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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없음2010.09.06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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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2차장에 임명된 민병환 차장이 YS의 아들 김현철에게 유일하게 고개숙이지 않은 사람이라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김기삼씨는 지난달 출판된 자신의 책 '김대중과 대한민국을 말한다' 224페이지에서 당시 청와대에서 근무하던 민병환 비서관이 소통령으로 불렸던 김현철에게 유일하게 고개숙이지 않았던 사람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김씨는 이책에서 민병환차장이 국정원과 인연을 맺게 된 배경도 김현철씨에게 비판적인 자세를 보인 사람을 쳐내는 과정에서
현철에게 유일하게 고개를 숙이지 않던 민병환비서관이 오래 견디지 못하고 결국 안기부로 자리를 옮겼다고 서술했습니다

김기삼책 224페이지 민병환부분

김현철 씨에게 비판적인 자세를 보인 사람은 가차 없이 잘려나갔다.
청와대 비서실장이나 경호실장도 그런 이유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김
덕룡 의원도“현철을 유학 보내라”고 건의했다가 권력 핵심에서 밀려
났다. 모든 게 이런 식이었다. 청와대에서 거의 유일하게 현철에게 고
개를 숙이지 않던 민병환 비서관은 오래 견디지 못하고 결국 안기부로
자리를 옮겼다.

민병환 차장은 민관식씨의 아들로 강직한 성격으로 당시 전횡을 일삼던 현철에게 비판적 자세를 견지했던 모양입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소신껏 일해주기를 기대합니다


분류없음2010.08.21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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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 정부 때 '양심선언문'이라는 글을 통해 DJ의 여러 비리를 폭로해 파장을 일으켰던 전직 국가정보원 직원 김기삼씨가 '김대중과 대한민국을 말한다(이하 대한민국)'라는 책을 펴냈다. 국정원 도청과 관련, 미림팀의 실체를 증언해 파장을 일으킨 김씨는 현재 미국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다.

원본출처 http://sports.hankooki.com/lpage/focus/201008/sp20100820170229106180.htm

그는 책을 펴낸 이유에 대해 "내가 국가정보원에 재직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것을 적었다. 국정원 직원이라면 비밀을 무덤 속까지 가져야 하겠지만 불안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하면 권력자들의 추악한 비리를 침묵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국가정보원의 자격으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집필한 만큼 책 속에는 충격적인 내용이 가득하다. 김씨는 이미 일부 언론을 통해 DJ 정부의 비리를 폭로하는 등 정치권 안팎에 파장을 일으킨 바 있는데, 이 책에는 그 이상의 내용들이 담겨 있다고 보면 된다.

목차만 죽 훑어봐도 이 책이 가져올 파문을 짐작할 수 있다. '김대중의 노벨상 공작과 대북 뒷거래 실상' '거짓의 희극, 도청의 진실' '경찰청 특수수사과의 납품비리 수사' '김대중 정권의 무기 도입 비리 의혹' 등이다.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그러나 알았어야만 했던 과거 정부의 추악한 얼굴들이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민주, 인권, 평화, 통일'의 가면 뒤에 숨겨진 김대중의 실체를 전면적으로 공개한다!!"는 자극적인 표현을 겉 표지에 싣고 있다. 실제로 '온갖 위험을 무릅쓴' 것은 맞는 듯하다. 김씨는 이 책을 출간하기 위해 여러 곳의 출판사 문을 두드렸지만 대부분의 출판사가 '상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또는 '정치적으로 구설수에 오를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번번이 거절당했다. '대한민국'이 서점에 깔린 지 2주일여 만에 교보문고 집계 정치사회분야 베스트 셀러 2위에 오른 걸 보면 '상업성이 없다'는 이유는 억지에 불과하다. 지난 18일이 김대중 대통령 1주기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책의 출판은 '정치적 이유'로 우여곡절을 겪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현재 미국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씨는 1993년 국가정보원(당시는 안전기획부)에 입사한 뒤 정보학교(정규 30기), 대공정책실장 부속실, 해외공작국 정보협력과, 정보학교, 국제정책실, 대외협력보좌관실, 대북전략국 등에서 근무했다. 핵심 요직을 두루 거친 셈이다. 그게 불행의 씨앗이었다. 김씨는 국정원 재직 중 김대중 정권의 노벨상 수상 공작과 그 일환으로 추진되는 남북정상회담의 전체 과정 및 그 후속 과정 등을 지켜봤다. "국정원 직원이기에 앞서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분노를 느꼈다"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 그는 국민에게 이'비밀'을 공개하기 위해 국정원을 사직했다. "도저히 우리 권력자들의 추악한 뒷거래를 그냥 보고 있기에는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는 말을 사직의 변으로 남겼다. 퇴직 후 그가 할 일은 뻔했다. 일부 언론에 노벨상 수상 공작 실태 폭로했고, 정권으로부터 보복을 당할 위험에 처하자 미국으로 건너갔다. 당시 김대중 정부측은 김씨의 폭로를 조목조목 반박하며 진화한 바 있다.

