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사찰의혹을 받고 있는 이인규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과 그에게 직보를 받았다는 이영호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은 포항에서 학교를 나왔다. 이 지원관은 포항고(부산대), 이 비서관은 구룡포종고(계명대) 출신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의원,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도 포항 출신이다. 그래서 야당은 "이 지원관과 실세들의 연결 고리가 영일·포항 출신 5급 이상 공무원들의 모임인 영포회(영포목우회)"라고 주장하고 있다.
야당은 또 "5공 때 '하나회' 같은 사조직으로 당장 해체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영포목우회는 "억지 주장이다. 우리를 왜 끌어들이느냐"고 맞서고 있다. 대체 영포회(迎浦會)의 진실은 무엇일까.
원본출처 조선일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7/09/2010070901333.html?Dep1=news&Dep2=top&Dep3=top
이인규·이영호는 비(非)회원, MB·SD는 고문
영포목우회(迎浦牧友會)는 1985년 10월 5일 만들어졌다. 영일에서 '영', 포항에서 '포'를 따고 목민관(牧民官)에서 '목'자와 벗을 의미하는 '우'가 더해져 영포목우회가 됐다. 회원들은 '영포회' 대신 '목우회'라 불렀다.
- ▲ 영일·포항 출신 5급이상 공무원 모임인 영포목우회는 1997년 단 한 차례 회칙과 회원 명단이 담긴 수첩을 발간했다. 1~2년에 한번씩 만나 식사를 함께 하는 비정기적인 친목 모임으로 이후 회원 명부 등을 별도 관리하진 않았 다고 한다.
영포라 부른 것은 과거 행정구역이 영일군, 포항시였기 때문이다. 초대 회장은 이석수 전 경북 정무부지사였고 박명재 전 행정자치부 장관이 총무였다. 설립 당시 회칙이나 정관 같은 건 없었다.
연말 연초 포항 출신 공무원들이 모여 밥 한 끼 하는 자리였기에 회칙이나 정관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고 한다. 회원은 20~30명쯤 됐다. 회칙과 회원 명단이 담긴 영포목우회 수첩은 창립 12년 만인 1997년 4월 만들어졌다.
당시 건교부 국장급이던 최주형씨가 2대 회장이 됐고 내무부 과장이던 박승호(현 포항시장)씨가 총무가 됐다. 영일·포항 출신 공무원 숫자가 꽤 늘어 다른 지역 공무원 모임처럼 회원 명단이나 회칙 정도는 갖춰야 할 것 같아 수첩을 만들었다고 한다.
수첩엔 영포목우회에 대해 "본회는 영일·포항 출신으로 행정각부에 근무하는 5급 이상 공무원으로 조직되어 회원 상호 간의 친목과 우의를 도모하며 향리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포항 출신들로 구성된 은행나무동우회 등 다른 향우(鄕友) 모임도 소개하고 있는데 그 중엔 경북도청에 근무하는 포항 출신 공무원 모임이라는 '영포회'도 있다. 그래서 영포목우회는 '영포회' 대신 '목우회'로 불렸다는 것이다.
- ▲ 영포목우회 회원들은“사무관·서기관급이 대부분인 공무원들의 친목 모임에 불과한데도 현 정권을 위한 사조직으로 매도되고 있다”며“오히려 경력과 전문성이 불투명한 데도 중용되는 영일·포항 인사들과 실세들의 비선 조직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
정회원은 5급(사무관) 이상 공무원이고, 준회원은 6급 이하 공무원 회원을 말하는데 5급 이상 공무원 회원수가 적다 보니 수를 늘리는 차원에서 준회원 조항을 신설했다고 한다.
명예회원은 정회원 10명의 추천을 받은 사람으로 공무원 출신의 정치인, 기업인들이었다. 1997년 당시 정회원 60명, 준회원 20명, 명예회원 24명으로 총 회원 규모는 104명이었다.
정치권에서 영포목우회 회원이라는 의혹을 제기한 이인규 윤리지원관은 1997년 노동부 5급 공무원이었지만 회원 명단에 들어있지 않았다. 이영호 청와대 비서관 역시 당시 은행원 신분이어서 회원 명부에 보이지 않았다.
한국갤럽 회장으로 있던 최시중 위원장과 경북 칠곡 출신으로 이상득 의원 보좌관이었던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은 명단에 없었다. 영포목우회 관계자는 "이인규씨는 영덕에서 중학교를 나오고 포항고를 졸업했으나 영덕 출신이어서 회원이 아니었다"며 "이영호씨나 박영준씨 역시 자격이 안 됐다"고 했다.
