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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없음2010.11.13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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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재산의 몰수및 회복에 관한 특례법 제정


부패재산의 몰수 및 회복에 관한 특례법

부패범죄 목록
핫이슈 언론보도2010.09.04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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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사(時空社). 1990년 만들어져 올해 20년이 된 꽤 잘나가는 출판사 이름이다. 600명이 넘는 직원에 매출액이 2000억원을 넘는 커다란 회사다. 이 회사가 더 유명해진 건 오너 때문이다. 전재국(全宰國·51)씨. 제5공화국의 문을 연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이 바로 그다. 지난 1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출판단지에 있는 시공사 건물로 찾아가 그를 인터뷰했다. 전직 대통령의 아들로서, 국내 굴지의 출판사 사장으로 살아온 그의 삶을 듣고 싶었다.
그는 출판인으로서는 크게 성공한 셈이지만 출판계의 작가들도, 언론도 그와 맞대면하기를 좀 꺼렸던 게 사실이다. 아직도 논란이 계속되는 그의 아버지에 대한 부담 때문일 것이다.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는 그를 더 만나고 싶었다
원본출처 http://news.joins.com/article/719/4432719.html?ctg=1200&cloc=home|list|list1
● 회사 이름이 특이하게 시공(時空·시간과 공간)이다. 소설가 이병주씨가 지어줬다던데 맞나.

“이름은 내가 지었다. 1989년에 아버지와 함께 백담사에 있을 때 지었으니 불교와 관련이 있을 거다. 작고한 소설가 이병주 선생이 당시에 백담사에 자주 들렀는데 시공사라는 이름으로 출판사를 하겠다니까 말리더라. 그런 이름의 출판사가 옛날에 망했다면서. 그런데 며칠 뒤 전화를 하셔서 ‘전군아, 곰곰 생각해 보니까 벼락 맞은 대추나무가 두 번은 안 맞는다니까 시공사도 괜찮겠다’고 하시더라.”

● 원래는 군인이 되고 싶었던 걸로 안다.

“어려서부터 군인만 보고 살았다. 푸른 제복이 멋있어 보였다. ROTC(학군장교)를 하려고 했는데 포기했다. 제가 79학번이데, 현직 대통령 아들이 군대 가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겠나. 하지만 서울에서 대통령 아들로 지내는 게 너무 답답했다. 어떻게 해서든 유학을 가려고 생각했다. 군대는 석사 마치고 돌아와서 파주시 법원리에서 석사장교를 했다.”

● 얼마를 가지고 출판사를 시작했나.

“5000만원이다. 서울 동숭동에서 직원 2명으로 시작했다. 삼성전자에 다니던 대학 동창도 합류했다. 그 친구가 지금 계열사 사장이다. 처음엔 일본 책을 다루려고 했다. 일본이 출판이 대단하다고 해서 일본에 가서 배낭 메고 서점을 돌아다녔다. 일본말도 잘 못하면서 하루 종일 서점에 앉아서 책 구경을 했다.”

● 5000종 정도의 책을 냈는데 뭐가 가장 기억에 남나.

“첫 번째 낸 책이 사르트르가 쓴 『아랍과 이스라엘』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냈다. 그땐 책만 만들면 교보문고에서 팔아주는 줄 알았는데, 대형 서점에 들어가는 것도 큰일이더라. 마침 무슨 전쟁이 나서(1차 이라크 전쟁을 지칭) 꽤 많이 팔렸다. ‘출판도 괜찮은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 최대 히트작은 어떤 것인가.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다. 100만 권을 넘게 팔았다.”

● 존 그리샴 소설도 많이 내지 않았나.

“그리샴은 원래 지명도가 별로 없었다. 첫 번째 책이 한국에서 나온 뒤, 두 번째 작품을 다른 출판사에서 검토하다 포기해서 우리가 계약했다. 그때는 하루에 주문 1000권이 들어오면 기분 좋아서 회식하고 그럴 때다. 그리샴 책은 책마다 10만 부, 20만 부씩 나갔다. 초반에 우리 출판사가 자리 잡힐 때까지 도움을 많이 받았다.”

● 어떤 책을 낼지 누가 결정하나.

“직원들이 다 같이 읽어보고 의논해 결정한다.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도 무명작가의 책이었다. 그리샴 소설과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잘 나가면서 내 스스로 흥행감각이 있다고 오판했다. 그래서 수업료를 꽤 치렀다. 책은 마케팅을 잘하면 히트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대부분 히트작을 낸 출판사들이 오래가진 않더라. 그래서 스테디셀러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린이물을 생각한 것도 그때다. 어린이 책이 지금 매출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어린이 책을 만들 때는 우리 애들이 어려서 코드를 맞출 수 있었다. 이젠 못한다. 내가 젊은 직원들의 감각을 못 맞춘다.”