김씨는 미국에서 정치적 망명을 신청했다. 어렵사리 2008년 4월 미국 연방법원으로부터 망명을 허락 받았다. 그는 미국에 있으면서 국내의 여러 언론들을 통해 김대중 정권의 노벨상 수상 공작 실태, 노벨상 수상을 위한 이벤트로서의 남북정상회담 개최 의혹, 정상회담을 위해 북한에 제공한 거액의 돈이 결과적으로 북한의 핵무기 개발 자금으로 사용되는 실상, 김영삼 정권과 김대중 정권의 무기도입 비리와 비자금 실상, 국정원의 도청 및 감청 실태 등을 폭로했다.

'대한민국'은 2부로 구성돼 있다. 제1부에서는 김씨가 그간 국내 언론을 통해 공개했던 4차례의 '양심선언문'과 김대중 정권의 노벨평화상 수상에 의문점을 제기하는 내용을 자세하게 실었다. 노벨상을 수상하기 위해 다양한 공작을 벌였다는 것이다. 제2부 '나의 이야기'에서는, 그가 그동안 양심선언문을 발표하게 된 경위와 배경을 좀 더 잘 이해시키기 위해 저자 자신의 성장 배경, 젊은 시절의 공부와 사상 형성 과정 및 그 편력, 국정원에 입사한 후 기관원 시절, 그가 경험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문민정부의 숨겨진 이야기들, 해외공작국과 대외협력보좌관실에 근무할 때의 남북관계에 대한 경험, 국민정부의 실상, 국정원을 퇴사하고 난 후의 이야기, 미국으로 건너간 후의 이야기 등을 싣고 있다.

김씨가 국정원에 근무한 7년은 김영삼 전대통령의 문민정부 후반기와 김대중 전대통령의 국민의정부 전반기에 해당한다. 국익과 관련된 많은 정보를 접했던 그는 책에서 국정원 근무중 직접 겪었던 이야기와 보고 들은 수많은 정보들 가운데 공개되었을 때 국익에 해가 되는 부분과 대북정책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는 부분을 제외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진실을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고통이 되는 이 지독한 시대는 하루 빨리 끝내야 할 것이다. 진실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 하는 이 끔찍한 세상은 어서 빨리 없어져야 할 것"이라고 자신의 처지를 표현했다. 권력자들의 행태에 대해서는 "대공정책실 보좌원으로 1년간 근무하면서 참으로 많은 일들을 보고 들었다. 권력의 턱 밑에서 일하다 보니 국가라는 거대한 조직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전체적으로 조망해 볼 수 있었다"라고 적었다. 또 "이러한 경험을 통해 나는 우리나라의 국가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얼마나… 알게 되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사회가 얼마나 형편없는 곳인지를 뼈저리게 느꼈다. 우리 사회는 정치권, 언론계뿐만 아니라 법조계, 종교계, 학계, 재계 등 어느 곳 하나 성한 구석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 탄식했다.

