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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의 자녀는 4남 1녀 입니다

장남은 지난 2004년 사망한 이동진으로 서정귀의 딸 서옥로와 결혼, 1남2녀를 두었습니다
차남은 동훈으로 한화 김승연회장의 누나 영혜와 결혼, 4남을 두었습니다
3남 동익은 1남2녀, 4남 동욱은 SK쪽의 예원과 결혼 1남 1녀를 두었습니다
외동딸은 명신으로 정화섭과 결혼, 미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제 이후락 장남 동진 부부의 부동산을 알아보겠습니다

이동진 - 옥로 부부는 1975년 7월 15일
뉴저지 테너플라이의 7 GLENWOOD COURT의 부동산을
9만5천달러에 구입했습니다

이후락 장남 부부 197507.jpg -
이후락 부장의 큰 며느리인 옥로씨는 1979년 3월 30일
옥로 단독으로 테너플라이 블록 226 랏21의 부동산을
32만달러에 매입했습니다

이후락 장남 부부 197903.jpg -
이동진 - 옥로 부부는 1980년 12월 12일
하와이 호놀룰루 와이키키해변의 '이라카이 아파트먼트'의 1625호를
17만5천달러에 사들였습니다

이들 부부에 앞서 1980년 8월 외동딸 부부가 같은 콘도를 매입했었습니다

이들 부부는 하와이 콘도를 구입한지 한달도 지나지 않은
1981년 1월 7일 뉴저지주 알파인의 나대지 2필지를 구입합니다

1필지는 알파인 블록 39 랏 12J로 16만5천달러에 매입했으며
나머지 1필지는 알파인 블록 39 랏 12I 로 역시 16만5천달러였습니다

이후락 장남 부부 197903.jpg -
이후락 장남 부부 198101 2.jpg -
이동진은 또 사위인 정화섭과 공동명의로
1981년 4월 15일 뉴저지주 포트리 부동산을 75만달러에 매입합니다

이들 두사람은 또 1981년 6월 15일 뉴저지주 잉글우드 클립 부동산을
백60만달러에 공동매입합니다

이후락이 부정축재자로 재산을 환수당한 시점이 1980년 6월 중순입니다
특이한 것은 이후락이 재산을 환수당한 그 직후부터
장남부부와 외동딸부부의 부동산 구입이 급격히 늘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부분이 이후락과 신군부사이에 모종의 뒷거래가 있었지 않나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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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락 외동딸 부부는 맨 처음 글에서 말한대로
1987년에 아주 굵직한 거래를 합니다

이후락 외동딸 부부는 1987년 6월 10일
재미동포들이 많이 사는 한인타운인 퀸즈 플러싱
메인스트릿 59-10 부동산을 매입합니다
매입가격은 2백20만달러였습니다 [계약서는 이미 공개]

이후락 외동딸 부부는 또 약 2달뒤인 1987년 8월 24일
뉴욕 맨해튼 172  MADISON AVENUE 빌딩을 사들입니다
매입가격은 무려 7백20만달러였습니다 [계약서는 이미 공개]

이들은 또 1988년 12월 9일 뉴저지주 포트리
메인스트릿 95번지 부동산을 매입합니다
매입계약서상에서는 1달러로 돼 있지만
실제 매입액이 30만달러임을 세금등을 통해 알수 있습니다 [계약서 동그라미 부분]



외동딸 부부는 또 2007년 4월 13일에는
허드슨강 너머로 맨해튼이 바라다보이는
뉴저지 엣지워터의 한 건물을 6백90만달러에 매입합니다

물론 이들은 1992년 6월 30일 포트리 부동산을 2백66만5천달러에
1994년 5월5일 크레스킬 집을 62만5천달러에
2001년 3월 30일 포트리 부동산을 백만달러에 매도하는등
약 4백20만달러정도의 부동산은 매각했습니다

외동딸 부부는 뉴욕등 동부지역에서만 부동산을 매입한 것이 아니라
LA에서도 일부 부동산을 매입했다는 소문이 있고
특히 모 한국계 은행의 설립에 깊숙히 간여했다고 합니다

외동딸 부부의 뉴저지 알파인 저택을 방문했던 사람들은
부동산뿐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바로 이 집안에 여러가지 물건[?]들이 많았으며
그중 하나는 최근 여러가지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모화백의 그림중 한점 이었다고 합니다

LA등에 대해서는 접어두고
내일부터는 숱한 소문을 뿌렸던 이후락의 장남 부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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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의 외동딸 부부는 장남 내외와
얽히고 설키며 부동산을 매매합니다