수첩에는 영포목우회의 ‘고문’ 17명 명단도 포함돼 있었다. 여기엔 당시 왕성하게 활동하던 영일·포항 출신 기업인과 정치인 등이 다수 포함됐다. 이명박 대통령과 이상득 의원, 허화평 전 의원, 김창성 ㈜전방 명예회장, 박경석 전 의원, 최상엽 전 법무장관 등이 바로 그들이었다.
어릴적 포항에서 자란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명예회원에 이름을 올렸다. 이명박 대통령과 이상득 의원의 경우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등 3, 4차례 모임에 나온 적이 있다고 했다.
영포목우회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고문들에게 연락해 저녁 약속이 잡히면 모임을 열었다고 한다. 영포목우회 관계자는 “많으면 1년에 한두 번 모였고 1, 2년 건너뛰기도 했다”며 “다들 고향 떠나 빠듯하게 살던 터라 고문이나 명예회원들이 밥 산다고 해야 참석하는 회원들이 많았다”고 했다. 주로 삼겹살이나 불고깃집에서 만났는데 많을 땐 30명, 적을 땐 10명가량이 모였다고 했다.
조직을 위한 별도 사무실이나 적립된 회비, 운영 자금 같은 건 따로 없었고 총무의 전화 연락을 통해서 비정기적으로 모임이 열렸다. 영포목우회 관계자는 “일부 회원이나 고문은 자신이 영포목우회 소속인지 모르는 사람도 더러 있을 것”이라고 했다.
회장은 주로 제일 나이 많은 사람이 맡았다. 2000년대 들어 박명재씨와 박승호씨가 회장을 맡았으나, 지방 근무 등을 떠나면서 모임 횟수는 더욱 줄어들었다.
정권 잡고 두 번 모여
그러다 수년 만에 열린 게 2008년 11월 26일 ‘영포목우회 송년의 밤’이었다. 장소도 삼겹살집이 아니라 서울 명동 세종호텔이었다. 100명가량이 참석한 역대 최대 행사였다. 한 참석자는 “포항 출신이 대통령이 된데다 이상득 의원이나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등 실세들이 나올지 모른다는 기대감에 참석자가 예상 외로 많았다”고 했다.
이날 행사는 영포목우회라는 플래카드가 내걸린 첫 모임이었다고 한다. 이상득 의원은 불참했으나 최시중 위원장과 한나라당 이병석·강석호 의원, 박승호 포항시장 등이 참석했다.
최 위원장은 건배사에서 ‘이대로’를 선창하자 다른 참석자들은 ‘나가자’로 답했다. ‘이대로’는 ‘이명박을 대통령으로’라는 뜻으로 2007년 당시 이명박 캠프에서 쓰던 건배 구호였고, 나가자는 ‘나라를 위해 가정을 위해 자신을 위해’라는 의미였다.
행사장에서 최영만 포항시의회 의장은 “어떻게 하는지 몰라도 예산이 쭉쭉 내려온다”고 했고, 박승호 시장은 “이렇게 물 좋은 때에 고향을 발전시키지 못하면 죄인이 된다”고 말했다.
당시 이 발언이 언론에 알려져 영포목우회가 구설에 올랐다. 그래서인지 영포목우회는 지난해 모임을 갖지 않았고 올해 초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뒤편 삼겹살집에서 만난 게 마지막 모임이었다. 현 정권 들어 두 번 모인 것이다.
현재 정치권에선 영포목우회 회원 명단이라면서 10여명에서부터 100여명이 적힌 리스트가 돌고있는데 대부분 정확하지 않은 자료다. 영포목우회가 회원 명단을 정리한 건 1997년 수첩을 발간했을 때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2008년 세종호텔 행사 때도 참석자 명단을 받다가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오자 이름 적는 것을 포기했고 그때까지 적어놓은 것도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고 했다. 영포목우회 연락을 맡았던 인사는 “회원 명단 그런 게 뭐 필요하냐. 내 전화기에 연락처 다 있는데”라고 했다.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관리되는 그런 단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현직 5급 이상 공무원만 120여명쯤 되는 리스트가 돌고 있지만 이는 행안부 통계를 통해 파악한 5급 이상의 모든 영일·포항 출신 공무원들의 명단이다. 엄밀히 말하면 영포목우회에 회원 자격을 가진 ‘예비회원’들인 것이다.