김씨는 권력자의 여론 통제 방식에 대해서는 비판했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은 스스로 '인권 대통령'을 표방했지만 정작 북한 동포들의 인권에 대해서는 철저히 외면했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존재 자체도 거론하는 것을 금기시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또 책에서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납 조기 사건'(중국에서 수입한 조기의 뱃속에 납(鉛)이 들어 있어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의 내막도 북한과 관련돼 있다고 주장한다. 또 제1차 서해교전(제1연평해전)에서 우리 해군이 승리하고도 자축하지 못한 내막도 현실감 있게 전해준다. 1999년 6월15일 남북간에 벌어진 제1차 서해교전은 우리측 참수리급 고속정 325호의 정장 안지영 대위가 부상을 입고, 해군장병 7명이 부상당해 국군수도병원으로 긴급 후송되었으나 북한측은 함정 2척이 침몰하고 3척이 대파되는 등 명백한 우리측 승리였다. 그러나 북한측이 우리측에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자 당시 교전을 지휘한 해군 제 2 함대 사령관 박정성 제독이 대기발령을 받았는데, 박 제독은 그 후 언론 회견에서 "당시 김대중 정부가 북한의 요구를 무조건 수용하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 밖에도 '대한민국'은 김대중 정권의 노벨상 로비 의혹과 대북 불법송금, 그리고 무기구입 비리 의혹에 대해서도 자세히 적고 있다. /스포츠한국

분류없음2010.08.16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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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출간된 전 국정원 직원 김기삼씨의 책이 교보문고 정치사회분야 인터넷판매 2위를 차지했습니다

교보문고는 최근 일주일간 정치사회분야 인터넷 판매순위[ http://www.kyobobook.co.kr/bestseller/bestSeller.laf?mallGb=KOR&linkClass=17&range=0&kind=0 ]에서 김기삼씨의 책 '김대중과 대한민국을 말한다'가 2위를 차지한 것으로
공표하고 있습니다

정치사회분야 1위는 김대중 전대통령이 구술한 '김대중 자선전 세트'로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고 노무현 전대통령의
'운명이다'는 4위였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상 수상로비, 대북송금의혹등 DJ를 비판한 책이 김대중 자서전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는 것은
DJ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DJ의 '미심쩍은' 행적에 대한 궁금증을 풀려는 욕구도 만만챦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국내도서분야 전체순위에서는 김대중 자서전이 4위인데 반해 김기삼씨의 책은 48위로 한참 순위가 못미쳤지만
김대중 자서전의 대대적인 광고공세와는 대조적으로 김기삼씨의 책은 광고는 커녕 신문한켠의 신간소개에도 실리지 못했음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호응을 얻고 있는 셈입니다

또 인터파크에서도 김기삼씨의 책이 사회분야 4위에 랭크됐습니다
1위는 역시 김대중 자서전이 차지했고 노무현 전대통령의 운명이다는 3위였습니다


김기삼씨의 책 '김대중과 대한민국을 말한다'가 입소문의 위력을 보여줄 수 있을 지 주목됩니다

핫이슈 언론보도2010.08.10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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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강찬호 기자의 칼럼입니다 http://news.joins.com/article/033/4374033.html?ctg=10&cloc=home|showcase|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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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개각을 통해 남북 정상회담의 모멘텀이 다시금 살아나고 있다. 임태희 대통령실장은 지난해 싱가포르에서 북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과 비밀리에 만나 정상회담을 교섭했던 인물이다. 특임장관에 내정된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 이재오 한나라당 의원도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 그는 2008년 미국 ‘유배’ 당시 중앙일보 워싱턴 특파원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대통령) 특사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전임자 두 명이 모두 성사시킨 남북 정상회담을 이 대통령에게도 실현시켜주고 싶은 건 두 사람뿐 아니라 측근이라면 누구나 품어봄 직한 꿈일 것이다. 이 대통령 임기가 반밖에 남지 않은 만큼 늦어도 내년 중 회담을 성사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이들의 마음은 급할 수 있다. 하지만 정상회담 교섭에 나서기 앞서 명심해둘 것이 있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회담 대화록을 읽어본 이 대통령의 탄식이 그것이다. 극비 중 극비로 분류된 이 대화록을 읽고 나서 이 대통령은 “기가 막히다. 이럴 수가 있나”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한쪽은 고개를 숙이는 수준을 넘어 아예 애걸하는 모양새였고, 한쪽은 그게 당연한 것인 양 시종일관 고압적인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전자는 두툼한 대북 지원 보따리를 들고 간 우리 대통령들이었고, 후자는 그걸 받는 입장인 김 위원장이었다고 한다.

