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규(52·사진) 변호사는 2009년 5월 대검 중수부장으로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자금 수사를 지휘했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 뒤 그는 과잉수사 책임자라는 여론의 화살을 받고 옷을 벗었다. 수사의 단서는 노 전 대통령의 한때 후원인이었던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진술이었다. 전직 대통령의 죽음으로 수사는 중단됐으며 수사기록은 아무도 볼 수 없게 봉인됐다. 수사의 비밀은 이 변호사가 쥐고 있다. 이를테면 그는 판도라의 상자다.
이 변호사가 다시 세간의 관심을 끈 건 김태호 총리 후보자와 조현오 경찰청장의 국회 인사청문회 때문이다.
원본출처 중앙일보 http://news.joins.com/article/660/4433660.html?ctg=1000&cloc=home|showcase|main
김 총리 후보자가 박연차 전 회장의 돈을 받았느냐, 조현오 경찰청장의 주장대로 ‘노무현 차명계좌’는 존재했나 등의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이런 문제를 밝힐 주인공으로 이 변호사는 여야 합의에 따라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됐다. 본인도 청문회에 참석해 진실을 밝히겠다는 의욕을 보였다. 그러나 무슨 이유 때문인지 이 변호사는 청문회 증인석에 오르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중앙SUNDAY는 8월 20~26일 있은 ‘8·8 개각’ 청문회 전후 두 차례에 걸쳐 이인규 변호사를 만났다. 8월 9일과 9월 1일이다. 사석에서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그의 속내를 들었다.
이 과정에서 이 변호사가 청문회에 불참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드러났다. 그는 두 차례 기자와 만나서 나눈 얘기가 기사로 공개되는 것을 거부했다. 사석에서 주고받은 얘기인 데다 청문회 불참을 이유로 국회로부터 고발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중앙SUNDAY는 당사자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공익적 차원에서 공개가 불가피하다고 판단되는 부분을 기사화하기로 결정했다. 이 변호사의 발언 중에 매우 사적이고 상대방의 명예훼손이나 권익침해가 예상되는 부분은 기사화하지 않았다.
다음은 이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하겠다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왜 불출석했나.
“청문회에 나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야당도, 여당도 나가는 걸 원하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또 고발하는 건 무슨 경우인가.”
-누가 나오지 말라고 했나.
“(누가 그랬는지) 말할 순 없지. 나도 약한 변호사인데. 여에도 있고 야에도 있다. (순간 흥분하며) 그런 사람들이 날 고발해? 정부 고위직도 있고 야당의 유력한 정치인도 그런 얘기를 한다는 걸 전해 들었다.”
-조현오 경찰총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가 있다’고 한 발언이 청문회 직전에 공개됐는데.
“틀린 것도 아니고 맞는 것도 아니다. 꼭 차명계좌라고 하긴 그렇지만. 실제로 이상한 돈의 흐름이 나왔다면 틀린 것도 아니지 않나. 조현오 청장이 어떤 얘기를 어디서 듣고 그런 얘길 했는지는 모르겠다. 검찰이 ‘그런 것 없다’고 했는데 ‘확인해 주기 어렵다’고 하면 될 것을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비운의 중수부장이란 얘기를 많이 듣지 않나.
“내가 (대검 중수부장으로) 딱 6개월하고 그만뒀다. 박연차 한 사건 딱 하고 그만뒀어.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받은 게 적어. 대통령은 순수했다. 잘 하려고 한 거지. 그러면 남한테 심한 말은 안 했어야지.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 (사이를 둔 뒤) 내가 사실 SK수사, 롯데 수사 하면서 노 전 대통령 측근을 많이 잡아넣었다. 솔직히 그들을 잡아넣으면서 찜찜해했다. 그런데 날 검사장으로 승진시키더라. 그래서 이 사람들이 생각은 있구나, 측근을 잡아넣어도 사람 평가는 제대로 하는구나, 하는 생각은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높이 평가한다는 얘긴가.
“그렇지. 그때 검사장 될 때 노 전 대통령은 본 적도 없지만, 나름대로 욕도 많이 하고 나하고 생각도 다르다고 봤지만 참 훌륭한 분이구나, 저러니까 이게 한 시대의 집권을 하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현 정부 들어 내가 무슨 이명박 대통령과 가까워 검찰총장(임채진)을 제치고 그냥 수사한 거라고 하는데, 그건 아니었다.”
-이인규 중수부장팀이 강성이란 평가가 있었던 건 사실 아닌가.
“강성? 국민이 어떤 검사를 원합니까. 어떤 검사가 있어야 국민이 행복합니까. 나 같은 놈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검찰이란 게 수사할 때는 무자비해야 한다. 저게 인간이야 할 정도로 무자비해야 한다. 그게 검사다. 판사는 잘 듣고 잘 판단해야 하는 것이고. 내가 수사를 한창 지휘하고 있는데 살아 있는 권력까지 치게 되더라. 어느 순간 가만히 보니까 주변에서 내 목을 필요로 하는 것 같더라. 그래서 두말없이 관둔 거다. 난 치사하게 목숨 부지하려는 그런 사람 아니다.”
-‘박연차는 장사치고 노무현은 대통령인데’라는 말이 있었다. 박연차 전 회장의 말을 너무 믿은 게 아닌가.
“검사가 전직 대통령을 수사하면서 감만 갖고 수사할 것 같은가. 내가 얼마나 철저한지 아나. 계산과 계산을 거듭한 끝에 수사를 진행했다. 난 절대 나를 포함해 내 부하를 사지로 몰아넣지 않는다. 수사 실패하면 나만 죽나? 부하들도 다 죽는다.”
-박 전 회장의 돈은 어디로 또 흘러갔나.
(한참 사이를 두더니) “지금 야당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정치인도 박 전 회장 한테 돈을 받았다. 내가 개런티할 수 있어. 최소한 1만 달러다. 그런데 여러 정황상 범죄를 구성하지 않아 더 이상 수사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노 전 대통령이 죽음으로써 살아난 사람이 여럿 정도가 아니라… 많다.”
-노 전 대통령과 박 전 회장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나.
“재임 중 청와대 사저에서 두 번 만찬을 했다고 한다. 한 번은 노 전 대통령, 권양숙 여사와 함께 셋이 만찬을 하는데…. 권 여사가 계속 아들이 미국에서 월세 사는 얘기를 했다는 거다. 돈이 없어 아들이 월세 산다고. 박씨는 그걸 ‘돈 달라’는 얘기로 알았다고 한다. 나중에 집 사는 데 한 10억원 든다고 하니까 그 자리에서 박 전 회장이 ‘제가 해 드리겠습니다’고 그런 거지.”(이 변호사는 이 밖에 ‘박연차 500만 달러 제공설’에 대해 구체적인 정황을 묘사해 가며 수사 내용을 설명했다.)
-수사 기록은 봉인돼 있다. 당분간 세상에 나오기 어려운 것 아닌가.
“10년도 안 갑니다. 다 까집니다. 다 나온다고요. 사람이 다 살아 있는데. 나도 살아 있고. (임채진) 총장도 살아 있는데. 다 살아 있는데.”
-수사 기록의 보존 기한이 있나.
“영구보존이다. 30년이나 50년 후엔 공개된다.”
-그걸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없나.
“구할 수 있지. 계속 정보 공개 청구하라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라고. 내 말만 듣지 말고. 오래돼 내가 자꾸 잊어버릴 수 있으니까.”
조강수 기자 pinej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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