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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의 사망판결과 관련, 미국 언론에 보도된 내용입니다
미국법원이 김형욱의 사망을 선고한 배경을 어렴풋이 나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간단한 번역본과 신문 복사본을 첨부합니다 

2012/10/07 - [대통령 후보] - [미의회가 밝힌 박정희정권 스위스계좌 2]걸프사,박정희방미자금 20만달러 스위스비밀계좌에 입금-UBS계좌번호는 626,965.60D: 스위스UBS입금전표,걸프사진술서등 첨부

2012/10/03 - [대통령 후보] - [미의회가 밝힌 박정희정권 스위스계좌 1]'박정희자금 이후락이 스위스계좌에 예치- 김성곤이 육영수에게 돈 상납' : 이게 프레이저보고서 원문

2012/10/06 - [대통령 후보] - 이정현, 우리는 [박근혜의 대변인이지] 박정희의 대변인이 아니다 : 분명한 선긋기?

2009/09/20 - [의혹사건 진상 보고서 전문/김형욱 실종사건] - 김형욱 전 중정부장 여기 잠들다 - 실종 30년만에 뉴저지서 발견

제가 며칠뒤에 뭐 하나 보여드리면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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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중앙정보부장 사망 선고

1981 3 31일 데이빗 뉴스타트

 

전직 중앙정보부장이며 코리아게이트의 핵심증인인 김형욱이 청와대 지하에서 박정희대통령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는 사실이 어제 법정에 제출된 문서에서 밝혀졌다

 

이 문서는 자신의 남편의 법적인 사망선고를 구하려고 소송을 제기한 김형욱의 부인 김영순이 법정에 제출한 증거의 일부이다

 

목격자들의 증언과 증거서류들은 1979 10월 파리에서 실종된 김형욱이 박정희에 대한 회고록을 준비중이었음을 보여줬으며 하비 스미스판사는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의 법적인 사망을 선고했다

 

이 판결에 따라 김형욱의 유족들은 천5백만에서 2천만달러에 이르는 재산을 상속받게 된다

 

김형욱가족의 변호사인 알란 싱거는 김형욱의 재산이 그렇게 많지 않으며 김형욱 재산을 추정한 은행직원은 추정치를 철회했다고 주장했다

 

김형욱은 알파인저택을 27만달러 현금을 주고 구입했고 은행계좌를 푸에르토 리코와 라스베가스의 카지노에서 백40만달러를 잃었음을 알 수 있으며 전세계 카지노에 그의 계좌가 있었다

 

김형욱은 한국정부와 협상을 벌여 회고록을 출판하지 않는 대가로 한국정부가 2백만달러를 그의 스위스은행계좌에 입금하기로 했다고 주장했다

 

김형욱은 생전 인터뷰[.프레이저 청문회 인터뷰로 추정됨]에서 그의 월급은 천달러였지만 부동산 투자, 고금리로 돈 빌려주기, 선물등을 통해 부를 축적했다고 설명했었다

 

1963년부터 1969년까지 김형욱은 중앙정보부장을 역임하며 1973년 도망전까지 한국의 2인자였다. 김형욱은 박정희가 1972년 헌법개정[.유신헌법]을 통해 무한의 권력을 잡게 되자 박정희와 갈라섰다

 

1977년과 1978년 김형욱은 한국정부가 박동선을 통해 미국 국회의원들을 매수하려한 코리아게이트에 대한 의회 청문회의 핵심증인이었다

 

박정희는 김형욱의 증언과 회고록에 대해 우려했으며 김의 유족들은 박정희가 김형욱을 납치, 살해하라고 지시를 내린 것으로 믿고 있다, 박정희는 새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살해된다

 

일본 교도통신이 한국 망명자로부터 입수한 문서에 따르면 김형욱의 의회증언직후 오작교 작전이 시작됐으며 닥터 하인즈란 암호명으로 불린 김형욱은 그 작전의 첫번째 희생자였다

1979년 정태동 주미공사는 뉴저지주 알파인의 한 식당에서 김형욱을 만나 회고록 포기대가로 50만달러를 제의했지만 김형욱은 2백만달러를 자신의 스위스은행 비밀계좌에 예치시키라고 요구해 협상이 결렬됐다

 

두사람은 다시 만나 2백만달러 지급에 합의했으나 지급방법에 대해서는 이견을 보였다

그후 김형욱은 2백만달러를 수용하기로 했으며 프랑스로 가서 이상열공사를 만나기로 합의했다

 