예비회원 중엔 영포목우회라는 이름조차 모르는 공무원이 있는가 하면 존재는 알아도 그간 한 번도 모임에 나오지 않은 인사들이 수두룩하다. 영포목우회 관계자는 “누가 회원인지 아닌지 그 경계도 모호하고 그게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가급적 많은 포항 출신들이 모임에 나와 얼굴 보는 게 모임의 가장 큰 목적이었다”고 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포항고와 포항제철고의 명문대학 진학률이 높아지면서 행정고시 합격자가 늘어났고 이 영향으로 영포목우회 예비회원 중에는 30대와 40대 초반 사무관과 서기관이 많다.
이씨 다음으로는 최근 1급으로 승진한 조재정 노동부 기획조정실장이 최고위직이다. 야당에선 조 실장을 두고 청와대 행정관을 거쳐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포항고·부산대를 졸업한 조 실장은 지난 정권 시절 요직인 총무과장을 지내고 2005년 이미 3급으로 승진하는 등 원래 동기들보다 승진이 빨랐다며 억울해하고 있다.
포항고·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한영수 법제처 법제관(3급)은 2005년 국장급(3급)으로 승진했고 현 정권 초기 청와대 법무비서관실에 파견됐다가 올해 초 소속 부서인 법제처로 복귀했다.
현역에서 은퇴한 영포목우회 회원으로는 외무고시 8회 출신인 박대원 전 알제리 대사가 재작년 5월 한국국제협력단(KOICA) 총재에 임명됐고 명예회원이었던 정장식 전 포항시장이 정권 출범 직후 차관급인 중앙공무원 교육원장에 임명됐다가 올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퇴임했다.
포항중·대구고·서울대를 나온 고(故) 권종락 회원은 정권 출범과 함께 외교통상부 제1차관에 임명됐으나 올해 초 지병으로 별세했다. 현재 환경부 차관인 이병욱씨는 교수 출신으로 영포목우회 회원은 아니며 이강덕 부산지방경찰청장도 경찰 출신으로 정식 회원으로 올라 있지 않다.
“우리가 하나회? 오히려 다른 비선 조직에 문제”
이번 민간인 사찰 파문이 불거진 직후 서울 광화문 한 음식점에서 영포목우회 관계자들이 만났다. 격한 발언이 쏟아졌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우리가 ‘하나회’라고? 대통령이 우리를 관리했나, 이상득씨나 최시중씨가 우리를 관리했나. 밥값 내도 내가 더 많이 냈다”고 했다. “잘못된 게 있다면 이상득, 최시중, 박영준 탓이지 왜 우리가 욕을 먹어야 하느냐”는 말도 나왔다.
이상득 의원에 대해선 “10여년 전부터 고향 후배들이 불러도 밥 한번 제대로 사지 않은 짠돌이다. 사람 그러면 안 된다”라고 했고, 박영준 국무차장에 대해선 “옛날 생각하면 우습지도 않다. 많이 컸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들은 “차라리 영포목우회가 아니라 영일·포항 출신 인사들을 의미하는 ‘영포 라인’이라고 부른다면 우리도 억울하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영포목우회 출신들이 정권 출범 직후 청와대 진출이 많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았다.
“어느 정권이든 대통령 동향(同鄕) 인사들이 상대적으로 청와대에 조금 더 많지 않았냐. 그래서 직업 공무원인 우리가 섞여있었던 것이지 영포목우회라고 배려한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오히려 신분과 경력이 투명한 우리가 포항 출신이라고 역차별 받는다”며 “일부 실세들이 검증되지 않은 포항 인사까지 마구 데려다 쓰는 풍토가 더 문제”라고 했다. 정권 덕을 본 포항 인사들이 따로 있다는 뉘앙스였다.
영포목우회 내부에선 이상득 의원 지역구가 있는 구룡포 등 포항 남구지역과 동지상고 인맥들이 숨은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는 말이 돌았다. 총리실 민간인 사찰사건의 발단은 영포목우회가 아니라 실세들이 주도한선진국민연대 등 비선 조직과 관련 있다는 시각이 우세했다.
영포목우회 관계자는 “정국 주도권을 잡으려는 민주당과 영일·포항라인을 제거하기 위한 한나라당 내부의 반란에 엉뚱하게도 영포목우회가 유탄을 맞았다”고 했다.
영포목우회 등 포항지역 향우 단체들은 최근 이인규 윤리지원관과 이영호 청와대 비서관은 영포목우회와 무관하며 포항 공무원을 싸잡아 비난하는 정치적 공세를 당장 중단하라는 광고를 석간신문 1면에 냈다.
1000여만원쯤 하는 광고비는 외상으로 했다가 최근 빌려서 냈다. 영포목우회 관계자는 “회원들로부터 그 돈 걷으려면 고생 좀 할 것 같다”며 “대단한 사조직이라면 이렇게 궁색하겠냐. 정치권이 번지수를 한참 잘못 찍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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