● 출판사를 아버지의 비자금으로 시작했다는 의혹이 있다.

“우리 출판사 때문에 번역 로열티가 무지하게 올랐다는 소문도 있었다. 존 그리샴에게 떼돈 주고 번역권을 사왔다는 거다. 제가 명색이 경영학석사(MBA) 출신인데 터무니없이 장사를 안 한다. 오해와 의혹이 많지만 일로 모든 걸 보여주려고 했다. 내 30~40대 시절을 출판사에 쏟아부었다. 시공사는 제 인생과 동의어다.”

● 출판에 대한 철학 같은 게 있나.

“사실은 출판이란 단어 자체가 생명력을 잃고 있다. 종이책만 책이 아니지 않은가. 전자책을 통해 저자와 독자가 바로 소통할 수 있다면 출판사가 왜 필요한가. 음반업계에선 이미 가수가 직접 발매를 한다. 정보기술(IT) 혁명의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는데 어떻게 서핑(파도타기)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이다. 출판사가 직접 콘텐트를 만드는 게 아니기 때문에 결국은 ‘크리에이티브 마인드 네트워크(creative mind network)’를 찾고 만드는 게 생존을 좌우할 것이다.”

●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미국의 ‘스크리브드 닷컴(www.scribd.com)’이라는 회사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보여준다. 기존 출판사는 대개 저자에게 10% 정도 인세를 주는데, 이 회사는 전자책을 만들어주고 저자에게 70%의 인세를 준다. 앞으로 태블릿 PC나 스마트 PC 같은 게 엄청난 파괴력을 가질 것이다. 국내에선 아직 전자책 시장이 부진하다. 교보문고가 1등인데 매출이 연간 50억원이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IT 기기의 종류와 숫자가 늘면 시장도 달라질 것이다. 최근 3~4년간 책을 계약할 때 e-북을 염두에 두고 준비를 많이 하고 있다. 기기 보급이 100만 대를 넘으면 5만 대도 안 되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얘기가 될 것이다.”

● 종이를 기본으로 하는 콘텐트 사업은 끝났다고 보나.

“우리 세대까진 괜찮을 것이다. 그러나 다음 세대는 활자로부터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 책과 글도 호흡이 긴 것보다는 짧은 것 위주로 간다. 여러 패턴의 콘텐트 방식이 공존할 것 같다.”

● 세상이 돌아가는 트렌드를 알기 위해 뭘 하는가.

“보통 하루 2시간 이상 웹서핑을 한다. 밤에 와이프한테 ‘야동 보느냐’는 핀잔을 받기도 했다. 단순한 콘텐트보다는 댓글 같은 반응을 재밌게 본다. 현장에 있는 프로들을 찾기 위해서다. 파워 블로거들이 훌륭한 저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 회사 직원 하나도 채식주의자로 유명해 방송에도 출연한다. 요새는 50세만 되면 직장이 흔들리는데 뭔가 하지 않으면 100세까지 사는 게 지옥일 수도 있다.”

● 파워 블로그들의 책은 성공적인가.

“요리와 인테리어, 빵 만들기 등 취미와 여행·실용서가 인기다. 독자들이 10만 명씩 움직이기도 한다. 옛날에는 문단, 화단 같은 이른바 ‘단(壇)’이라는 게 있었다. 인터넷에 가면 그런 거 없다. 옛날에 강했던 천리안·하이텔·나우누리 같은 건 지금은 없어졌다. 내가 열심히 하면 나는 살고 경쟁업자는 죽는 시대가 아니다. 산업 자체가 동시에 없어지기도 한다.”

● 경기도 연천에서 허브 농장을 하는데 돈 벌려는 비즈니스인가 아니면 개인적인 관심인가.

“둘 다로 보면 된다. 2006년에 시작했다. 총 1만6000평이다. 1년에 7만 명쯤 오는데 내년부턴 수익도 날 것 같다. 우리가 그림책을 워낙 많이 팔아서 그걸 테마로 갤러리 같은 걸 만들려고 했는데 그 아이디어를 허브 농장으로 확대한 것이다. 아이들에게 ‘가드닝’ 체험 같은 걸 해보게 하고 싶다. 허브농장은 내가 평소 해보고 싶었던 것이기도 하다. 기술에 목매지 않고 직접 접하는 ‘로 테크, 하이 터치(Low tech, High touch)’가 필요했다.”

● 당시 언론이 땅투기 의혹을 제기했었는데.

