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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규씨가 작성한 '노무현의 불행은 삼성에서 비롯됐다'는 글을 원문 그대로 올립니다
윤씨의 글을 계기로 노무현 정부의 삼성프랜들리 논란이 일고 있으므로 과연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
직접 알아보기 위해 이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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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불행은 삼성에서 비롯됐다"


전 노무현 대선후보 상황실장이 지켜본 노무현과 삼성과의 관계
  
  
윤석규
 

 

나는 내가 보고 들은 것만 말하겠다. 권순욱 씨가 황광우 작가의 글에 대해 논리와 태도를 말하니 나는 해석은 하지 않고 사실만 말하겠다. 사실을 말하는 과정에 불가피하게 실명이 거론되는 것을 용서하시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또 다시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할까 두렵기 때문이다. 내가 보고 들은 것 가운데 어떤 것은 개인적인 경험이고, 어떤 것은 신문지상에도 보도된 일이다. 내가 개인적 경험을 말하면 또 다시 권순욱 씨가 "내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그래서 내가 아는 것이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스스로의 한계를 가지는 것이 지성인의 자세"라고 일갈 할지 모른다. 그래도 본 것은 본 것이고, 들은 것은 들은 것이다. 그 사실은 어디로 가지 않는다.


나는 2001년 봄 청와대를 그만두고 금강캠프라 불리던 노무현 후보의 대선캠프에 몸을 담았다. 노무현 후보를 모시던 가까운 후배들이 도움을 요청했고, 나도 정치권에 참여한지 오래지 않지만 더 보람 있는 일을 해보고 싶은 욕심이 났다. 노무현 후보와 일면식도 없지만 그가 정치하면서 보여준 모습에 대한 믿음과 민주당 후보로서 그의 파괴력에 대한 기대도 주요한 동기였다. 전체적으로는 이회창 대세론이, 민주당 내에서는 이인제 대세론이 지배하던 시절이다.


처음에 정책특보로 시작해, 나중에 캠프의 선임팀장 격인 상황실장을 맡아 일했다. 노무현 후보가 국민참여경선을 거쳐 민주당의 정식 후보가 된 후에는 비서실 정책팀장, 부실장, 선대위 정치개혁운동본부 사무처장 등의 직책을 맡았다. 우여곡절도 많았고, 그와의 인연이 대선승리와 함께 끝난 것은 적잖이 아쉬웠지만 성취감과 보람으로 위안을 삼았다.


처음으로 노무현 후보와 삼성과의 관계에 대해 들은 것은 캠프 내부 멤버들의 입을 통해서다. 이학수 삼성 부회장이 노후보와 부산상고 선후배고, 초선 의원시절부터 도움을 받았단다. 두 사람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진 것은 국민의 정부시절 노무현 후보가 민주당 동남특위 위원장으로 활약할 당시, 삼성자동차 처리 문제에 나섰을 때였단다. 나는 삼성자동차 처리가 결과적으로 삼성에 유리하게 이루어졌는지 어쩐지 잘 모른다. 어쨌든 청산이외에는 답이 없다던 삼성자동차를 르노에 넘기는 과정에서 노무현 후보가 비중 있는 역할을 했고, 삼성 쪽 파트너였던 이학수 부회장과 매우 긴밀한 교류가 있었다고 한다.


막연하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의구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두 번째 에피소드다. 정확치는 않지만 2002년 초로 기억한다. 당시 참여연대가 '소액주주운동'의 일환으로 삼성주총에 참여해 일전을 벌였다. 주총 사회자가 이학수 부회장이었고, 그의 이사 선임문제가 쟁점이었다. 장하성 교수를 비롯한 참여연대 대표단은 이학수 부회장의 이사 선임을 반대했고, 여러 언론이 이를 보도했다. 다음 날 금강캠프에 출근했을 때 노무현 후보의 오른팔이라 일컬어지던 이광재 씨는 나에게 동의를 구하듯 장하성 교수를 격렬하게 비판했다.


"장하성 교수 빨갱이 아니냐, 삼성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운 이학수 부회장의 이사 선임을 왜 반대하는 것이냐?"


나는 그의 발언이 놀랍기도 했고 의아하기도 했다. 장하성 교수의 소액주주운동은 한국의 재벌구조를 개혁하는 운동으로 개혁 진영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지만 빨갱이 소리를 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소액주주운동은 오히려 진보 진영 일부에서 신자유주의의 핵심인 주주자본주의를 강화시키는 운동이라는 비판을 받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삼성을 반대하면, 정확히 말해 삼성 총수의 가신을 반대하면 빨갱이라는 말인데 논리의 비약이 매우 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만 말하기로 했지만 어쩔 수 없이 한 가지 느낌을 덧붙인다면 이광재 씨가 이학수 부회장을 적극 옹호하는 태도로 보아 그를 매우 존중하고, 그와 매우 가까운 사이라 짐작할 수 있었다.


