
[아래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 제3차 국가귀속결정 현황자료 참조]

민영휘재산 국가귀속 3차현황자료-최종 -
재산조사위원회는 2007년 11월 22일 민영휘 재산에 대한 2번째 국가귀속사실을 발표하지만
이때는 이미 삼청장이 종로세무서에 압류된 뒤였습니다

아마도 당시에 포함되지 않았던 것은 민영휘의 재산임을 입증하는 문제등
나름대로의 애로사항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만약 귀속대상재산이었다면 80억짜리를 잡을 것인가, 
56억짜리를 먼저 잡을 것인가의 문제였는데
여러분이라면 어떤 부동산부터 먼저 잡겠습니까? 
저라면 80억짜리 먼저 잡고 그 다음에 56억짜리를 잡을 겁니다
다같이 한꺼번에 잡을수 있다면 말할 것도 없고

어쨌거나 삼청장은 친일파 재산으로 규정, 국가에 귀속되지 못한채
'세금 체납'으로 인한 압류로 공매 처리된 것으로 남게 됐습니다

한편 삼청장 등기부 등본에 1925년 기재됐던 민규식의 주소 삼청동 145-6번지는
등기부 등본 확인결과 국가 소유로 관리청은 청와대 경호실이었습니다

삼청동 145-6번지는 삼청장보다 두배이상 넓은 1070평 규모였습니다
[아래 서울 종로구 삼청동 145-6번지 토지 및 건물 등기부등본 참조]


삼청동 145-6 건물 등본 발급 -
삼청동 145-6 토지 등본 발급 -
자료화면 다운로드는 화면창아래 파일명을 클릭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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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나는 약 2달간 삼성 이건희 회장 가족의 독일여행을 도와주는 '알바'로 일했다. 지금부터 그때 보고 느낀 점을 이야기 하려고 한다.

'삼성'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이중적이다. 국가 수출의 20%를 담당하고 상장기업 주식가치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삼성은 반도체와 휴대전화로 세계를 누비며 자칭 '초일류 기업'으로서의 이미지를 공고히 해나가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취업준비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기업 1위가 삼성이며, 가장 존경하는 기업인이 이건희 회장이다.

그러나 이와는 모순되는 또다른 삼성의 이미지가 존재한다. 천문학적인 액수의 재산을 세금을 적게 내고 대물림하려 했다는 변칙 상속 증여의 의혹을 계속 받아왔고,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 노조는 절대로 안된다"던 이병철 선대 회장의 뜻이 그의 눈에 흙이 들어간 한참 뒤에도 여전히 굳건히 지켜지고 있는 '무노조 삼성'의 이미지가 있다.

이러한 모순되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기업에서 일한다는 것은 이 이중적인 모습을 구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지난 여름, 약 두 달간이라는 짧은 기간이기는 했지만, 나는 삼성의 '알바'가 되어 삼성직원들과 함께 일하면서 세계 일류를 꾀하고자 하는 기업의 업무 시스템 및 삼성 직원들의 업무 능력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무노조 경영' 혹은 '황제식 경영'을 통해 형성된 노사 관계가 일반 직원들로 하여금 어떻게 행동하게 만드는가를 직접 목도할 수 있었다.

지난해 8월 베를린에서는 무슨 일이

지난해 8월 2일자 연합뉴스의 한 기사는 이렇다.

… 2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 이 회장은 오는 13일 아테네올림픽 개막식과 이에 앞서 열리는 11~12일 IOC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6일 삼성그룹 업무용 비행기편으로 출국할 예정이다. 이 회장은 11일(현지시간) 올림픽 주경기장 인근의 '삼성홍보관' 개막식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이 회장은 이와 함께 헝가리와 슬로바키아의 삼성전자 현지법인과 헝가리의 삼성SDI 브라운관 공장 등을 방문해 현장경영에 나설 계획이다.…

그로부터 거의 한 달 뒤인 8월 31일, 이 회장의 유럽 순방 일정과 관련한 기사가 뒤따랐다.

… 31일 삼성그룹에 따르면 이 회장은 30일 헝가리 부다페스트 인근에 위치한 삼성전자와 삼성전기, 삼성SDI 복합단지를 방문, 업무보고를 받고 현장 근로자들을 격려한데 이어 31일에는 슬로바키아 갈란타의 삼성전자 사업장을 방문한다.…

그런데 8월 중순 아테네에서의 공식일정과 8월 말의 헝가리 및 슬로바키아 법인 방문 일정 사이에 이 회장의 일정과 관련해서는 어떠한 언론 보도도 찾아볼 수가 없다. 언론 보도에서 공백으로 남아있는 기간 동안에 계속된 이 회장의 일정이 바로 올 여름 나와 삼성을 관련짓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 일정은 8월 18일부터 24일까지의 이 회장과 그 가족의 독일 관광이었다.

알바가 되다... '프로젝트'의 첫 출발

이건희 회장과 그 일가의 독일 관광은 8월 중순의 단 1주일이었지만, 삼성 독일 주재원들과 알바생의 준비는 두 달 전부터 시작됐다.

6월 초 어느 날. 베를린 소재 삼성SDI 독일 법인에서 통역 및 번역 아르바이트를 하는 선배를 통해 삼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았다. 그 제의를 받아들인 것이 나와 삼성 그룹 사이에 맺어진 인연의 첫 출발이었다.

약 일주일여 간 번역과 통역을 하고 나서 다시 논문 준비에 박차를 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6월 말의 어느 날, 삼성에서 다시 전화가 왔다. "당장 와서 일할 수 없겠느냐"고. 전화를 건 중년 남성은 훈민정음 프로그램의 구사 능력과 도표 및 차트 작성 능력을 묻고 있었다. 나는 가능하다고 답하고 다음날부터 삼성 SDI 독일법인으로 출근을 했다.

그날로 나는 인사과 한 간부로부터 일을 의뢰 받았다. 그는 A4 용지 이면지에 자신이 대략적인 그림으로 그린 내용을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로 일단 만들어주기를 원했다. 베를린 쉐네펠트 공항에서 베를린의 최고급 호텔인 아들론 호텔까지, 베를린 템펠호프 공항에서 아들론 호텔까지, 아들론 호텔에서 관광명소인 포츠담 상수시 궁전까지 등 몇가지 장소의 동선과 이동 도로명, 주변의 명소 등에 관해서….

삼성의 한 해외 법인이, 베를린 최고의 특급 호텔인 아들론에서 시작해 각종 관광 명소에 관한 정보와 이동 동선을 작성한다면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는가? 물론 누가 오는지는 당시 분명하지는 않았다. 삼성 내 그 누구도 방문 주체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으며, 마치 그것을 금기시하고 있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일을 시작한지 며칠 후에는 파일을 정리할 기회가 있었다. 거기에는 아들론 호텔의 최고급 숙박실인 프레지덴셜 스위트(Presidential Suite)에 관한 사진 자료들과 평가, 베를린의 미술관과 박물관에 대한 기본 정보, 인근 포츠담 상수시 궁전과 포츠담 회담으로 유명한 세실리엔 궁에 대한 정보, 리무진 임대업체, 베를린 공항 정보, 그리고 여행 가이드 후보들에 대한 여타 정보들이 수록되어 있었다. 기존에 누군가가 자료 조사를 해놓은 것이었는데, 나를 비롯한 학생 아르바이트생들의 임무는 앞으로 이러한 자료들을 계속해서 조사하고 보완하는 일이었다.

우리 학생 알바들이 하고 있는 일은 바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비롯한 그 일가의 유럽 방문 일정과 관련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기본적인 정보 데이타 베이스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초반에는 베를린의 관광 명소, 산업-교육 인프라, 박물관-미술관 전시 정보 등을 수집하고 정리하는 등의 일을 했다. 이는 박식하고 까다롭기로 유명한 이건희 회장의 독일 및 베를린 방문에 맞춰 만반의 준비를 갖추는 한편, 회장의 여러가지 의문 사항에도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예상 시나리오에 대한 100% 준비

7월 초부터는 아르바이트 학생들의 대기 및 작업 공간이었던 3층 방에서 회의실로 쓰이는 1층 퀘페닉(Koepenick)실로 자리를 옮겼다. 컴퓨터와 프린터를 옮겨놓고 본격적으로 자료 정리를 할 채비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 이외에도 자료 조사에 필요한 인력이 더 보강되었다.

아무튼 우리는 그곳에서 차근차근 요구되는 자료들을 인터넷이나 서적을 통해 찾고, 번역하고, 그리고는 요구되는 형식에 맞게 요약, 정리하는 작업들을 꾸준히 해나갔다. 8시 반에 출근해서 점심과 저녁을 회사와 인근 중국 식당에서 떼우면서 북유럽의 긴 해가 지고 컴컴한 밤이 되도록 자료들을 번역하고 정리했던 것이다. 7월 말로 예상된 프랑크푸르트 삼성 구주본부의 일차 점검 기간까지 말이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자료 조사의 주문이나 내용도 늘어났고, 그에 따라서 작업 강도도 점점 더 세졌다. 주말 휴일을 보내는 것은 날이 갈수록 불가능해졌다. 회장 일가의 예상 방문지 및 동선, 독일 주요 기업에 대한 정보, 독일 명문가, 베를린 쇼핑 명소, 최고급 레스토랑, 박물관, 미술관, 극장 등등에서부터 개(犬)학교에 이르기까지 회장 일정과 관련될 만한 모든 정보를 싹싹 긁어모아서 정리했다.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그에 관련되는 정보들을 100% 확보해야 한다는 완벽주의적인 요구가 전제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분 입맛에 맞을까? 레스토랑 조사 및 시식

가령 베를린 소재 최고급 레스토랑에 관한 기본 정보를 수집해서 정리하는 것은 우리 조사팀의 역할이었다. 그리고 직접 답사를 가서 분위기를 살피고, 또한 요리 종류들을 주문해서 시식해보고 평가를 해서 후보군에 포함시킬 것인지 말 것인지를 판단하는 등 답사조의 역할은 삼성SDI 독일 법인 주재원들의 몫이었다.

