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사이트에 염치불구하고 예수전도 홍보 좀 하러 왔습니다. 죄송 합니다.
성도 여러분을 지구촌 인터넷 선교사로 초빙 합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간단히 지구촌 상대로 간단히 전도 할수 있습니다.하나님은 전도자를 가장 예쁘게 보시지요.이 사이트 (www.jhdh.org) 를 보시고 시간 나실 때 마다 이 사이트를 전화나 메일 댓글 카페 블로거 에 올려주시고 여러 방법 등으로 지구촌 에 알리시면 전도가 됩니다.(공산국가 나 이슬람에도 몇 초 내로 전도지 를 인터넷으로 보낼 수 있습니다)
성도님의 노력과 성의는 하나님께서 계산을 확실하게 하시기 위해서 밤낮으로 내려다 보시고 계시는 것은 아시지요. 불신자 전도와 자살 성폭력 및 각종 범죄 예방에 매우 효과가 있으니 많이 활용 하시길 바랍니다. 참고로 사이트 내용은 국내외 저명하신 분의 천국 지옥 간증과 그리고 터키 아라랏트 산 해발 4.000m 지점에 노아 방주 최근 동영상이 들어 있습니다. 이 글로발 선교 전용 홈페이지 주인은 하나님이 십니다. 우리 운영진은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평신도로써 오른손이 하는걸 왼손이 모르게 주안에서 겸손하게 하나님의 심부름만 합니다. 지구촌 상대로 전도 활동은 하나님의 분명한 명령 입니다. 귀하께서 사후에 천국 문 들어 가실 때 하나님께서 너를 전도 하기 위해서 내가 땅에 내려가서 십자가 고통을 당했는데 000씨 는 몇 사람을 전도 했습니까? 아니면 노력이라도 해보았는냐? 라고 분명히 물어 보실 텐데 무슨 핑계를 댈 것이며 얼굴을 들고 들어 갈수 있을까요. 하나님 입장에서 생각 해보시고 지금 당장 전화기를 들고 이 홈페이지를 전도해야 될 분에게 알려 드리세요. 이 시간에도 많은 지구촌민 들이 예수 모르고 죽어가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지옥 문 앞에 대기 줄에 서있습니다. 이 대기자 속에 귀하의 지인은 없는지 지금 당장 찾아 보시길 바랍니다.망설이지 마시길 바랍니다. 내일 까지 산다는 보증서 있습니까? 전도 못하더라도 노력이라도 했으면 하나님 께서 고개 들고 들어 오너라고 인자하신 목소리로 분명히 말씀 하실 것 입니다. 그리고 지옥의 처참함을 보시고 먼저 사랑하는 가족 친구 지인 들을 먼저 이 사이트 보시게 해서 지옥 가시지 않도록 긴급 예방조치부터 취하시는 것이 급선무 인 것 같습니다. (지금 당장 연락 하셔서 이 홈페이지 주소.www.jhdh.org 를알려 주세요 이 사이트 보시면 자동으로 지옥에는 못 가시게 되어 있습니다.) 유익한 내용 잘 보고 갑니다. 끝으로 사이트 운영자님과 방문자 모두 주안에서 행복 하세요 .이 사이트 보신 분은 100%천국 가는 축복을 달라고 중보 기도 부탁을 눈물로 호소 합니다.–극 빈국 선교 문화 사업 후원회 올림—(www.jhdh.org) 여러분 어렵더라도 웃으면서 즐겁게 행복하게 살기 바랍니다.
사건의 발단은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중이던 지난 2007년 6월 시작된다. 권 여사는 이때 2년간 미국 생활을 하고 있던 딸 정연씨에게 '사들일 집을 찾아보라'고 말했다. 정연씨는 이에 평소 친하게 지내던 재미교포 경연희씨에게 부탁해 집을 물색한다. 삼성종합화학 회장을 지낸 경주현씨의 외동딸인 경연희씨는 미국서 부동산사업을 하고 있었다. 경씨는 자기 소유인 미국 뉴저지주 허드슨클럽 400호를 추천했고, 정연씨와 240만달러에 매매 계약을 했다. 이 빌라는 허드슨강변에 있다.
정연씨는 어머니 권 여사에게 돈을 부탁했고, 권 여사는 노 전 대통령의 후원자로 불렸던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에게 계약금조로 40만달러를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정연씨는 중간에 마음이 바뀌었다. 400호보다는 조금 작은 435호로 살 집을 바꾸기로 한 것이다. 이에 경씨와 정연씨는 그해 10월 400호 매매 계약을 해지하고 435호를 220만달러에 사고팔기로 계약을 갱신했다. 박연차 회장의 40만달러는 435호 계약금으로 돌렸다.
귀국한 정연씨는 그러나 상당 기간 중도금을 내지 못했다. 경씨는 2008년 9월부터 중도금을 달라고 독촉했다. 정연씨는 경씨에게 "한국에 와서 받아가라"고 연락하는 한편 어머니 권 여사에게 돈을 마련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듬해인 2009년 1월 경씨는 자신이 단골인 미국 폭스우드 카지노 매니저 이달호씨와 상의한 끝에 이씨의 동생 균호씨를 한국에 보낸다. 한국에선 정연씨의 말을 들은 권 여사가 현금 13억원을 마련했다. 권 여사는 2009년 1월 10일 자신의 먼 친척을 시켜 사과 상자 7개에 나눠 담은 13억원을 이균호씨에게 전달했다.
