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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공직자 관련서류/이후락 일가

이후락 해외도피 전말: 실각당일 여권만들고 미대사관에 비자신청 - 미 국무부 비밀전문[4]

이후락 실각당일 미국비자신청 안치용

이후락 미국비자신청 긴급보고전문 [1973 SEOUL 8086]

북, 73년 파리등서 JP에 두차례 비밀접촉시도 - 미국무부 비밀전문[3] http://andocu.tistory.com/3345

'DJ납치가담 유영복은 이후락 조카사위' - 미국무부 비밀전문[2] http://andocu.tistory.com/3343

박정희는 김종필을 불신했다?-73년 신장치료차 일본행요청 불허 : 미국무부 비밀전문[1] http://andocu.tistory.com/3341

김성환장관, '북 붕괴하면 임시자치정부 허용' 시사 :위키리크스 한국전문 http://andocu.tistory.com/3351

현정은, '북보다 남이 더 큰 장애'불평-김정일은 중국 불신:위키리크스한국전문 http://andocu.tistory.com/3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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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락이 중앙정보부장에서 물러나면서 일단 해외로 출국한뒤 미국비자를 신청했다는 기존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실각당일
여권을 만든뒤 같은 날 주한미국대사관에 미국비자를 신청했고 미대사관은 즉각 비자를 발급해주려 했던 사실이 미 국무부
비밀전문에서 드러났습니다 
 
73년 3월 윤필용사건[표면적으로는 4월말 알려짐]으로 타격을 입은데 이어 73년 8월김대중납치사건으로 돌이킬 수 없는 결정타를 입은 이후락은 73년 12월 3일 마침내 중앙정보부장 자리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이후락은 권부핵심에서 밀려났다가도 몇개월뒤 다시 복귀하는등 오뚝이로 불릴 만큼 관운이 강했고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권세를 누렸으며 미국무부 비밀전문에서도 드러나듯 북한도 한때 이후락을 독자적 세력을 가진 2인자로 평가했었습니다 

윤필용사건, 김대중납치사건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신임을 잃었음에도 가시방석같은 중정부장의 자리를 이어가던 이후락은
마침내 그해 12월 3일 박정희 내각의 대대적인 개각과 함께 중정부장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자 생사의 갈림길에 섰음을 직감하고 살길을 찾아 나서게 됩니다 

주한미국대사관은 1973년 12월 3일 개각당일 개각명단[1973 SEOUL 8080]등을 미국무부에 보고한뒤 또 다른 별도의 전문을 통해 '전직 중앙정보부장 이후락의 여행' 이란 제목으로 이후락의 비자문제를 국부부에 극비리에 보고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후락의 36계 줄행랑은 그야말로 전광석화같았습니다

1973 SEOUL 8086 CONFIDENTIAL 전문에 따르면 이후락은 개각당일인 12월 3일 이후락 자신과 부인인 정윤희의 여권을 만든 것으로 기재돼 있습니다
이후락 부부가 주한미국대사관에 제출한 여권은 12월 3일 발급된 4년만기의 일반여권이었습니다

이후락은 여권을 발급받자마자 12월 3일 당일 주한미국대사관에 비자신청을 했으며 미국여행 목적은 '회의' MEETING 이라고 기재했습니다

주한미국대사관은 이후락의 미국비자신청사실을 증대사안으로 판단, IMMEDIATELY, 즉 긴급이라고 명시해 보고했습니다 

특히 주한미국대사관은 전문 두번째 항에서 국무부가 반대하지 않는한 한국시간으로 12월 4일[비자신청 이튿날] 오전중에 
비자를 발급할 계획이라고 명시했습니다 

또 이후락은 일본쪽에도 SOS를 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 비밀전문 세번째 항에서 일본대사관에서 전화연락이 와 '그들이 [비자]신청을 받았으며 일본 본부에서 지침이 있을때까지
연기하고 있다' 고 통보했음이 확인됐습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의 해외도피는 미국과 일본등에도 중대사안이 아닐 수 없었으며
특히 미국과 일본이 이후락의 해외도피와 관련, 서로 정보를 교환하며 긴밀히 협조한 것은 놀라운 일로 생각됩니다 

이 긴급전문대로라면 이후락은 자신이 살 길은 미국으로 도망치는 것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중앙정보부장에서 밀려난 날
곧바로 미국대사관에 찾아가 SOS, 살려달라고 매달린 것입니다

이 전문 두번재 항목에서 언급한대로 비자신청 다음날인 12월 4일 오전중 미국대사관이 이후락 부부에게 미국비자를
발급해 줬다면 이후락은 그날로 미국으로 줄행랑을 쳤고 이미 미국으로 도망간 김형욱과 함께 2명의 전직 중앙정보부장이 
미국에서 박정희 정권과 한국에 대해 쌍나팔을 불어댓을지도 모릅니다 

이후락 김형욱이 사이가 나쁘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김형욱의 맏며느리에게서 직접 들은 또 하나의 이야기는 씁쓸한 웃음을 자아내게 했습니다
김형욱의 장남 김정한과 이후락의 외동딸 이명희가 이때 이미 미국에 유학하고 있었으며 두사람이 '정한아' '명희야' 하며
절친한 사이였다고 합니다  

자 그렇다면 주한미국대사관의 긴급 비밀전문에 대해 미국무부 본부는 뭐라고 답했을까요
어마어마한 거물이 이 전문에 대해 직접 답신을 하며 지침을 내리게 됩니다 
공교롭게도 이 전문의 지침이 향후 이후락의 실제 36계 줄행랑 행보와도 일치해 사실상 이후락이 이 전문대로 움직였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마어마한 거물의 답신, '후락이는 이렇게 하면 어떨까' 하는 전문은 내일 알아보겠습니다 

이후락실각등 19731203 개각내용보고 [1973 SEOUL 8080]

이후락 실각관련 비밀전문 안치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