“KTX를 타고 부산 출장을 갔다 오다 TV 보도를 봤는데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 방문한 것보다 내 뉴스가 먼저 나와 어이가 없더라. 물론 그 땅은 가격이 올랐다. 하지만 강남 땅이 더 올랐다. 내가 일주일에 2~3일은 거기서 산다. 시골은 생각보다 할 일이 많다. 잡초도 끊임없이 뽑아야 한다. 새카맣게 타니까 나보고 골프 엄청 친다는데 골프는 거의 안 나간 지 몇 년 됐다.”

● 부인과는 연애결혼을 했나.

“여동생의 동창인데 동생이 소개시켜 줬다. 시카고에서 미술을 전공한 내 딸은 스물여섯인데 직장 다니다 쉬고 있고, 아들은 스물셋인데 공익요원으로 근무 중이다.”

● 자녀들에게 강조하는 가훈 같은 게 있나.

“나에게 기댈 생각 하지 말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 아이들한테 출판사를 물려주고 싶은 생각이 없다. 책을 좋아하지도 않는데 그걸 만들려면 괴롭지 않겠나. 애들이 자기 힘으로 당당한 사회인이 돼서 ‘저 사람이 있으면 좋다’라는 말을 들으며 살면 좋겠다.”

● 이름이 ‘재상 재(宰)’에 ‘나라 국(國)’인데 정치할 생각은 없나.

“엄숙하게 사는 게 내 스타일과는 잘 안 맞는다.”

옛 청와대 생활을 말하다
“아버지 전두환, 손녀 업어주느라 출근 늦기도”


“아버지가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전재국 사장은 부친인 전두환 전 대통령과 얽힌 비화(秘話)와 소회를 거침없이 털어놓았다. 그는 “커다란 아버지 밑에 있다 보니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 많이 만들어지더라”고 했다.

●무슨 뜻인가.

“좀 다른 인생을 택할 수도 있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했다. 태풍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느낌이었다. 89년 백담사에서 생각 많이 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앞으로 이 일은 어떻게 결말이 날까…. 내 인생도 중요하니 뭔가 가치 있고 보람 있게 살아보고 싶었는데, 힘든 상황이 많았다. 그런 점에서 요즘은 편하다.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지만 출판하길 잘한 것 같다.”

●부친은 정치를 한 걸 후회하진 않나.

“그러시지 않는 것 같다.”

●대통령 아들로 사는 게 그리 힘든가.

“너무 힘들었다. 처음에 청와대도 부모님만 가면 되는 줄 알았다. 대학생 때 연애하는데도 늘 경호원들이 따라다녀 스트레스가 컸다. 따돌리고 도망도 가고 그랬는데 감시하는 인원만 늘어나더라. 청와대는 너무 휑해서 가족들끼리도 인터폰하고 혼자 자는데 외롭고 심심했다. 집에 가면 경비원들이 플래시로 얼굴을 확인해 소주 한 잔 마시고 들어가기도 불편했다. 20대 초반을 유쾌하지 않게 살았다. 그런데 아버지가 청와대에서 나오시면 편하겠다 했는데 세상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더라.”

●‘권력’이 뭐라고 생각하나.

“너무 어려운 질문이다. 나는 청와대에서 같이 살았던 동거인에 불과하다. 청와대 관저 2층은 출입구가 식자재가 들어오는 주방 옆 쪽문으로 돼 있다. 왜 그런 데 만들어 놨는지 처음엔 너무 이상했다. 밤이 되면 셔터를 내려 라면도 못 끓여 먹었다. 나는 권력을 행사해 보지 않았지만 ‘이 자리가 뭐가 좋아서 다들 오려고 그럴까. 여기서 사는 게 행복하지 않은데’라고 생각했다. 예전처럼 가족끼리 밥 먹고 같이 떠들고 그런 게 즐거운데. 청와대에선 죽어나간 사람은 있어도 태어난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내가 85년에 딸을 낳았을 때 아버지가 너무 좋아했다. 청와대 생긴 이후 처음 태어난 생명이라고. 아버지가 손녀딸 업어주느라 출근이 늦어진 적도 있었다.”

●동생들은 어렸으니 더 힘들었겠다.

“청와대 들어간 뒤 동생들 보면서 ‘떠날 때까지 평범한 상식을 유지해야 하는데’라고 생각했다. 거기선 자기가 직접 하는 게 없다. 기사와 비서가 있어서 그렇다. 막내 재만이는 초등학생인데 친구도 못 데려오고 혼자 자기 방에 있어 안돼 보였다. 동생들이 사회에서 정상적으로 직업을 가지고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대통령의 집안에서 그러기가 쉬운 게 아닌 것 같다. 다른 전직 대통령의 자녀분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누구나 너무 큰 아버지가 있으면 편치 않다.”