먼 친척은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경기 과천의 지하철역 앞에서 이균호씨를 만났고, 돈 상자를 놓아둔 비닐하우스로 이씨를 안내했다.
이것이 검찰이 파악한 '13억원 전달 과정'이다.
이균호씨 등은 이 돈 가운데 8억8200만원을 환치기해서 미국의 경씨에게 보냈고, 2억2000만원은 경씨가 자신의 동업자들을 시켜서 자신이 운영하는 미국 회사 계좌로 송금했다. 사업자금으로 가장한 거래였다. 나머지 1억9800만원은 경씨의 사업 파트너인 은모씨가 가졌다고 검찰은 말했다.
'노정연 뉴저지 아파트'가 세상에 처음 알려진 건 2009년 4월 대검 중수부가 '박연차 게이트' 수사를 벌일 때다. 검찰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홍콩의 비자금 계좌를 통해 40만달러를 송금한 사실을 확인했지만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하면서 수사는 중단됐다.
영원히 묻힐 뻔했던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올해 1월 환치기에 가담했던 이달호·이균호씨 형제가 사건을 폭로하고, 한 시민단체가 외환거래법 위반으로 검찰에 수사 의뢰를 하면서부터다. 박연차 회장은 지난 2월 조사에서 "13억원은 내 돈이 아니다"고 말했고, 사건의 핵심 인물인 경씨가 5월에 한국으로 들어와 세 차례 검찰 조사를 받았다.
지난 6월 검찰은 정연씨와 권 여사에게 두 번에 걸쳐 서면조사를 한 뒤 8월 말 봉하마을에 가 권 여사를 방문 조사하고, 24일엔 정연씨를 소환 조사하는 것으로 수사를 끝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딸 정연(37)씨의 외화 밀반출 의혹을 수사해온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최재경 검사장)는 29일 정연씨를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고 수사를 종결한다.
검찰은 13억원(100만달러)이 든 의문의 돈 상자 7개는 정연씨가 재미교포 변호사 경연희(43)씨로부터 사들인 미국 뉴저지주 웨스트뉴욕의 허드슨클럽 아파트 435호의 매매대금이며, 정연씨가 매매대금 중 일부를 ‘환치기’ 수법으로 경씨에게 불법 송금한 것으로 결론내렸다.
이 사건은 미국 코네티컷주 폭스우드 카지노 매니저 출신인 이달호(45)씨와 동생 균호(42)씨 형제가 “2009년 1월 경기도 과천역 주변의 비닐하우스에서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쓴 중년남성으로부터 13억원이 든 돈 상자를 받았고 수입차 딜러 은모(54)씨를 통해 경씨에게 송금했다”고 폭로하면서 불거졌다.
검찰은 지난 1월 보수단체인 국민행동본부가 돈 상자 관련 의혹을 수사의뢰함에 따라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지난 2월 이씨 형제와 은씨,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 등을 조사했으나 미국시민권자인 경씨를 조사하지 못해 한동안 수사가 중단됐다.
야권은 총선을 앞두고 검찰이 친노 진영을 겨냥해 표적수사를 하고 있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답보상태였던 검찰 수사는 지난 5월 경씨가 귀국하면서 재개됐다.
검찰은 경씨를 세 차례 소환 조사했으며, 경씨로부터 ’노정연씨에게서 100만달러를 받은 것이 맞고 그 돈은 아파트 매매대금 중 일부’라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검찰은 이어 지난 6월 정연씨와 노 전 대통령의 부인인 권양숙 여사에게 서면질의서를 발송했다.
권 여사는 6월말 제출한 답변서를 통해 ’내가 아파트 구입대금을 마련해준 것이 맞다’는 취지로 진술했고, 정연씨도 ’어머니에게서 돈을 받았다’는 취지의 서면답변서를 보냈다.
검찰은 지난 24일 정연씨를 비공개 소환해 2시간가량 조사했다.
검찰은 정연씨를 상대로 경씨에게 아파트 매매대금 중 일부를 지불한다는 명목으로 13억원을 송금한 경위를 확인하고 돈의 출처를 추궁했다.
정연씨는 ’아파트 매매대금을 어머니에게서 받았지만 돈이 어떻게 마련됐는지는 알지 못한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13억원이 조성된 경위에 대해서는 더 수사를 진행하지 않고 사건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한국이 지난해 무기판매계약액 기준으로 전세계 5위를 기록했다고 미의회조사국이 발표했습니다.
미의회조사국[CRS]가 발표한 '개발도상국에 대한 재래식무기거래 2004-2011'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은 전세계를 대상으로 15억달러에 달하는 무기수출계약을 체결해 세계 5위를 기록, 무기수출국가로서의 입지를 굳건히 다졌습니다. 한국은 대부분의 무기를 개발도상국에 판매해 개발도상국만을 대상으로 한 무기계약순위에서도 똑같이 5위를 차지했습니다, 한국은 지난 2010년에는 10위권에 들지 못했었습니다. [지난해 무기판매순위는 2011/09/26 - [분류 전체보기] - MB정권포함 최근 4년간 한국무기수입액, 직전 4년보다 2.5배 급증 - 미의회보고서 참조]
미국은 지난해 전세계를 대상으로 662억달러의 계약을 체결해 1위에 랭크됐고 러시아는 48억달러로 2위, 프랑스는 44억달러로 3위, 중국은 21억달러로 4위였으며 한국은 바로 그 뒤를 이어 5위에 등극했습니다.