외동딸부부는 지난 1980년 12월 15일 18만달러에 매입한
크레스킬 부동산을 1983년 1월 1일 장남 내외에게 28만달러에 매도합니다 

외동딸부부와 장남부부는 부동산을 공동 매입하기도 했지만
이 부동산은 외동딸부부가 장남부부에게 10만달러의 이문을 붙여
매도한 것으로 나옵니다

그뒤 1986년에 접어들어 다시 큰 규모의 거래가 시작됩니다

외동딸 부부는 1986년 1월 28일 뉴저지 최고 부촌인 알파인의 블록 22 롯 25,
부동산을 매입합니다 

주소는 40 TAMARACK ROAD 알파인으로 
그야말로 그림같은 웅장한 집들이 모여있는 곳입니다

38번지까지는 주소가 있었지만 40번지와 그 뒤 집한채는 
주소를 명시하지 않아 집을 찾을 수 없었고
우편물은 사서함을 통해서 받습니다

이 부동산 매입가격은 60만5천달러 였으며
현재 공시지가만 3백80만 달러에 달합니다



외동딸 부부는 또 같은해 7월 14일
뉴저지 포트리 1636 PALISADES AVE일대[1635 PARK AVE로도 불림]
부동산을 2백55만5천달러에 매입합니다

이 부동산은 뉴저지 포트리에서 잘 알려진 콘도인
아트리움 콘도 바로옆에 있습니다


따라서 2개 부동산 매입에 투입된 돈은 3백15만5천달러였습니다
그러나 1986년12월 19일 포트리소재 부동산 1건을 2백25만달러에 매도함에 따라
1986년 실제 부동산 매입액은 62만5천달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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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락의 외동딸 부부인 정화섭-이명신부부는 1975년과 1977년 집을 구입한뒤
부정축재자 발표직후인 1980년 7월부터 부동산 매입을 본격화합니다

신군부가 부정축재자를 발표한 것은 1980년 6월 17일,
이때 이후락은 울산의 학교등 모두 194억원을 환수당합니다

그러나 외동딸 부부의 미국 부동산 매입은 공교롭게도
부정축재자 발표로 재산을 환수당한 바로 그 다음달부터 급격히 늘어납니다

이후락 외동딸 부부는 1980년 7월 7일
뉴저지주 포트리의 221 메인스트릿 부동산을 매입합니다
매입단가는 22만5천달러였습니다

이후락 사위 정화섭 1980년대 1 -
이후락 외동딸 부부는 1980년 8월 25일
하와이주 호놀룰루의 이라카이 아파트먼트 빌딩 1426호를 매입합니다
매입단가는 34만2천달러였으며 8만여달러를 먼저 지급하고
향후 3년에 걸쳐 매년 8만여달러를 납입합니다 [하와이 부동산 계약서는 이미 공개함]

이후락 외동딸 부부는 1980년 12월 15일
뉴저지 크레스킬 블록 210 랏 25와 랏 26등
나대지 2필지를 매입합니다
매입단가는 18만달러였습니다
훗날 이 나대지 2필지는 이후락 장남 이동진을 거쳐
우리가 잘아는 정치인에게 매도됩니다

이후락 사위 정화섭 1980년대 2 -
이후락 사위 정화섭은 1980년 12월 22일
이후락 장남 이동진과 공동명의로
뉴저지주 포트리 블락 4805 랏 3의 부동산을 매입합니다
매입단가는 11만5천달러였습니다

이후락 사위 정화섭 1980년대 2 -
이처럼 이후락 외동딸 부부는 부정축재자로 재산이 환수당한 다음달부터 시작해
1980년에만 4건의 부동산을 매입합니다
이 4건의 매입금액은 하와이 부동산의 전체금액을 합산한다면
87만달러에 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1981년에 접어들면 그 규모가 더욱 커집니다
내일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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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 직계가족의 미국 부동산 내역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오늘 뉴저지 버겐카운티 등기소를 방문해 부동산 관련 서류 일부를 복사해 왔습니다
서류가 워낙 많아 정리에 시간이 걸리므로 일단 시기를 나눠서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1970년대입니다