삼성과 노무현 캠프의 밀착관계에 대해 더 강한 확신을 갖게 된 것은 노무현 후보가 민주당의 정식 후보가 된 직후였다. 또 이광재 씨다. 2002년 5월 어느 날 이광재씨는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출간한 <국가전략의 대전환>이라는 책을 들고 다니며 소개했다. 당시 후보의 정책팀장이었던 나에게도 소개하면서 노무현 후보의 대선공약에 반영하자고 했다. 나는 특별한 답을 하지 않았지만 속은 퍽 씁쓸했다.


더 압권은 그 얼마 후다. 이광재 씨는 핵심 엘리트 관료 몇 사람의 명단을 거론하면서 "이런 사람들하고 일을 해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하고 다녔다. 다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참여정부 초대 경제팀의 핵심인 김진표, 박봉흠, 최종찬, 윤진식 등의 이름이 들어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이광재 씨가 위 사람들과 함께 일해야 한다고 했을 때, 그들의 이름을 어떻게 알았는지, 그들의 역량과 정책적 입장을 어떻게 평가했는지, 또 그런 평가자료를 어떻게 얻게 되었는지 모른다. 누군가의 외부조력이 있었을 것이라 짐작할 따름이다.


대선이 끝나고 인수위가 구성되었다. 나는 대선 직후 참여정부 권력핵심부로부터 철저히 소외되어 인수위에 참여도 못했다. 한때 노무현 후보의 정책팀장을 맡았고, 노무현 후보에게 많은 전문가를 소개하는 역할을 했던 내가 인수위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에 나 스스로 놀랐고, 주변에서도 말들이 많았다. 어쨌든 그래서 인수위를 직접 경험하지 못해 자세히 내막은 모른다.


하지만 내가 노무현 후보와 연결시켰던 전문가 상당수가 인수위에 참여한 덕에 그들로부터 내부 상황을 귀동냥할 수 있었다. 그들은 깊은 우려 속에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인수위는 2개월의 활동결과를 묶어 국정운영 백서를 작성하고 이를 당선자에게 전달했는데 이와는 별개의 국정운영백서가 후보에게 전달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작성주체는 삼성경제연구소라는 것이었다. 당선자가 인수위가 작성한 것과 삼성경제연구소가 작성한 것 가운데 어떤 것을 국정운영의 기조로 삼았는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특정 기업인 삼성 산하 연구소가 별도로 국정운영백서를 작성해서 당선자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는 우려스러운 사실 자체는 남는다.


참여정부 기간 중 잠시 열린우리당의 원내기획실장을 맡은 것을 제외하면 거의 야인으로 지냈으므로 참여정부의 내부 사정도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보도를 통해서나마 삼성과 참여정부 핵심들과의 유착관계를 짐작할 수 있는 두 가지 사례는 지적할 수 있다.


2004년 원내에 진출한 이광재 의원은 노대통령의 측근 출신 의원 몇 사람을 중심으로 원내에 의정연구회를 결성했다. 의정연구회는 국회에서 삼성경제연구소와 공동 세미나를 개최했다. 당시에도 적절하지 못한 처신이라는 비판적 말들이 오갔다.


참여정부가 경제활성화를 명분으로 적극 추진한 법 가운데 하나가 '기업도시법'이다. 아이디어의 원천은 전경련으로 기억한다. 당시 자세히 찾아보지 않아서 특히 삼성이 뒤에 있다고 말하기에는 자신이 없다. '기업도시법'은 기업이 특정 지역에 기업도시를 만들 경우 해당지역 주민들의 토지를 수용할 권한을 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것은 사기업에게 국가의 권한을 대신해 사유재산을 수용할 권한을 주는 것으로 개인적으로는 위헌소지가 다분하다고 보았고, 열린우리당의 정체성에도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열린우리당의 원내기획실장으로 일할 때라 이 법에 대해 의원들과 함께 토론하는 자리에 낄 수 있었다. 그 자리에 이광재 의원도 있었다. 나는 천정배 당시 원내대표에게 위헌소지 등을 들어 '기업도시법' 통과에 신중할 것을 요청했다. 나의 문제제기에 분위기가 잠시 주춤했으나 이광재 의원이 청와대가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다는 뉴앙스의 말을 하면서 법은 통과시키기로 결정되었다.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을 주미대사로 임명하고, UN사무총장으로 세우려 했다는 이야기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모르는 이가 없는 사실이다. 물론 왜 그랬을까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


처음부터 말했듯이 나는 해석하지 않고 사실만 말한다. 해석은 나의 몫도 아니지만 권순욱 씨의 몫도 아니다. 권순욱 씨는 황 작가의 글에 대해 개인의 작은 경험에 의존해서 장님 코끼리 만지듯 확대해석하고 있다고 비판했는데, 누구나 자기의 경험에 기초해 말할 자격이 있다. 사실이 아닌 것에 기초해 말한다면 비판받아야겠지만 권순욱 씨가 아무리 현란한 논리를 동원한다고 해도 황 작가가 경험한 사실은 남는 것이다.


이제 해석은 독자의 몫이다. 나의 경험이 노무현 대통령과 삼성의 관계의 깊이를 판단하는데 참고자료가 되기를 바란다.