이는 이탈리아, 우크라이나, 터키, 브라질, 영국, 이스라엘등을 크게 앞서는 것입니다.
개발도상국만을 대상으로 한 무기판매계약도 미국이 563억달러로 1위를 기록했고 러시아가 41억달러로 2위, 프랑스가 27억달러로 3위, 중국이 21억달러로 5위였으며 한국은 15억달러로 5위를 차지했습니다.
전세계 무기계약액과 개발도상국 무기계약액을 비교해 보면 개발도상국이 무기 대부분을 구입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이명박정부는 지난 2008년 출범이래 지난해까지 4년간 54억달러의 무기도입계약을 체결, 전세계 10위를 기록했습니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 4년간 한국의 무기도입계약액수가 38억달러로 9위를 기록한 것을 감안하면 이명박정부의 무기도입계약이 전정부보다 16억달러, 약 42% 정도 크게 늘었습니다.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무기도입계약 1위는 사우디 아라비아로 521억달러에 달했으며 인디아, 아랍에미레이트연합, 브라질, 이집트순이었습니다.
이명박정부 4년간 무기계약 54억달러 -한국전세계 무기판매 5위등극
무기인도액 기준으로는 이명박정부 출범이래 4년간 43억달러어치를 무기를 인도받아 전세계 6위를 기록했습니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 한국은 30억달러의 무기를 인도받았었습니다. 무기인도액기준으로 볼때도 이명박정부가 전정부보다 약 40% 이상 증가했습니다.
한승희 국제조세관리관은 "한국과 스위스 간 조세조약이 지난 7월 25일 발효돼 스위스 정부로부터 조세정보 협조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이 스위스 고액 계좌 보유자들을 자진 신고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스위스 조세조약에 따라 국세청이 탈세 혐의를 확인한 개인이나 기업 이름을 대고 스위스 거래 은행을 밝히면 스위스 세무당국은 해당 계좌정보를 한국 국세청에 제공하게 돼 있다.
국세청은 이번 해외계좌 자진 신고 결과, 해외 금융계좌에 10억원 이상을 맡겼다고 신고한 개인이 302명, 법인이 350개이며, 해외 계좌에 예치된 돈은 모두 18조6000억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개인 신고자를 거주지별로 보면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와 용산구 거주자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서울 강남구 삼성동, 대치동, 개포동을 관할하는 삼성세무서에는 29명이 10억원 이상 해외계좌를 갖고 있다고 신고해 전국 세무서 중 신고건수가 가장 많았다. 이어 용산세무서 28명, 반포세무서 25명 순이었다.
국세청은 이번에 신고하지 않은 납세자 가운데 해외에 재산을 옮겨놨거나 기업 비자금을 숨겨놓은 것으로 의심되는 41명의 혐의자에 대해 점검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탈세혐의가 드러나면 세무조사도 실시할 계획이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2011년 8월 1일자로 외국환거래법 형사처벌 기준금액을 5억원에서 50억원으로 크게 늘렸습니다. 이는 예전에는 5억원이상 환치기가 적발될 경우 무조건 형사처벌됐지만 그 이후부터는 50억원까지는 아무리 환치기를 해도 형사처벌이 되지 않고 과태료만 내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노정연씨의 환치기 액수는 13억원으로 형사처벌기준인 50억원에 크게 못미치므로 이명박정부의 공정사회구현에 역행하는 조치라는 평가를 받아온 외국환거래법 형사처벌 기준완화의 덕을 톡톡히 볼 것으로 예상됩니다.
물론 노정연씨의 환치기가 발생한 시점, 즉 2009년 당시의 '행위시의 법률'이 적용되는 것이 우선입니다만 행위시에는 중한 법이었더라도 재판시에는 경한 법으로 바뀐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경한 법이 우선적용되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에도 법개정취지를 따진다고는 합니다만 기획재정부가 '외국환거래를 자유롭게 하고 범법자 양산을 막기 위해서' 형사처벌기준을 완화했다고 밝혔기 때문에 법의 동기가 일부 바뀐 경우에 해당하므로 노정연씨는 완화된 법률에 따라 재판을 받게 된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외국환거래법 형사처벌 기준완화는 '유전무죄'논란을 낳는 조치입니다. 돈이 없는 서민들이야 해외로 돈을 빼돌릴려고 해도 빼돌릴 돈이 없습니다. 49억9천9백여만원까지 해외로 빼돌려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고 과태료처분만 받는다는 것은 가진 자의 해외재산도피를 조장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물론 돈의 출처가 불분명할 경우 다른 법의 적용도 받게 되지만 환치기만 놓고 본다면 노정연은 '유전무죄'조치의 수혜자로 '과태료만 내게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권영세의원은 지난 5년간 환치기액수가 무려 7조7천억원, 해외재산도피가 4천4백억원, 자금세탁이 2천5백억원에 달한다고 지난해 9월 19일 밝혔었습니다. 권의원은 특히 지난해 1월부터 8월까지만 해외재산도피가 천9백억원으로 급증했다고 지적하며 외국환거래법 형사처벌 기준완화가 공정사회 구현이라는 이명박정부의 국정목표에 역행하는 조치라고 비판했었습니다.