이 경우 나 또한 참석한 경험이 있었다. 베를린 중심가에 위치한 어느 고급 레스토랑에서 주재원 3명과 함께 시식을 하면서 전반적인 분위기, 인테리어, 메뉴 등을 직접 조사 및 평가를 하였다. 백문이 불여일견, 아니 불여일식(不如一食)인 법. 4명이서 샴페인을 시작으로, 독특한 소스를 곁들인 손가락만한 사슴고기 조각이나 생선 조각을 먹으며 각자 맛이 어떠한지를 품평했다.

난생 처음 보는 이 낯선 음식들에 대한 품평회는 일단 우리 각자의 미각에 근거하지만, 핵심은 그 최종 시식자에게 어떠할 것인가를 중심에 두고 추체험해야 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 최종 시식자가 누구인지는 불문가지이다.

최종 시식자의 사적 일정을 소화하기 위한 준비과정의 하나로 삼성 SDI 법인 주재원들과 한 알바의 레스토랑 품평회에 지불된 비용은 이곳에서만 총 280유로(한화 약 40만원). 조사 후보군에 포함된 베를린의 최고급 레스토랑들만 해도 약 10여 곳. 업무 시간에 법인의 주재원들이 총수의 여행 준비를 위해 최고급 레스토랑으로 '출동'한 이 '행복한' 업무분장은 차치하고서라도, 적어도 이 시식 비용은 이 회장 개인 주머니에서 나왔을까 아니면, 삼성 SDI 법인의 공적 비용으로 처리되었을까?

그것이 어떻게 처리가 되었는지, 회사 직원도 아닌 비정규직 임시 알바로서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세계 초일류 기업에서 설마 이러한 사소한 비용계산 하나 공사 구분 제대로 못하고 처리했을리가 있겠는가 하고 생각할 따름이다.

아들론 호텔의 상황실과 이 회장 숙소 준비

8월 초에 들어서 자료팀의 소재지였던 삼성SDI 독일 법인의 사무실에서 이 회장 일가의 숙소인 아들론 호텔로 이동했다. 아들론 호텔 2층에 위치한 2개의 회의실을 세내 제1회의실은 상황실로, 제2회의실은 운전기사 및 가이드들의 대기실로 이용했다.

이 회장 일행이 묵을 방들은 이미 몇 주 전부터 예약이 되어 있었다. 그 사이 다른 준비팀들은 회장 일가들이 묵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모든 설비들을 구축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이 회장을 위한 삼성 초대형 평면 TV 설치에서부터 휴지 비치에 이르기까지 손이 안 간 구석이 없을 정도였다.

이 회장 본인이 묵을 아들론 호텔 512호 프레지덴셜 스위트와 주변 5층의 방, 그리고 4층의 방들을 포함한 수십개의 방들은 모두 삼성에서 세를 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복도에 들어서는 입구에는 서울본사 비서팀의 상황실이 별도로 있었고, CCTV로 오고가는 사람들을 모두 체크하게 되어 있었다. 가끔 본사 비서팀에게 식사나 필요한 것들을 전달하러 갈 때에는 일급 VIP 일행이 지근거리에 있다는 긴장감으로 걷는 것 하나라도 조심스러웠다.

5층 본사 비서팀이 이 회장 일가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최일선의 팀이고, 이 팀을 지원하는 것이 프랑크푸르트 삼성 구주본부와 SDI 베를린 법인의 주재원들로 구성된 2층 상황실의 역할이었다. 우리 알바 학생들은 2층 상황실에 상주하면서 그때그때 급하게 요구되는 자료를 찾고 정리하는 역할과 더불어 주재원들과 함께 필요한 물품들을 조달했다.

회장님 영접 전야의 긴장감

원래 이 회장은 그리스 일정을 소화한 후 터키를 거쳐 독일로 오려 했으나, 터키에서 폭탄 테러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터키 방문 일정을 취소하고 곧바로 독일로 날아왔다. 그때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터키 법인에서는 지금쯤 만세를 부르고 있겠구만."

더구나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던 주재원들을 더욱 더 긴장하게 만든 것은 그리스에서 이 회장이 관광 일정을 소화하고 있을 때 가이드에게 뭔가 전문적인 지식과 관련된 내용을 물었으나 만족할 만한 답변을 제공하지 못해서 준비하는 사람들이 '좀 깨졌다'는 소식이 전해지고부터였다. 이 회장이 도착하는 8월 18일까지는, D데이가 점점 다가온다는 압박감과 함께 이러한 '사고사례'가 덧붙여져 긴장은 날로 더해갔다.

영어 약자로 불리는 여행객들

상황실과 관련문서 속에서 삼성 일가의 이름은 영어 약자로 불렸다. 마치 3김이 본명 대신 영어 약자인 DJ, YS, JP 등으로 불리듯이 말이다. 삼성 이건희 회장은 A, 부인인 홍라희씨는 A', 그들의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는 JY, 그의 부인인 임세령 씨는 JY', 장녀 부진 씨는 BJ, 차녀서현 씨는 SH, 그리고 그 남편은 SH'로 불렸다.

특기할 만한 것은 삼성 그룹 총수의 직계 가족들인 이씨들은 모두 자기 이름의 약어로 불린 반면(그러나 특별히 이 회장은 알파벳의 제일 첫 문자로 지칭됨), 부인·며느리·사위는 배우자 이름 약어에 단지 2차적 관계를 표시하는 <'>로 표기되었다는 점이다.

이재용씨 부부의 아들인 JH군과 서현씨의 딸인 JE양 또한 동행했다. 베를린 여행 및 방문 일정에는 삼성 구주전략본부장인 양해경 부사장이 항시 동행하면서 이 회장을 보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밖에 이 회장 일행의 일상적 편의를 지원하기 위한 인력 또한 동행했다.

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지향하다

홍라희씨가 한번은 이렇게 언급했다고 한다. "저희 때문에 여기 법인 주재원 분들께서 고생을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군요." 유감스럽게도 상황은 홍 여사가 기대했던 것과는 정반대였다.

삼성SDI 독일 법인의 한국 주재원들 대부분이 2층 회의실로 출동한 상태였으며, 프랑크푸르트에 위치한 삼성 구주법인 직원들도 아침부터 밤 11시 너머까지 호텔 회의실에 상황실을 설치하고 그곳에 상주했다.

그런데 이 회장 일가는 호텔 2층에 그들의 여행을 지원할 상황실이 차려져 있으며 그곳에 직원들이 상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지향한다'는 한국 정부의 어느 기관의 모토가 이렇게까지 잘 들어맞는 경우가 또 어디 있을까?

그 당시 나는 이 회장이 "준비하느라고 수고한다"며 격려차 잠깐이라도 상황실에 들르지 않을까 생뚱맞은(?) 상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상상은 역시 상상에 그치고 말았다. 상황실과 회의실에 있었던 사람들 중 가이드와 운전기사, 그리고 이 회장 일가가 이동을 할 때 나서는 지원조를 제외하고 그 당시 이 회장 일가의 얼굴을 직접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정 반대로 이 회장 및 가족들이 호텔로 들어온다는 보고가 무전으로 들어오면 2층 회의실 근방에서 일을 하고 있던 학생 알바를 포함한 모든 주재원들은 이 회장 일가가 숙소로 올라갈 때까지 회의실 속에서 꼼짝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지향하는' 존재였으므로.

베를린에서의 차량 접촉사고

이동 동선과 일정은 역시 그룹의 총수인 이 회장을 중심으로 짜여졌지만, 이 회장의 손자 손녀인 JH군과 JE양 등 가족들을 챙기는 것도 또한 삼성 주재원들의 몫. 동물원이나 놀이공원, 유람선 등에 대한 기본 정보를 정리하는 것이 또 자료조인 내가 할 일이었다.

아무튼 자료조가 수집한 자료에 따라 주재원들과 가이드, 유모들이 JH군과 JE양을 차에 태우고 목적지 별로 이동하던 어느 날, 동물원에서 포츠다머 플라츠로 이동하는 도중에 도로에서 가벼운 추돌 사고가 일어났다.

한 독일 운전자가 몰던 BMW 승용차가, 일행들이 타고 있던 벤츠 승합차가 신호 대기 상태에 있을 때 뒤에서 살짝 받은 모양이었다. 다행히도 차량 내에서 느끼기에는 급브레이크를 살짝 밟은 정도의 충격만 있고 어느 누구도 다친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물론 독일 운전자의 과실인 것은 명백했다. 일단 사고가 난 뒤 서로 운전자들이 내려서 상태를 살피던 중에 사고차량 독일 운전자가 핸드폰을 꺼내서 경찰에 전화를 하는데, 바로 그 핸드폰이 재미있게도 바로 삼성 제품이었다고 한다.

이 독일인은 자기가 애용하고 있는 핸드폰 회사 총수의 손주들, 아니 한 세대 뒤에는 혹시 삼성그룹의 또다른 주인이 될지도 모르는 아이가 타고있던 자동차를 받았다는 사실을 전혀 모를 것이다. 아무튼 우연히 일어난 사고 속에서도 삼성 제품을 확인할 만큼 세계 속의 삼성은 베를린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이다.

'투샨'과 '타쉔'.... 커뮤니케이션의 방식

이 회장 일가 방문 일정이 거의 끝나가는 어느 날, 물품구입 주문이 떨어졌다. 르 꼬르뷔지에(Le Corbusier),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 미즈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 등 20세기 건축사의 슈퍼스타들과 관련한 건축 도서들을 베를린의 건축 및 미술 관련서 전문 취급 서점에 가서 구입하는 것.

누가 이것을 왜 필요로 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비정규직 알바생에게 쓸모 없는 법. 그 물건들을 가서 사온 후에 다시 추가 주문이 떨어졌는데, '투샨'이라는 건축 관련 잡지(?)를 구입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이름과 관련한 건축잡지는 인터넷 검색을 해도, 서점에 문의를 해보아도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더욱 답답한 것은 주문 전달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면 다시 비서팀에 문의를 해서 알아내면 될 것을, 어느 누구도 그렇게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주문을 확실히 확인해달라는 나의 요구에도 상황실의 주재원들은 답답해 하는 눈치였다.

나중에 건축 및 미술 관련 유명작가들의 작품세계를 다룬 책들이 '타쉔(Taschen)'이라는 총서 형식으로 발간된다는 것을 우여곡절 끝에 알게 되었다. 외국어이다보니 주문 전달과정에서 오해가 생기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 문제는 문제해결 과정이 의사소통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 회장에게 조금이라도 누가 되지 않도록 조심조심 하다보니 그런 커뮤니케이션의 부실도 있었다.