노무현 대통령이 삼성과 유착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노무현 대통령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공도 있고 과도 있다. 그의 과를 올바로 평가하고, 왜 그랬는지 원인을 밝히고, 진보개혁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는다면 다시는 그런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준비하는 것이 우리들의 임무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이 삼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 그의 불행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봉하마을에 내려간 후 회한 가운데 토로한 여러 말들로부터 우리는 그가 자신의 과를 회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노무현의 매력이다.


지금 수많은 자칭 노무현들이 나타났다. 노무현 후보는 '나는 국민의 정부의 자산과 부채를 모두 계승하겠다'는 말로 민주당 지지자들의 신뢰를 얻었다. 지금 작은 '노무현'들은 어떠한가? 그의 과를 함께 반성하고,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해서 말하는 용기를 가진 자를 찾기 어렵다. 누가 그의 과를 지적이라도 하면 그를 모두 부정하는 것처럼 날뛴다. 그들은 노무현이 아니다. 더 이상 노무현을 팔지 말라.


* 글쓴이는 전 열린우리당 원내기획실장으로, 본문은 <프레시안>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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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보름전에 친일파 민영휘의 손자인 민병유와 그의 딸이 뉴욕에 콘도를 두채 소유했었다는 사실을 공개하며
뉴욕시에 제출한 매매계약서에서 그들의 주소지가 해방공간에서 일정역할을 했던 삼청장이었으며
추후 삼청장이야기를 하겠다고 약속드렸었습니다

2011/05/11 - [분류 전체보기] - 홍석현회장 감정가절반에 낙찰 '삼청장' 지난 2월 국가로 소유권이전 - 국유재산과 교환
2011/05/17 - [분류 전체보기] - 홍석현회장 한남동주택 절반은 전시시설 - 주택공시가격은 나머지 절반에만 책정

오늘은 등기부등본과 공매기록등을 중심으로 삼청장 사연을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삼청장의 주소는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 145-20번지입니다
등기부등본을 살펴보면 이 집은 대지가 4백67평에 건평이 88평인 기와집입니다

삼청장은 등기부등본상 첫 주인은 친일파 민영휘의 아들인 민규식으로
1925년 6월 10일 매매에 의해 이 집을 소유하며 이때 자신의 집주소를 삼청동 145-6번지로 기재했습니다
[아래 삼청장 등기부 등본 참조]

1415-1092 MINNKYUSIK SAMCHUNG 145-20 -
그뒤 삼청장은 2002년 8월 27일 상속이 됩니다
민규식의 자녀인 민병순, 일본인 민병서, 민병유가 각각 3분의 1의 지분을 취득합니다만
민병유가 상속이전인 2001년 6월 26일 사망함에 따라 그의 지분은 미망인과 5 자녀에게 대습상속됩니다

인터넷 위키피디아등에 따르면 민규식이 삼청장을 민족지도자 김규식 선생에게 헌납했다고 기록돼 있으나
등기부 등본상으로는 김규식선생이 소유주가 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민규식이 김규식선생에게 소유권을 넘기지 않고 일시적으로 김규식선생에게 거처로만 제공했다'가
정확할 것 같습니다

그러다 2007년 9월 3일 세금체납등으로 인해 종로세무서에 압류처리된뒤
올해 2월 2일 홍석현씨가 공매에 의해 삼청장 소유자가 되며 2월 11일 등기를 완료하게 됩니다

새 주인 홍석현씨는 등기부등본 조사결과 홍진기 전 법무부장관의 아들이며
이건희 삼성회장의 처남인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으로 확인됐습니다

등기부 등본을 꼼꼼히 보면 등기과정에서 작은 소동도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등기부 등본중 소유권 내역을 표시하는 갑구에서 12번 항목을 살펴보면
2007년 9월 12일 종로세무서에서 민병순의 지분을 압류하게 됩니다
그러나 2009년 2월 11일 홍석현회장으로 소유권이 넘어가 등기되는 과정에서
다른 압류는 모두 말소 됐지만 바로 이 12번 항목만 남아있었습니다
그래서 등기부등본에는 다시 2009년 2월 12일 착오발견이라고 명시하고
12번 압류도 말소하게 됩니다

민병순은 다음 글을 풀어가는데 매우 중요한 인물인데 공교롭게도
민병순의 지분압류 - 말소과정에서 해프닝이 벌어져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렇다면 홍석현회장은 얼마에 삼청장을 공매 받았을까?
한국 감정원 평가에 따르면 삼청장의 감정가는 78억6천여만원[7,861,331,200원] 이었으나
홍석현씨는 감정가의 절반인 40억천만원에 낙찰받았습니다 [물건번호 2008-04809-009]

공매 과정을 살펴보면 종로세무서로 부터 자산처분을 위탁받은 한국자산관리공사는
2008년 10월 8일 한국자산관리공사 조세정리부 2008년 제20회 압류재산 위탁공고를 냅니다
[아래 한국자산관리공사 2008년 제020회 압류재산 공매공고 참조]