대화록은 극비이기에 그 내용을 밝히기는 어렵다. 그러나 최종 합의문 서명 과정에서 김 위원장 측이 우리 대통령을 아랫사람처럼 보이게 하려고 꼼수를 부리려 들었다는 얘기, 우리 대통령이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우려를 표시하려 하자 김 위원장 측이 의전상 있을 수 없는 무례한 방식으로 일축했다는 얘기 등등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런 식의 정상회담이라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게 이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한다. 사실이라면 지극히 옳은 판단이다.


무릇 정상회담은 빈손 털고 일어나도 상관없다는 배짱과 확신이 있는 쪽이 유리하게 돼 있다. 또 자신이 얻어내려는 최소한의 목표에 대해 상대방에게 불확실성을 증폭시킬 줄 알아야 성공한다(데이비드 레이놀즈, 『정상회담』). 하지만 지난 두 번의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을 보면 이 두 가지 전술을 잘 구사해 한몫을 챙긴 쪽은 북한의 지도자였 다. 한정된 임기 내에 회담을 통해 가시적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에 쫓긴 우리 대통령들은 그런 부담이 전무한 김 위원장의 무례하고 비상식적인 공세에 밀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지난 두 번의 정상회담은 분단 60년 만에 남북 간 대화의 문을 열고, 정례화시켰다는 점 자체로 소정의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세 번째로 열릴 정상회담은 달라야 한다. 두 지도자가 상대를 존중하면서 실현 가능한 합의를 끌어내지 못하면 역풍만 자초할 것이다. 김 위원장은 달라진 현실을 인식하고 남측 파트너를 예와 신의로 대하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이 대통령도 좌파들의 ‘묻지마’식 정상회담 요구에 밀리기만 할 게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는 ‘제대로 된 정상회담’의 비전을 국민에게 밝히고, 이해와 협조를 구하는 노력부터 해야 한다.

핫이슈 언론보도2010.08.10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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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개각’에서 특임장관으로 내정된 한나라당 이재오 의원이 10일 오후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 호텔에서 열린 ‘김대중 자서전’ 출판기념회를 찾았다.

원본출처 조선일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8/10/2010081001652.html?Dep1=news&Dep2=headline1&Dep3=h1_05

정권 2인자로 불리는 그가 특임장관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야당의 잔치’에 참석하면서 소통을 위한 행보에 나선 것이다.

이 의원은 이날 ‘현 정부 최고의 실세’라는 명성에 걸맞게 등장부터 단연 주목을 받았다. 행사장에 들어서자 집중적으로 카메라 세례를 받았고 이 의원 주변에는 참석자들이 구름처럼 몰려 축하 인사를 건넸다.

이에 이 의원은 “민주당 잔치인데 카메라가 여기로 다 오면 어떻게 하나”고 말했다. 그러면서 낮은 자세로 야권 인사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인사를 건넸다

이날 이 의원이 앉은 테이블의 주요 화두는 단연 인사청문회였다.

이 의원은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 등 야당 의원들에게 “잘봐달라”며 자세를 낮췄고, 박 대표는 “우리는 개인감정을 갖고 청문회를 한다”며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또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가 “내가 인사청문회 위원장”이라고 말하자, 이 의원이 “우리가 나란히 앉으면 내가 로비하는 것 같지 않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이 의원은 “특임장관 청문회가 정무위원회가 아닌 운영위원회 소관이냐”고 물으며 절차에 높은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이날 행사가 끝난 뒤 “청문회 준비는 잘 돼 가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잘 해야지”라며 “청문회 끝나고 이야기하자”고 말을 아꼈다.