이건희 회장, 최고급 호텔의 엘리베이터에 갇히다

이 회장이 다음 기착지인 이태리 밀라노로 떠나기 전날 저녁, 기어코 일이 터졌다. 거의 모든 일정이 끝나가고 있었으므로 우리는 상대적으로 좀 여유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 회장과 그의 가족들 및 수행원들이 아들론 호텔 지상층에 위치한 '차이나클럽'이라는 중국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있을 시간이었다.

회의실 옆 복도에 앉아서 잠시 쉬고 있는데 상황실에 있던 주재원들이 긴장되고 상기된 얼굴로 우르르 몰려가는 것이 보였다. 뭘까? 마지막 날이라고 총수가 그동안 수고했던 주재원들에게 격려인사라도 하려고 하려는 것일까? 물론 앞서 얘기했듯이, 이는 지극히 순진한 착각이었다. 회장 일가에게 우리를 포함한 주재원들은 호텔에 '존재'하고 있지 않았으므로.

알고 보니 식사를 마치고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5층 숙소로 올라가던 이 회장과 그 가족들 및 수행원들이 엘리베이터가 고장나 그 안에 갇혀버린 것이었다. 적지 않은 시간동안 꼼짝 못하고 그 안에 갇혀 있었다고 한다.

상기된 표정으로 우르르 몰려가던 주재원들은 바로 그 사고를 수습하러 가던 길이었다. "회장님 올라가셨습니다"라는 보고가 있고 몇 분이 지났는데도 이 회장 일행이 올라오지 않자 5층 비서실에서 이 회장 일행이 올라오지 않았다며 상황을 다시 체크하라는 불호령이 떨어진 직후였다.

회장 일행은 호텔 직원들까지 달려와 엘리베이터를 다시 작동시킨 뒤에야 숙소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나서 일행 중 어느 누군가가 "좋은 경험 했구만!"이라며 농담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사건은 수행원, 특히 비서실의 입장에서는 매우 위중한 상황이 발생한 것임을 의미한다.

사고가 수습되고 난 뒤 내가 잠시 상황실 자료를 점검하려고 문을 연 순간, 회의실 탁자 한 가운데에 이제까지 못 보던 사람이 앉아 있고, 나머지 긴 탁자를 따라 주재원들이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5층 비서실에서 누군가 내려오면 그날은 엄청 '깨지는' 날이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이 회장이 출발하기 하필이면 바로 하루 전날 그런 일이 터졌던 것이다.

철수 작업.... 이 회장 숙소를 돌아보니

8월 24일 이 회장 일행이 '드디어' 밀라노로 떠나고나자 남은 뒤치닥거리 또한 삼성 직원들의 몫이었다. 짐들을 옮기며, 사진으로만 얼핏 보았던 프레지덴셜 스위트와 다른 가족들이 묵었던 고급 객실들을 둘러보았다.

보통 호텔 객실이라고 하면 방 하나에 침대와 가구들이 놓여있는 것을 연상하지만, 그날 내가 둘러본 객실들은 마치 주택처럼 여러 방으로 구성이 되어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특히나 프레지덴트 스위트는 워낙 넓고 방도 많아서 들어갔다가 나오는 길을 찾느라 잠깐 헤매기도 했다.

나와 다른 한 직원에게 부여된 '철수' 작업은 선물용으로 포장된 삼성 캠코더, 디지털카메라 및 MP3를 박스에 넣고 밀봉해서 목록을 작성하는 일이었다. 일단 이들 물건의 포장 및 목록작성을 마친 후에는 이 회장의 다음 기착지로 보낼 최고급 포도주를 포장하는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포도주 포장을 끝내고 나서야 우리 작업은 일단 끝났다. 모든 뒤치닥거리, 아니 '프로젝트'가 모두 끝난 것이었다.

초일류 기업다운 회장님 모시기는?

이건희 회장의 유럽 일정은 삼성이 공식후원하는 아테네 올림픽에 참석하고, 삼성의 현지공장을 돌아보는 등의 공적 일정이 분명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내가 알바로 상황실에서 주재원들과 동고동락했던 시기인 8월 18일에서 24일까지의 독일 체류속에서 공적 일정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베를린 장벽 관람, 포츠담 상수시 궁전 산책, 국립박물관, 베를린 필하모니 방문이 삼성그룹 회장의 공적일정이 될 수 있겠는가?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이건희 회장의 8월 유럽일정은 앞뒤의 공적 일정 중간에, 적어도 베를린에서 8월 18일부터 24일까지의 일주일 간은 사적 일정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그 사적 일정까지도 약 50여 명의 국내외 삼성 회사법인 직원들이 동원돼 일을 봐주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그 중에 내가 알바로 동참한 상황실 팀은 이 회장의 독일체류 1주일을 위해 무려 2개월간이나 준비를 한 셈이다.

그들중에는 현지 삼성공장의 운영을 담당하는 주재원들도 있었는데 이 회장이 베를린에 체류한 날 중 어떤 날은 그들이 호텔 상황실에서 이메일을 통해 공장 운영 상황을 체크하는 모습을 보았다. 불량율을 줄이고 더욱 좋은 제품을 만들고자 노력해야하는 공장운영 담당자들이 총수 일가의 여행을 보좌하기 위해 그렇게 공장을 떠나 있는 모습이 내게는 안타깝게 느껴졌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이건희 회장은 삼성 독일법인이 자신의 1주일간의 독일여행을 위해 2개월전부터 회사조직을 동원해 준비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어찌보면 삼성 독일법인이 '과잉충성'을 한 셈이다. 만약 이건희 회장이 이 글을 읽게 된다면 자신의 1주일간의 여행을 위해 삼성의 고급인력들이 얼마나 비효율적으로 동원됐는지를 이제 알게 될 것이다. 이건희 회장은 그 '음지에서의 작품'을 만들어낸 이들을 칭찬할까 나무랄까?

'초일류 기업' 삼성의 회장님은 워낙 그 비중이 중요하니 사적 일정에도 공적 조직에 의해 2개월전부터 레스토랑 시식까지 하면서 모셔져야 하는가. 아니면 삼성이 진정한 초일류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그런 회장님 모시기도 이젠 바뀌어져야 하는가?

독자들에게 판단을 맡기고 싶다.

출처: 오마이뉴스 (http://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menu=c10600&no=206467&rel_no=1&index=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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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국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겸 고려대 정치학과 교수의 미국부동산 투기 시리즈 9번째입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뉴욕에서 확인된 것만 4채였고 오늘은 보스톤지역의 5번째 쇼핑 리스트입니다

오늘도 역시 보스턴 인촌타운 입니다

김병국 병표형제의 5번째 보스톤 부동산은 1105 massachusetts ave Cambridge Middlesex county 소재
콘도입니다

이 콘도의 정확한 주소는 
 1105 massachusetts ave Cambridge Middlesex county ma unit 5A 입니다

매입시기는 불명확합니다만 김병국 김병표 소유였다가 1985년 5월 17일 외국인에게 11만6천5백달러에 매도합니다

kimbyungkook INCHON TOWN -
kimbyungpyo 1105 5a sell deed -
그러니까 이른바 보스턴 인촌타운에만 콘도가 4채였습니다 보스턴 전체로는 5채구요

아마도 3층 살다가 5층도 살고 싫증나면 8층도 가고 에라 경치좋은 10층도 가고 이랬나봅니다
돈이 많으면 참 여러모로 좋겠다 싶습니다

한가지 미리 예고합니다
오는 9월 14일 월요일 오전 김병국 전 수석에 대한 정말 중요한 문서를 공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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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국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겸 고려대 정치학과 교수의 미국부동산 투기 시리즈 8번째입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뉴욕에서 확인된 것만 4채였고 오늘은 보스톤지역의 4번째 쇼핑 리스트입니다

오늘도 보스턴 인촌타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보스턴 인촌타운은 1105 massachusetts ave Cambridge Middlesex county 소재 콘도입니다

인촌타운 10층과 8층에만 콘도를 가지고 있는 줄 알았으나 이들 형제를 얕본 것이었습니다

또 있었습니다

주소는 1105 massachusetts ave Cambridge Middlesex county ma unit 3D호 입니다

1105-3d -

이 콘도역시 김병국이 1984 11 7일 김병표에게 매도합니다 
아마 1달러인가 10달러에 넘긴 것 같습니다 [아래 계약서 참조]

그뒤 김병표는 2년뒤인 1986년 11월 26일 외국인에게 매도합니다 
매도 금액은 12만5천달러였습니다  

이로써 인촌타운에 이들 소유의 콘도가 3채였음이 드러났습니다

아니 도대체 이때도 투자용 해외부동산 구입이 가능했던가요
아니면 이들 형제에게만 무슨 특례법이라도 제정했더랬습니까


1105-3d sell -
한가지 미리 예고합니다
오는 9월 14일 월요일 오전 김병국 전 수석에 대한 정말 중요한 문서를 공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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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국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겸 고려대 정치학과 교수의 미국부동산 투기 시리즈 7번째입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뉴욕에서 확인된 것만 4채였고 오늘은 보스톤지역의 7번째 쇼핑 리스트입니다

김병국 전 수석에 대해 여러가지 설명이 있었으므로 이제 간단히 사실관계만 공개된 자료에 의해 정리하겠습니다

시리즈 6에서 언급한 일명 인촌타운 1105 massachusetts ave Cambridge Middlesex county 소재 콘도에 대한
쇼핑이 계속됩니다

이번에 구입한 콘도의주소는  1105 massachusetts ave Cambridge Middlesex county ma unit 8B 입니다
그러니까 여섯번째와 같은 콘도의 8B 호입니다 

역시 6번째 콘도와 마찬가지로 제 불찰로 김병국 선생이 구입한 시기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이부분은 제가 다시 보스턴에 가서 확인하는데로 스캔해서 올리겠습니다 

김병국 전 수석은 1984년 11월 7일 동생 김병표에게 이 콘도를 넘깁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무상증여입니다 
그러고 보면 이 1984년 11월 7일은 아마도 보스턴에 있던 부동산에 대해 중간정리를 했던 날이 아닌가 싶습니다 