삼청장 압류재산 공매공고 -
공고번호 200810-00456-00인 이 공고는 한국경제신문과 한국자산관리공사 게시판등에 게재됐으며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 145-20 삼청장 건물을 비롯한 압류재산을 공매한다며 입찰일정등을 담고 있습니다
[아래 한국자산관리공사 공매대상 물건목록 참조]

2008년 10월에 앞서 공매공고가 나가고 2008년 7월 24일 최저입찰가 78억6천여만원에 시작해
공매절차가 진행됐으나 이날부터 일주일 간격으로 8월29일까지 6차례의 입찰이 모두 취소됩니다

그뒤 10월 8일 공매공고가 다시 나고 2008년 11월 23일부터 최저입찰가 78억6천만원에 시작해
공매절차가 진행됐지만 이번에는 일주일간격으로 12월 11일까지 모두 5차례에 걸쳐 유찰됐습니다

결국 12월 18일 6번째 경매가 최초 경매시작가격의 절반인 39억3천여만원을 최저입찰가로 해서 시작됐고
이 최저입찰가의 102%인 40억천만원에 낙찰됐습니다
[아래 한국자산관리공사 입찰 결과 참조]

삼청장 12차 입찰결과 종합f -
홍석현회장이 언제 매입대금을 지불했는지 알 수 없으나 천만원이상인 경우 입찰가 10%만 사전 납입하고
나머지 대금을 60일내에 납부하게 규정돼 있으며 올해 2월2일 공매에 의해 소유권을 취득했다는
등기부 등본을 감안하면 올해 2월 2일까지 모두 40억천만원을 납부한 것으로 보입니다

홍석현회장은 감정가 78억6천여만원의 삼청장이 공매에 나왔다가 5차례에 걸쳐 낙찰자 없이
유찰된 탓에 최저 입찰가가 크게 내려갔고 6번째 공매에서 감정가 절반인 40억에 사들인 것입니다
[공매의 경우 최저입찰가 이상으로만 입찰에 응할 수 있음]

한국감정원 평가에 따르면 삼청장은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 서쪽에 있으며 국가주요시설물 옆에 있어
대중교통이 다소 불편할 것이다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아래 한국자산관리공사 삼청장 물건정보 참조]

삼청장 물건정보 -
여기서 국가주요시설물은 청와대를 칭함이며 다소 불편할 것으로 예상된 대중교통은
새 주인과는 특별한 상관관계가 없을 것으로 예상돼 과도한 우려가 아닌가 싶습니다

감정가의 절반에 낙찰받았다고 해도 문제가 있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실제 이날 거래에서 공매된 다른 부동산들도 감정가 절반에 팔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청와대 인근, 수도 서울 한복판의 최고 요지인 점을 감안하면 썩 괜챦은 거래였다 짐작됩니다
한국감정원의 감정가가 78억6천여만원이므로 지금 당장 팔아도 수십억의 차익이 남을듯 합니다

또 하나 친일파 민영휘의 아들 민규식의 재산이 홍석현 회장의 차지가 됐다는 것도 꽤 화제가 될 듯 합니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는 2007년 8월 13일 민영휘의 재산 36필지 시가 56억원 상당을
국가에 귀속시킵니다
하지만 당시 이 삼청장은 포함되지 않았고 약 20일뒤 종로세무서가 세금체납을 이유로 이 삼청장을
전격 압류하게 됩니다 
[아래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 제2차 국가귀속결정 현황자료 참조]

민영휘재산 국가귀속 2차현황자료 -

재산조사위원회 발표자료에도 '민영휘는 일체의 재산을 자신의 명의로 하지 않고 민대식, 민규식등 
아들의 명의로 신탁하고 동인의 명의로 신고를 하여 사정을 받았음' 이라고 명시돼 있음에도 
삼청장은 첫번째 귀속대상에서는 제외됐습니다  
민영휘의 재산은 위원회 발표대로 2006년 7월 24일부터 10차례에 걸쳐 세밀하게 조사됐음에도 말입니다
[아래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 제3차 국가귀속결정 현황자료 참조]

민영휘재산 국가귀속 3차현황자료-최종 -
재산조사위원회는 2007년 11월 22일 민영휘 재산에 대한 2번째 국가귀속사실을 발표하지만
이때는 이미 삼청장이 종로세무서에 압류된 뒤였습니다

아마도 당시에 포함되지 않았던 것은 민영휘의 재산임을 입증하는 문제등
나름대로의 애로사항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만약 귀속대상재산이었다면 80억짜리를 잡을 것인가, 
56억짜리를 먼저 잡을 것인가의 문제였는데
여러분이라면 어떤 부동산부터 먼저 잡겠습니까? 
저라면 80억짜리 먼저 잡고 그 다음에 56억짜리를 잡을 겁니다
다같이 한꺼번에 잡을수 있다면 말할 것도 없고

어쨌거나 삼청장은 친일파 재산으로 규정, 국가에 귀속되지 못한채
'세금 체납'으로 인한 압류로 공매 처리된 것으로 남게 됐습니다

한편 삼청장 등기부 등본에 1925년 기재됐던 민규식의 주소 삼청동 145-6번지는
등기부 등본 확인결과 국가 소유로 관리청은 청와대 경호실이었습니다

