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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없음2012.11.18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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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삼성 창립자는 삼성사카린밀수사건이전까지 둘째 아들 창희씨가 후계자가 되기를 원했으며 김종필계를 불신하고 이후락계에게만 정치자금을 지원했다고 이병철회장의 비서가 주미한국대사관에 이야기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주한미국대사관이 국무부에 보고한 비밀전문에 따르면 삼성의 사카린밀수사건 직후인 1966년 9월 26일 이병철회장의 개인비서를 역임한 중앙미디어센터[그룹] 기획실장 박모씨가 레스터 스터머 2등서기관을 국제호텔로 초대, 저녁식사를 대접하며 삼성사카린밀수사건에 대해 삼성의 입장을 설명했다고 밝혔습니다.

 

박씨에 앞서 이병철회장의 사위인 김규씨가 1966년 9월 21일 반도호텔에서 홀부르크 브래드리 미 공보관 직원을, 9월 23일에는 레스터 스터머 2등서기관을 만나 사카린밀수사건에 대해 설명하는등 삼성은 9월21일부터 26일까지 적어도 3차례이상 미국을 집중적으로 접촉하며 사카린밀수사건에 대한 삼성의 잘못은 언급하지 않은채 중앙일보에 대한 다른 언론사의 질시, 이후락계와 김종필계의 파벌싸움등으로 이 사건이 공론화됐다며 비난의 화살을 돌렸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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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터머 서기관이 작성한 4페이지의 대화록에 따르면 4년동안 이병철회장의 비서를 지낸뒤 당시 중앙미디어그룹의 기획실장으로 일하던 박씨는 '미국이 사카린밀수사건의 팩트를 이해해 달라'며 '이병철은 이 사건과 절대 관련이 없으며 둘째 아들 창희와 한국비료 이일섭전무등 두사람이 책임질 사건'이라고 말했습니다

 

박씨는'이회장의 차남인 창희씨가 일본에서 교육받고 한국에 돌아온뒤 그의 능력에 맞지 않는 중책이 주어졌다'며 '이병철회장은 두아들[맹희와 창희만 언급]중 창희가 기업을 물려받기를 원했다'고 밝혔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박씨는 '또 다른 아들인 이맹희[장남]는 이병철회장 소유회사에서 일하지 못한다, 앞으로도 절대 못한다'고 말했고 이건희 현회장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이 없었던 것으로 밝혀져 사카린밀수사건이 아이러니컬하게도 세째아들인 이건희가 삼성을 물려받는 결정적 계기가 됐던 것으로 보입니다.

 

박씨는 이창희, 이일섭등 두사람이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기 위해 이같은 일을 저질렀고 설사 밀수사실이 적발된다 하더라도 이병철회장의 파워와 영향력으로 그들을 보호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박씨는 밀수사건은 정부내에서 잘 알려진 일이며 이후락계는 물론 대통령까지 알던 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박씨는 또 사카린밀수사건이 공론화된 계기에 대해 첫 폭로는 삼성조직 내부에서 비롯됐다고 밝히고 중앙일보 기자중 한명이 중앙정보부 요원임을 발견하고 즉각 파면했으나 이미 피해가 커진 뒤였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삼성은 중앙정보부가 시기상의 문제일뿐 반드시 이 문제를 거론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그 시기는 국정감사직전인 9월말이나 10월초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시 쌀값과 연탄값이 폭등하면서 장기영 경제기획원 장관등 정부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중앙정보부가 [9월중순] 이 사건을 터트릴 좋은 기회로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박씨는 또 경향신문[1966년 9월 15일]이 사카린밀수사건을 보도하자 중앙일보의 성장을 질시하던 다른 신문사들이 중앙일보와 동양방송 사장겸 중앙일보 부사장인 홍진기에 대해 집중적으로 공격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홍진기사장이 중앙일보 창간 6개월만에 흑자를 달성하는등 신문업계에서 보기 힘든 성과를 내자 다른 언론사들이 315부정선거 당시 시위대 발포명령과 관련, 2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던 홍사장의 어두운 전력을 공격했고 박씨가 스터머서기관을 만난 당일인 26일 홍진기는 사임했다고 밝혔습니다. 