1105-8b -
그 이후 김병표는 3년뒤인 1987년 12월 8일 한 외국인에게 13만달러에 이 부동산을 매도합니다 

1105-8b sell -
참으로 궁금한 것은 이 부동산을 매입할때의 자금출처, 또 자금출처는 둘째로 하더라도 돈을 어떻게
가져 나왔나 하는 것입니다

한가지 미리 예고합니다
오는 9월 14일 월요일 오전 김병국 전 수석에 대한 정말 중요한 문서를 공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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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국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겸 고려대 정치학과 교수의 미국부동산 투기 시리즈 6번째입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뉴욕에서 확인된 것만 4채였고 오늘은 보스톤지역의 2번째 쇼핑 리스트입니다

얼마전 동아일보 사주일가가 한 상장회사의 사전 정보를 이용해 주식투자를 함으로써 엄청난 이득을 취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만 사촌관계인 김병국 병표 형제의 부동산 사모으기도 일반인이 꿈도 꾸기 힘들 정도입니다

아무래도 인촌 김성수 일가는 물불 안가리고 재산을 모으도록 하는 뜨거운 피가 흐르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김병국 병표형제의 두번째 보스톤 부동산은 1105 massachusetts ave Cambridge Middlesex county 소재
콘도입니다

이 콘도는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앞으로 소개되겠지만 이 콘도는 인촌 타운이라 이름 붙여도 될 것 같습니다

이 콘도의 정확한 주소는  1105 massachusetts ave Cambridge Middlesex county ma unit 10E 입니다

매입시기는 불명확합니다만 1984년 11월 7일 김병국은 동생 병표에게 이 부동산을 명의이전합니다 
늘 그랬듯이 친족간의 무상증여입니다 

kimbyungkook INCHON TOWN -
그로 부터 약 1년여가 지난 1986년 2월 25일 김병표는 한 외국인 부부에게 이 부동산을 매도합니다
매도가격은 12만5천달러였습니다 

kimbyungkook INCHON TOWN -

한가지 미리 예고합니다
오는 9월 14일 월요일 오전 김병국 전 수석에 대한 정말 중요한 문서를 공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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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이슈 언론보도2009.09.05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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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파일 폭로 이후 4년은 대한민국 성역을 확인한 과정” [2009.09.02. 제776호]
조혜정 류우종
[기획] <한겨레21>-진보신당 주최 노회찬·김용철·최상재 좌담회…
“잘못을 지적한 이들만 처벌받는 게 현실이지만 언젠가 바뀔 날 올 것”
2005년 7월22일 문화방송 <뉴스데스크>는 “지난 97년 대선 당시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은 삼성 이건희 회장의 지시로 대선자금을 나눠주는 심부름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치권에 전달하려 한 비자금은 100억원이 넘는다. 삼성과 홍석현 전 사장이 최고위급 검찰 간부들에게 명절 때마다 1천만원~500만원의 ‘떡값’을 뿌리면서 검찰 인맥을 관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고 보도했다.

이를 취재한 이상호 기자는 이런 내용이 담긴 안기부의 불법 도청 테이프와 녹취록을 스튜디오에 들고 나와 “이 테이프에 삼성의 전방위적 로비 실태가 담겨 있으나 삼성그룹 이학수 비서실장과 홍석현 사장이 방송금지가처분 신청을 내 원음은 공개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그해 초부터 소문이 나돌던 ‘삼성 X파일’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 삼성 X파일의 ‘떡값 검사’ 명단을 공개한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삼성 비자금 조성 의혹을 제기한 김용철 변호사, 최상재 언론노조위원장이 8월18일 국회에서 X파일 폭로 이후 4년을 돌아보는 좌담회에 참석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한 달 뒤인 8월18일 노회찬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은 보도자료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해 ‘떡값’을 받은 김상희 당시 법무부 차관 등 전·현직 검사 7명의 실명과 X파일 일부를 공개했다. “석조(홍석현 회장 동생·당시 광주고검장)한테 한 2천 정도 줘서 아주 주니어들(신참 검사), 회장께서 전에 지시한 거니까, 작년에 3천 했는데 올해는 2천만 하죠. 우리 이름 모르는 애들 좀 주라고 하고…” 등의 대화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삼성과 족벌언론, 정치권, 검찰 사이의 추악한 거래를 고발한 대가는 가혹했다. 이상호 기자는 보도가 나간 뒤 취재를 하지 않는 부서나 지방으로 전전하는 등 ‘보복성 인사’를 겪고 몇 차례 감봉까지 당했다.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2006년 11월 항소심에서 유죄판결(징역 6월, 자격정지 1년에 선고유예)을 받았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명예훼손·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지난 2월 징역 6월, 자격정지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항소심이 진행 중이지만, 재판 결과에 따라선 내년 서울시장 선거에 나서지 못할지도 모른다.

반면 ‘거래 당사자’는 건재하다. 2005년 12월 검찰은 삼성의 불법 정치자금 제공 의혹 전체를 무혐의 처리했다. ‘떡값 검사’들 역시 무혐의로 결론이 났다. 그밖에 X파일에 들어 있던 내용에 대해선 X파일 자체가 ‘위법한 자료’라는 이유로 아예 수사하지도 않았다. 2007년 10월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 출신인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 비자금 조성’ 양심선언을 하면서 특별검사팀까지 설치됐지만, 삼성은 또 실질적 처벌을 피해갔다.

옛 안기부 비밀도청팀 ‘미림팀’이 불법 도청을 한 것으로 드러났지만, 이에 대한 전반적인 수사도 이뤄지지 않았다. 도청 테이프를 불법 반출한 전 안기부 직원 공운영씨와 이를 미끼로 삼성에 돈을 요구한 박인회씨 등이 처벌받는 데 그쳤다.

<한겨레21>은 X파일 폭로 4주년을 맞아 이 사건이 우리 사회에 던진, 그러나 해결되지 않은 과제를 돌아보는 좌담회를 진보신당과 공동으로 마련했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와 김용철 변호사, 그리고 미국 연수 중인 이상호 기자를 대신해 최상재 언론노조위원장이 참석했다. 사회는 홍세화 ‘마포 민중의 집’ 공동대표가 맡았다. 좌담회는 8월18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진행됐다.




»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홍세화(이하 홍): 삼성 X파일 사건 공개 이후 4년을 되돌아보면, X파일에 담긴 추악한 내용을 밝힌 분들만 재판받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졌다. 어떻게들 지내셨나.

노회찬(이하 노): 피고인 노회찬이다. (웃음) 아침에 여의도로 출근하면서 4년 전 아침 법사위로 향하기 전에 엄청난 사태를 눈앞에 두고 잠깐 마음을 정리했던 순간이 생각났다. 스스로에게 후회하지 않겠는가 물었다. 4년이 지났고 많은 일을 겪었지만 감사한 마음이 든다. 재판에선 내게 집행유예 2년이라는 중형이 선고됐다. 항소심 재판이 진행 중인데, 녹취록의 주요 당사자인 이학수씨가 출석해 부실한 증언을 했다.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은 2번 출석을 거부해 구인장이 발부됐다. 정치적 배경으로 자신을 증인으로 채택했고, 특별한 진술을 할 것이 없다는 것이 불출석 사유였다. 어쨌든 내가 피고인이기는 하나, 법과 양심에 따라 (판사가) 무죄를 선고할 것이라 확신한다. (웃음)

지난 4년은 대한민국에 성역이 있음을 확인한 과정이었고, 우리 사회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기간이었다. 민주사회냐 아니냐의 기준은 법이 적용되지 않는 성역이 존재하느냐 아니냐다. 재벌·검찰 등 권력기구와 정치권에 크고 작은 성역이 엄연히 존재하고, 그 성역은 공권력으로 보존되고 있다. 그러나 성역을 없애려는 노력이 있었다. 일부 언론은 2005년 8월18일 내가 녹취록을 공개하기 전에 사태의 윤곽을 보여주는 보도를 했다. 또 김용철 변호사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용기 있는 행동을 보여줬다.

김용철(이하 김): 빵집에서 일하는데 어찌 보면 한량, 백수, 폐인 같은 생활이다. 개인적으로는 못된 짓을 많이 하게 됐다. 아들 둘을 취직도 못하게 만들어버렸다. 아빠가 누구란 걸 밝히고는 한국에서 기업에 못 들어가더라. 큰애가 의사인데, 그 학교 이사가 이학수더라. 눈치가 보여 학교에 못 남는다고 하더라. 주변 사람들도 직장에서 잘리고, 불편한 일이 많이 생긴다. 나는 변호사로서 일을 못하고 있다. 내가 변호하면 무죄도 유죄가 될 것 같고, 도울 수가 없었다. 무료 변론을 좀 해봤는데, 왜 그리 이혼 이야기가 많나. (웃음) (검사 때) 국회의원·재벌 수사를 하면서 폼나게 호의호식하며 살다가 50대가 돼 온 나라를 시끄럽게 만들기도 했는데, 이제는 벌도 받고 고생도 해야 하는 것 같다.

» 최상재 언론노조위원장
X파일 사건은 내가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다 했다. 직접 도청을 담당한 사람이나 갈취범들(도청 테이프를 미끼로 삼성에 돈을 요구한 공운영·박인회씨) 말고는 아마 내가 가장 먼저 X파일을 봤을 거다. 내용이 허위냐 사실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홍석현·이학수씨가) 누군가 감청할 것을 예상하고 거짓말을 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고급 호텔의 비싼 식당에서 이학수·김인주·홍석현 이런 분들이 모여 내 옛 직장(검찰) 선배들에게 얼마씩 나눠줄 것인가 참 신중하게 논의하더라. 500만원이라고 했으니 역시 기업 하는 사람은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내려는 것 같다. 거기엔 정치인 얘기도 나온다.

(양심선언 이후)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고발을 여러 건 당했는데, 검찰이 수사를 기피하는 것 같다. 검찰도 내 말이 허위라고 입증할 자신이 없는 것 같다. 이상한 것은 여러 명이 같은 날 고소하고 같은 날 한꺼번에 취하하는데, 누가 배경일까? 합리성이 통하지 않는 세상이다.

홍: 루쉰은 ‘미친 개한텐 몽둥이가 약’이라고 했는데, 지금 상황은 미친 개가 몽둥이를 들고 있는 것 같다. 국가권력과 자본을 견제할 언론도 완벽히 한통속이 돼가는 상황에 진입하고 있는 게 아닌가. 방송의 재벌화, 조·중·동화가 언론악법의 지향점 아닌가.