●요즘은 가족들이 자주 모이나.

“일요일마다 연희동 부모님 집에서 형제들과 다 만난다. 우리는 교회에 간다고 표현한다.(웃음) 아침 같이 먹고 오전에 배드민턴 한 게임을 치고 저녁까지 있다 온다. 애들도 다 데리고 간다. 그게 우리 집안 룰이다. 미국에 사는 막내는 MIT대학 석사를 마치고 자기 장인 회사에서 근무한다. 여동생 효선이는 서경대 교수다. 아버지는 요즘 바쁘시다. 결혼식 부지런히 다니고 붓글씨로 축사도 써주고. 그런데 후배가 죽으면 거기는 기분이 안 좋다고 안 가는 것 같다.”

●아들이 생각하는 아버지의 리더십은 뭔가.

“일요일마다 아버지가 집에 오라고 위협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됐다. 아버지는 남자답다. 나는 그런 점에서 아버지를 안 닮았다. 처음 회사를 시작한 뒤엔 사람들 앞에서 말을 못해 힘들었다. 아버지는 주위에 사람이 많은 걸 좋아한다. 용모는 둘째가 제일 닮았다. 머리카락이 제일 없으니까.(웃음) 형제들이 성격은 아버지를 별로 안 닮은 것 같다.”

●아버지를 백담사로 보낸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서운한 감정은 없나.

“청와대가 무서운 데라는 생각이 든다. 제일 친했던 노 대통령과도 퇴임 뒤 그렇게 되고…. 권력이 뭔지,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고 그랬으면 좋지 않았을까. 출판계에선 70~80대에도 ‘누구 누구야 놀자’라면서 재밌게 사는 분이 많다. 우리 아버지는 60세가 되기 전에 은퇴했고 재밌게 못 산 거 같다. 남자로서 안됐다. 아버지는 워커홀릭이어서 잘 못 노신다. 달리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j 칵테일 >> 백담사 계곡물 속에서 시작된 시공사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8년 정권이 바뀐 뒤 강원도 백담사로 유배를 떠났다. 대학생들이 조직한 ‘전두환 체포 결사대’가 연일 서울 연희동의 사저를 습격하고, 야당이 죽기살기로 공세를 펴던 와중이었다. 차기 대통령이 된 노태우 대통령이 해외로 나가기를 거부하는 전임자를 산중으로 쫓아보내는 고육책을 택한 것이다.

백담사 인근의 계곡.장남인 전재국씨는 그때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와튼스쿨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받은 뒤 공공정책학으로 2년간 박사 과정을 마친 상태였다. 지도교수와 캘리포니아 토지정책 논문을 쓰려고 자료를 준비 중이었던 그는 백담사로 달려가 부친을 만났다. 아버지는 “오지 마라”고 펄펄 뛰었지만 아들은 갔다. 89년 어느 여름날 그는 술 한잔 걸치고 백담사 앞 계곡물에 몸을 담근 채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갈까” 하고 막막한 고민을 하던 중이었다. “마침 집사람이 애들을 슬슬 학교에 보내야 하는데 직업을 뭐라고 적어야 하느냐고 묻더라. 박사과정? 무직? 참 갑갑하더라.”

그렇게 고민하는데 갑자기 출판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고 한다. 그래서 직원 두 명으로 시작한 게 시공사다. “인생에서 어떤 일들은 참 미스터리하게 이뤄지는 것 같다. 내가 출판사 한 것도 그렇고.” 기자는 그의 대답이 조금 실망스러웠다. ‘아들인 내가 좋은 책을 펴내 아버지가 맺은 시대와의 악연을 풀고 싶었다’는 정도의 근사한 답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렇게 시작한 시공사는 9개 계열사를 거느린 커다란 회사로 성장했다. 어린이 책, 추리소설, SF, 연애소설, 무협소설, 만화 등 모든 장르를 섭렵했다. 그간 펴낸 책의 숫자는 6700만 권. 대한민국 인구의 1.5배다. 출판뿐만이 아니다. 이젠 SBG(시공 북 그룹)로 진화했는데, 단행본과 잡지 등만이 아니라 유통업도 하고, 인테리어 사업도 하고 말 그대로 그룹 형태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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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준 효성사장이 미국에서 부동산을 구입하면서 효성 자금 일부를 가져다 쓴 단서가
검찰에 포착됐다고 전해졌습니다
이처럼 아무도 모를 것 같지만 은행을 통한 자금거래등은 다 밝혀지게 됩니다
공권력이 있는 기관이면 수사를 통해 밝히겠지만
일반인들도 법이 정하는 권리행사를 통해 밝힐 수 있습니다