이상열은 1963년 군부내에서 계획돼던 반혁명음모를 제보해 대령으로 승진했다

 

김형욱은 1979 8월 유럽으로 가서 이상열을 만난 자리에서 김대중 납치사건을 언급하며 나는 김대중처럼 납치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이상열은 우리는 김대중 납치사건처럼 뼈아픈 시련을 되풀이 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

증거문서는 이말이 김대중처럼 납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모르게 죽여버린다는 말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이상열은 중앙정보부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하면서도 김형욱의 의심을 불식시키기 위해 망명을 고려하고 있다는 말까지 했다

 

김형욱은 9 30일 콩코드기를 타고 파리에 도착해 (회고록 포기대가의) 돈 송금방법등을 어레인지하기 위해 이상열을 만났다

 

중앙정보부는 김형욱의 가족들에게 알리지 말고 김형욱의 호텔을 옮기라고 지시했고 김형욱 이상열 두사람은 10 8일 스위스로 떠나기에 앞서 10 7일 카지노에서 도박을 했다

 

그랑세롤카지노에서 큰 돈을 잃은뒤 이상열은 일본인여성이 운영하는 프라이빗 클럽으로 가자고 제의했다

 

이상열은 일본인 중정요원인 그 여성에게 예약을 빌미로 전화를 해 그들이 갈 것임을 알렸다

 

중앙정보부 가옥으로 드러난 프라이빗 클럽에서 김형욱은 마취됐고 항공화물로 포장돼 한국항공기에 실려 한국으로 보내졌다

 

부산에서 학생시위가 격화된 10 16일 김형욱은 청와대 지하실로 끌려갔고 박정희는 김형욱에게 더러운 배신자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김형욱은 당신이 배신자다, 나는 내 조국을 배신하지 않았다고 맞받아쳤다

 

박정희는 김형욱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지하사격장에서 김형욱에게 두발을 발사했다

그뒤 이상열은 서울로 돌아와 지부장으로 승진했다고 증거문서는 주장했다[.이상열의 전주지부장 승진을 의미]

 

김형욱유족의 변호사인 알레인 치럿은 이 문서가 부정확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핵심사항은 프랑스 르몽드지의 보도로 입증됐다고 말했다

 

김형욱유족들에 의해 고용된 프랑스 탐정들도 김형욱과 이상열이 그랑세롤 카지노에서 목격됐으나 그 이후 그들의 행적을 찾을 수 없다고 증언했다

 

김형욱의 부인은 한국정부가 회고록을 중단하지 않으면 죽여버릴 것이라는 위협을 받았다고 말했으며 그해 12월 회고록 미완성본이 일본에서 출판되기도 했다

 

김형욱의 유산은 부인에게 절반, 정한 정우 신해등 세 자녀에게 절반이 돌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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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A CHIEF DECLARED DEAD DAVID NEUSTADT 198103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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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 재산을 둘러싼 소송이 진행되면서 며느리, 외동딸에 이어
차남 김정우도 법정진술을 하게 됩니다

김정우는 외동딸과 같은 날인 2003년 9월 12일 작성된 진술서를 통해
외동딸과 같은 주장을 펼칩니다

형 정한이 유언장 존재를 너무도 잘 알았으며
그동안 한번도 이의를 제가한 적이 없었다 등의 내용입니다

또 형이 결혼뒤 분가했지만 1988년 플로리다로 떠나기 전까지
알파인과 포트리등 집에서 5분 , 많게는 15분 거리에 살아서
매우 친밀했다고 진술했습니다

유언장 복사본 문제에 대해서도 김형욱 실종뒤
변호사가 두터운 종이뭉치를 나눠 줘서
왜 이런 걸 주나 하며 의아해 했던 적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형이 유언장 존재를 알지 못했다는 큰 며느리 주장은 잘못된 것이며
형이 유언장 내용을 알았지만 재산에 대해 한번도 이의제기를 하지 않았다는 요지였습니다


김형욱 재산분쟁 2남 진술 6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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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의 부인 김영순은 1980년 5월 12일 유언장 집행인으로 지정된뒤
상속절차에 돌입합니다