최상재(이하 최): 언론악법은 한나라당이 날치기를 시도했다가 무산됐다(언론노조는 재투표·대리투표 등 불법성이 분명히 드러난 만큼 언론악법 표결은 무효라는 입장이다- 편집자). 여론조사 결과를 봐도 반대가 많다. 국민은 이미 판결을 내렸다. 신문의 방송 진출이 민생과 직결되는 사안이 아니기에 어려움은 있었지만, ×파일 사건 등을 통해 국민이 (언론의 자본 종속이 빚는 폐해를) 인식하고 있었기에 ‘재벌방송’ ‘조·중·동 방송’이란 구호가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우리도 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언론 역시 3부 못지않은 권력을 누렸고, 삼성 앞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여왔다. 삼성그룹의 언론 광고 제공 비율이 전체의 10%를 넘는다. 기자와 PD들도 기업에 불리한 보도를 할 경우 해당 기업이 ‘청탁’을 해오면 당연히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삼성한테는 좀 다른 것 같다. 특종을 하고서도 곤혹스러운, 누군가 대신 터트려주길 바라는 대상이 삼성이다. 방송사 재원의 90%가 광고이고, 그 가운데 삼성이 3분의 1 정도를 갖고 있기 때문에 또 다른 압박을 느끼는 거다. 삼성이 모든 걸 갖고도 단 하나 못 가진 게 방송인데, 이것까지 주겠다는 게 언론악법이다. 막아야 한다.

» 김용철 변호사
김: 어쩌면 삼성이 방송을 갖느냐 안 갖느냐는 문제가 아니다. 이미 삼성이라는 영속불변의 권력 체계는 확고하다. 언론도 생존 문제 때문에 순치돼 있다. 삼성 광고비는 광고비가 아니다. 광고 단가에 비례해서 나가지 않는다. 법률적으로는 배임이다. 진보 언론도 (삼성 광고비 비중이) 20% 정도 된다고 들었다. 삼성화재가 고객 계좌를 차명 계좌로 활용했지만 언론은 지적하지 않았다. X파일 검찰 수사가 끝난 뒤론 진보 언론에서도 이 사건을 다루는 걸 거북해한다.

홍: 삼성의 무소불위 권력을 어떻게 견제할 수 있을까. 우선 김 변호사는 ‘떡검’이라는 말을 듣기가 거북하지 않나.

김: ‘떡검’이란 말을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는데, 누가 떡을 그렇게 많이 사먹나. ‘떡값’이란 말은 죄의식을 약화한다. 정기적인 뇌물이다. 기백만원은 엄청나게 큰 돈인데, 국가에서 급여를 받으면서 따로 받는 돈이 어떻게 ‘떡값’인가. 뇌물 받는 검사는 대한민국 검사 가운데 50여 명 정도 될 것 같은데, 이런 관행을 주류 사회로 편입됐다는 증거로 인식하는 것이 문제다. X파일의 나머지를 다 공개해야 한다. 국가기관이 부정한 돈을 얼마나 받았는지 밝혀야 한다. 재벌이 주는 정치자금은 주주의 돈이고 국민의 돈이다. 그 돈으로 권력 체계를 유지하는 거다. 검찰도 삼성을 수사하겠다고 나서면 좌천된다. X파일 사건은, 삼성은 무슨 짓을 해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거다. 이번 삼성SDS (주식 헐값 발행 사건) 판결도 그렇다. 저런 대형 범죄를 처벌하지 않고 어떻게 사법 권위를 세우나.

노: X파일 테이프를 들어보면, 홍석현 회장이 ‘홍길동에게 2천만원’ 이러면 이학수 부회장이 ‘홍길동 2천만원’이라고 복창한다. 그렇게 말하며 메모하는 광경이 떠오른다. 유수 기업의 부회장이라는 사람이 그런 걸 받아적는 광경을 생각하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창피하다. 이런 걸 근절하고 삼성을 견제할 수 있는 곳은 바로 삼성이 뇌물을 준 곳이다. 언론·검찰·법원이 살아 있어야 한다. 이곳을 바꾸면 삼성을 바꿀 힘을 만들 수 있다. 이 사건을 반면교사로 삼아 왜 언론사의 소유와 편집이 분리돼야 하는지 국민이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온통 불법적 모의가 담겨 있을 X파일의 나머지 부분도 모두 공개돼야 한다. 국민적 관심만 있다면 얼마든지 파헤칠 수 있다. 다소 잊혀졌지만 끝난 사건이 아니다.

최: 노무현 대통령도 당시 사건의 본질은 뇌물이 아니라 도청이라고 했다. ‘차떼기당’뿐만 아니라 입법부 전체가 삼성에 종속됐던 것 같다. 언론은 이미 광고로 충분히 장악당해 뇌물을 줄 필요조차 없다. 어떻게 견제할 것인가? 각각의 현장에서 지금 현실을 우려하는 이들이 제 할 일을 하는 것밖에 없다. 특히 젊은 층을 많이 우려하는데, 요즘 10대는 다른 것 같다. 이들의 표현력과 사고는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촛불을 들었던 지금의 10대 후반은 다음 대선에서 투표를 한다. 의도적으로라도 힘을 내자.

» 홍세화 ‘마포 민중의 집’ 공동대표
홍: X파일 폭로 이후 사회가 긍정적으로 변화한 부분은 없나.

노: 양심에 입각해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수사받고 기소돼 재판까지 받는 상황이고, 문제가 있는 사람은 아무런 피해를 받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그간 잘못된 관행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확인할 길은 없지만, 이런 사태를 겪고 나서 뇌물을 떳떳이 주고받는 관행은 조금씩 완화되고 있는 게 아닌가 기대한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패배감을 조장하는 쪽은 문제를 일으키는 쪽이다. (X파일 폭로처럼) 끊임없이 용기 있게 바꾸려는 노력이 쌓일 때 사회도 변할 것이다.

최: 딸이 “전과 14범이 대통령 돼도 되냐. 난 안 되는 줄 알았다”고 하더라. 내가 그런 부분에 둔감했구나 싶어 정신이 번쩍 들었다. (X파일 사건을 계기로) 뇌물을 받고 타락하는 것이 죄처럼 느껴지지 않는 세상에 살면서, 사회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언젠가는 삼성도 기울 때가 있을 거다.

홍: 쉽게 말해 뻔뻔한 사회, 부끄러움도 느끼지 않는 사회라는 사실을 보여준 지난 4년이었다. ‘편안하게 살려면 불의를 외면하고, 인간답게 살려면 그에 도전하라’는 말이 있다. 정의·진실은 그 자체로는 힘이 없다. ‘권력’ ‘금력’이란 말은 써도 ‘정의력’ ‘진실력’이란 말은 안 쓰지 않나. 이런 것들이 어떻게 힘을 얻도록 할 것인지가 앞으로 과제인 것 같다.

‘삼성 X파일’ 첫 보도한 이상호 기자 인터뷰

“대법 판결 뒤 ‘취재백서’ 통해 전모 밝힐 것”

» 이상호 기자. 사진 <한겨레21> 김정효 기자
‘삼성 X파일’을 처음 보도한 이상호 문화방송 기자는 지난 4년을 어떻게 돌아보고 있을까? 한국기자협회 지원을 받아 지난 7월부터 미국 조지아대 부설 국제문제연구소에서 박사후 과정을 밟고 있는 그와 전자우편 인터뷰를 했다. 이 기자는 “그동안 (한국 사회는) 변하지 않았다. (삼성SDS 주식 헐값 발행과 관련해) 법원이 스타일을 구겨가며 쓰다 만 판결을 공표한 건 오늘날 대한민국이 반쪽만 기능하는 미완의 공화국, 재벌이 지배하는 ‘금화국’(金和國)이라는 현실을 보여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X파일 보도로 사내에서 부당한 인사를 당하는 등 마음고생을 했다고 들었다.

=내가 자초했고 예상했기 때문에 가혹했지만 견딜 만했다. 사람이 미치지 않으려면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 공부했다. 한동안 일거리를 주지 않아 힘들었는데, 나중엔 침뜸 공부하랴, 밀린 박사 논문 쓰랴 오히려 바빴다. 우스갯소리로 내가 진짜 ‘삼성 장학생’ 아니냐고 한다.

-보도를 전후해 삼성 등에서 협박이나 감시를 당한 적이 있나.

=삼성의 파상적인 보도 방해 공작과 로비가 있었다. 보도가 벽에 부딪혀 단식을 생각할 때였다. 회사 고위층에게 불려갔더니 내가 삼성생명에서 주택구입 자금으로 1억원을 대출받은 서류가 올려져 있더라. 그룹 차원에서 보도를 막으려고 개인정보가 든 서류를 통째로 외부에 빼돌린 것이다. 고위층은 내가 돈을 주고 X파일(제보자)을 매수한 게 아니냐고 의심했다. 삼성이 나를 ‘저질 브로커’로 몰아가는구나 싶어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삼성이 이렇게 무서운 집단이구나,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반드시 진실을 알려야겠다고 다짐했다. 더 자세한 내용은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온 뒤 ‘X파일 취재백서’를 통해 밝힐 예정이다.

-보도 결과 삼성과 법조·언론·정치계는 진일보했다고 보나.

=그 보도로 삼성 재벌의 부도덕한 심장에 작은 구멍이 뚫렸고, 김용철 변호사 양심선언의 마중물이 되었다고 자평한다. 시간 맞춰 알람은 울렸지만, 단 한 차례 새벽을 흔들고는 이내 꺼졌다. 모두가 깨지 않기를 바라는 손이 알람을 눌러버린 것이다. 자본권력의 점령군이 한강 다리를 넘었다. 탱크를 뒤따르는 지프차 위에 홍석현 회장과 고흥길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등이 무더기로 보인다. 이들의 가슴마다 언론과 국회를 성공적으로 장악한 공로로 받은 훈장이 가득하다. 흩어졌던 떡값 검사들도 다시 모여 지지 가두행진을 벌인다. 보도 4년 동안 자본의 지배 질서는 더욱 제도적으로 공고해졌다.