 

 

 

박씨는 삼성의 잘못은 언급하지 않은채 사카린밀수사건폭로가 김종필계와 이후락계의 파벌싸움에서 비롯됐다며 정치권으로 책임을 돌렸습니다

 

박씨는 이병철회장이 김종필계가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라며 불신했고 대통령과 직통라인을 구축하고자 이후락계에만 정치자금을 지원했다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스터머 서기관은 여러 차례 '이후락만 지원했느냐'고 물었고 박씨는 '김종필게는 오랬동안 지원하지는 않았고 자신이 알기로는 이후락계만 지원하고 있다고 재차 확인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박씨는 김종필이 자신이 한국의 2인자로서 그에 걸맞는 자리인 국무총리가 되기 위해 이후락계에게 싸움을 건 것이라고 말해 삼성은 김종필이 국무총리직을 노리고 사카린밀수사건 공론화를 시도했다고 분석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박씨는 또 김두한의 국회 오물투척사건도 김종필계가 사주했다는 뉘앙스의 말을 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박씨는 김두환이 스스로 이번 일[오물투척]을 결행한 만한 인물이 못된다며 김두한이 의원직을 사퇴하고 국회를 떠날때 함께 걸어나간 사람이 김종필계인 김택수였다고 언급했습니다. 김두한이 '이후락정부','장기영내각'등을 언급한 점도 김종필계의 사주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식으로 말했습니다.

 

 

박씨는 주한미국대사관은 이후락계를 좋아하며 정일권을 지지한다는 소문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또 이병철이 한국비료 건설과 관련해 일본에서 차관을 끌어올 것이 아니라 미국돈을 빌리라는 미국측 제안을 거부했기 때문에 주한미국대사관이 이병철을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습니다.

 

스터머 서기관은 대화록 말미에 코멘트를 통해 '이병철의 사위인 김규도 중앙일보에 대한 다른 언론의 적대감을 말하는등 비슷한 정보를 전달했다'고 전제하고 '박씨는 솔직하고 신중하며 중앙일보의 업적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적었습니다.

 

스터머 서기관은 또 박씨가 앞으로도 새로운 사항에 대한 지속적인 정보제공을 약속했다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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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사카린밀수 미국접촉 ANCHIYONG
분류없음2012.09.12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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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사위,'삼성은 이후락계 선택-이병철사퇴해도 정부가 안받아들일것' - 미국부무 면담보고서이병철사위,'삼성은 이후락계 선택-이병철사퇴해도 정부가 안받아들일것' - 미국부무 면담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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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1966년 공화당내 양대파벌중 이후락계를 선택하는 대신 김종필계에 대한 정치자금 지원을 줄였으며 사카린밀수사건이후 이병철회장이 한국비료등에서 손을 뗀다고 발표했지만 실제로 박정희 정권이 이병철 사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병철회장의 사위인 김규 당시 동아방송전무는 1966년 9월 21일 미공보원 관계자를 만나 '삼성 사카린밀수사건 이슈화는 김종필계의 이후락계제거공작때문'이라고 밝힌데 이어 이틀뒤인 1966년 9월 23일 레스터 스터머 주한미국대사관 2등서기관을 만나 이병철회장 지시로 작성된 정세분석보고서를 전달하고 '삼성이 1966년 3,4월부터 이후락계를 선택, 김종필계에 대한 정치자금 지원을 줄였다'고 말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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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터 스터머 주한미국대사관 2등서기관이 작성한 김규면담보고서에 따르면 이들은 1966년 9월 23일 반도호텔에서 만났으며 이병철 회장이 사카린밀수사건이 발생했을때 회사내 최고경영자들로 구성된 여러 개의 스터디그룹을 만들어 정치적, 경제적, 재정적 관점에서 사건을 종합분석하라고 지시해 스터디보고서를 만들었으며 김규는 이를 스터머 2등서기관에게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김규는 보고서를 전달하며 이병철이 김종필은 믿을 수 없다며 대통령 직통라인인 이후락을 지원하는 대신 김종필계를 배제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김규는 '삼성의 현재 위기는 김용태, 장태화, 박종규등이 포함된 516 쿠데타주체세력으로 이뤄진 김종필계와 장기영, 김정렴, 길재호등 관료들로 구성된 이후락계등 공화당내 두 계파간의 권력투쟁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했습니다.


김규는 이들 두계파간의 1차 권력투쟁은 1964년 국회의원 선거때 곪아터졌으나 박정희가 이후락계의 손을 들어줌으로서 마무리됏고 현재는 2차권력투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김규는 2차 권력투쟁은 차기 선거에 대한 공화당 공천권을 누가 갖느냐를 둘러싼 것이며 김종필계는 공천권 장악을 위해 사카린밀수사건을 이슈화하는 베팅에 나섰다고 주장했습니다. 김규는 김종필계가 1차 권력투쟁때보다 많이 약화됐으며 전력감소를 초래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정치자금이 차단됐기 때문이라고 분석습니다.