이에 따라 1981년 5월 28일 뉴저지 버겐카운티의 지역신문 'THE VALLEY STAR'에
김형욱 채권자 신고를 접수하는 광고를 게재합니다

'PUBLIC NOTICE' 란 제목의 이광고는 1981년 5월 12일 뉴저지 버겐카운티 유산법원 판사의
명령에 따라 김형욱 또는 형욱 김에게 받을 돈이 있는 사람은 뉴저지 알파인에 사는
김영순또는 유족의 변호사에게 청구하시오' 라고 돼 있습니다

이 광고의 FEE는 6.16 달러였으며
해당신문사의 광고게재사실확인서도 첨부, 법원에 제출하게 됩니다



김형욱 김영순 상속광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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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5 - [분류 전체보기] - 미국법원 청와대살해설-오작교작전 근거로 김형욱 조기사망선고 - 이게 재판증거 불어문건 원문

 


1979년 10월 7일 프랑스 파리에서 실종된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은 자신의 실종 또는 죽음등을 미리 예견한 탓인지 1973년 4월 5일 미국에 들어온뒤
약 1년 8개월정도가 지난 75년 1월 비장한 마음으로 유언장을 작성했습니다

1975년 1월 25일 뉴저지 테너플라이 트라팔가 자택에서 작성된 이 유언장은
유언내용을 담은 6매의 유언장과 증인 3명의 서명 1매등 모두 7매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 유언의 핵심은 이렇습니다

만약 내가 죽으면 동산, 부동산, 부채등을 포함한 모든 자산의 50%를
나의 아내 김영순에게 주라

나머지 50%는 장남 김정한, 차남 김정우, 딸 김신해등 자녀에게 주라
즉 3 자녀에게 내 자산의 각각 16.65%씩을 주라
 
자녀들이 21세 성년이 되기 전에는 아내 김영순이 관리한다

유언장 집행과 자녀 양육은 아내 김영순에게 맡긴다

만약 나의 아내가 유언장 집행을 하지 못할 경우 '이백'에게 유언장 집행을 맡긴다
또 신탁재산의 관리인으로 '이백'을 지정하며
내 아내 김영순이 사망할 경우 자녀 양육을 '이백'에게 맡긴다

6장의 유언장을 대충 간추리면 이런 내용입니다

김형욱 유언장 7매 -
그 다음 맨뒷장에는 유언장 증인 3명의 이름과 주소 서명이 기재돼 있습니다

메리 앨런 멜버리, 이담풍, 유봉섭씨등 3명입니다
이들은 김형욱이 1975년 1월 25일 뉴저지 트라팔가 주택에서
자신들이 보는 앞에서 유언장을 작성,서명했다고 기록했습니다

1979년 10월 김형욱 실종뒤 1981년 4월 법적인 사망선고를 받게 되고
그해 5월 김영순은 뉴저지 법원에서 이 유언장을 근거로
유언장 집행인의 자격을 획득합니다

내일은 이 유언장의 증인 3명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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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 유족 알파인에 최소 6백만달러 대저택소유

-김형욱 실종뒤 알파인에 대저택 신축

-포트리등에 콘도 여러채 - 자녀들에게 집 한채씩

-김형욱 명의 부동산 거의 없어

-유산상속판결은 부동산보다 스위스예금이 목적

 

 

호화주택 구입, 대형쇼핑센터 매입등을 통해 사전에 미국에 기반을 굳힌뒤 망명길에 올랐던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1979 10 7일 파리에서 김형욱이 사라진뒤에도 김형욱 유족들은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합니다

 

김형욱의 부인 김영순[본명 신영순] 1982 5 21일 뉴저지 포트리에 콘도 한채를 매입합니다

이른바 하이트맨하우스 콘도, 이 콘도는 재미동포들이 많이 사는 뉴저지 초입 포트리의 번화가에 있는 콘도로 정확한 주소는 1600 CENTER AVE, FORT LEE, NJ 입니다

김영순은 9만천740달러[91,740USD]에 매입한 하이트맨하우스 콘도의 5E 호를 4년여뒤인 1986 2 28 145천달러[145,000USD]에 매도함으로써 약 50%의 수익을 올리게 됩니다

 

김형욱 유족들의 재산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알파인의 대저택

이 저택은 뉴저지주 팰리세이트 파크웨이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다 2번출구에서 빠진뒤 클로스터로 내려가는 급경사 오른편 언덕 깊숙한 곳 막다른 집입니다


MARIE MAJOR DRIVE로 알려진 이 길에서 김형욱의 저택은 2차선도로의 맨 마지막 집이며 실제 저택은 웅장한 철제 대문에서 작은 언덕을 따라 20미터 정도 올라가야 됩니다.