-언론악법 날치기로 거대 자본과 족벌신문이 지배하는 방송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대안은 두 가지다. 기성 언론의 공익성 확보 투쟁도 필요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공익적 탐사 보도를 위한 비정부기구(NGO) 설립, 이들을 지원할 공익 재단이 출현해야 한다. 이와 함께 시장 적응력을 갖추고 독자적 매체력을 확보한 ‘뉴미디어 레지스탕스 저널리스트’의 활동도 강화돼야 한다.

글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CURRENT ISSUE2009.09.04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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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지도자 김성수 선생의 손자 김병국 전 청와대 수석은 지난해 6월말 청와대에서 짤린뒤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I WILL BE BACK' 나는 돌아올 것이다
내 생각에는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 만일 돌아간다면 그것은 참 불행한 일이다

앞서 4차례에 걸쳐 부동산 신동 김병국 전 청와대 수석과 동생 김병표가 뉴욕에서 콘도 4채를 구입해 10년에서
15년이상 보유한뒤 차례로 매각한 사례를 짚어봤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부동산 신동이 뉴욕에서만 했을라고'하는 생각이 들었다
짚이는 것도 있고 해서 보스턴으로 갔다
아니나 다를까 김 전수석이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오늘 다섯번째 이제 뉴욕은 잠시 접고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으로 가보자

김병국 병표형제가 필립스 앤도버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수학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
이들 형제는 뉴욕 부동산 매입에 앞서 보스턴에서도 부동산 쇼핑에 열을 올렸던 것으로 조사됐다

여러채라서 시기를 무시하고 일단 걸리는 데로 하루 한채씩 정리하겠다

이들이 구입한 부동산은   1600 massachusetts ave Cambridge 의 304호
구입시기는 내 불찰로 아직 확인하지 못했으나 다시 보스턴에 가서 조사한뒤 자세하게 알리겠다

1600-304 1usd 19841107 -
하여튼 이들 형제의 부동산은 우여곡절끝에 김병표 소유로 돼 있다가 1984년 11월 7일 김병표가
형 김병국 수석에게 단돈 1달러에 소유권을 넘겨준다

참 눈물겨운 형제애 인것 같지만 내가 보기엔 무상증여다

1600-304 SELL DEED 19860521 -
그뒤 약 1년 6개월뒤인 1986년 김병국 수석은 이 콘도를 외국인에게 15만5천달러에 매도한다
계약서를 살펴보면 주자창도 함께 양도하는 것으로 돼 있다

1986년에 15만5천달러면 적지 않은 돈이다
지방도시 아파트 한채 갚이 2-3천만원에 불과하던 시절이다

보스턴에 가서 보니 여기도 옛날부터 좀 있다 하는 사람들은 부동산을 적지 않게 구입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쇠고기도 못사고 돼지고기도 한근도 아닌 반근 3백그램, 반근도 아닌 백50그램씩 사먹던 시절에 말이다

내일은 쉬고 9월 7일 월요일에 시리즈 6번째, 보스턴 2번째 쇼핑부터 다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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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초대 외교안보수석을 지낸 김병국 전 청와대 수석비서관
지난해 2 25일부터 6 20일까지 약 4개월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외교안보수석을 지냈지만 쇠고기파동등 민감한 문제가 터졌을뿐더러 이명박정부의 성격을 보여주는 인사로 주목을 끌었었습니다

김병국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민족지도자로 잘 알려진 인촌 김성수 선생의 손자
.
김성수는 상만, 상기 두 아들을 두었는데 김병국은 김상기의 장남입니다


김상기는 전 동아일보 회장을 역임했으나 현재 이들 집안은 동아일보 경영에서는 완전히 밀려난 상태입니다


현재 고려대학교 정치학과 교수인 김병국 전 수석은 지난해 4 24일 고위공직자 재산 공개때
백일 축하금으로 받은 돈으로 11살때 자신의 부친인 김상기와 함께 땅을 구입해 언론으로 부터 부동산 신동이라는 찬사[?]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자신의 부친등의 부동산을 누락신고해 민주당과 참여연대로 부터 고발을 당하기도 하는등

어떻게 구입하고 모았는 지는 모르겠으나 적지 않은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이명박은 재산공개뒤 '잘라라'라는 압력이 쏟아졌지만 동아일보등을 의식해 깔고 앉아 있다가

1
기 수석들을 교체하면서 김수석도 날렸습니다 아마 투메가는 '앓던 이 빠진 기분' 아니었을까요


김병국의 한국내 부동산 소유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문제가 많습니다만 일단 그문제는 잠시 접어두고 미국의 부동산 소유관계를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
김병국 고려대 교수의 지난해 재산공개관련 내용은 이 블로그의 언론기사모음을 참조하세요
]

알고 보니 김병국은 한국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적지 않은 부동산 투기[?]를 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미 알다시피 김병국은 주식회사 주원 사장인 동생 김병표와 함께 일찌감치 미국유학을 떠나

명문 사립학교인 필립스 앤도버를 마친뒤 하버드대학을 졸업했습니다
 

75
년부터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그것도 명문사립학교에 유학했다는 말인데
 
당시 국비유학생 시험을 통과해 유학길에 오른 것인지

그때도 조기유학이 허용됐는지 모르겠네요
 

아뭏든 김병국 전 수석은 미국에서도 공부도 열심히 했는지 모르겠으나

동생과 함께 부동산 투자는 열심히 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몇차례가 될지는 모르지만 하루에 한채씩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조금 많다보니 저도 헷갈리고 여간 머리가 아픈게 아닙니다 
그렇지만 해보는데 까지 해보겠습니다 

김병국 교수와 병표 형제는 맨해튼에서 내리 3채의 콘도를 매입한뒤
1987년 또 다시 1채를 더 매입하게 됩니다

자 이제 모두 4채가 되는 셈입니다 백번 양보해서 2명이 각각 1채씩
가지다면 몰라도 4채라,

저는 아주 조심스럽게 접근하지만 사실 이 4채 모두 불법자금유출에
해당될 가능성이 있고 만약 공소시효가 끝났다고 하더라도 민족지도자의
아들로서, 또 전직 청와대 수석으로서. 대학교수로서 도의적 책임을
회피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자 4번째는 첫번째 집 바로 옆에다 다시 사게 됩니다

1987년 5월 22일 병국수석과 병표동생 공동명의로 맨해튼 95가
프린스턴하우스 라는 콘도를 매입합니다

주소는
215 WEST 95 ST  UNIT 6K [PRINCETON HOUSE CONDOMINIUM]
매입가격은 21만달러 였습니다

참 돈이 많이 나오지요. 이들에게는 아주 푼돈, 껌값에 불과했겠지만

[증거 1, 1987년 매입계약서]

1243-1141 KIMBYUNGKOOK SELL DEED 2000 -
매도는 2000년 9월 27일 이뤄지고 매도가격은 32만달러였습니다
이 역시 9년전이라 충분히 세금을 추징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국세청에서 자세히 알아보시고 응분의 조치를 취해주십시요

[증거 2, 2000년 매도계약서]

1243-1141 KIMBYUNGKOOK SELL DEED 2000 -
이번에도 병국 병표 형제 매도때 한국에 있었던 지라 변호사에게 권리를 위임합니다
이 변호사는 결국 2번째 부동산부터 모두 3채를 거래할때 함께 한 셈입니다

이번에는 주소가 용산구 한남동 64-9번지 였습니다
[증거 3, 김병국 위임장]

1243-1141 KIMBYUNGKOOK SELL WIWIM 2000 - [증거 4, 김병표 위임장]

1243-1141 KIMBYUNGPYO SELL WIWIM 2000 -



이상으로 김병국 전 청와대 수석 : 미국서도 부동산 투기 [시리즈 4] : 공부하러 갔나? 콘도사러 갔나
?
4회를 마칩니다


여기서 끝날까요 글쎄올시다 그럴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고
저는 아니다에 한푭니다


모든 자료는 뉴욕시 등기소에서 합법적으로 입수됐으며 열람 복사 공개가 가능한 자료입니다

증거자료 다운로드는 화면창 아래의 파일명을 클릭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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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초대 외교안보수석을 지낸 김병국 전 청와대 수석비서관
지난해 2 25일부터 6 20일까지 약 4개월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외교안보수석을 지냈지만 쇠고기파동등 민감한 문제가 터졌을뿐더러 이명박정부의 성격을 보여주는 인사로 주목을 끌었었습니다

김병국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민족지도자로 잘 알려진 인촌 김성수 선생의 손자
.
김성수는 상만, 상기 두 아들을 두었는데 김병국은 김상기의 장남입니다


김상기는 전 동아일보 회장을 역임했으나 현재 이들 집안은 동아일보 경영에서는 완전히 밀려난 상태입니다


현재 고려대학교 정치학과 교수인 김병국 전 수석은 지난해 4 24일 고위공직자 재산 공개때
백일 축하금으로 받은 돈으로 11살때 자신의 부친인 김상기와 함께 땅을 구입해 언론으로 부터 부동산 신동이라는 찬사[?]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자신의 부친등의 부동산을 누락신고해 민주당과 참여연대로 부터 고발을 당하기도 하는등

어떻게 구입하고 모았는 지는 모르겠으나 적지 않은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이명박은 재산공개뒤 '잘라라'라는 압력이 쏟아졌지만 동아일보등을 의식해 깔고 앉아 있다가

1
기 수석들을 교체하면서 김수석도 날렸습니다 아마 투메가는 '앓던 이 빠진 기분' 아니었을까요

김병국의 한국내 부동산 소유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문제가 많습니다만 일단 그문제는 잠시 접어두고 미국의 부동산 소유관계를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
김병국 고려대 교수의 지난해 재산공개관련 내용은 이 블로그의 언론기사모음을 참조하세요
]

알고 보니 김병국은 한국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적지 않은 부동산 투기[?]를 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미 알다시피 김병국은 주식회사 주원 사장인 동생 김병표와 함께 일찌감치 미국유학을 떠나
명문 사립학교인 필립스 앤도버를 마친뒤 하버드대학을 졸업했습니다 

75
년부터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그것도 명문사립학교에 유학했다는 말인데
 
당시 국비유학생 시험을 통과해 유학길에 오른 것인지

그때도 조기유학이 허용됐는지 모르겠네요
 

아뭏든 김병국 전 수석은 미국에서도 공부도 열심히 했는지 모르겠으나

동생과 함께 부동산 투자는 열심히 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요즘은 투자용이나 주거용이나 해외부동산투자가 무제한 허용됐습니다만
당시에는 외국나가기도 힘든 판에 부동산 투자는 불법 아니던가요?