사무엘 버거주한미국대사가 1963년 5월 7일 작성한 외교전문에 따르면 김현철 내각수반이 자신에게 육영수여사와 자신의 아내의 방미를 주선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혀습니다.
이 전문에서 김현철은 버거대사를 만나 박정희에게 보고한 것은 아니라고 전제하고 육영수여사와 자신의 아내가 사적으로 미국을 방문한다면 여성단체들과 그들의 활동을 미국에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고 미국의 유사활동을 살피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김현철은 또 미국으로 오고 가는 시간을 포함해 약 한달의 일정이 소요될 것이라며 미국정부가 (주요인사 면담등) 일정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에 대해 버거대사는 사적인 여행이라면 그것은 전적으로 한국의 사안이라며 여행계획이나 면담등의 주선, 통역제공등은 주미한국대사관이 맡아야 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돼 있습니다. 그러나 버거대사는 비공식적으로 국무부가 도움을 주도록 조치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버거대사는 또 전문말미에 코멘트를 통해 육영수여사등에 대한 자신의 평가를 적었습니다.
버거대사는 육영수여사는 조용하고 매력적이며 위엄이 있는 여성으로서 박정희를 열심히 내조하고 있다며 그러나 흠집[스크래치]가 나기 시작했다고 평가했습니다. 또 육여사가 자선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한국여성도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버거대사는 김현철내각수반의 아내역시 지성과 매력을 겸비한 활동적인 여성이라고 평가하며 육여사와 김현철의 아내, 두사람 모두가 많은 미국 공직자 부부들을 세심히 배려하는 등 내조를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버거대사는 이 여행이 순수한 시찰인지 그 진정성에 의심이 든다고 밝혔습니다, 아마도 박정희와 김현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그들을 널리 알리려는 의도로 풀이된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한국의 고위공직자 아내들도 외국의 고위공직자 아내처럼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한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아마도 김현철의 이같은 구상은 박정희의 대통령 선거도 돕고 자신의 아내를 육영수의 방미에 동행시킴으로써 자신의 입지도 확보한다는 계획하에 추진된 것 같습니다만 육영수가 1963년 방미했다는 기록이 없는 것으로 미뤄 이 구상이 실행에 옮겨지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지난 1963년 민정이양을 표방하며 실시된 대통령선거에서 개표중 윤보선이 박정희를 앞서가면 김종필일파가 투표당일 자정이후 박정희부터 살해한 다음 윤보선까지 암살하고 다른 지도자를 내세워 군사정부를 계속 유지할 것이라는 첩보가 주한미국대사관에 입수됐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제5대대통령선거당일인 1963년 10월 15일 새벽 5시 28분[한국시간 오후 6시28분] 미 국무부에 접수된 주한미국대사관 발신의 491호비밀전문에 따르면 주한미국대사관관계자가 10월 15일 윤보선의 비서 이재항[YI CHAE-HANG]으로 부터 제보를 받았다고 보고했습니다.
이재항은 이 제보가 공화당관계자가 윤보선에게 전한 것이라며 10월 15일 자정께부터 도시지역의 투표결과를 알 수 있을 것이고 만약 그 결과가 윤보선이 박정희를 앞서는 것으로 나타나면 김종필일파[KIM CHONG PIL FACTION]가 박정희를 먼저 살해한 다음 윤보선을 암살한다는 계획을 세웠다고 주한미국대사관 관계자에게 말한 것으로 전문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박정희까지 제거하는 김종필일파의 쿠데타음모설에 대한 첩보였습니다.
이재항은 또 이같은 암살음모는 자정이후부터는 언제든 실행가능하며 음모의 목표는 다른 리더십하에서 군정을 계속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이재항은 이 음모의 아웃라인만 알고 있지만 그 계획이 신중한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대사관에 알린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주한미국대사관은 이재항의 제보가 많은 신빙성이 있다고 보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 가능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코멘트를 달았습니다.
이 전문은 김종필일파의 암살음모설이 실재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1963년 대통령선거가 얼마나 박빙의 승부였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실제로 박정희는 이 선거에서 윤보선을 약 1%차로 누르고 간신히 승리했습니다.
또 박정희등 군사정권 핵심관계자들의 정권교체에 대한 공포가 극에 달했으며 여차하면 박정희까지 살해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들 내부의 권력투쟁도 심각했음을 의미합니다.
김종필은 1963년 1월말 공화당 사전조직, 4대의혹사건등으로 권력핵심에서 제거될 뻔하다 박정희의 지원으로 기사회생했지만 권력투쟁으로 판세는 다시 뒤집혀 한달만인 2월 25일 타의에 의해 한국을 떠나게 됩니다. 박정희 또한 권력기반이 취약했고 대통령선거에 나서기 위해 다른 실세들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던 처지였습니다.