지적도상 블록[BLOCK] 81.05, [LOT] 1입니다


김형욱이 실종 직전 또 다른 알파인 집 하이우드 플레이스에 살면서 이 집이 도로 아래쪽에 있어 누가 차를 타고 가다 수류탄만 굴려도 죽는다며 불안에 떨었던 점을 감안, 아마도 도로보다 한참 위쪽의 집을 택한 것 같습니다

 

또 이 집의 2차선 도로가 끊기게 되는 마지막에 있어 이 집에 사는 사람이나 찾아오는 사람이 아니면 아예 이 집앞을 지나다닐 일이 없는, 접근이 자연스럽게 차단된 집입니다

 

잘 생긴 소나무들로 둘러싸인 이 집은 길가에서는 쉽게 규모조차 짐작되지 않고 항공사진이나 위성사진등을 통해서만 구조를 알 수 있습니다

 

이 집의 부지는 2에이커, 2448평이며 올림픽경기장 규격의 실외수영장이 갖춰져 있습니다

 

김형욱 실종직전인 1979 8 10일 김형욱이 파리를 다녀오게 되고 보름뒤인 8 24일 부인 신영순 명의로 1725백달러를 주고 이 부지를 구입했습니다

 

그뒤 1981 5월 법원의 김형욱 사망판결로 유산상속인이 된뒤 1982년 이 집의 신축공사에 들어가 1984년 완공과 함께 입주하게 됩니다

 

이 집도 다른 알파인 저택들과 마찬가지로 주소가 잘 알려지지 않은채 우체국 사서함 번호로만 표시돼 있는 것은 물론 뉴저지주 세무국 서류에서도 주소가 없는 사서함 번호만 기재돼 있습니다

 

이 집은 김영순 소유로 돼 있다 지난 2002 9 5일 장남 김정한이 사망하자 20일뒤인  9 26김영순신탁[KIMYOUNGSOON TRUST]으로 소유권이 바뀐다

 

김영순에서 김영순신탁으로 이 집이 양도될때의 가격은 단돈 1달러,

김영순신탁의 관리인[TRUSTEE]은 김형욱의 차남인 김정우 변호사[제임스 김]와 딸 김신해씨로 지정돼 있습니다


뉴저지주 세무국은 지난 2006년이래 2009년까지 세금부과를 위한 이 집의 공시가격을 매년 변동없이 239만달러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중 대지가 백80만달러, 건물이 539천여달러입니다.

 

하지만 현재 이 집의 시장가격은 최소한 6백만달러를 넘어선다는 것이 부동산 전문가들의 추정입니다

 

뉴저지주 세무국 자료에 따르면 알파인지역의 부동산은 지적도상 상가와 주택을 모두 포함해 정확히 8백채, 이중 3백만달러에서 천만달러 주택이 즐비하고 이 저택도 그 중의 한채인 것이다.

 

김형욱의 큰 며느리가 뉴저지주 법원에서 이 집의 건축비용이 1982년당시 최소 2백만달러를 넘어서며 융자없이 전액 현금으로 지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미뤄 김형욱 유족들은 당시로서는 엄청나다고 할 수밖에 없는 큰 돈을 가지고 있었던 셈입니다

 

김형욱의 장남 김정한은 김형욱 실종 1년뒤인 1980년 결혼하게 되고 1985년 외동딸 신해씨가 결혼하게 됩니다

 

뉴저지주 버겐카운티등기소 서류에 따르면 김신해씨와 남편 한상철씨는 1985 9 16일 뉴저지 포트리의 콘도를 부부공동명의로 구입합니다

 

이 콘도의 주소지는 200 OLD PALISADES ROAD, 호수는 PH-4. 호수에서 알 수 있듯 PH는 펜트하우스 즉 그 콘도의 최고 꼭대기 층이며 매입가격은 489천달러였습니다

 

매매계약서에서 이름을 드러낸 한상철씨는 5공당시 **실장을 지낸 모인사의 사촌동생으로 알려진 인물,

 

그러나 1989 8 25일 작성된 매매계약서에 따르면 이들 부부는 이혼하게 되고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합의에 따라 이 콘도가 김신해씨 단독 소유로 바뀌게 됩니다