한편 이날 행사에는 이 의원과 김 원내대표를 포함해 주호영 특임장관, 정진석 청와대 정무수석, 김덕룡 국민통합 보좌관 등 여권 인사들도 참여했다.
핫이슈 언론보도2010.08.06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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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파란만장한 일생이었다. 정계에 입문하여 국회의사당에 앉는 데까지 9년, 1970년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후 대통령이 되기까지는 무려 27년이 걸렸다. 대통령 후보, 야당 총재, 국가 반란의 수괴, 망명객, 용공분자 등 나의 호칭이 달라질 때마다 이 땅에는 큰일이 있었다. 그 한가운데 서 있었다."( < 김대중 자서전 > 1권 22쪽, 생의 끄트머리에서).

원본출처 http://zine.media.daum.net/sisain/view.html?cateid=100000&cpid=131&newsid=20100806095728917&p=sisain

8월18일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내 자서전은 반드시 사후에 내라"는 김 전 대통령의 유지에 따라 서거 1주기를 앞둔 7월29일 < 김대중 자서전 > (도서출판 삼인)이 출간됐다. 김 전 대통령은 2004년부터 자서전 구상에 들어갔고, 2006년 4월 자서전 자문위원회를 구성하면서 본격적인 구술을 시작했다. 700쪽짜리 2권으로 구성된 이 책은 2년 동안 총 41회에 걸쳐 진행한 김 전 대통령의 구술 인터뷰를 중심으로, 생전의 다양한 기록물들을 참고해 정리됐다. 최종 집필은 김택근 경향신문 논설위원이 맡았는데, 김 전 대통령은 2009년 7월 병원에 입원하기 직전까지 원고를 직접 읽고 수정하고 빠진 부분은 보충하도록 추가 구술했다. 이를테면 '3공화국 출범과 한·일협정 파동'을 다룬 1권 2부 1963~1964년도 소제목의 경우, 당초 편집진이 붙인 제목은 '화려한 재기, 그리고 시련과 고통'이었지만, 김 전 대통령은 이를 '호남이 당선시킨 박정희 대통령'이라고 바꿨다. 그런 식으로 자서전 초고에는 김 전 대통령의 낯익은 글씨가 곳곳에 남아 있다.

1권에는 섬마을 소년에서 청년 실업가, 젊은 정치인, 그리고 사형수를 거쳐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파란만장한 역정이 담겨 있다. 2권은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퇴임 후 서거 직전까지의 기록이다. 김 전 대통령은 자서전 집필을 시작하면서 "모든 것을 진실하게 기록해 역사와 후손에 바치겠다"라고 강조했다. 이를 반영하듯 김 전 대통령은 자신을 둘러싸고 떠돌았던 각종 풍문에 대해 대부분 명쾌하게 정리했다. 자서전 첫 장을 "어머니가 둘째 부인이었다"라고 고백하면서 시작한 게 상징적이다. 김 전 대통령은 "오랫동안 정치를 하면서 내 출생과 어머니에 관해 일절 말하지 않았다. 많은 공격과 시달림을 받았지만 '침묵'했다. 평생 '작은 댁'으로 사신 어머니의 명예를 지켜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1권 27쪽)라고 적었다.

김 전 대통령의 실제 나이를 둘러싼 궁금증도 풀린다. 1997년 김 전 대통령이 네 번째 대통령 선거에 도전했을 때 반대 진영에서는 '고령'이라는 점을 물고 늘어졌다. '호적보다 실제 나이가 훨씬 많아 언제 쓰러질지 모른다'는 요지였다. 당시 일언반구도 안 했던 김 전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목포상고를 졸업할 무렵(1943년) 일본은 젊은이들을 전선으로 끌고 갔다. 나는 징집을 늦추기 위해 생년월일(1924년 1월6일)을 1925년 12월3일로 바꾸었다. 아버지의 기지였다"(1권 53쪽)라고 설명했다. 만 나이로 따지면 1997년 대선이 한창이던 즈음, 김 전 대통령의 실제 나이는 호적보다 두 살 많았던 셈이다.