삼청동 145-6번지는 삼청장보다 두배이상 넓은 1070평 규모였습니다
[아래 서울 종로구 삼청동 145-6번지 토지 및 건물 등기부등본 참조]


삼청동 145-6 건물 등본 발급 -
삼청동 145-6 토지 등본 발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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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특검은 작년 12. 10. 특별검사가 임명된 이래 국민 여러분들께서 예의 주시하시는 가운데 120여일, 4개월에 걸쳐 수사를 진행하여 이제 그 수사 결과를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삼성 특검의 이번 수사는 우리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역사적 의의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사하는 기간 동안 각계 각층으로부터 혹은 정치적 신조에 따라, 혹은 사적인 이해 관계에 따라 그 내용을 달리하는 수많은 충고와 비판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중에는 충정어린 의견도 있었지만 무책임한 비방, 허위사실의 날조, 사실의 왜곡 등에 의한 음해나 중상도 난무하였습니다. 중략

삼성 비자금 의혹 수사결과 발표문 전문은 149페이지로 아래 화면창에서 전체를 보실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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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특검수사결과 135527 -
핫이슈 언론보도2009.09.05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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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파일 폭로 이후 4년은 대한민국 성역을 확인한 과정” [2009.09.02. 제776호]
조혜정 류우종
[기획] <한겨레21>-진보신당 주최 노회찬·김용철·최상재 좌담회…
“잘못을 지적한 이들만 처벌받는 게 현실이지만 언젠가 바뀔 날 올 것”
2005년 7월22일 문화방송 <뉴스데스크>는 “지난 97년 대선 당시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은 삼성 이건희 회장의 지시로 대선자금을 나눠주는 심부름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치권에 전달하려 한 비자금은 100억원이 넘는다. 삼성과 홍석현 전 사장이 최고위급 검찰 간부들에게 명절 때마다 1천만원~500만원의 ‘떡값’을 뿌리면서 검찰 인맥을 관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고 보도했다.

이를 취재한 이상호 기자는 이런 내용이 담긴 안기부의 불법 도청 테이프와 녹취록을 스튜디오에 들고 나와 “이 테이프에 삼성의 전방위적 로비 실태가 담겨 있으나 삼성그룹 이학수 비서실장과 홍석현 사장이 방송금지가처분 신청을 내 원음은 공개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그해 초부터 소문이 나돌던 ‘삼성 X파일’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 삼성 X파일의 ‘떡값 검사’ 명단을 공개한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삼성 비자금 조성 의혹을 제기한 김용철 변호사, 최상재 언론노조위원장이 8월18일 국회에서 X파일 폭로 이후 4년을 돌아보는 좌담회에 참석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한 달 뒤인 8월18일 노회찬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은 보도자료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해 ‘떡값’을 받은 김상희 당시 법무부 차관 등 전·현직 검사 7명의 실명과 X파일 일부를 공개했다. “석조(홍석현 회장 동생·당시 광주고검장)한테 한 2천 정도 줘서 아주 주니어들(신참 검사), 회장께서 전에 지시한 거니까, 작년에 3천 했는데 올해는 2천만 하죠. 우리 이름 모르는 애들 좀 주라고 하고…” 등의 대화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삼성과 족벌언론, 정치권, 검찰 사이의 추악한 거래를 고발한 대가는 가혹했다. 이상호 기자는 보도가 나간 뒤 취재를 하지 않는 부서나 지방으로 전전하는 등 ‘보복성 인사’를 겪고 몇 차례 감봉까지 당했다.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2006년 11월 항소심에서 유죄판결(징역 6월, 자격정지 1년에 선고유예)을 받았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명예훼손·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지난 2월 징역 6월, 자격정지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항소심이 진행 중이지만, 재판 결과에 따라선 내년 서울시장 선거에 나서지 못할지도 모른다.

반면 ‘거래 당사자’는 건재하다. 2005년 12월 검찰은 삼성의 불법 정치자금 제공 의혹 전체를 무혐의 처리했다. ‘떡값 검사’들 역시 무혐의로 결론이 났다. 그밖에 X파일에 들어 있던 내용에 대해선 X파일 자체가 ‘위법한 자료’라는 이유로 아예 수사하지도 않았다. 2007년 10월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 출신인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 비자금 조성’ 양심선언을 하면서 특별검사팀까지 설치됐지만, 삼성은 또 실질적 처벌을 피해갔다.

옛 안기부 비밀도청팀 ‘미림팀’이 불법 도청을 한 것으로 드러났지만, 이에 대한 전반적인 수사도 이뤄지지 않았다. 도청 테이프를 불법 반출한 전 안기부 직원 공운영씨와 이를 미끼로 삼성에 돈을 요구한 박인회씨 등이 처벌받는 데 그쳤다.

<한겨레21>은 X파일 폭로 4주년을 맞아 이 사건이 우리 사회에 던진, 그러나 해결되지 않은 과제를 돌아보는 좌담회를 진보신당과 공동으로 마련했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와 김용철 변호사, 그리고 미국 연수 중인 이상호 기자를 대신해 최상재 언론노조위원장이 참석했다. 사회는 홍세화 ‘마포 민중의 집’ 공동대표가 맡았다. 좌담회는 8월18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진행됐다.