그뒤 김신해씨는 1995 5 2일 이 콘도를 한 외국인에게 50만달러에 매도합니다

 

뉴저지 포트리 하이트맨하우스 콘도를 매입했던 김영순은 1989 5 9일 뉴저지 포트리에서 가장 유명한 콘도로 알려져 있는 아트리움 콘도를 사들입니다

 

이 콘도의 주소는 1512 PALISADES AVENUE, FORT LEE NJ. 호수는 15L호로

 매입가격은 483천여달러[483,485 USD] 였습니다

 

5년뒤인 1994 4 18일 김영순은 약 16만달러 손해를 본 328천달러[328,000 USD]에 이 콘도를 팔아치웁니다



부동산 시세가 많이 하락한 것입니다

 

그 이듬해인 1995 9월 장남 김정한도 아트리움콘도 한채를 매입하면 매입가격은 김영순의 매도가격과 비슷한 35만달러였습니다

 

장남 김정한이 김형욱 실종뒤 크게 상심해 방황하자 플로리다주에서 자그마한 농장을 경영하도록 도움을 준 김영순은 2001 8 15일 자신이 51%, 장남 정한이 49%의 지분을 가지는 조건으로 알파인 처치 스트릿에 단독주택 한채를 사줍니다

 

1.22에이커 대지의 이 주택 매입가는 99만달러로 장남집과 김영순집까지의 거리는 차로 1분거리.

그러나 2002 9 5일 장남 정한이 죽자 그후 2년뒤인 2004 8 13일 이 집을 1535천달러[1,535,000 USD]에 매도합니다

 

이 과정에서 김영순씨와 큰 며느리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 법정으로 번지게 되고 결국 큰 며느리는 자녀 3명과 함께 몹시도 힘든 생활고에 시달리게 됩니다

 

이처럼 김형욱 유족은 김형욱 실종뒤에도 적지 않은 부동산을 사고 팔게 되고 현재는 알파인 대저택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김형욱관련 부동산을 조사한 결과 눈에 띄는 점은 김형욱이 거의 모든 부동산을 부인 김영순 소유로 함으로써 자신은 철저하게 숨겼다는 점입니다

 

김형욱은 자신의 두번째 집인 알파인 하이우드 플레이스의 주택을 구입할 당시인 1974 8월 김영순과 함께 융자서류에 서명한 것이 거의 유일한 부동산 서류였습니다

 

아주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실종 1 6개월만인 1981 4월 뉴저지법원으로부터 받아낸 사망판결의 가장 큰 의미는 유산 상속입니다.

 

김형욱 명의의 부동산이 전무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김영순이 유산상속인으로 지정된 것은 부동산보다는 미국과 스위스에 예치됐던 예금을 갖게 됐다는 것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미국정부가 오는 12월 스위스은행인 UBS로부터 미국 거부 4천여명의 계좌 내역을 넘겨받는 것을 시작으로
스위스 은행 비밀계좌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과연 김형욱의 스위스계좌가 베일을 벗을지 주목됩니다

내일은 미국언론보도등을 근거로 김형욱의 재산을 추정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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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 1 21일 김형욱 변호사 명의로 제심리얼티코프 설립

1972 4 3일 뉴욕 웨체스터에 대형 쇼핑센터 매입

1973 8 21일 법인서류에 김영순이 사장임이 드러나


1972년 1월 알란 싱거 변호사와 김용길[현이름 김길]을 내세워 제심리얼티코퍼레이션을 설립한 김형욱,

제심부동산회사는 1972 1월 법인설립 두달여만인 같은해 4 3일 뉴욕주 웨체스터 카운티 그린버그타운에 대형쇼핑센터를 구입합니다


그 자신이 미국으로 도망치기 1년여전의 일입니다 
 

1972 4월이면 김형욱이 공화당 국회의원으로 활동할 무렵입니다

 

김형욱이 해외로 밀반출한 부정축재재산이 1971 1월 테너플라이 주택구입으로 잠깐 모습을 드러낸데 이어 마침내 뭉텅이돈이 실체를 드러낸 것입니다

 

그린버스쇼핑센터는 극장, 연회장, 슈퍼마켓 2, 패스트푸드점등 완비, 현시세 천5백만달러

 

그린버그쇼핑센터 [GREENBURGH SHOPPING CENTER] 로 이름지어진 이 쇼핑센터의 정확한 주소는 77-97 크놀우드 로드, 와잇플레인, [77-97 KNOLLWOOD ROAD, WHITEPLAINS NY 10607]이었습니다