이후락 전 부장의 외동딸 부부인 정화섭- 정명신이
미국에 첫 부동산을 구입한 것으 1975년으로 추정됩니다

이들 부부는 1975년 11월 3일 8만3천달러를 주고
뉴저지주 테너플라이 22 LESLIE PLACE 주택을 매입합니다



이들 부부는 이 주택을 2년이 채 지나지 않은
1977년 7월 26일 9만5천달러에 매도합니다

이들 부부는 테너플라이 주택 매도에 앞서
1977년 2월 1일 뉴저저주 크레스킬 주택을 매입합니다

매입가격은 15만3천달러로 1년 3개월전 테너플라이 주택매입때보다
약 2배정도 많은 금액이며
주소는 32 EISENHWER DRIVE, CRESSKILL, NJ 입니다



이들 부부는 뉴저지주 알파인으로 이사가기 전까지 이 집에 거주합니다

과연 1970년대 중후반 8만여달러, 15만여달러의 가치가 어느 정도였을까
1970년대가 미국이민자들에게 허용된 외환반출한도가 70달러에 시작해
백달러로 늘었다가 2백달러까지 가능했다고 하니 매우 큰 돈임에 틀림없습니다

1970년대 부동산 거래는 뉴저지 버겐카운티의 경우
2건 매입, 1건 매도 였습니다

매우 특이한 것은 이들 외동딸 부부의 부동산 거래가 1980년 초부터 
급격하게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매입건수는 물론이고 한건당 금액도 크게 늘어납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시해사건을 계기로 정권을 찬탈한 신군부는 
광주민주화운동때인 1980년 5월 16일 김종필 이후락등을 연행합니다 

약 한달간의 조사뒤 1980년 6월 중순 이후락이 1백94억원정도의 
부정축재를 했다고 발표합니다 

그러나 바로 이 이후부터 이후락 직계가족, 외동딸 부부와 장남 부부의
미국내 부동산 매입이 크게 늘어납니다 

신군부는 분명히 탈탈 털어 조사해 백94억원 전액을 국고로 환수했는데
이후락 직계가족들이 그 이후부터 미국내 부동산을 대거 사들이는 것은
어떻게 설명이 가능할까요 
정말 미스테리한 일입니다 

스위스은행 비밀계좌에 예치된 돈일수도 있고
혹시 신군부가 이후락의 부정축재액을 축소해 백94억원만 발표하고
군부등에 이후락씨등의 영향력을 의식해 적당한 선에서 타협,
일부는 그대로 돌려준 게 아닌가 하는 의혹도 있습니다 

만약 부정축재액중 백94억원만 환수하고 일부는 다시 돌려주었다면
또 다른 일부를 신군부가 가져갔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부분을 밝혀내는 것이 또 하나의 숙제이며
부정축재 조사를 담당한 전두환등이 입을 열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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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 재산을 둘러싼 소송이 진행되면서 며느리, 외동딸에 이어
차남 김정우도 법정진술을 하게 됩니다

김정우는 외동딸과 같은 날인 2003년 9월 12일 작성된 진술서를 통해
외동딸과 같은 주장을 펼칩니다

형 정한이 유언장 존재를 너무도 잘 알았으며
그동안 한번도 이의를 제가한 적이 없었다 등의 내용입니다

또 형이 결혼뒤 분가했지만 1988년 플로리다로 떠나기 전까지
알파인과 포트리등 집에서 5분 , 많게는 15분 거리에 살아서
매우 친밀했다고 진술했습니다

유언장 복사본 문제에 대해서도 김형욱 실종뒤
변호사가 두터운 종이뭉치를 나눠 줘서
왜 이런 걸 주나 하며 의아해 했던 적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형이 유언장 존재를 알지 못했다는 큰 며느리 주장은 잘못된 것이며
형이 유언장 내용을 알았지만 재산에 대해 한번도 이의제기를 하지 않았다는 요지였습니다


김형욱 재산분쟁 2남 진술 6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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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의 외동딸 부부뿐 아니라 장남 이동진-서옥로 부부도
미국에 적지 않은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외동딸 부부가 장남 부부보다는 부동산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후락 전 부장의 장남 이동진씨는 몇년전 작고했으며 
동진씨 작고뒤 서정귀 호남정유 회장의 딸인 옥로씨는 뉴저지에 새 집을 구입했습니다

이옥로씨는 2007년 3월 2일 뉴저지 테너플라이에 2백15만달러의 집을 매입했습니다
이 매입계약서는 뉴저지 버겐카운티 등기소 디드 제9271권 제47페이지에 첨부돼 있습니다

이들 부부는 외동딸 부부와 같은 시기인 1975년 첫 집을 구입했으며
1980년에는 외동딸 부부와 함께 하와이 호놀룰루 이라카이 아파트를 매입했었습니다