김규는 삼성은 1966년 3,4월께부터 김종필계에 대한 지원을 줄이고 이후락계에 대한 지원을 늘렸으며 당시 삼성이 양측에 똑같은 액수를 지원할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후락계를 선택하는 전략적 결정을 내렸다고 주장했습니다.


김규는 이후락계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이후락은 대통령의 귀이며 장기영은 은행정책, 경제발전계획, 일본차관등을 컨트롤하고 길재호는 공화당 사무총장으로서 당을 장악하는등 삼두마차체제를 갖춘 이후락계가 삼성을 지원해 줄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김규는 이후락계가 김종필계보다 더 합리적이고 자유시장경제를 지향하며 민주적 제도의 성장을 지지한다는 점을 스터머 서기관에게 여러 차례 말했으며 당과 행정부, 특히 경제부처에 대한 김종필계의 파워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견해를 밝힌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김규는 오로지 대통령만이 두계파의 갈등을 수습할 수 있다며 자신이 대통령이라면 이후락을 제네바대사로 내보내고 이후락라인인 재무부장관과 법무부장관 두사람을 교체하는 선에서 김종필계에게 현상황에 만족하라는 명령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규는 이러한 결정은 경제분야에 대한 장기영의 영향력과 길재호의 당장악력을 유지하는 한편 총리등 고위관료들도 현직에 머물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김규는 현재 김종필라인이 대통령에게 결단을 내리도록 압박을 가하고 있으며 만일 대통령이 김종필의 요구를 거절하면 김종필계는 삼성에 이어 금성그룹[럭키금성]을 공격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김규는 또 지난 9월 21일밤 모든 계열사 사장과 로열패밀리들이 참석하는 회의가 열렸고 이때 갑론을박끝에 이병철회장이 사퇴하고 한국비료를 정부에 헌납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며 자신의 장인은 두 파벌의 권력투쟁의 희생양이 됐다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김규는 자신의 장인인 이병철이 실질적으로 은퇴를 할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미쓰이가 한국비료에 차관을 제공한 것은 한국정부가 아니라 이병철을 보고 준 것이며 한국에서는 삼성외에 어떤 회사도 이처럼 큰 공사를 제대로 끝낼수 없다고 지적하고 박정희정권이 이병철의 사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이병철회장은 심야회의 다음날인 9월 22일 삼성경영에서 후퇴한다고 발표했습니다만 김규의 말대로라면 정부가 이병철의 사퇴에 반대할 것이라는 치밀한 계산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김규는 또 경향신문이 사카린밀수를 대대적으로 특종보도한데 대해 김종필계가 8월말또는 9월초 이 문제를 이슈화시키기로 결정하고 매체를 정하면서 장태화의 서울신문은 정부지이며 영향력이 없는 신문이기 때문에 배제하고 오히려 이후락이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는 경향신문에 주는 것이 이후락에게 더 큰 타격을 가하는 것이라는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습니다 


김규는 당시 경향신문이 삼성계열인 중앙일보가 월급을 미끼로 자사인력을 빼가는데 분노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후락을 배신하고 장태화와 김용태가 제공한 삼성사카린밀수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삼성의 정세분석보고서를 바탕으로 한 김규의 설명은 이병철의 판단을 그대로 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김규가 두번씩이나 주한미국대사관 관계자를 만나 밀수사건에 대한 반성은 하지 않고 정치적 희생양이라고 주장한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정치적 상황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삼성이 조직적인 대규모 밀수가 자행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며칠뒤에는 김규외에 또 다른 삼성맨이 주한미국대사관을 찾아가 매달리게 됩니다



이병철사위 삼성사카린밀수사건 미국무부 면담보고서 19660923



분류없음2012.09.10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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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삼성회장의 사위 김규 전 서강대교수가 삼성의 사카린밀수사건당시 주한미국대사관직원을 만나 언론이 사카린밀수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것은  김종필계가 이후락계를 제거하기 위한 정치공작때문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2012/09/16 - [분류 전체보기] - 안치용,‘박정희 대미로비 X파일’출판 : 미국의 청와대도청은 실재- 박정희 방탄차 알고보니 CIA가 제공


