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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없음2013.12.23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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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재판장 김용관) 심리로 열린 이재현(53) CJ 회장의 2차 공판에서 검찰은 국내 법인에서 조성된 비자금 603억원에 대한 입증 자료를 추가로 제출했다.

원본출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12/24/2013122400152.html

검 찰은 "이 회장은 한 달에 몇 회씩 1만원권 현금이 든 쇼핑백을 재무2팀에 은밀하게 전달했고 재무팀은 이를 이 회장의 개인 금고에 혼합해 관리했다"며 "그 돈의 흐름이 이 회장 개인 재산 장부에 기재된 것을 볼 때 이 회장이 재무2팀에 쇼핑백을 전달한 순간 횡령 의사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비자금은 모두 개인적으로 사용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이 회장의 변호인 측은 "금고 안의 개인 재산과 함께 보관하긴 했으나 물리적으로는 분리돼 있었다"며 "실무자가 편의상 개인 장부에 같이 기재한 것일 뿐이다. 비자금 대부분은 회사를 위해 사용했다"고 반박했다.

분류없음2010.07.07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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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가 장남 이맹희회장상대 양육비소송 소송장 원본




핫이슈 언론보도2009.12.21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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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마약자금등 검은 돈은 미술품으로 돌아다닌다는 말을 다시 한번 실감케 하는군요]

http://news.joins.com/article/505/3933505.html?ctg=1200&cloc=home|list|list2

이재현 CJ 회장의 차명재산을 관리했던 이모 전 재무팀장이 “(차명재산 가운데) 1200억여원을 미술품과 카지노 투자 등에 썼다”고 법정에서 진술한 것으로 21일 확인됐다. 이 전 팀장은 최근 서울고법에서 진행된 자신의 항소심 재판 과정에서 “대부분 차명주식이던 이 회장의 재산을 내가 주로 무기명 채권으로 바꿔 현금화했다”며 “1200억여원을 미술품을 사는 데 사용했고, 사채업자에게 빌려주거나 카지노에 투자하기도 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이 회장 집무실로 통하는 전용 계단을 이용해 차명재산 관리 상황을 직접 이 회장에게 보고했다고 주장했다.

이 전 팀장에 따르면 2006년 차명재산 관리를 위해 명의를 빌려준 일부 임원이 주식을 가로채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주식을 현금화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 전 팀장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차명재산이 드러나자 이 회장은 최근 1700억여원의 미납 세금을 납부했다. 차명재산을 신고하지 않거나 탈세할 경우 증권거래법 위반이나 조세포탈 혐의 등으로 처벌된다.

중략 - 자세한 것은 중앙일보 사이트에서

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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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민재원 2009 3868322
핫이슈 언론보도2009.12.02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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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의 형제 기업들인 CJ신세계에 여풍(女風)이 거세다. 진원지는 이미경 CJ그룹 미디어앤엔터테인먼트 총괄 부회장과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장남 이맹희씨의 장녀인 이미경 부회장은 CJ의 신(新)성장동력인 문화·콘텐츠 산업을 이끌며 그룹 내 '실세'로 평가받고 있고, 이병철 회장의 외손녀인 정유경 부사장은 지난 1일자 인사를 통해 조선호텔 상무에서 ㈜신세계 부사장으로 승진, 신세계그룹의 경영 일선에 전면 등장했다.

'뚝심'으로 영상산업에 돌풍을 일으킨 이미경 부회장

CJ의 방송·미디어 사업은 올 들어 '대박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엠넷의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는 케이블TV 역사상 최고치인 8.47%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또 국내 가요제였던 '마마(MAMA·엠넷뮤직어워드)'는 올해 처음으로 일본·중국 등 아시아 10여개국에 동시 중계되며 글로벌 가요제로 거듭났다. tvN의 '남녀탐구생활'도 4~5%대 시청률을 올리며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대박행진의 배경에는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누나인 이미경 부회장이 있다. 이 부회장은 평소 "'나눠먹기식 복지' 수준인 국내 문화·콘텐츠의 산업화 여부가 한국 콘텐츠 산업의 승패를 가를 것"이라고 말해왔다. 특히 40억원의 제작비가 들어간 슈퍼스타K는 임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부회장이 강력하게 밀어붙인 프로그램이다. CJ 신동휘 상무는 "케이블TV 프로그램 제작비용이 많아야 수억원대인 상황에서 일개 계열사가 40억원의 제작비 외에도 CJ의 연수원과 CGV 영화관 등을 모두 동원해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이 부회장의 '뚝심'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을 보좌하는 그의 '측근'들도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하대중 현 ㈜CJ 사장. 1990년대 중반 이미경 부회장을 도와 CJ엔터테인먼트와 극장 CGV를 탄생시켰던 하 부사장은 메가박스 인수 실패로 그룹 밖으로 물러나 있다가 2004년 이 부회장이 미국에서 돌아오면서 회사로 복귀했다.