지난 9월 29일 뉴저지 버겐카운티 등기소에서
이동진 이옥로씨의 부동산 거래서류를 조회했으나
역시 그양이 만만치 않아 현재는 목록만 가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조만간 관계서류를 확보해 공개하겠습니다

이동진-옥로 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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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락의 외동딸 부부인 정화섭 - 명신씨 부부가 미국에서 많은 부동산 거래를 했습니다

지난 9월 29일[2009년 9월 29일] 뉴저지 버겐카운티 등기소를 방문해
검색컴퓨터로 CHUNG WHA SUP , 즉 사위 명의의 부동산관련 서류를 조회했었습니다

이 버겐카운티 단 한지역에서만 관련 서류 백3건이 검색됐습니다
물론 부동산 매매계약서뿐 아니라 등기소에 제출된 매매관련 다른 부속서류를 포함한 것입니다만
DEED [매매계약서;매입-매도 포함]만 40여건이었습니다

이후락 사위 버겐카운티 부동산관련 서류 목록
이후락 사위 버겐카운티 MMGK 부동산관련 서류 목록

버겐카운티등기소는 내부 검색컴퓨터로 서류를 확인한뒤
직접 문서고에서 해당 서류를 찾아 복사등을 해야 합니다

백3건이라면 한서류가 2장으로만 돼 있어도 2백페이지요
3장으로 돼 있다면 3백페이지가 되는 방대한 분량입니다

당시 백3건이 검색되는 것을 보고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
리스트만 출력시키고 서류확보를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추후에 2-3일 날을 잡아 서류를 복사해 보고자 마음먹었지만
아직 실행에 옮기지 못했습니다

차차 공개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이후락 자녀들이 재벌 일가와 결혼, 재벌의 돈으로 미국의 부동산을 사는데
왜 왈가왈부하는가 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 부분은 프레이저 청문회등에서 이미 나왔듯이 스위스 비밀계좌와
일정부분 관련이 있고 '부정축재자'로 발표된 이후락의 돈과도
연관성이 있다는 의혹이 짙기 때문입니다

아래 동광출판사가 출판한 '정풍 6권 - 김종필과 이후락의 떡고물'
한부분을 스캔해서 올립니다 [동광출판사의 양해를 바랍니다 ]

김종필 이후락 떡고물 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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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락 장남은 이동진으로 서정귀의 딸 서옥로[미국부동산 서류에는 '이옥로'로 표기됨]와 혼인합니다

이동진은 몇년전 작고했습니다
이후락의 장남 이동진-옥로 부부도 하와이에 콘도를 매입합니다

이들 부부가 매입한 콘도는 이후락의 외동딸과 사위인 정화섭-명신 부부가 매입한 콘도와 동일한
하와이 호놀룰루 와이키키해변에 인접한  ILAKAI APARTMENT 였습니다

이들 부부는 1980년 12월 12일 이 콘도의 1625호를 매입합니다
세금을 백75달러 납부한 것으로 미뤄 매입가는 17만5천달러입니다

이동진 이옥로 하와이 매입
매입계약서에 기재된 이들 부부의 주소는
7 GLENWOOD COURT, TENAFLY, NJ 07670 입니다
이 집에 대해서는 추후 알아보겠습니다

결국 정화섭-명신 부부가 1980년 8월 25일 이 콘도 1426호를
이동진-옥로 부부가 4개월뒤인 1980년 12월 12일 1625호를 구입함으로써
와이키키해변에서 가장 유명한 콘도였던 이라카이 아파트에 
이후락 직계가족이 1980년 두채의 콘도를 매입한 것입니다 
 
다른 고관대작들도 이 콘도를 매입했다는 소문이 무성합니다만
워낙 오래전이고 현재 소유주가 많이 바뀌어서
이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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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남북 공동성명의 주역, 박정희 대통령 비서실장, 중앙정보부장등으로 잘 알려진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이 조금전 한국시간 2009년 10월 31일 오전 숨졌다고 합니다

이후락은 김대중 납치사건의 주역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7.4 남북공동성명의 정지작업을 위해
김일성을 만나러 평양을 방문했을때 '청산가리를 품고 갔다'고 증언해 충격을 주기도 했습니다

또 여러차례 공직을 이용한 부정축재자로 지목된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후락의 별세로 '85년 영욕의 세월'등 그의 공과가 자세하게 알려지고 있으므로
저는 그의 직계가족들의 미국 부동산 내역에 대해 알리고자 합니다

이후락의 별세에 대해 망자에 대한 예의를 갖춰야 하겠지만
대통령 비서실장, 중앙정보부장등을 지낸 간과할 수 없는 공인이며,  
한국 현대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므로
엄정한 평가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부동산 내역을 공개합니다