그뒤 김종필은 어떻게든 선거직전에 한국에 돌아옴으로서 자신의 입지를 세우려고 했지만 선거가 끝날때까지 귀국하면 안된다는 박정희의 지시에 따라 암살음모가 나돌던 1963년 10월 15일 대통령선거당일에는 외국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김종필은 외국에 있었지만 김종필 추종세력은 군부와 공화당등에 잔존했고 그들의 위기감이 극대화됨에 따라 여러가지 자구책을 궁리한 것은 불문가지일 것입니다. 다만 추종세력과 김종필간에 교감이 있었느냐 여부에 대해서는 이런 글에서는 '알 수 없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윤보선은 4년뒤인 1967년 대선때도 승리할 경우 암살될 뻔 하기도 했습니다. 방준모 전 중앙정보부 감찰실장은 김형욱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지시를 받고 저격병을 배치했었다고 고백했었습니다.
1963년과 1967년 두개의 사건은 너무나 일치합니다면 1963년은 박정희의 권력기반이 취약한 반면 1967년은 국가재건최고회의 2년에 이어 4년의 집권을 통해 기반을 공고히 다졌던 때였습니다. 특히 월남파병으로 인해 미국과도 밀월관계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때는 박정희 사살운운하는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윌리암 마지스트레티 주한미국 부대사는 1962년 9월 4일 당시 유엔군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인 가이 멜로이 장군에게 한국군부를 4개파벌로 분류한 4페이지의 문서를 보냈습니다.
이 문서에 따르면 정일권을 중심으로 한 함경도-만주파는 강문봉, 박임항, 이한림, 임선하, 이주일등 중장급과 김동하, 임부택,송석하등 소장급을 포함해 모두 32명이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백선엽을 중심으로 한 평안도파는 백선엽의 동생인 백인엽, 석진암, 김점곤, 문형태, 양국선, 장창국, 유흥수, 유양수등 모두 31명이, 이형근파는 이후락, 김계원, 박병권, 정래혁등 17명이었습니다.
또 일본군출신은 이종찬, 김정열, 신응균, 유재흥, 최영희, 김종오,최경록, 장지량 등 19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본군출신에는 이형근파의 장본인인 이형근, 백선엽파로 분류된 장창국, 이형근파로 분류된 정래혁등이 포함돼 있는등 일부가 중복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이 4대파벌의 면면을 보면 함경도파중 많은 사람이 반혁명사건에 휘말린 반면 일본군출신들은 박정희정권에서 중용된 사람이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함경도파의 수장격인 정일권이 다른 함경도파와는 달리 최장수 국무총리, 최장수 국회의장을 지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만주군관학교를 거친 일본육사를 졸업했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지스트레티 부대사는 이 문서는 대사관 정치파트에서 작성했으며 1962년 8월 31일 멜로이 장군이 지적한 사항은 삭제했다고 밝혔습니다. 마지스트레티 부대사가 이 문서를 멜로이장군에게 보고한 것은 9월 4일이지만 이 문서 좌측상단에 8월17일이라고 기록된 것으로 미뤄 주한미국대사관이 이 문서를 국무부등에 보고한뒤 유관부서인 멜로이 장군에게도 이첩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북한 영변 경수로 건설현장위성사진[지오아이촬영] 3월20일 - 6월 24일 - 8월 6일 촬영
북한이 영변에 건설중인 경수로의 지붕을 덮음으로써 경수로 건설의 핵심적 공사를 마무리했으나 완전가동까지는 수년이 걸릴 것이라고 제인스디펜스위클리와 AP통신등이 보도했습니다
제인스디펜스위클리등은 지오아이-1 위성이 지난 6일 영변핵시설을 촬영한 위성사진을 분석한 결과 그동안 뚫려있었던 원자로 꼭대기에 공모양이 돔이 덮여졌다고 밝혔습니다
제인스디펜스위클리는 지난 3월 20일, 지난 6뤌 24일, 지난 6일등 지오아이 1이 촬영한 위성사진 3장을 공개했으며 3월 20일자 사진에는 원자로의 지붕으로 사용될 돔이 원자로 빌딩옆에 놓여있었고 6월 24일자 사진에는 원자로 지붕부분에 돔을 얹기 위한 두개의 지탱막대가 설치돼 있었습니다.
또 8월 6일자 사진에는 이 돔이 원자로 꼭대기에 올려졌으며 주위에는 돔을 들어 올린 것으로 보이는 기중기등이 눈에 띄었습니다
북한은 지난 2010년부터 전력용이라며 경수로 건설에 나섰으며 일부 전문가들은 이 시설이 핵무기 생산을 위한 우랴늄농축용으로 사용될 것이라고 우려했었습니다
천 회장은 이 대통령과 고려대 상대 동기로 ‘대통령의 후견인’으로까지 불리며 정권 초기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했던 인물이다.
2008년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돼 집행유예를 받은 천 회장은 작년에 다시 세무조사 무마 청탁 등을 받고 거액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2심에서 징역 2년과 추징금 32억1060만원을 선고받지만 지난 6월 대법원이 사건을 파기환송해 재판이 진행중이다. 천 회장은 지난해 8월 건강 악화를 이유로 구속집행이 정지돼 현재 병원에 머무르고 있다.
이 명단은 1972년 12월 18일 국무부지시에 따라 1973년 3월 30일 필립 하비브 주한미국대사가 작성, 보고한 8페이지의 비밀전문으로 제목은 '한국의 잠재적 지도자 리스트수정'이며 정계, 관계, 언론계, 학계,군부등으로 분류, 모두 84명의 명단이 기재돼 있었습니다.