자 세번째 부동산 구입입니다

우리 병국 병표형제는 83년과 85년 각각 맨해튼에 콘도를 구입한뒤
1년뒤 또다시 부동산 쇼핑에 나섭니다

처음 96가에서 79가로 내려온 형제는 이번에는 조금 더 내려와서
센트럴 파크옆 61가 그 유명한 사보이콘도를 매입합니다

이 사보이 콘도는 한국의 재벌들이 선호했던 콘도지요

세번째 콘도를 사들인 날은 1986년 7월 8일 역시 사이좋게 병국 병표 두형제의 이름으로 매입합니다

콘도주소는 200 WEST 61 ST  UNIT 20D [SAVOY CONDOMINIUM]로 매입가격은
이제까지 20만달러대를 구입하던데서 업그레이드해서 30만달러대로 오릅니다

매입단가 33만4천5백달러 [증거 1. 61가 콘도 매입계약서]

1415-1095 KIMBYUNGKOOK BUY DEED 1986 -
자 이 콘도는 언제까지 가지고 있느냐 이 콘도도 15년정도 묵혀 두었다가
2001년 8월 31일 매도합니다

매도단가 58만5천달러, 무려 25만달러, 약 1.8배 정도 올랐습니다
짭짤했지요

여기서 한가지 짚어볼것은 83년 이후의 콘도 구입자금이 어떻게 유출됐는지,
한국은행 신고등을 거치지 않았다면, 또 부동산 구입자체가 불법이었다면,
국세청이 즉각 나서서 세금을 추징하고 검찰에 고발해야 하지 않을까요

공소시효등을 들먹인 다면 한참을 양보하더라도 2001년 그러니까 약 8년전
양도한 셈인데 이것은 충분히 추징이 가능한 것은 물론 양도차액에 대한 소득세
징수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되겠지요 

매도계약서를 찬찬히 살펴보면 이들 형제는 매도자 주소를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61-1 두경빌딩 5층 인프라 코리아로 기재했습니다

[증거2, 61가 매도계약서 2001년]

1415-1095 KIMBYUNGKOOK SELL DEED 2001 -
서류를 살펴보니 매입 당시 우리 병국수석은 보스톤에 있어서 병표 동생에게
권리를 위임하는 위임장을 작성, 뉴욕시에 제출했네요

[증거 3, 김병국 매입시 위임장]

1415-1095 KIMBYUNGKOOK BYUNGPYO BUY WIWIM 1986 -
2001년 매도당시에는 병국 수석과 병표 동생 두사람 모두 서울에 있어서 다시 변호사에게
위임장을 작성합니다
이당시 자신들의 주소를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61-1 두경빌딩 5층 인프라 코리아로 기재했습니다
위임장서류 마지막장에는 주한미국대사관에서 공증을 받은 것으로 돼 있습니다
아마 이당시 김병국 수석은 고려대에서 교편을 잡고 있을때였는데 참 무척이나 바빴지 않나
생각됩니다

강의하랴 정치권 쳐다보랴 국내서 부동산 관리하랴, 게다가 미국 부동산까지 --- 아이고

[증거 4, 김병국 매도시 위임장]

1415-1095 KIMBYUNGKOOK SELL WIWIM 2001 - [증거 5, 김병표 매도시 위임장]

1415-1095 KIMBYUNGPYO SELL WIWIM 2001 -

 

이상으로 김병국 전 청와대 수석 : 미국서도 부동산 투기 [시리즈 3] : 공부하러 갔나? 콘도사러 갔나?
3회를 마칩니다

앞으로도 계속 됩니다 과연 몇채나 될까요 '투기'라고 했으니 제법 되겠지요


모든 자료는 뉴욕시 등기소에서 합법적으로 입수됐으며 열람 복사 공개가 가능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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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초대 외교안보수석을 지낸 김병국 전 청와대 수석비서관

지난해 2 25일부터 6 20일까지 약 4개월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외교안보수석을 지냈지만
쇠고기파동등 민감한 문제가 터졌을뿐더러 이명박정부의 성격을 보여주는 인사로 주목을 끌었었습니다

김병국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민족지도자로 잘 알려진 인촌 김성수 선생의 손자
.
김성수는 상만, 상기 두 아들을 두었는데 김병국은 김상기의 장남입니다


김상기는 전 동아일보 회장을 역임했으나 현재 이들 집안은 동아일보 경영에서는 완전히 밀려난 상태입니다

현재 고려대학교 정치학과 교수인 김병국 전 수석은 지난해 4 24일 고위공직자 재산 공개때

백일 축하금으로 받은 돈으로 11살때 자신의 부친인 김상기와 함께 땅을 구입해 언론으로 부터
부동산 신동이라는 찬사[?]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자신의 부친등의 부동산을 누락신고해 민주당과 참여연대로 부터 고발을 당하기도 하는등

어떻게 구입하고 모았는 지는 모르겠으나 적지 않은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이명박은 재산공개뒤 '잘라라'라는 압력이 쏟아졌지만 동아일보등을 의식해 깔고 앉아 있다가

1
기 수석들을 교체하면서 김수석도 날렸습니다 아마 투메가는 '앓던 이 빠진 기분' 아니었을까요

김병국의 한국내 부동산 소유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문제가 많습니다만 일단 그문제는 잠시 접어두고
미국의 부동산 소유관계를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
김병국 고려대 교수의 지난해 재산공개관련 내용은 이 블로그의 언론기사모음을 참조하세요
]


알고 보니 김병국은 한국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적지 않은 부동산 투기[?]를 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미 알다시피 김병국은 주식회사 주원 사장인 동생 김병표와 함께 일찌감치 미국유학을 떠나

명문 사립학교인 필립스 앤도버를 마친뒤 하버드대학을 졸업했습니다
 

75
년부터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그것도 명문사립학교에 유학했다는 말인데
 
당시 국비유학생 시험을 통과해 유학길에 오른 것인지

그때도 조기유학이 허용됐는지 모르겠네요
 

아뭏든 김병국 전 수석은 미국에서도 공부도 열심히 했는지 모르겠으나

동생과 함께 부동산 투자는 열심히 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두번째 뉴욕 콘도 구입입니다
조금 많다보니 저도 헷갈리고 여간 머리가 아픈게 아닙니다
 
그렇지만 해보는데 까지 해보겠습니다
 

요즘은 투자용이나 주거용이나 해외부동산투자가 무제한 허용됐습니다만

당시 과연 한국 법을 어기지는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오늘은 부동산 신동 김병국 전 수석이 두번째로 구입한 집을 알아보겠습니다
김수석의 주택구입 특징은 꼭 동생 병표와 공동명의로 구입을 한다는 것입니다

들어보니 주식회사 주원의 지분도 50대 50으로 나눠가졌다는데 형제간에 우애가 대단하네요

김병국 김병표는 첫 주택을 구입한지 약 1년 6개월만에 첫집에서 약 10분 떨어진 거래에
또 다시 콘도 1채를 더 매입합니다

이들은 1985년 6월 3일 21만9천5백달러를 지불하고 맨해튼 101 WEST 79 ST 콘도의 4B호를 사들이는 것입니다
[증거1, 화면창 1번 매입계약서]

1210-1020 KIMBYUNGKOOK BUY DEED 1985 -

이들 형제는 이 콘도를 13년간 소유하고 있다 1998년 8월 19일 외국인에게 26만5천달러에 매도합니다
[증거 2 화면창 2번 매도계약서]

1210-1020 KIMBYUNGKOOK SELL DEED 1998 -


약 4만달러 정도의 매도차익을 올렸습니다

이들 형제는 콘도를 매도할 1998년당시 한국에서 살고 있어서 병국 병표 형제 모두 한 변호사에게 권리를 위임하는
위임장을 작성했습니다

[증거 3, 김병국 위임장]

1210-1020 KIMBYUNGKOOK SELL WIWIM 1998 - [증거 4, 김병표 위임장]

1210-1020 KIMBYUNGPYO SELL WIWIM 1998 -


이상으로 김병국 전 청와대 수석 : 미국서도 부동산 투기 [시리즈 12] : 공부하러 갔나? 콘도사러 갔나?
2회를 마칩니다


자 2명이니까 오케이 2채는 좋다 1채씩 1채씩 그런데 더 있습니다 그러니까 문제지요
과연 그시기 해외부동산 투자가 적법한 것이었을까요


모든 자료는 뉴욕시 등기소에서 합법적으로 입수된 누구나 열람 복사 공개가 가능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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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초대 외교안보수석을 지낸 김병국 전 청와대 수석비서관
지난해 2월 25일부터 6월 20일까지 약 4개월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외교안보수석을 지냈지만
쇠고기파동등 민감한 문제가 터졌을뿐더러 이명박정부의 성격을 보여주는 인사로 주목을 끌었었습니다

김병국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민족주의자[?]로 잘 알려진 인촌 김성수 선생의 손자.
김성수는 상만, 상기 두 아들을 두었는데 김병국은 김상기의 장남입니다

김상기는 전 동아일보 회장을 역임했으나 현재 이들 집안은 동아일보 경영에서는 완전히 밀려난 상태입니다

현재 고려대학교 정치학과 교수인 김병국 전 수석은 지난해 4월 24일 고위공직자 재산 공개때
백일 축하금으로 받은 돈으로 11살때 자신의 부친인 김상기와 함께 땅을 구입해 언론으로 부터
부동산 신동이라는 찬사[?]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자신의 부친등의 부동산을 누락신고해 민주당과 참여연대로 부터 고발을 당하기도 하는등
어떻게 구입하고 모았는 지는 모르겠으나 적지 않은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이명박은 재산공개뒤 '잘라라'라는 압력이 쏟아졌지만 동아일보등을 의식해 깔고 앉아 있다가
1기 수석들을 교체하면서 김수석도 날렸습니다 아마 투메가는 '앓던 이 빠진 기분' 아니었을까요

김병국의 한국내 부동산 소유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문제가 많습니다만 일단 그문제는 잠시 접어두고
미국의 부동산 소유관계를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김병국 고려대 교수의 지난해 재산공개관련 내용은 이 블로그의 언론기사모음을 참조하세요]