한국인의 미국 부동산 소유를 추적해 보면 미국 부동산 소유가
한국의 권력부침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김형욱이 가장 먼저 등장하고 그뒤 김형욱이 실각한뒤에는
그 뒤를 잇는 이후락이 나타나고 그 뒤에는 10 26의 주역들이 나타나는 형상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할 인물은 이후락으로 그의 직계가족,
즉 자녀들의 미국부동산 매입은 쉽게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고
다른 사람들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이들은 김형욱과 한국의 재벌일가가 살고 있는 뉴저지주 알파인에 호화주택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뉴욕 맨해튼의 대형빌딩, 퀸즈의 빌딩, 최근에는 뉴저지주 엣지워터의 대지와 주택을 구입하는등
부동산 규모는 최소한 3천만달러에서 5천만달러에 달합니다

이후락의 가족중 외동딸과 사위, 그리고 이미 작고한 큰 아들과 생존한 며느리가
미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오늘부터 차근 차근 살펴보겠습니다

요즘 포털사이트등에서 살펴보면 이후락은 아들만 3명을 둔 것으로 나타나지만
외동딸이 있었습니다

이 외동딸 명신이 정화섭씨와 결혼했고 이들 부부는 적어도 1975년부터 미국에 체류하기
시작합니다

이들 부부가 가장 먼저 소유한 부동산은 뉴저지주 테너플라이의 주택입니다

주소지는 22 LESLIE PLACE, TENAFLY, NJ로 1975년 11월 3일
8만3천달러 에 이 주택을 구입합니다

이후락사위 테너플라이 1975
이후락씨 딸 부부는 또 1980년 8월 25일 하와이 호눌룰루의 와이키키 해변에서
가장 인접한 ILAKAI APARTMENT [이라카이 아파트]를 매입합니다

와이키키 서쪽 해변앞 콘도는 약 10채 정도로 그중에서 해변과 가장 가깝고
가장 먼저 세워진 콘도가 바로 이 이라카이 아파트이며
이중 가장 최근에 세워진 것이 노재헌, 조현상,한병기등이 구입한 THE WATERMARK 콘도입니다

이들 부부가 구입한 콘도는 이라카이 아파트 1426호였으며 매입가격은
1980년 당시로는 큰 돈인 34만2천달러 였습니다

이들 부부는 9만9천여달러를 다운페이먼트로 선지불한뒤 남지 24만2천여달러를
3년에 걸쳐 지불했습니다

한진 일가등과 함께 이후락씨 직계가족이 사실상 하와이 투자의 원조인 셈입니다

이들 부부의 당시 주소는 32 EISENHWER DRIVE CRESSKILL NJ 였으며
이 주택은 이들부부의 소유였습니다
이 집에 대해서는 내일 다시 설명하겠습니다

이후락 사위 정화섭 하와이 15 003 1174541
현재 이들 외동딸 부부가 살고 있는 집은 뉴저지 알파인에 있습니다

이 주택의 주소는 PO BOX 295, TAMARACK ROAD, ALPINE, NJ 로
알파인 다른 주택들처럼 번지 없이 사서함 번호로 표시됩니다
지적도상으로는 알파인 블록 22 랏 25입니다

대지가 2에이커, 약 2천4백여평인 이 주택의 가격은 3년전인 2006년 뉴저지 버겐카운티 정부가
고시한 공시가격만 3백78만천9백달러 입니다

공시가격이 시세에 한참 못미치는 점을 감안하면 현시세가 최소 6백만달러가
넘는다는 것이 부동산전문가들의 견해입니다

이후락 사위 알파인 주택
또 이들부부는 MMGK LLC 라는 법인을 설립해 지난 2007년 4월 13일
뉴저지주 에지워터의 땅을 구입합니다
매입계약서에 기재된 MMGK LLC의 주소는 바로 이들부부의 알파인 집 주소입니다

이땅의 매입가격은 무려 6백90만달러 였으며 양도세만 8만9백여달러에 달했습니다

이후락 사위 엣지워러 2007
그이전인 1987년 이들 부부는 MONDA ASSOCIATES 라는 법인을 설립해
1987년 8월 24일 뉴욕 맨해튼 한복판의 빌딩을 매입합니다