그는 작년 9월 터진 '이재현 회장 비자금 의혹 사건'을 수습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고, 이후 올 1월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했다. 이 부회장과 사업 경험이 많은 하 사장이 그룹 내 주도권을 쥐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비자금 의혹 사건이 이미경 부회장이 전면에서 맹활약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CJ의 방송·미디어 사업이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라는 평가다.

"나는 회사가 잘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 뿐"

지방 유통시장의 판도를 바꿔 놓았다는 평가를 받는 부산 신세계 센텀시티점의 숨은 조력자가 정유경 신세계그룹 부사장이다. 정 부사장은 조선호텔 상무시절에 센텀시티점의 개발 콘셉트를 잡기 위해 일본, 두바이, 유럽, 미국 라스베이거스, 뉴저지 등 30여개 복합쇼핑몰을 누볐다. 외국 쇼핑몰에서 방문객에서부터 인테리어 내장재까지 샅샅이 조사한 '산 지식'이 센텀시티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백화점의 정문 콘셉트를 잡기 위해서만 10여번의 회의를 열었고, 매장 계단 손잡이를 고르는 데만 3개월을 쏟아부었을 정도로 꼼꼼한 성공 전략을 구상했다. 센텀시티에 50여개 명품 브랜드를 입점시키며 샤넬이 롯데 센텀시티 대신 신세계 센텀시티에 입점한 것도 그가 직접 샤넬 본사를 설득한 결과다. 이제 조선호텔 상무에서 공식적으로 신세계그룹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그의 '눈'은 본격적으로 신세계그룹으로 향한다. 앞으로 신세계백화점의 광고와 마케팅 부문 자문 역할을 담당한다.

그의 주변 경영진은 그를 "동물적인 감각이 있고 외형보다는 콘텐츠를 중시하는 인물"이라 평가한다. 사무실 안에 있는 것보다는 철저히 '현장'을 중시한다. 이는 정 부사장의 어머니인 신세계 이명희 회장으로부터 비롯됐다. 정 부사장은 지금까지 이명희 회장의 '손발' 역할을 해 왔다. 이 회장은 선진 유통업체 시찰을 위해 적어도 1년에 3개월 이상은 해외에서 보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마다 그의 곁을 지킨 것은 바로 정 부사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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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오늘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이야기를 해보려합니다

삼성그룹은 누구나 알다시피 대한민국 최고의 재벌입니다
이병철 선대회장에 이어 이건희회장이 경영을 맡으면서 그야말로 세계속의 삼성을 일궈냈습니다
전세계가 마찬가지지만 미국에서도 삼성전자 하면 세계최고의 전자제품회사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투명하지 못한 경영, 경영권 불법 세습등 만만챦은 부작용을 낳고 있기도 합니다

특히 이재용씨로 경영권을 넘기는 과정에서 말들이 많습니다만
이병철 선대회장이 이건희 회장을 언제 후계자로 낙점했나 엿볼수 있는 서류 하나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병철 회장의 큰 아들은 이맹희이며 이맹희는 미국에서 이미경-이재현 남매를 낳았습니다
따라서 속지주의원칙에 따라 이미경씨는 미국 시민권자입니다
오늘 이야기의 단서는 이미경 CJ그룹 총괄부회장에게서 비롯됐습니다 

부동산을 살펴 보다 이미경 부회장의 뉴욕,뉴저지,캘리포니아,매사추세츠등지의 집을 알게 됐고
미국 대통령 후보의 자료를 검색해 보다 이미경이라는 이름과 CJ엔터테인먼트라는 직장, 그리고
제가 아는 이부회장 집주소가 동시에 기재된 문서를 보고 동일인물임을 알게 됐습니다

먼저 밝힐 것은 이미경 부회장은 미국 시민권자이므로 미국내 부동산 구입이 하등의 문제가 없을뿐더러
제가 살펴본 이부회장의 부동산은 재벌부회장 답지 않게 규모가 크지 않고 소박한 것들이었으며
다른 재벌그룹처럼 현금 뭉칫돈이 아니라 꼬박꼬박 은행융자를 받는등 지극히 정상적인 거래였습니다

저의 관심을 끈것은 이미경 부회장이 지난 1996년 뉴저지에 주택을 구입하면서 기록한
자신의 집 주소였습니다

이부회장은 지난 96년 뉴저지 잉글우드클립의 주택을 구입했다 3개월만에 매도하면서 
매입 매도 계약서 모두 자신의 주소를 서울시 장충동 1가 107번지였습니다 [아래 계약서 요약본 참조]

이미경 뉴저지 매입매도서류 -
이 주소에 대한 한국등기부등본을 조회하자 예상대로 삼성 패밀리의 이름이 떴습니다
놀랍게도 이 집의 주인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최고부자의 이름이 명시된 등기부 등본은 사실 태어나고 처음 봤습니다
[아래 등기부 등본 참조]

changchung leekunhee -
이병철 선대회장은 작고하기 전까지 줄곧 장충동 집에서 살았고
박두을 여사도 이 집에서 계속 살았던 것으로 언론보도는 전하고 있습니다
[장충동 저택의 지번은 여러개로 추정되며 위주소도 그 지번중 한개임]