»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홍세화(이하 홍): 삼성 X파일 사건 공개 이후 4년을 되돌아보면, X파일에 담긴 추악한 내용을 밝힌 분들만 재판받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졌다. 어떻게들 지내셨나.

노회찬(이하 노): 피고인 노회찬이다. (웃음) 아침에 여의도로 출근하면서 4년 전 아침 법사위로 향하기 전에 엄청난 사태를 눈앞에 두고 잠깐 마음을 정리했던 순간이 생각났다. 스스로에게 후회하지 않겠는가 물었다. 4년이 지났고 많은 일을 겪었지만 감사한 마음이 든다. 재판에선 내게 집행유예 2년이라는 중형이 선고됐다. 항소심 재판이 진행 중인데, 녹취록의 주요 당사자인 이학수씨가 출석해 부실한 증언을 했다.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은 2번 출석을 거부해 구인장이 발부됐다. 정치적 배경으로 자신을 증인으로 채택했고, 특별한 진술을 할 것이 없다는 것이 불출석 사유였다. 어쨌든 내가 피고인이기는 하나, 법과 양심에 따라 (판사가) 무죄를 선고할 것이라 확신한다. (웃음)

지난 4년은 대한민국에 성역이 있음을 확인한 과정이었고, 우리 사회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기간이었다. 민주사회냐 아니냐의 기준은 법이 적용되지 않는 성역이 존재하느냐 아니냐다. 재벌·검찰 등 권력기구와 정치권에 크고 작은 성역이 엄연히 존재하고, 그 성역은 공권력으로 보존되고 있다. 그러나 성역을 없애려는 노력이 있었다. 일부 언론은 2005년 8월18일 내가 녹취록을 공개하기 전에 사태의 윤곽을 보여주는 보도를 했다. 또 김용철 변호사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용기 있는 행동을 보여줬다.

김용철(이하 김): 빵집에서 일하는데 어찌 보면 한량, 백수, 폐인 같은 생활이다. 개인적으로는 못된 짓을 많이 하게 됐다. 아들 둘을 취직도 못하게 만들어버렸다. 아빠가 누구란 걸 밝히고는 한국에서 기업에 못 들어가더라. 큰애가 의사인데, 그 학교 이사가 이학수더라. 눈치가 보여 학교에 못 남는다고 하더라. 주변 사람들도 직장에서 잘리고, 불편한 일이 많이 생긴다. 나는 변호사로서 일을 못하고 있다. 내가 변호하면 무죄도 유죄가 될 것 같고, 도울 수가 없었다. 무료 변론을 좀 해봤는데, 왜 그리 이혼 이야기가 많나. (웃음) (검사 때) 국회의원·재벌 수사를 하면서 폼나게 호의호식하며 살다가 50대가 돼 온 나라를 시끄럽게 만들기도 했는데, 이제는 벌도 받고 고생도 해야 하는 것 같다.

» 최상재 언론노조위원장
X파일 사건은 내가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다 했다. 직접 도청을 담당한 사람이나 갈취범들(도청 테이프를 미끼로 삼성에 돈을 요구한 공운영·박인회씨) 말고는 아마 내가 가장 먼저 X파일을 봤을 거다. 내용이 허위냐 사실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홍석현·이학수씨가) 누군가 감청할 것을 예상하고 거짓말을 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고급 호텔의 비싼 식당에서 이학수·김인주·홍석현 이런 분들이 모여 내 옛 직장(검찰) 선배들에게 얼마씩 나눠줄 것인가 참 신중하게 논의하더라. 500만원이라고 했으니 역시 기업 하는 사람은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내려는 것 같다. 거기엔 정치인 얘기도 나온다.

(양심선언 이후)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고발을 여러 건 당했는데, 검찰이 수사를 기피하는 것 같다. 검찰도 내 말이 허위라고 입증할 자신이 없는 것 같다. 이상한 것은 여러 명이 같은 날 고소하고 같은 날 한꺼번에 취하하는데, 누가 배경일까? 합리성이 통하지 않는 세상이다.

홍: 루쉰은 ‘미친 개한텐 몽둥이가 약’이라고 했는데, 지금 상황은 미친 개가 몽둥이를 들고 있는 것 같다. 국가권력과 자본을 견제할 언론도 완벽히 한통속이 돼가는 상황에 진입하고 있는 게 아닌가. 방송의 재벌화, 조·중·동화가 언론악법의 지향점 아닌가.