특히 이 명단에는 1942년생으로 당시 31세인 이건희가 형들인 이맹희, 이창희를 제치고 중앙일보 이사라는 직함과 함께 잠재적 지도자에 포함돼 있었습니다. 이건희는 잠재적 지도자로 거론된 84명중 최연소였습니다.
미국이 31세의 이건희가 형들을 제치고 삼성 이병철회장의 후계자가 될 것임을 예견한 것입니다.
전두환 공수여단장과 김복동준장도 서종철대장, 강청성 육군 보안사령관, 진종채 수도경비사령관등과 함께 군부의 잠재적 지도자로 평가받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삼성 비자금' 특검을 총괄한 조준호 변호사(사진)의 아들이 이건희 회장에 대한 대법원 선고 이듬해에 삼성전자에 과장으로 특채됐다고 한겨레가 20일 보도했다.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사법시험을 준비하다 중국에서 어학연수를 한 것 외에 아무런 경력이 없는 조 변호사의 아들 조모(38)씨가 과장으로 특채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삼성전자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하면 과장으로 진급하는 데 통상 8년이 걸린다.
조준웅 변호사는 2007년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삼성 비자금' 특별검사에 임명됐다. 삼성 특검은 2008년 4월 수사가 끝났다. 당시 조준웅 특검팀은 1199개의 차명 계좌와 324만주의 차명 주식 등 이건희 회장의 차명 재산 4조5000억원을 찾아냈지만, 이는 비자금이 아니라고 발표했다. 선대 회장인 이병철 회장에게 물려받은 삼성생명 주식이 불어난 개인 재산이라고 조준웅 특검은 밝혔다. 이 때문에 이건희 회장에겐 횡령이 아닌 조세포탈 혐의만 적용됐고, 이 회장이 삼성 특검의 최대 수혜자라는 평가도 나왔다.
미국이 이승만 정권때인 1959년 해외에서 핵물리학등을 공부하고 귀국한 한국인 학자의 명단과 소재를 파악, 국무부에 보고하는등 한국의 핵동향을 엄중 주시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주한미국대사관이 1959년 9월 23일 미국무부에 보고한 '핵물리학및 관련분야 유학생 귀국명단'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모두 53명이 미국등에서 유학이나 단기연수를 마친뒤 한국으로 돌아와 핵유관기관에 근무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 전문은 주한미국대사관 로버트 터커 1등서기관이 작성한 것으로 수신처는 국무부, 참조기관은 CIA, 원자력위원회[AEC]등이었습니다.
이 전문에 따르면 이 명단은 당시 한국에서 원자력업무를 담당하던 '원자력원'에서 제공했다고 돼 있으며 53명의 귀국 유학생중 22명은 원자력원에, 3명은 국방부산하 국방과학연구소에 근무하고 있고 나머지는 서울대학교등에 재직중이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이 전문은 이름, 나이, 유학학교, 전공, 유학기간, 현직장등 6분야로 나눠져 보고돼 있으며 53명이 유학한 지역은 미국이 대부분이었으며 프랑스, 서독, 영국, 일본, 덴마크등에서도 유학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영국 런던 로얄칼리지에서 1955년부터 1959년까지 핵물리학을 전공했던 이상수선생은 이화여대 물리학과 조교수로 근무중이라고 돼 있습니다. 이상수교수는 1970년 원자력청 청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원 초대원장을 지낸 인물입니다.
또 영국에서 2년간 원자로공학을 연구한 이영재, 박인용선생, 후일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당시 미시간대학에 유학했던 지창열선생등이 언급돼 있었습니다.
이상수, 이영재, 박인용, 지창열 선생등은 1959년 7월과 8월 해외유학을 끝낸 즉시 귀국해 후학양성과 원자력발전등에 투신한 것으로 돼 있습니다.
또 14명은 미국 핵물리학의 메카인 아르곤연구소에서 단기연수를 마치고 원자력연구소등에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한국은 1956년 3월 11일 한미원자력협정에 조인하고 1958년 3월 11일 원자력법을 법률 제483호로 제정했으며 1958년 10월 7일 대통령령 제 1394호로 '원자력원'을 개설하고 산하에 원자력연구소를 설립하는등 원자력에너지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미국으로 부터 시험용 원자로도입을 추진하던 때였습니다
이처럼 미국이 미국등 해외에서 핵물리학등을 전공하고 귀국한 유학생들의 명단을 파악한 것은 한국의 핵동향을 면밀히 주시했음을 의미합니다
회사에 수천억 원의 손실을 떠넘긴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등으로 기소된 김승연(60) 한화그룹 회장에게 16일 징역4년과 벌금 51억 원을 선고됐다.
원본출처 동아일보'
서울서부지법 형사12부(서경환 부장판사)는 또한 한화그룹 경영지원실장으로서 김 회장의 지시를 이행한 혐의로 기소된 홍동옥 여천NCC 대표이사에 대해서는 징역4년과 벌금 10억 원을, 한화국토개발 대표이사로 비자금 조성에 가담한 김관수 씨에게는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각각 선고했다.
재판부는 김 회장을 포함해 실형이 선고된 이들 3명의 피고인을 모두 법정구속했다.