"양김 단일화, 나라도 양보했어야 했다"

그 밖에 고소공포증이 있어 높은 산에 잘 올라다니지 못했다는 고백, 첫 부인 차용애와의 사이에 첫딸 '소희'를 얻었지만 첫아들 홍일이 태어난 직후 허망하게 하늘로 보내야 했던 사연, 1946년 해방 공간에서 좌우 합작을 표명한 '조선신민당'에 가입했다가 "소련을 조국이라고 하고, 붉은 깃발을 우리 깃발이라고 하는 놈은 때려죽여야 한다"라고 주장한 후 공산당 추종자들과 대판 싸우고 공산당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버리게 됐던 비화 등이 담겨 있다.

삶의 3분의 2를 정치인으로 보낸 만큼 김 전 대통령은 자신의 중요한 정치적 판단, 그리고 정치를 하면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소회도 진솔하게 드러냈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해서는 "세월이 흘러 박정희의 맏딸 박근혜가 나를 찾아왔다. 그는 뜻밖에 아버지의 일에 대해 사과했다. 나는 그 말이 참으로 고마웠다. 박정희가 환생해 내게 화해의 악수를 청하는 것 같아 기뻤다. 사과는 독재자의 딸이 했지만, 정작 내가 구원을 받는 것 같았다"(1권 385쪽)라고 적었고, 김영삼-김대중의 분열로 원성을 샀던 1987년 대선에 대해서는 "나라도 양보를 했어야 했다. 지난 일이지만 너무도 후회스럽다. 물론 단일화했어도 이긴다는 보장은 없었다. 하지만 국민에게 분열된 모습을 보인 것은 분명 잘못됐다"(1권 536쪽)라고 뼈저리게 후회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해서는 정상회담 선언문에 누가 사인을 할지를 두고 벌어졌던 김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이의 기 싸움 과정 등이 흥미진진하게 담겨 있다.

김정일:임동원, 김용순이 사인하게 합시다.
김대중:내가 직접 와서 정상회담을 한 건데, 일 처리 좀 시원하게 합시다.
김정일:대통령이 전라도 태생이라 그런지 무척 집요하군요.
김대중:김 위원장도 전라도 전주 김씨 아니오.
김정일:아예 개선장군 칭호를 듣고 싶은 모양입니다.
김대중:개선장군 좀 시켜주시면 어떻습니까. 여기까지 왔는데, 덕 좀 봅시다.(2권 292쪽)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서는 불편한 심기를 거침없이 토로했다. "이명박 당선인의 국정운영이 걱정됐다. 통일부·과기부·정통부·여성부 등이 폐지 및 축소되는 부처로 거론되는데, 내가 보기로는 현재와 미래에 우리를 먹여살릴 부처다. 그의 말대로 실용적인 사람으로 알고 대세에 역행하지 않을 걸로 믿었는데, 내가 잘못 본 것 같았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가장 보편적인 길을 찾는 게 실용일진대, 그는 실용의 개념을 잘못 이해하는 것 같았다"(2권 565쪽)라거나, "이명박 정부 1년이 지났다. 그동안 너무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무엇보다 냉전적 사고방식으로 '비핵 개방3000' 정책을 밀어붙였다. 한국 외교사상 최악의 실패작을 되풀이할 가능성이 컸다. 이 대통령은 남북문제에 대한 철학이 없다"(2권 581쪽)라는 식이다. 자서전을 통틀어 김 전 대통령이 끝까지 화해하지 못한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으로 보인다.

김대중평화센터는 8월10일 출판기념회를 시작으로 서거 1주기인 8월18일까지 다양한 추모행사를 열 예정이다.

이숙이 기자 / sook@sisa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