이 빌딩의주소는 172 MADISON AVE, NEW YORK, NY 으로
매입가격은 무려 7백20만달러 였습니다

이후락사위 메디슨 건물 매입 1987
이 빌딩을 팔때 위임장서류를 통해 MONDA ASSOCIATE의 주인이
이후락의 외동딸 부부 정화섭-정명신[이명신] 임이 드러났으며, 매도서류에도 정화섭이라는 이름과 서명이 있으며
2002년 4월 2일 매도시 가격은 8백97만5천달러 였습니다

이 빌딩은 2007년 다시 다른 주인에게 팔리는데 그때 가격이
천5백90만달러였으므로 현시가가 천 7백만달러정도로 추산할 수 있습니다

이후락사위 메디슨 건물 매도 2002
이들 부부는 또 이 빌딩 매입직전에 뉴욕 퀸즈의 대표적인 한인타운인
플러싱 메인스트릿에 빌딩을 매입합니다

빌딩 매입일자는 1987년 6월 10일이며
빌딩주소는 59-10 MAIN STREET,
매입시 법인이름은 M.G.&K ASSOCIATES 였습니다

매입가격은 2백20만달러 였습니다

이후락사위 플러싱빌딩 매입 1987
이후락사위 플러싱빌딩 매도 1994
이후락사위 플러싱빌딩 매도시 위임장 1994

이후락씨 외동딸 부부는 이외에도 수십차례의 거래를 통해 주택과 빌딩을 사고 팔았습니다
이후락씨 외동딸 부부의 일부 부동산이 이정도입니다

그의 아들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큰 아들과 작은 아들도 미국에 부동산이 있으며
아들의 부인이 몇달전 한국에서 상장 기업체를 인수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계약서 스캔등이 끝나는 대로 그 내역을 차근차근 밝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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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광출판사가 출판한 정풍 6권 '김종필과 이후락의 떡고물' 이란 책에 따르면

"이후락씨는 자신이 중앙정보부자에 재직할때 사위인 정화섭을 1972년12월
국제문제 담당 국장으로 임명했다 박정희의 질책을 받고 물러나게 하기도 했습니다

또 미국정유회사인 G사가 1969년 8월 21일 스위스 유니언은행 서정귀씨[이후락 사돈] 명의로
20만달러의 리베이트를 송금하자 유니언은행은 이돈의 입금사실이 기재된 구좌명세서를
 1969년 9월 2일 이후락의 사위인 정화섭에게 발송함으로써 
이후락씨 사위인 정씨가 이후락씨의 부정축재 자금을 관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약 30년전인 1979년 박정희 시해사건이 발생하자 권력을 찬탈한 신군부는
이듬해 광주민주화운동이 발생하자 이를 덮기 위해 부정축재자 조사에 나서
1980년 6월 19일 권력형 부정축재자 10명에 대한 수사결과를 발표합니다

이 발표에 따르면 부정축재액은 김종필이 2백16억원, 이후락은 백94억원, 이세호 백 11억원등이었습니다
이후락과 관련해 1977년 로스앤젤레스에 빌딩을 매입했다는 소문에 대해 계엄사령부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며 이부분은 고위관리를 헐뜯기 위해 조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했습니다"
대충 이러한 부분과 함께 부정축재 내역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저 또한 LA의 빌딩 매입소문을 듣고 확인을 진행중이지만
아직은 사위나 며느리 이름의 빌딩 매입 계약서를 찾지는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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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락03-단독보도 이후락 금고지기 은행지점장 출신 S씨 실종미스터리

2008.07.23 16:13 | 정보&관심 | 진의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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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보도 이후락 금고지기 은행지점장 출신 S씨 실종 미스터리

‘돈세탁 의혹’ 누가 거짓 사망신고 했나?

▣ 글 윤지환 기자 jjh@ilyoseoul.co.kr

2008-07-01 10:46:38

지난 1970년대 박정희 정권 당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 그는 권력의 중심에 있으면서 막대한 비자금을 빼돌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일요서울은 지난 호<7월 3일자 739호>를 통해 전 상업은행(현 우리은행) 지점장이었던 S씨가 이 전 부장 비자금 조성 의혹의 핵심인물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후 일요서울은 S씨의 행방을 추적했다. S씨가 이 비자금 의혹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확인결과 S씨는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망증명서를 살펴보면 S씨는 1997년 10월 16일 위암으로 사망한 것으로 기록돼 있었다. 이렇게 되면 직계 가족 등을 통해 아직까지 영향력을 잃지 않은 이 전 부장이 과거에 비자금을 얼마나 어떻게 빼돌렸는지 확인할 길이 없어진다.