재판부는 "김 회장은 그룹 계열사를 동원해 위장계열사 한유통·웰롭을 부당지원하고 계열사 보유주식을 누나 측에 저가로 양도해 각각 2833억 원, 141억 원의 손해를 끼쳤으며 차명 주식거래로 15억 원의 양도소득세를 포탈했다"며 김 회장의 유죄를 인정했다.
이어 "김 회장은 한화그룹의 지배주주로서 영향력과 가족의 지위를 이용해 차명계열사를 부당지원하는 등 손해를 끼쳤다"며 "모든 범행의 최대 수혜자로서 반성하지 않은 점을 고려해 엄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김 회장은 모든 공소사실에 대해 이는 전적으로 홍동옥 씨의 단독범행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한화그룹은 피고인을 정점으로 일사불란한 상명하복의 보고 체계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검찰이 입수한 문서에 따르면 본부조직에서는 김 회장을 CM(체어맨)이라고 부르면서 CM은 신의 경지이고 절대적인 충성의 대상이며 본부조직은 CM의 보좌기구에 불과하다고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재판부에 결정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즉시 항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검찰은 지난달 16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김 회장에 대해 징역 9년과 벌금 1500억 원을 구형했다. 또 홍 대표에게는 징역 7년을 구형했다.
문선명(92) 통일교 총재가 서울 서초구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중환자실에 사흘째 입원 중인 것으로 15일 확인됐다. 병원 관계자는 "문 총재가 감기와 폐렴 등의 증상이 악화돼 호흡기내과 중환자실에 입원했다"며 "위중한 상태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가족 및 통일교 신자들이 24시간 병실을 지키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1954년 통일교를 창시한 문 총재는 지난 7월 수원 피스컵 축구대회에서 개회선언 및 우승컵 시상을 하는 등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활발히 활동해왔다.
미국,한국전때 핵물질로 한국에 비인간지대설치-영구분리 검토 : FBI비밀문서,하마트면 최신 핵무기 시험장될뻔
미국이 1951년 한국전당시 한국일부지역에 핵물질을 살포, 남북 누구도 접근불가능한 핵물질벨트인 '비인간지대[DEHUMANIZED AREA]'를 설치, 한반도를 영구히 2개로 나누는 방안을 검토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특히 이 핵물질은 당시 미국이 개발한 최신핵무기로서 한국이 미국의 최신핵무기 실험장화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한반도일부지역이 핵으로 뒤덮힘으로써 죽음의 땅을 사이에 두고 접근이나 통행이 불가능한 두개지역으로 영원히 나눠질 뻔 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FBI가 1951년 4월 20일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알버트 고어 주니어 전 부통령의 아버지인 알버트 고어 당시 하원의원이 플루토늄등으로 만든 방사능물질을 한국의 동서로 살포, 비인간지대를 설치하는 방안을 제안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보고서에는 방사능물질로 표현돼 있으나 플루토늄과 핵폐기물등이 원료로 사용한다고 돼 있어 핵물질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FBI는 '방사능전'이라는 제목의 이 문서는 1948년 미국 원자력위원회의 폴 맥다니엘박사가 고어 하원의원이 제안한 것과 같은 방식의 연구를 수행했으며 지난 4월 11일 원자력위원회에 최종 보고서를 제출했다고 밝혔습니다
폴 다니엘박사는 이 보고서에서 핵물질을 이용해 완벽하게 비인간지대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고했습니다.
FBI는 그러나 이 핵물질을 생산하려면 플루토늄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하며 원자력위원회는 현재 이 프로그램을 위한 충분한 핵폐기물을 가지고 있지 않다며 현실적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주. 이 당시 미국언론은 이 핵물질을 생산할 경우 플루토늄감소로 핵폭탄생산에 차질이 우려됨으로 미국의 사막에 묻어둔 핵폐기물에서 원료물질을 추출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FBI는 또 원자력위원회의 현재시설로는 이같은 핵물질을 공급할 수 없으며 비인간지대를 추진할 작전지역에 이 물질을 이동시킬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운반체가 필요하며 효과를 발휘할 정도로 충분한 강도를 유지할 수 핵물질의 개발이 완료돼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 보고서는 그러나 이 핵물질 이용가능성을 완전히 폐기하지 말고 추후 논의를 염두에 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미 에너지부의 공식 홈페이지도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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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에너지부는 '인간방사능피해실태'[HUMAN RADIATION EXPERIMENTS]라는 보고서의 제 11장에서 1948년 5월부터 국방부와 원자력위원회가 화생방무기개발을 위한 공동연구를 시작했으며 방사능무기는 원자력위원회가 개발을 주도했다고 밝혔습니다.
원자력위원회는 한국전 진행과 동시에 유타사막의 덕웨이실험장에서 야전실험[필드테스트]를 실시했으며, 필드테스트는1949년부터 1952년까지 모두 65차례에 달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한국전과 동시에 야전실험이 진행됐다'고 기록한 것은 이 무기의 한국전 사용 가능성을 염두에 뒀음을 암시합니다.