 

쇼핑센터가 규모가 있다보니 77 크놀우드로드라는 지번부터 97 크놀우드로드까지 여러 개의 지번이 이어져 있고 주차가능대수가 5백대에 이릅니다

 

웨체스터 카운티가 지난 40년간 대변모를 거듭하면서 이제 이 쇼핑센터는 다운타운에서 다소 떨어진 변두리 쇼핑센터로 전락했지만 쇼핑센터의 규모는 11.5에이커, 대지 만4천평규모로 10여개의 대형 상점이 들어서 있습니다

 

이 쇼핑몰 구입당시 제심부동산회사는 178만달러의 기존 은행융자 잔금을 그대로 안은채 현금으로 798천달러를 지불, 결국 72년 당시 매입가가 260만달러에 달합니다

당시 미국이민자 1인당 해외반출허용한도가 70달러에서 막 백달러로 상향조정됐던 시점
그야말로 당시로서는 상상이 쉽지 않은 거액입니다

김형욱 본인이 프레이저 청문회에서 증언했든 '여러분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며 엄청난 재산을 모았음이 대형쇼핑센터 구매를 통해 여실히 증명된 것입니다

웨체스터카운티당국이 세금부과를 위해 고시한 2008년 이 쇼핑센터의 마켓밸류는 천10만달러 [10,135,135 달러], 실제 시장가는 천5백만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대형 슈퍼마켓체인 CVS AP 로 잘알려진 대형식품점이 입주해 있으며 던킨 도너츠, 베스킨 라빈스도 눈에 뜁니다

 

또 상영관 4개를 갖춘 클리어뷰 시네마 극장, 3백명을 수용할 수 있는 연회장을 완비한 식당 로얄 팰리스, 피자레스토랑 피자브류등이 입주해 40년전 위용을 짐작케 했습니다

 

이외에도 술판매점인 리커스토어, 세탁소, 건축설계업체등 모두 12개 업체가 영업을 하고 있어 극장과 대형 슈퍼마켓, 패스트푸드점, 식당등 구색을 제대로 갖춘 쇼핑몰이었습니다

 

이 쇼핑센터가 김형욱이 실제 주인임은 법인 등록서류에서도 미뤄 짐작되지만 결정적으로 1973년 8월
부인 신영순이 사장직책으로 서명된 법인서류에서 확인됐습니다



김형욱이 실종되고 한국에서 김형욱 재산 몰수가 추진되자 깜짝 놀란 김영순은 미국 부동산의 현금화를
추진합니다

1982년 2월 8일 제심법인은 실제 주인인 김영순 개인에게 이 쇼핑센터를 0달러에 넘기고
같은 날 김영순은 이 쇼핑센터를 70만달러에 팔게 되며 은행융자 미상환액 375천달러도 함께 넘깁니다

 


융자미상환액으로 미뤄볼 때 10년간 백40만달러를 갚은 것으로 한달에 무려 만2천달러라는
약 30년이 지난 현재도 감당하기 힘든 거액을 상환한 셈입니다

 

김형욱이 뉴욕주 웨체스터에 쇼핑센터를 구입한 것은 그의 변호사 알란 디 싱거가 웨체스터에서 활동해 이 지역을 잘 알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웨체스터는 스카스데일, 용커스등을 포함한 지역으로 뉴저지주 알파인등에는 못미치지만 부자들이 많이 사는 지역입니다

 

한때 박정희 대통령의 망명 피난처로 거론됐던 집도 바로 이 웨체스터에 있습니다

 

결국 김형욱은 1973 4 5일 미국에 가기 2년여전부터 주택을 구입하고 법인을 설립해 쇼핑센터를 구입하는등 소리소문없이 망명준비를 착착 진행한 것입니다


김형욱 치밀한 망명준비 내일도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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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 프랑스 파리에서 실종된지 오늘로 꼭 30년입니다
미국 뉴저지에 살고 있는 방준모 전 감찰실장을 전화로 만나봤습니다
제가 캠코더가 준비돼 있지 않아 방 전실장의 대면인터뷰 허용에도 불구하고
전화를 통해 인터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2014/05/22 - [분류 전체보기] - 방준모 전 중앙정보부 감찰실장 21일 미국 뉴저지서 별세