그러나 S씨의 부인인 O씨는 남편이 아직 죽지 않고 어딘가에 살아 있다고 확신하고 있어 그 내막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키고 있다. 놀라운 것은 O씨가 상당한 근거를 통해 이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전 부장의 막대한 비자금을 둘러싸고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는 검은 커넥션. 그 실체를 가리고 있는 흑막을 들춰보았다.

S씨는 60년대 후반 전 상업은행 울산지점장을 거친 뒤 70년대 초 같은 은행 종로지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S씨의 부인인 O씨는 “남편은 전북이 고향이다. 그 지역에서 은행에 입사했다”며 “당시엔 일반적으로 은행지점장은 출신지역을 중심으로 자리를 옮기는데, 어느 날 느닷없이 울산으로 발령이 나서 의외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부인 O씨도 모른채 누군가에 의해 접수된 S씨 사망신고서 사본(왼쪽). 지인 결혼식장에 나타나 방명록에 이름과 부조금을 적었다. (오른쪽)


S씨 막대한 재산 빼돌려

S씨가 본격적으로 수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한 것은 울산지점장이 되고 나서 부터다. 알 수 없는 어음을 수도 없이 발행하고 부동산을 사들이는데 열을 올렸다. 생활도 방탕해졌다. 가정을 돌보지 않고 나중에는 거의 집에도 들어오지 않았다고 O씨는 전했다.

O씨는 “그렇다고 집에 돈을 갖다 주는 것도 아니었다”며 “나는 약국을 운영하며 혼자 가정을 꾸렸다. 그리고 일수놀이와 부동산 투자를 통해 재산을 조금 모았는데 남편은 이것 중 일부를 빼앗아 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S씨가 울산지점장으로 근무하는 동안 주로 이 전 부장의 재산증식과 비자금 조성 업무를 도맡아 한 것 같다고 O씨는 말했다. 이에 대한 근거로 O씨는 이 전 부장의 전 운전기사로 실질적 자금 관리인으로 알려진 박모씨와 S씨와의 미스터리한 커넥션을 들었다.

O씨는 “남편은 은행지점장으로 근무하면서 상당한 재산을 모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의 호사스런 생활에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했다. 주변인들로부터 남편의 재산이 서울 부동산 투자에 쓰였다는 소릴 자주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박씨가 소유한 강남의 빌딩들 중 일부는 남편으로부터 매입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O씨는 이 과정에서 남편이 O씨의 재산까지 몰래 팔아치웠다고 분개했다.

 

O씨는 “남편이 자신의 재산만 팔아치웠다면 지금 와서 내가 문제 삼을 게 없다. 하지만 남편은 내가 애써 모은 재산까지 다른 사람에게 불법적으로 팔아넘겼다”며 “강남의 OO빌딩과 △△빌딩이 서 있는 땅 등은 분명한 내 재산이다. 내가 약국을 운영하며 재테크를 위해 사 놓은 땅을 남편이 나 몰래 팔아치웠다. 내 인감도장도 없고 내가 쓴 계약서도 한 장 없다”말했다.

O씨는 “나는 이 사실을 한참 세월이 흐른 후에야 알게 됐다”며 “그래서 남편으로부터 내 땅을 사들인 사람이 누구인지 일일이 찾아다니며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계약서가 어떤 것인지 확인하고 다녔다”고 그 동안의 조사내용을 설명했다.

O씨는 이렇게 조사하는 동안 깜짝 놀랄 사실을 알게 됐다. S씨가 특정인 한 명에게만 부동산을 팔았으며 그 매입자는 다름 아닌 박씨였던 것이다.

박씨는 70년 초반과 중반에 걸쳐 집중적으로 강남땅을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는 이 전 부장이 중앙정보부장으로 권세를 떨치고 있었고 S씨가 서울 종로지점장으로 근무할 때다.

O씨는 “박씨와 전화연결이 된 적 있어 내 땅을 어떻게 소유하게 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박씨는 S씨로부터 정당하게 매입한 땅이라고 주장했다”며 “이에 내가 ‘어떻게 내 땅을 그렇게 많이 가지고 있을 수 있냐. 그렇다면 그 계약서를 보자’고 말했다. 그랬더니 사본을 보내주겠다고 해놓고 아직까지 소식이 없다. 연락이 완전 두절됐다”고 말했다.

O씨에 따르면 이 전 부장의 집을 방문한 직후 박씨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는 것이다.

홀연히 사라진 S씨 어디로?