그러나 이건희 라는 소유주의 이름보다도 더욱 관심을 끈것은 그가 언제부터
이 집의 주인이었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놀랍게도 이건희회장은 1959년 7월 5일부터 매매를 통해 이 집 주인이 돼 있었습니다

1959년이면 이건희 회장이 아직 스무살이 되기 전입니다
이건희회장이 삼성의 후계자로 공식 확정된 것이 1977년 무렵.
그런데 장충동 집 일부 지번의 건물을 넘겨받은 것은 후계자확정시점보다 무려 18년이나 앞선 것입니다

여기서 추정할 수 있는 것은 이병철 선대회장이 일찌감치, 아주 일찌감치
세째아들 이건희를 후계자로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장충동일대에 한솔등 다른 삼성일가들이 많이 거주하는 것을 보면
이 일대 땅들을 비슷한 시기에 이병철회장이 직계 자녀들에게 증여해 줬을 수도 있겠지요

어쨌든 이 등기부등본에 의하면 1959년 일찌감치 유력한 후계자로 낙점받았다는 가설도 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장충동 1가 107번지 등기부 등본에서 이건희회장의 주소가 장충동 1가 110번지로
기록된 것을 발견했습니다

다시 이 주소의 토지와 건물 등기부 등본을 조회했습니다

이 건물이 이병철회장이 거주했던 장충동 집의 여러지번중 주된 지번이었습니다

2천7백여평방미터 대지에 약 4백평방미터 건평으로 된 이 집은 최근 보도에는 요즘 관리인만 사는 빈집이라지만
아직도 대한민국 주택 공시지가에서 5위권안에 드는 집입니다
[아래 등기부등본 참조]

장충동 1가 110 건물 -
장충동 1가 110 토지 -
이 등기부등본을 조회하자 토지 건물 모두 1977년 이전의 상황은 기록돼 있지 않고
1977년 1월 25일 매매에 의해 이건희 회장의 소유가 됐다고 기록돼 있었습니다

이병철회장이 이건희를 후계자로 공식확정한 시기와 일치하는 시기입니다

이 등기부 등본에서 특이한 것은 1979년 2월 26일 대한민국 최고 부자의 집에
근저당이 설정됐었다는 것입니다

근저당권자는 한일은행과 상업은행, 채무자는 삼성전자주식회사
채무액은 3백50억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삼성전자를 위해 자신의 집까지 담보로 잡혔던 것일까 그만큼 삼성이 어려었나
아니면 이 집과 관련된 담보인데 채권자를 이병철 회장이나 이건희회장이 아닌 삼성전자로 만들었던 것인가?

우리는 알 수 없는 대목입니다

이 근저당은 이병철 회장이 1987년 타계한 뒤에도 오랫동안 남아있다
지난 2005년 5월 31일에야 해지됩니다
25년만기 융자였던 모양인데 3백50억원은 어디에 쓰였는지 궁금합니다

이 등기부 등본에서 이건희 회장의 주소는 한남동으로 기재돼 있지만
실제 이회장은 2000년대중반 전낙원씨의 이태원 주택을 매입해 이태원에 살고 있다 합니다 

등기부 등본에는 1977년 이전 상황이 기록돼 있지 않았으나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이집의 소유권 변동 내역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지난 2월 13일자로 된 프라임경제를 살펴보니 '삼성본산 장충동의 비밀' 이란 기사가 게재됐습니다

장충동 1** 번지로 기록된 이기사에 따르면 이 집은 1970년 12월 준공됐고 1977년 1월 이건희 회장에게
소유권이 넘어가기 전에는 삼성문화재단 소유였다고 합니다 

현재 등기부등본에는 여러분이 보시다시피 1977년 이전 상황이 전혀 나와있지 않지만
프라임경제 기자는 1998년도 당시의 토지대장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2009년에 작성한 기사에서 1998년 토지대장이 언급된 것은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으나
혹시 2009년 올해는 그 토지대장에 접근하기 어려웠던 게 아닐까요

이 기사는 1965년 5월부터 삼성문화재단이 기부를 받아 소유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재단의 재산이 개인인 이건희 회장에게 매매된 것이지요

삼성의 본산인 장충동 1가 110번지는 1977년 이건희 회장에게 넘어갔지만
한때 이병철 회장의 큰아들의 장녀인 이미경씨가 자기집 주소라고 기재한
장충동 1가 107번지가 1959년 이건희 회장 소유가 됐다는 것은
이병철 회장이 언제부터 이건희를 후계자로 고려 내지 낙점했나를 알 수 있는 
한 단초가 될 것 같습니다 

어쨋든 이래서 이건희 회장의 이름이 명시된 등기부 등본 3개를 접했습니다만
이상한 점 하나를 찾았습니다 

다른 등기부 등본과 다른점, 거의 대부분의 등기부 등본에는 
소유주가 개인인 경우 주민등록번호, 법인인 경우 법인 번호가 기재됩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이건희 회장 등기부 등본에는 
이름만 덩그러니 기재된채 주민등록 번호를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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