김규 전교수는 또 사카린밀수사건이 2만달러정도의 단순밀수사건이라고 설명하는등 미국측에 진실과 동떨어진 주장을 하며 삼성감싸기에 나섰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주한미국대사관 직원인 홀부르크 브래들리가 작성한 김규면담보고록에 따르면 이병철회장의 세째사위인 김규 당시 동양방송 전무가 1966년 9월 21일 오후 브래들리에게 전화를 걸어 TV방송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한국비료의 사카린밀수사건과 관련된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겠다며 면담을 요청햇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이들은 오후 3시 30분 반도호텔에서 만났으며 이자리에서 김규는 사카린밀수사건은 지난 5월 하순에 한국비료 임원 5명중 1명인 이일섭이 2만달러어치정도의 사카린 원료를 밀수하다 적발된 것이라며 당시 삼성은 이일섭을 해고한 것은 물론 밀수금액의 4-5배에 해당하는 벌금을 내고 마무리된 사건이라고 밝혔습니다. 김규는 또 세관이 사카린밀수사건을 큰 문제로 생각하지 않았으며 일상적인 밀수사건의 하나로 처리했다고 강조했습니다


김규는 지난 5월하순 마무리된 사건이 새삼스레 언론에 대서특필되는 것은 정치문제, 언론문제, 재정문제등 세가지 문제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김규는 지난 7월 공화당내 김종필계가 밀수사건을 눈치챈뒤 이후락계에 타격을 가하기 위해 밀수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수집한뒤 이를 이슈화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김종필계와 이후락계의 권력투쟁으로 삼성사카린밀수사건이 이슈화됐다는 것입니다.


김규는 김종필계가 삼성의 사카린밀수관련정보를 자신들이 컨트롤하는 경향신문에 흘렸고 경향신문은 신문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삼성이 언론사를 운영하는데 대한 언론사들의 반발도 사카린밀수가 이슈화된 원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삼성이 창간한 중앙일보가 부수를 급속히 확장하면서 다른 신문사들을 위협했기 때문에 중앙일보의 기세를 꺽기 위해서 사카린밀수를 크게 보도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김규는 또 삼성이 대한민국 최대재벌이기 때문에 경제계와 금융계가 전반적으로 이병철과 삼성그룹을 싫어했으며 이들은 이 기회에 삼성을 완전히 무너뜨리지는 못하더라도 그 파워를 약화시키기 위해 공격대열에 합류했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언론사의 대대적인 삼성사키린밀수사건 보도가 경제계의 대대적인 지원하에 이뤄지고 있고 사주들도 동참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


김규는 마침 이날 오전 박정희가 발표한 재벌의 언론소유금지정책에 대해서도 불만을 표시했으며 한국인들은 서로 힘을 합쳐서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보다는 서로를 헐뜯고 싸우면서 자멸하고 마는 경향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김규는 한숨을 쉬면서 삼성의 사카린밀수사건은 현재 통제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한뒤 만약 폭등등 심각한 사태가 이어진다면 정부붕괴가 예상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김규가 미국대사관직원에게 말한 것은 삼성은 별로 잘못한게 없는데 권력투쟁, 언론계와 재계의 삼성에 대한 견제등으로 삼성이 어려움을 겪는다는 하소연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날 김규의 주장중 김종필계와 이후락계의 치열한 권력투쟁을 벌인다는 정치적 상황은 정확했지만 삼성의 사카린밀수사건이 2만달러짜리 단순밀수사건 운운한 것은 사건을 축소하고 진실을 은폐한 것입니다.


삼성의 사카린밀수사건은 삼성이 한국비료를 짓는다며 건설자재를 들여오면서 사카린뿐만 아니라 냉장고, 에어컨, 전화기, 양변기등 돈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 들여온 대기업의 조직적인 밀수였습니다.


김규등은 이날 이후에도 미국측을 접촉하며 이병철회장의 지시로 작성된 삼성의 정세분석보고서등을 건네며 이 사건이 김종필계의 정치공작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을 반복하게 됩니다.


한국비료 사카린밀수사건은 경향신문이 1966년 9월 15일 특종보도하면서 이슈화됐고 일주일뒤인 9월 21일 김두한의원이 국회에서 국무위원들에게 오물을 투척하는등 파문이 걷잡을수 없이 번지자 이병철회장은 이날밤 가족회의를 소집, 회사경영에서 손을 떼겠다는 뜻을 밝히고 이튿날인 9월 22일 은퇴와 함께 한국비료 국가헌납을 공식발표했었습니다.


이병철사위, 미국에 SOS '사카린밀수이슈화는 김종필계의 이후락계 제거 공작'- 미국무부 면담보고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