S씨는 언제부턴가 집에 아예 들어오지 않았다. O씨는 몇 번이고 서류상으로 부부관계를 정리하려 했으나 주변 친지들의 만류로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다만 S씨에 대한 소문은 계속 듣고 있었다. 1977년 은행에서 퇴직한 S씨는 상당한 호사를 누렸다고 O씨는 말했다.

수 년 전 O씨는 남편에 대한 소식 하나를 접하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 소식은 남편이 사망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남편에 대한 장례식은 없었다. O씨가 이 소식을 접했을 땐 이미 모든 장례절차가 끝나고 묘소가 만들어진 후였다.

O씨는 남편이 묻혔다는 묘소를 찾아가 보았다. 여기서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묘소가 있다는 선산에 찾아 갔지만 어떤 묘소가 남편의 것인지 찾을 수가 없었다. 이에 사람들에게 물어 보았지만 남편의 장례를 치렀다는 이들과 사망신고 증명인들의 말이 달라 어떤 게 진짜 남편의 묘소인지 찾을 수가 없었다.

자녀들에게 물어 보았으나 그들도 아버지의 묘소가 어디 있는지 몰랐다. 자녀들은 아예 아버지의 죽음에 관심조차 없어 보였다.

이에 남편의 시신을 매장했다는 이들을 찾아보았으나 그들이 누군지 알 방법이 없었다. O씨는 뭔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판단, 사망증명서를 확인해 보기로 했다.

증명서엔 S씨가 전북 정읍 ○○면에 위치한 집에서 1997년 10월 16일 위암으로 사망한 것으로 돼 있었다. 이상한 것은 사망신고 날짜다. 이 해에 사망한 S씨에 대한 사망신고는 2002년 4월에서야 이뤄져있었다. 신고인은 둘째딸인 A씨로 돼 있었다.

S씨와 O씨 사이엔 아들 2명과 딸 3명이 있다. 이들 중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자녀는 단 한명도 없다는 게 O씨의 주장이다. 그만큼 아버지에 대해 정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O씨는 사망신고 경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O씨는 “사망신고가 이뤄진 날짜도 실제 사망일과 차이가 많이 나고 A는 아버지 사망신고를 하면서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며 “그래서 다른 형제들은 아버지의 죽음을 몰랐다”고 말했다.

O씨는 둘째 아들이 써준 이에 대한 확인서까지 갖고 있었다. 확인서엔 A씨가 자신의 연락처를 알고 있었음에도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알려준 적 없어 직계 가족으로서 시신확인절차도 시행되지 않았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O씨는 “나는 남편이 죽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증거도 있다”며 “남편은 재산문제와 관련해 박씨와 이후락씨 그리고 권력층 인사들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내 생각엔 어떤 목적을 위해 허위로 사망신고를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사망 신고는 분명 거짓말


그는 한 장의 복사본 종이를 내밀었다. 그것은 97년 사망한 것으로 돼 있는 S씨가 98년 11월 가까운 지인의 결혼식장에 나타났다는 증거, 즉 방명록이었다. 그 방명록엔 S씨의 이름과 부조금액수가 적혀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사망신고를 한 A씨에게 확인해 보았다.

A씨는 어머니 O씨에 대한 증오심으로 가득했다. A씨는 친자식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어머니에 대해 험한 말을 쏟아내며 “그 여자는 돈에 미친 사람이다. 오직 돈 밖에 모른다”며 “아버지도 그 여자가 죽인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여자는 아버지의 모든 것을 빼앗고 암에 걸리게 해 죽게 만들었다”고 격분한 음성을 토했다.

아버지 S씨의 사망신고에 대해 A씨는 “아버지를 돌봐주던 친척이 사망사실을 알려왔고 그래서 신고했다”며 “형제들에게 알리지 않은 이유는 그들과 사이가 좋지 않아 별로 알리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O씨는 “나는 평생 자식들을 홀로 키우며 버둥거리며 살아왔다. 남편의 도움을 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며 “내가 남편을 찾아 나선 이유는 사실상 남남임에도 남편임을 내세워 내 재산을 편취한 남편으로부터 내 재산을 돌려받기 위해서다. 어떻게 내 땅이 권력층들의 손으로 넘어가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반드시 진실을 가려낼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O씨에 따르면 최근 S씨는 중국에서 목격됐다. 중국에서 S씨를 만난 O씨의 지인은 S씨가 건강하게 중국에서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고.

S씨가 팔아치운 O씨의 땅은 종로와 강남 등 노른자위의 땅이다.

그 위에 세워진 빌딩의 시가를 감안하면 그 가격이 수천억 원이 훌쩍 넘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