최상재(이하 최): 언론악법은 한나라당이 날치기를 시도했다가 무산됐다(언론노조는 재투표·대리투표 등 불법성이 분명히 드러난 만큼 언론악법 표결은 무효라는 입장이다- 편집자). 여론조사 결과를 봐도 반대가 많다. 국민은 이미 판결을 내렸다. 신문의 방송 진출이 민생과 직결되는 사안이 아니기에 어려움은 있었지만, ×파일 사건 등을 통해 국민이 (언론의 자본 종속이 빚는 폐해를) 인식하고 있었기에 ‘재벌방송’ ‘조·중·동 방송’이란 구호가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우리도 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언론 역시 3부 못지않은 권력을 누렸고, 삼성 앞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여왔다. 삼성그룹의 언론 광고 제공 비율이 전체의 10%를 넘는다. 기자와 PD들도 기업에 불리한 보도를 할 경우 해당 기업이 ‘청탁’을 해오면 당연히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삼성한테는 좀 다른 것 같다. 특종을 하고서도 곤혹스러운, 누군가 대신 터트려주길 바라는 대상이 삼성이다. 방송사 재원의 90%가 광고이고, 그 가운데 삼성이 3분의 1 정도를 갖고 있기 때문에 또 다른 압박을 느끼는 거다. 삼성이 모든 걸 갖고도 단 하나 못 가진 게 방송인데, 이것까지 주겠다는 게 언론악법이다. 막아야 한다.

» 김용철 변호사
김: 어쩌면 삼성이 방송을 갖느냐 안 갖느냐는 문제가 아니다. 이미 삼성이라는 영속불변의 권력 체계는 확고하다. 언론도 생존 문제 때문에 순치돼 있다. 삼성 광고비는 광고비가 아니다. 광고 단가에 비례해서 나가지 않는다. 법률적으로는 배임이다. 진보 언론도 (삼성 광고비 비중이) 20% 정도 된다고 들었다. 삼성화재가 고객 계좌를 차명 계좌로 활용했지만 언론은 지적하지 않았다. X파일 검찰 수사가 끝난 뒤론 진보 언론에서도 이 사건을 다루는 걸 거북해한다.

홍: 삼성의 무소불위 권력을 어떻게 견제할 수 있을까. 우선 김 변호사는 ‘떡검’이라는 말을 듣기가 거북하지 않나.

김: ‘떡검’이란 말을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는데, 누가 떡을 그렇게 많이 사먹나. ‘떡값’이란 말은 죄의식을 약화한다. 정기적인 뇌물이다. 기백만원은 엄청나게 큰 돈인데, 국가에서 급여를 받으면서 따로 받는 돈이 어떻게 ‘떡값’인가. 뇌물 받는 검사는 대한민국 검사 가운데 50여 명 정도 될 것 같은데, 이런 관행을 주류 사회로 편입됐다는 증거로 인식하는 것이 문제다. X파일의 나머지를 다 공개해야 한다. 국가기관이 부정한 돈을 얼마나 받았는지 밝혀야 한다. 재벌이 주는 정치자금은 주주의 돈이고 국민의 돈이다. 그 돈으로 권력 체계를 유지하는 거다. 검찰도 삼성을 수사하겠다고 나서면 좌천된다. X파일 사건은, 삼성은 무슨 짓을 해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거다. 이번 삼성SDS (주식 헐값 발행 사건) 판결도 그렇다. 저런 대형 범죄를 처벌하지 않고 어떻게 사법 권위를 세우나.

노: X파일 테이프를 들어보면, 홍석현 회장이 ‘홍길동에게 2천만원’ 이러면 이학수 부회장이 ‘홍길동 2천만원’이라고 복창한다. 그렇게 말하며 메모하는 광경이 떠오른다. 유수 기업의 부회장이라는 사람이 그런 걸 받아적는 광경을 생각하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창피하다. 이런 걸 근절하고 삼성을 견제할 수 있는 곳은 바로 삼성이 뇌물을 준 곳이다. 언론·검찰·법원이 살아 있어야 한다. 이곳을 바꾸면 삼성을 바꿀 힘을 만들 수 있다. 이 사건을 반면교사로 삼아 왜 언론사의 소유와 편집이 분리돼야 하는지 국민이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온통 불법적 모의가 담겨 있을 X파일의 나머지 부분도 모두 공개돼야 한다. 국민적 관심만 있다면 얼마든지 파헤칠 수 있다. 다소 잊혀졌지만 끝난 사건이 아니다.

최: 노무현 대통령도 당시 사건의 본질은 뇌물이 아니라 도청이라고 했다. ‘차떼기당’뿐만 아니라 입법부 전체가 삼성에 종속됐던 것 같다. 언론은 이미 광고로 충분히 장악당해 뇌물을 줄 필요조차 없다. 어떻게 견제할 것인가? 각각의 현장에서 지금 현실을 우려하는 이들이 제 할 일을 하는 것밖에 없다. 특히 젊은 층을 많이 우려하는데, 요즘 10대는 다른 것 같다. 이들의 표현력과 사고는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촛불을 들었던 지금의 10대 후반은 다음 대선에서 투표를 한다. 의도적으로라도 힘을 내자.

» 홍세화 ‘마포 민중의 집’ 공동대표
홍: X파일 폭로 이후 사회가 긍정적으로 변화한 부분은 없나.

