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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후보2012.09.20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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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스트레디 미국부대사 김재춘면담록 2,3마지스트레디 미국부대사 김재춘면담록 2,3


마지스트레디 미국부대사 김재춘면담록 4,5마지스트레디 미국부대사 김재춘면담록 4,5


1963년 2월말 4대의혹사건등으로 외유를 떠난 김종필이 7월께 귀국하려하자 박정희는 대선전 귀국 절대불가입장을 밝혔으며 김종필이 새나라자동차 수입과 관련, 수입가격을 시세보다 두배 높이는 방법으로 비자금을 조성, 일본에 숨겼다고 김재춘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주한미국대사관에 말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2012/09/16 - [분류 전체보기] - 안치용,‘박정희 대미로비 X파일’출판 : 미국의 청와대도청은 실재- 박정희 방탄차 알고보니 CIA가 제공

윌리암 마지스트레티 주한미국대사관 부대사는 1963년 6월 19일 김재춘 당시 중앙정보부장과 자신의 집에서 만난뒤 작성한 면담보고서에서 김종필의 귀국일정과 관련, 최고회의 일부 멤버는 김종필 7월 귀국을 주장했으나 박정희는 총선전 귀국은 현명하지 못하다며 총선전 귀국불가입장을 전했고 김종필은 이를 완전히 수용했다고 보고했습니다.


김재춘은 이날 마지스트레티 부대사에게 김종필지지자들이 김종필 조기귀국을 주장한 것은 김종필이 빨리 귀국해야 선거뒤 출범하는 새 정부에서 자신들이 중요한 자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그러나 온건론자들은 이미 박정희 정부 참여불가를 결정했다고 말했습니다


김재춘은 또 박정희의 정치적 장래는 4대의혹 수습, 식량부족사태 해결, 자유민주당과 공화당과의 합당등에 달려있다고 예견했습니다. 당시 김재춘은 자유민주당과 공화당의 합당, 즉 이른바 '범당'을 추진하던 상황이었습니다. 


김재춘은 장경순 농림부 장관이 군사정부의 명예를 실추시킨다며 박정희에게 경질 필요성을 역설한데 이어 6월 18일밤 다시 한번 박정희에게 경질을 촉구, 장경순을 자르고 유병현을 새 장관에 임명한다는 약속을 받아냈다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김재춘은 장경순이 자신의 후임 중앙정보부장을 맡는데도 반대입장을 표명했고 박정희는 장경순이 반미주의자인데 어떻게 그 자리를 맡겠느냐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김재춘은 4대의혹사건중 하나인 새나라자동차사건과 관련, 일본차 가격은 한대당 9백달러지만 실제로 일본측에 한대당 천8백달러를 지급한뒤 김종필과 추종자들이 차 한대당 약 천달러의 차액을 돌려받아 일본의 김종필계좌에 예치했다고 말했습니다. 또 한국에 투자하려는 재일교포들로 부터 전체 투자금의 4분의 1만 한국에 들여가고 나머지 4분의 3은 한국정부의 지원을 받게 해주는 대신 한국정부 지원금에 해당하는 4분의 3을 김종필이 사용할 수 있도록 일본은행에 예치하는 방법으로 해외에 부정한 돈을 축적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재일동포 실업가인 서갑호가 국내의 태창방직을 인수할때 김종필이 이같은 방법으로 돈을 챙겼다고 말했습니다


김재춘은 또 중앙정보부내 김종필인맥은 전제덕국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제거했으며 하부조직에 김종필 끄나풀들이 있지만 큰 힘을 발휘하지는 못한다고 전했습니다.


마지스트레티의 김재춘면담록은 5페이지로 1,2페이지는 증권파동 관련자의 구형량을 군검찰이 아닌 김형욱, 길재호등이 결정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2012/09/17 - [분류 전체보기] - [박정희X파일]'4대의혹' 재판도 사전조작- 박정희 승인하에 김형욱-길재호가 구형량 결정 :미대사관 면담보고서


마지스트레티는 이 5페이지의 면담록을 2페이지의 전문에 첨부해 1963년 6월 28일 국무부로 보고했습니다. 마지스트레티는 이 전문에서 면담주요내용을 간략하게 설명한뒤 김재춘의 설명은 군사정부내의 부패상황과 파당주의를 보여주고 있으며 또한 김종필이 군사정부내에서 영향력이 건재하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4대의혹재판 사전조작 미국무부 비밀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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