알고 보니 김병국은 한국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적지 않은 부동산 투기[?]를 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미 알다시피 김병국은 주식회사 주원 사장인 동생 김병표와 함께 일찌감치 미국유학을 떠나
명문 사립학교인 필립스 앤도버를 마친뒤 하버드대학을 졸업했습니다 

75년부터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그것도 명문사립학교에 유학했다는 말인데 
당시 국비유학생 시험을 통과해 유학길에 오른 것인지, 
그때도 조기유학이 허용됐는지 모르겠네요 

아뭏든 김병국 전 수석은 미국에서도 공부도 열심히 했는지 모르겠으나
동생과 함께 부동산 투자는 열심히 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오늘부터 몇차례가 될지는 모르지만 하루에 한채씩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조금 많다보니 저도 헷갈리고 여간 머리가 아픈게 아닙니다 
그렇지만 해보는데 까지 해보겠습니다 

요즘은 투자용이나 주거용이나 해외부동산투자가 무제한 허용됐습니다만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 수출액이 백억달러[79년 백억달러 달성]에도 못 미치던때로
과연 한국 법을 어기지는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김병국 고려대 교수는 1983년 11월 3일 동생 김병표와 함께 뉴욕 맨해튼  275 west 96 st 의 콘도 UNIT 3C를 매입합니다 

매입가격은 계약서에는 10달러로 돼 있지만 [CONSIDERATION PRICE : 이는 마음대로 적는 가격입니다]
뉴욕주에 7백60달러의 양도세를 납부한 것으로 계약서에 명시돼 있습니다
이는 매입가격이 19만달러라는 입증합니다

증거 1. 김병국-김병표 275 west 96 st 의 콘도 UNIT 3C 매입계약서

1868-1016 KIMBYUNGKOOK BUY DEED 1983 -
이 콘도 매입당시 김병국 교수는 동생 김병표에게 콘도 매입에 따른 모든 권리를 위임하는 위임장을 작성,
뉴욕시에 제출합니다

증거 2, 김병국 위임장

1868-1016 KIMBYUNGKOOK BUY WIWIM 1983 -
김병국 전 수석은 약 1년이 지난 1984년 11월 9일 이 콘도를 동생 병표의 부인 신모씨에게 0달러에 넘깁니다
세금이 한푼도 없어 무상증여가 확실합니다

증거 3, 김병국 - 신모 매도계약서

1868-1016 KIMBYUNGKOOK SELL KIM JUN HEE DEED 1984 -  
그 뒤 이 콘도는 신모씨가 소유하고 있다가 1997년 11월 25일 미국인에게 22만달러에 매도합니다

증거 4. 신모 매도계약서

1868-1016 KIMBYUNGKOOK SELL GAD DEMRY DEED 1999 -
그렇다면 김병국이 김병국 전 청와대 수석 겸 고려대 교수임을 어떻게 입증하는가
지난해 4월 24일 관보에 게재된 고위공직자 재산공개서류에서 김 전수석의 집주소를 찾아
조회해 본 결과 생년월일과 가족관계등이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김 전수석은 아마 재산공개때 성북동 이집에 전세산다고 신고한 것 같은데 제가 보기에는
이 집도 자신일가의 소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증거 5. 김병국 전 수석 집 등기부 등본

과연 이 부동산 매입이 현행법을 위반하지는 않았을까요 맞다 - 아니다? 국세청에 물어봐야겠죠

이상으로 김병국 전 청와대 수석 : 미국서도 부동산 투기 [시리즈 1] : 공부하러 갔나? 콘도사러 갔나?
1회를 마칩니다
앞으로도 계속 됩니다 과연 몇채나 될까요 '투기'라고 했으니 제법 되겠지요

모든 자료는 뉴욕시 등기소에서 합법적으로 입수됐으며 열람 복사 공개가 가능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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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두환의 둘째아들인 전재용이 2003년 비자금 사건이 터지면서 당시 톱탤런트 박상아와 박상아의 어머니에게 약 백67억원의 비자금을 위탁관리했던 사실이 드러났었습니다

박상아는 2003년 문제가 불거지자 같은해 9월 조지아주 아틀랜타로 출국했지만 도피 4개월전인 2003년 5월 15일 이미 아틀랜타에 주택을 구입했던 것으로 확인돼 사전에 치밀한 준비를 하고 도피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박상아 전재용의 아틀란타 주택은 5725 LAKE HEIGHTS CIRCLE, ALPHARETTA GA 30022 에 있는 원패밀리 하우스 즉 한가구 주택 이었습니다

이주택은 2층건물로 방이 4개 화장실이 4개로 건평이 백평이 약간 넘으며 1994년 지어진 것입니다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이 멋있는 붉은 벽돌집입니다 [화면창 1번 증거 참조]

주택관련서류에는  박상아 PARK SANG AH 가 2003년 5월 15일 머니 애서니씨로 부터 36만5천달러를 주고 이 집을 구입한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뉴욕이라면 방4개짜리라면 최소한 백만달러는 넘겠지만 아틀란타라서 비교적 가격이 낮았습니다 
[화면창 2번 증거 참조]

박상아는 이 집을 산뒤 혹시나 자신의 이름이 등재됨으로써 애틀란타 도피사실이 밝혀질 것을 우려해 
집주소를 딴 '5735 LAKE' 라는 법인을 설립, 구입 6개월뒤인 11월 이 법인에 0달러를 받고 
집 소유권을 넘깁니다. 한국법으로 따지자면 무상증여에 해당합니다 

추적을 피하기 위해 법인까지 설립하는 등 나름대로 '짱구'를 굴린 흔적이 역력합니다 

박상아는 애틀란타로 도주한 직후 한참 신이 났나 봅니다 
5월에 집을 산다음 8월에 생면부지의 존 케리 민주당 대통령 후보에게 적지 않은 돈을 기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11월 자신이 설립한 법인에 소유권을 넘긴 것이지요 

그러나 집을 구입한지 1년도 채안된 그 이듬해 2004년 4월 23일 돌연 집을 팔아버립니다 

매입금액은 36만5천달러, 매도금액은 40만3천8백달러, 1년사이에 4만달러정도 벌어들인 셈입니다 
40만4천달러도 아니고 40만3천8백달러인 것을 보면 어지간히 가격을 두고 밀고 당겼나 봅니다 

이 집을 매도할때 기록을 보면 특이한 이름이 나타납니다 PARK YANG JA TRUST.
매도인이 박양자 트러스트로 나타납니다 
미국인들이 보통 집을 사면 세금을 줄이기 위해 TRUST를 설립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박양자는 박상아의 인척으로 추정되는바, 미국에 도망가서 살면서도 정치 헌금도 내고 
절세하기 위해 법인도 만들고 할 짓은 다한 셈입니다 
[화면창 3번 증거 참조]

전두환의 둘째아들 부부 박상아 전재용이 왜 1년만에 집을 팔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이후 2007년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LA에서 자주 목격됐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아마도 처음에는 아틀란타에 숨어살았지만 너무나 외롭고 힘든데다
이제 간도 슬쩍 커져서 좀더 살기 편한 LA로 옮겨간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뭏든 전두환 이양반이 세상 버리기 전에 비자금을 한푼이라도 더 찾아 내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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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간 2009 8 30일 일요일 오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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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건호 X 파일 : 한복 15상자와 가회동 안가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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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아 X 파일 : 박상아-전재용 커플 이상한 정치 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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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아 X 파일 : 박상아-전재용 아틀랜타 주택 계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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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수 LA 총영사의 정치 헌금 등을 증거자료와 함께 이 블로그에 올리겠습니다






박상아 전재용 구입 아틀랜타주택 개요 parksangan -
박상아 전재용 소유 아틀란타 주택 소유권변동 -
박상아 전재용 소유 아틀란타 주택 소유권이전 세부사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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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만원이 전재산 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말로 논란을 일으켰던 전두환씨, 그 전두환씨의 둘째 아들 전재용이
왕년의 인기탤렌트 박상아와 살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일입니다

특히 박상아는 지난 2003년 전두환 비자금문제로 연예계를 떠나 전재용과 함께 조지아주 아틀란타로 도피한뒤 다시 LA를 거쳐 지난 2007년 귀국, 같은해 8월 뒤늦게 웨딩마치를 올렸습니다

박상아 전재용 커플은 또 삼성동에 살다 최근 시가 30억상당의 이태원 빌라로 옮겨 눈총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들 부부의 미국행적을 추적해 보니 전재용보다는 박상아가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특히 박상아는 지난 2004년에도 잠깐 보도되기도 했지만 지난 2003년 존 케리 민주당 후보에게 2천달러의 정치자금을 헌납한 영수증이 발견됐습니다 

2003년 8월 11일자로 발급된 이 영수증을 보면 박상아 전재용 부부의 아틀랜타 집 주소가 기록돼 있으며
박상아는 직업란에 HOUSE MAKER 즉 '주부다' 이렇게 적었습니다

또 주소란에는 미국도피직후여서 집주소에 익숙하지 않아서 인지 주소 스펠링이 여러개 틀려 있었습니다 

29만원밖에 없는 시아버지는 어떡하라고, 그것도 미국까지 와서, 존 케리와 무슨 관계가 있다고 2천달러를 기부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어느나라나 마찬가지지만 미국에서도 기부한도가 정해져 있는 것은 물론 기부자격이 정해져 있어 외국인은
기부를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박상아는 무슨 자격으로 기부를 할 수 있었을까, 여러분의 상상에 맡깁니다

만약 부적격자가 정치헌금을 하면 반드시 이를 돌려주게 돼 있는데 박상아에게 2천달러가 다시 돌아온 영수증은 없었습니다

아마도 ** 권자, 독수리인 모양이죠

모든 자료는 백% 일반에게 공개된 자료를 합법적으로 입수했으며 다운로드를 원하면 화면창 아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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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간 2009 8 30일 일요일 오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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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건호 X 파일 : 한복 15상자와 가회동 안가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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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아 X 파일 : 박상아-전재용 커플 이상한 정치 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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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아 X 파일 : 박상아-전재용 아틀랜타 주택 계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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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수 LA 총영사의 정치 헌금 등을 증거자료와 함께 이 블로그에 올리겠습니다

다음편에는 박상아 전재용 커플의 아틀랜타집 소유권 내역을 증거자료와 함께 공개하겠습니다



전두환 아들 부부 박상아-전재용 정치헌금 증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