노: 양심에 입각해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수사받고 기소돼 재판까지 받는 상황이고, 문제가 있는 사람은 아무런 피해를 받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그간 잘못된 관행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확인할 길은 없지만, 이런 사태를 겪고 나서 뇌물을 떳떳이 주고받는 관행은 조금씩 완화되고 있는 게 아닌가 기대한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패배감을 조장하는 쪽은 문제를 일으키는 쪽이다. (X파일 폭로처럼) 끊임없이 용기 있게 바꾸려는 노력이 쌓일 때 사회도 변할 것이다.

최: 딸이 “전과 14범이 대통령 돼도 되냐. 난 안 되는 줄 알았다”고 하더라. 내가 그런 부분에 둔감했구나 싶어 정신이 번쩍 들었다. (X파일 사건을 계기로) 뇌물을 받고 타락하는 것이 죄처럼 느껴지지 않는 세상에 살면서, 사회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언젠가는 삼성도 기울 때가 있을 거다.

홍: 쉽게 말해 뻔뻔한 사회, 부끄러움도 느끼지 않는 사회라는 사실을 보여준 지난 4년이었다. ‘편안하게 살려면 불의를 외면하고, 인간답게 살려면 그에 도전하라’는 말이 있다. 정의·진실은 그 자체로는 힘이 없다. ‘권력’ ‘금력’이란 말은 써도 ‘정의력’ ‘진실력’이란 말은 안 쓰지 않나. 이런 것들이 어떻게 힘을 얻도록 할 것인지가 앞으로 과제인 것 같다.

‘삼성 X파일’ 첫 보도한 이상호 기자 인터뷰

“대법 판결 뒤 ‘취재백서’ 통해 전모 밝힐 것”

» 이상호 기자. 사진 <한겨레21> 김정효 기자
‘삼성 X파일’을 처음 보도한 이상호 문화방송 기자는 지난 4년을 어떻게 돌아보고 있을까? 한국기자협회 지원을 받아 지난 7월부터 미국 조지아대 부설 국제문제연구소에서 박사후 과정을 밟고 있는 그와 전자우편 인터뷰를 했다. 이 기자는 “그동안 (한국 사회는) 변하지 않았다. (삼성SDS 주식 헐값 발행과 관련해) 법원이 스타일을 구겨가며 쓰다 만 판결을 공표한 건 오늘날 대한민국이 반쪽만 기능하는 미완의 공화국, 재벌이 지배하는 ‘금화국’(金和國)이라는 현실을 보여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X파일 보도로 사내에서 부당한 인사를 당하는 등 마음고생을 했다고 들었다.

=내가 자초했고 예상했기 때문에 가혹했지만 견딜 만했다. 사람이 미치지 않으려면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 공부했다. 한동안 일거리를 주지 않아 힘들었는데, 나중엔 침뜸 공부하랴, 밀린 박사 논문 쓰랴 오히려 바빴다. 우스갯소리로 내가 진짜 ‘삼성 장학생’ 아니냐고 한다.

-보도를 전후해 삼성 등에서 협박이나 감시를 당한 적이 있나.

=삼성의 파상적인 보도 방해 공작과 로비가 있었다. 보도가 벽에 부딪혀 단식을 생각할 때였다. 회사 고위층에게 불려갔더니 내가 삼성생명에서 주택구입 자금으로 1억원을 대출받은 서류가 올려져 있더라. 그룹 차원에서 보도를 막으려고 개인정보가 든 서류를 통째로 외부에 빼돌린 것이다. 고위층은 내가 돈을 주고 X파일(제보자)을 매수한 게 아니냐고 의심했다. 삼성이 나를 ‘저질 브로커’로 몰아가는구나 싶어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삼성이 이렇게 무서운 집단이구나,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반드시 진실을 알려야겠다고 다짐했다. 더 자세한 내용은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온 뒤 ‘X파일 취재백서’를 통해 밝힐 예정이다.

-보도 결과 삼성과 법조·언론·정치계는 진일보했다고 보나.

=그 보도로 삼성 재벌의 부도덕한 심장에 작은 구멍이 뚫렸고, 김용철 변호사 양심선언의 마중물이 되었다고 자평한다. 시간 맞춰 알람은 울렸지만, 단 한 차례 새벽을 흔들고는 이내 꺼졌다. 모두가 깨지 않기를 바라는 손이 알람을 눌러버린 것이다. 자본권력의 점령군이 한강 다리를 넘었다. 탱크를 뒤따르는 지프차 위에 홍석현 회장과 고흥길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등이 무더기로 보인다. 이들의 가슴마다 언론과 국회를 성공적으로 장악한 공로로 받은 훈장이 가득하다. 흩어졌던 떡값 검사들도 다시 모여 지지 가두행진을 벌인다. 보도 4년 동안 자본의 지배 질서는 더욱 제도적으로 공고해졌다.

-언론악법 날치기로 거대 자본과 족벌신문이 지배하는 방송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대안은 두 가지다. 기성 언론의 공익성 확보 투쟁도 필요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공익적 탐사 보도를 위한 비정부기구(NGO) 설립, 이들을 지원할 공익 재단이 출현해야 한다. 이와 함께 시장 적응력을 갖추고 독자적 매체력을 확보한 ‘뉴미디어 레지스탕스 저널리스트’의 활동도 강화돼야 한다.

글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