미국,한국전때 핵물질로 한국에 비인간지대설치-영구분리 검토 : FBI비밀문서,하마트면 최신 핵무기 시험장될뻔
특히 이 보고서 10장에는 알버트 고어 당시 하원의원의 뉴욕타임스인터뷰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고어의원은 '내가 의원생활을 통틀에 목격한 것중 가장 극적인 방면은 방사능무기의 테스트였다. 테스트를 지켜보면서 만약 한국전 휴전협상이 결렬된다면 한국에서 이 무기가 사용될 것이라고 확신하게 됐다'고 말한 것으로 돼 있습니다 .
미 국방부가 필드테스트에 고어의원등을 초청한 것은 미 의원들이 이 테스트를 보고 한국전을 빨리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이 무기의 사용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인식시키기 위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고어의원은 1951년 4월 1일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은 구상을 밝힘으로서 미국언론의 후속 보도가 잇따랐고 마침내 1951년 4월 15일 하원에서 이같은 '핵물질 비인간지대' 설치방안을 공식제안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1970년대 일대 파문을 일으킨 한국의 대미(對美) 로비스캔들 '코리아 게이트'의 핵심 인물인 김한조(91)씨가 지난달 26일 오후 11시 37분 서울성모병원에서 숨졌다. 심각한 영양실조 증상을 보여 병원에 입원한 지 열흘 만이었다.
병원 관계자는 "입원 당시 김씨는 이미 열흘 이상 굶어 위장 운동이 멈춘 상태였고, 입버릇처럼 '이제 죽을 때가 됐지'라고 말하는 등 삶에 대한 의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김씨 스스로 곡기(穀氣)를 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1953년 화물선을 타고 미국 유학길에 오른 김씨는 아메리칸대학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제약회사 말단 사원으로 시작해 화장품 회사 존 앤드 비 디(John & Bee Dee)를 설립한 김씨는 1973년 한 해에만 2100만달러의 매출을 올리며 성공 가도를 달렸다. 김씨는 이 시기 대미 로비스트로도 활동했다. 당시 우리 정부는 미국을 설득해 주한 미군 감축에 따른 보완책을 마련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워싱턴을 기반으로 인맥이 넓었던 김씨와 재미 사업가 박동선씨 등은 미 의회 의원들과 관리들에게 암호명 '백설(白雪) 작전'으로 불리는 로비전을 벌였다.
김씨의 로비 활동은 1976년 10월 15일 워싱턴포스트(WP)지가 보도하면서 드러났다. 신문은 "박정희 정부가 1970년대 들어 재미 실업가 등을 내세워 50명 이상의 전·현직 미 의회 의원과 미 정부 관리에게 매년 50만~100만달러의 금품과 선물을 전달했다"고 폭로했다. 미 언론들은 닉슨 대통령의 몰락을 불러온 워터게이트 사건에 빗대 이 사건을 '코리아 게이트'라고 불렀다.
지난달 26일 숨진 김한조씨의 생전 모습. 김씨는 1970년대 한국 정부가 미국 정부·의회 등을 상대로 주한 미군 감축 반대 로비를 펼친 ‘코리아 게이트’의 핵심 인물이었다.
당시 위증과 매수 혐의로 기소된 김씨는 1979년 7월 앨런우드 미 연방 교도소에 수감됐다. 같은 해 11월 28일 출감한 그는 주변을 정리하고 1981년 귀국했다. 그는 이후 서울 동작구 흑석동 인근의 허름한 집에 홀로 살다 최근에는 조카와 함께 구로구의 아파트에서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평소 주변 지인들에게 "미국에서 화장품 사업을 할 때 데리고 있던 직원만 8000명이었는데, 끝내 사업도 망하고 재산도 다 빼앗겼다"면서 "국가를 위해 내가 한 일이 묻힐 수는 있겠지만, 국가를 위해 개인만 희생당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김씨는 1995년 펴낸 자서전 '코리아 게이트'에서 "파출소 한번 가본 적이 없는 내가 교도소에 수감되는 것은 엄청나게 치욕적인 일이지만 4000만 국민을 생각할 때 참을 수 있었다. 내가 보여주었던 애국심을 정부와 우리 국민이 높이 평가해 모든 국민의 애국심으로 연결되리라 생각했다"면서 "그러나 조국에 돌아온 뒤 모함과 멸시, 무관심 혹은 외면으로 지내왔다"고 썼다.
김씨는 귀국 후 가족을 그리워하며 당뇨 등 병마와 싸워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가 살던 아파트 경비원 김모(65)씨는 "할아버지(김씨)가 유창한 영어로 전화하는 것을 자주 봤다"면서 "아파트 단지 내 어르신들은 그늘에 모여 앉아 얘기도 하고 그러는데, 이 할아버지는 항상 혼자 멀찍이 떨어져 쉬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급히 귀국한 김씨의 아내와 큰아들은 김씨의 임종을 지켜본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 유족은 따로 빈소를 차리지 않고, 사망 이틀 만에 시신을 화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한조씨와 함께 ‘코리아 게이트’의 핵심 인물이었던 로비스트 박동선(77·사진)씨는 현재 런던에 본사를 둔 무역 컨설팅 회사의 국내 지사 회장 자격으로 활동 중이다. 지난 2010년에는 서아프리카 국가 관계자를 상대로 원전 수출 가능성을 타진하는 등 재기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06년 유엔의 이라크 석유-식량계획과 관련해 250만달러를 받은 혐의로 미 연방 경찰에 체포돼 복역하다가 2008년 석방돼 귀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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