동영상 편집과 동영상 올리기등이 익숙하지 않아서
이 짧은 육성을 올리는데도 엄청난 시간이 걸리는 군요
앞으로 숙달되면 좀 나아지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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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 1 21일 김형욱 변호사 명의로 제심리얼티코프 설립

1972 4 3일 뉴욕 웨체스터에 대형 쇼핑센터 매입

1973 8 21일 법인서류에 김영순이 사장임이 드러나

 

김형욱은 1971년 1월 4일 부인명의로 자신이 살 집을 준비한데 이어 72년에도 준비를 늦추지 않습니다

김형욱은 1971 5월 공화당 전국구의원으로 국회에 진출하지만 이때도 미국망명계획을 착실하게 추진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1972 121일 뉴욕주 국무부에 김형욱의 행적을 가늠케 하는 한 법인의 설립신청서가 제출됐습니다. 법인의 이름은 제심리얼티코프. [JESIM REALTY CORP]

제심은 부부나 동기간에 힘을 합쳐 일을 열심히 한다 이런 뜻이라고 합니다

우리말로 풀자면 제심부동산회사인 이 법인은 1972 1 18일 김형욱의 변호사로서 프레이저 청문회등에 동행했던 알란 디 싱거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설립돼 1 21일 뉴욕주 등록을 마칩니다

 

뉴욕주 웨체스터카운티 등기소에 제심법인관련서류를 신청, 2주일뒤 등기소직원이 문서고를 뒤져  찾아온 약 40년된 법인 서류는 모두 3건이었습니다

 

1972 1 18일 법인설립 서류에는 김형욱의 변호사 알란 디 싱거와 김형욱의 처가쪽 친척으로 비서와 경호역할을 담당했던 전 중정요원 김용길의 이름이 기재돼 있었습니다

 

김용길은 1960년대후반 중정요원으로 뉴욕에 파견돼 영사로 일했으며 아마도 김형욱은 친척 김용길을 미리 보내 망명을 미리 준비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 하나의 서류는 제심부동산회사가 김형욱 소유임을 입증하는 결정적 서류였습니다

1973 8 21일자로 된 이 서류에는 김형욱의 부인 김영순이 제심부동산회사의 프레지던트 즉 사장으로서 서명을 한 서류.

 


대리인으로서 이 법인의 지배인역할을 맡은 알란 디 싱거 변호사의 주소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통보한 내용으로 프레지던트가 신영순, 싱거변호사가 세크리테리로 기재돼 있었습니다

김형욱의 치밀한 망명준비 내일도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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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심부동산회사의 존재를 알고 법인등록번호를 어렵사리 찾은뒤 웨체스터 카운티 등기소에
법인서류를 신청할 때만 해도 과연 서류가 제대로 보존돼 있을지 마음을 졸였습니다

또 이 법인과 김형욱과의 연관관계를 입증할 만한 서류가 있을까 노심초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2주간 가슴졸이며 기다린 끝에 다시 찾은 웨체스터 카운티 등기소에서 작은 서류 폴더하나를
통째로 건네 받았습니다

등기소 사무실 앞 열람용 책상에 앉아서 보라며 그냥 서류를 건네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서류폴더를 열때의 떨리는 감정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다행히 첫 등록서류에서 알란 싱거변호사와 김용길의 이름을 찾았고
세번째 서류에서 김형욱의 부인 김영순이 프레지던트로 기재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박정희를 등진, 조국을 등진 김형욱의 치밀한 망명준비와 부정축재의 단서가 드러난 문서였습니다

문서를 조심조심 복사한뒤 가방 깊숙이 넣고 존경하는 선배에게 전화했습니다
'선배 찾았습니다 완벽한 입증관계가 나왔습니다' 라고

사실 올해 5월 중순 첫 방문했던 웨체스터 등기소는 들어가는 입구조차 찾지 못해
그 큰 건물을 세바퀴나 돌며 땀을 뻘뻘 흘릴 정도로 낯선 곳이었습니다

결국 그 건물에는 입구가 없다는 것을 알았고 큰 길 건너편 법원건물을 통해
겸색을 받아 들어간뒤 구름다리를 통해 등기소건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는 1-2주에 한번씩 들릴때마다 아주 익숙하게 입구를 찾고
저처럼 처음오는 사람에게 안내도 해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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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공지한 대로 김형욱 실종 30년을 맞아 김형욱 관련 문서를 통해 그의 망명과정을 추적합니다
앞으로 4-5회에 걸쳐 일단 치밀한 망명준비 과정을 각종 서류와 함께 전하고 유언장, 유언장의 증인, 김형욱일가의 기구한 사연등 다음 순서로 넘어가겠습니다 안치용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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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 71년 이전부터 부동산구입 망명준비

