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년전 1979년 파리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미국 뉴저지주의 한 공동묘지에서 지난 5월 초순 그의 묘를 발견했습니다
516 혁명이후 박정희 정권의 지킴이 역할을 하다 중정부장자리에서 밀려나자 미국으로 망명,
미하원 프레이저 청문회에 출석, 박정권의 비리를 낱낱이 까발렸던 김형욱.
박정권과 첨예한 갈등을 빚다 지난 1979년 10월 7일 파리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지 30년만에
결국 공동묘지의 한켠에 누워 있는 그를 찾았습니다
이 공동묘지는 김형욱의 부인 신영순등 그의 가족이 현재 살고 있는 뉴저지 알파인집에서
약 2.5마일 거리에 있었습니다
묘비에는 KIM 이라는 글자가 크게 새겨져 있고 'IN LOVING MEMORY' 란 단어아래
왼쪽에는 김형욱을 의미하는 'HYUNG W' 오른쪽에는 그의 부인 신영순을 의미하는 'YOUNG S SHIN'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또 김형욱의 이름아래 그의 생일인 음력 1925년 1월 16일을 의미하는 '음 JAN 25 1925' 란 글이 눈에 띄고
아래에는 그의 실종일로 기억되는 1979년 10월 7일 'OCT 7 1979'이 새겨져 있습니다
부인 신영순은 아직 생존해 있어 출생일자만 적혀 있었습니다
한때 온갖 악행을 저질렀고 대한민국의 명예를 실추시켰으며 그후로도 오랬동안 '기구한 실종'으로
인구에 회자됐던 김형욱, 그의 묘비에는 'IN LOVING MEMORY' 라는 짧은 3단어가 전부였습니다
김형욱의 옆에는 그의 큰 아들 정한이 함께 묻혔습니다
10대 초반 김형욱을 따라 사냥을 갔다 발목지뢰를 밟아 발목을 다쳤고 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보내졌던
김정한은 그의 아버지 김형욱 실종이후 갈등과 방황을 거듭하다 2002년 9월 세상을 등졌습니다
묘지 관리사무소를 찾아서 물어봤었습니다
묘지 관리사무소는 가족등 이해관계인이 아닌 이상 아무 것도 답해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과연 이 무덤속에 김형욱 시신의 일부라도 묻혀 있는지, 아니면 가족들이 그의 추모를 위해서
가묘를 만들었는지는 가족만이 알고 있습니다
김형욱과 육사 8기 동기생으로 중앙정보부 감찰실장을 역임했던 방준모 전 실장에게 전화했었습니다
뉴저지에 살고 있는 방전실장은 너무 놀라 말문을 잊지 못하면서 '그곳이 어디냐, 잘잘못을 떠나서 동기생으로,
또 동시대를 살았던 친구로서 그의 무덤앞에 절을 하고 술잔을 올리겠다' 고 말했습니다
그를 둘러싼 이야기는 너무나 많습니다. 좋은 이야기보다는 좋지 않은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앞으로 간헐적으로 미국정부 여러문서를 통해 그가 얼마나 치밀하게 미국망명을 준비했는지등을
설명해 보겠습니다
안치용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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