한가지 자료만 보여드리겠습니다
아래 사진은 김형욱 전 중정부장의 부인인 김영순씨가 사용한 수표로 지차체에 세금을 낸 것입니다
계좌주인인 김씨의 이름이 보이고 이름아래에는 주소, 해당은행, 계좌번호, 수표번호가 다 나옵니다

이 수표는 소송을 통해 밝혀낸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소송이 시작되면 원고 변호사가 법원의 허가를 받아
피고에게 재산공개를 요청하게 됩니다
피고 또한 맞소송을 제기하고 법원허가를 받는다면
소송상대편의 재산공개를 요청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한국의 재산명시제도입니다

피고가 재산을 공개하지 않더라도 변호사는 법원허가아래
이들이 구입한 부동산의 전 주인에게 서피나를 보내
피고에게 받은 부동산 구입대금을 밝히라고 요구했고
전 주인은 자신이 받은 수표를 제출했습니다

변호사는 이 수표에서 유족들의 은행과 계좌번호를 찾고
또 은행에 서피나를 보내 이를 모두 공개하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부동산 전주인이 오래전 수표를 어떻게 보관할까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수표를 입금받은 은행에서 수표카피를 일정기간 보관하도록 법에 규정돼 있어
수표카피는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부동산 전주인을 예로 들었지만
소송대상과 거래관계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개인과 법인을 대상으로
재산 명시를 요청할 수 있습니다
특히 미국에서는 대부분 현금이 아닌 수표로 거래하기 때문에 찾기가 용이합니다

수십만, 수백만달러의 미국 부동산 거래에서
극히 일부 한국인들이 현금 거래를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자기계좌 또는 법인계좌의 수표를 사용하게 되며
이는 고스란히 증거로 남게 됩니다

또 법원 경매를 통해 부동산을 매입할 경우
경매 법정에 매입대금을 수표로 납입하게 되므로
이때는 소송등의 절차 없이도 경매 법정 서류 열람을 통해
누구나 서류에 첨부된 수표사본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세상에 비밀은 없는 것입니다
전직 대통령과 전직 대통령의 자녀, 친인척등이 '비자금'으로 의심되는 돈으로
미국에서 부동산등을 매입했다면
정당한 사유를 바탕으로 국민이 원고가 돼 미국에서 소송을 제기하고
돈의 뿌리를 밝힐 수 있는 것입니다
기업비자금은 주주들이 주주자격으로 소송하면 될 것입니다
시간이 걸릴 뿐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법적 절차를 하나 하나 밟아가며 실체에 접근할 것입니다
조만간 뜻을 같이 하는 분들의 도움을 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소송으로 법정에 제출된 서류는 누구나 열람하고 공개가능합니다
김씨 주소와 은행 계좌번호등은 제가 노란색으로 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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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아 전재용의 지난 2003년 조지아주 애틀란타 주택 매매와 관련, 전두환의 둘째아들 전재용이 일부 서류에
직접 서명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박상아는 지난 2002년 5월 15일 조지아주 아틀랜타  5725 LAKE HEIGHTS CIRCLE, ALPHARETTA GA 30022 에 있는 원패밀리 하우스를 매입했었습니다

이 주택은 2층 건물로 방이 4개 화장실 4개로 1994년 지어진 붉은 벽돌집입니다

주택관련서류에는  박상아 PARK SANG AH 가 2003년 5월 15일 머니 애서니씨로 부터 36만5천달러를 주고 이 집을 구입한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집구입당시 박상아만 나타날뿐 전재용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박상아는 이 주택 구입 6개월뒤인 같은해 11월 7일 자신의 주택을
주소지를 따서 설립한 법인에 단돈 10달러에 넘기면서 전재용의 흔적이
나타납니다

박상아가 주택은 넘긴 법인은 5725 LAKE HEIGHTS CIRCLE TRUST 였으며
이 TRUST의 관리인 즉 TRUSTEE가 PARK YANG JA 씨로 기록돼 있었습니다

조지아주 풀턴카운티 등기소에 보관된 매도서류를 살펴본 결과
박상아가 법인에 주택을 매도한 서류 둘째 페이지에
전재용으로 추정되는 'CHUN JAE' 이라는 사람이 WITNESS로 서명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결국 박상아가 구입한 주택이 전두환의 둘째 아들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에 더욱 신빙성을 더하는 자료인 셈입니다

박상아 전재용은 아틀란타외에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에 2백30만달러상당의 주택도 구입, 소유하고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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