-1971 1월 부인명의 호화주택 매입

-1972 4월 법인명의 대형쇼핑센터 매입

 

30년전 파리에서 실종된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 망명이전부터 미국에 주택을 구입한 것은 물론 대형쇼핑센터를 매입하는등 치밀한 사전준비를 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은 6년여를 중정부장에 재직하다 1969 10월 해임된뒤 국회의원등을 지내다 1972 10월 유신선포로 국회가 해산되고 1973 3월 유정회 명단에서도 제외되자 박정희로부터 완전히 버림받았다고 판단해 1973 4 15일 미국 망명길에 올랐습니다

 

김형욱의 부인 김영순은 1973 1 5일 시무식의 어수선한 틈을 타 일본인명의의 위조여권으로 미국으로 출국했고 김형욱은 수차례의 간청끝에 간신히 해외여행 승낙을 받아 4 15일 대만으로 출국, 중간에 미국행 항공권을 구입했지만 경유지인 일본공항에서 중앙정보부요원들과 예상치 못한 조우를 하는등 우여곡절끝에 미국에 도착합니다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2007 10월 발간한 김형욱 실종사건 진상보고서에 따르면 김형욱의 미국 망명 결심시점을 1973 3, 빠르게 잡더라도 1972 10월 유신선포에 따른 국회해산 이후로 미뤄 짐작하고 있습니다

 

1973 3월 김종필이 총리로 기용되면서 행동에 제약을 받자 탈출을 구상하게 되고 이때부터 사채를 회수하고 외화를 환전하고 외화밀반출을 했다는 것이 1973 3월설이요, 1972 10 17일 해외국정감사도중 유신선포로 국회가 해산되자 그때부터 영어회화공부에 매달렸다는 것이 1972 10월 결심설입니다

 

1971 1 4일 김영순명의 뉴저지 테너플라이 주택 매입

165천달러짜리 주택 당시 1인당 이민자 외화허용환도가 백달러

 

그러나 김형욱 일가가 부동산등을 구입하며 미국정부에 제출한 계약서등을 중심으로 행적을 추적한 결과 최소한 1971년이전부터 치밀한 미국 망명을 추진했음이 밝혀졌습니다 [계약서 사진 참조]

 

뉴저지주 버겐카운티 등기소를 방문해 확인한 결과 김형욱은 자신의 부인 신영순[미국 서류에서는 신영순과 김영순 표기가 혼재]의 명의로 1971년 이미 호화주택을 구입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신영순 명의로 주택을 구입한 것은 1971 1 4일이며 주택소재지는 뉴저지주 테너플라이 트라팔가로드 60번지, 대지가 1.3에이커로 1,591평 규모에 건평이 81, 매입가는 165천달러였습니다.

 

당시 미국에 이민가는 사람에게 반출이 허용된 이민정착금이 1인당 1백달러였으니 165천달러라면 상상을 초월하는 큰 돈입니다

 

1970년대 후반부터 부동산업에 종사한 한 재미동포는 ‘1971년보다 10년지난 1980년대초까지도 한인이민자들이 구입한 집들이 3-4만달러였다며 1971 165천달러라면 호화주택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했습니다

 

뉴저지주 테너플라이지역은 뉴욕에 주재하는 한국외교관이나 지상사 주재원이 많이 사는 지역으로 공교롭게도 지난 2007 3월 한국정부가 3백만달러를 주고 구입, 현재 모 공사가 살고 있는 집도 바로 김형욱이 1971년 구입한 주택과 이웃해 있습니다 [한국정부 2007년 3월 3백만달러 주택구입 계약서등은 이미 이 블로그에 공개돼 있습니다]

내일은 김형욱이 망명이전에 설립한 법인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앞으로 글 싣는 순서는 - 김형욱 부인명의 법인 설립 - 법인명의로 망명 1년6개월전 대형쇼핑센터 매입
- 김형욱 79년 8월 파리방문직후 현 알파인 주택부지 매입 - 김형욱 실종 50일뒤 김형욱부인 나대지 7필지 구입 등의 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