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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리크스2011.09.07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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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심회 간첩단[386간첩단사건]연루혐의를 받았던 청와대 비서관이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을 기획한 비선조직의 핵심이었던 것으로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외교전문을 통해 드러났습니다

일심회 간첩단사건 핵심인물의 문건에서 수차례 등장했던 박선원 전청와대 통일안보전략비서관은 이 사건을 수사하던 김승규 국정원장이 2006년 10월 25일 노무현 전대통령으로 부터 사퇴를 요구받고 27일 사퇴한뒤 수사가 더 이상 진척되지 않아 소환을 면했던 것으로 보도됐으며 노무현정부 마지막까지 청와대 비서관으로 일했었습니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미국대사는 지난 2007년 9월 5일 미 국무부에 타전한 '남북정상회담 어떻게 가능했나' 제목의 비밀전문에서 '청와대 고위관계자에 따르면 남북정상회담은 노무현정부가 수년간 추진해 왔지만 2개월전까지는 여의치 않았다, 이번 정상회담협상은 국가정보원과 국가안보회의 관계자들이 담당했으며 외교 통일 국방장관[남북관계 주무장관]도 8월 8일 발표당일까지 이를 몰랐다'고 보고했습니다


버시바우대사는 이 전문에서 9월 4일밤 조셉 윤 정무담당이 박선원 청와대 통일안보전략비서관과 저녁을 함께 한 자리에서 박비서관은 노무현정부는 수년간 정상회담을 추진했으며 이를 위해 4년전 박선원, 이종석, 서훈등 3명의 소그룹이 결성됐다고 설명한 것으로 전했습니다

그뒤 2005년 정동영 통일부장관이 김정일을 만나 2000년 정상회담때 약속했던 답방을 요구했지만 반응이 신통치 않았고 2006년 송민순씨가 청와대 안보실장으로 부임한뒤에는 북한 비핵화 문제등에 전념하느라 남북정상회담문제는 뒤로 밀렸다고 말했습니다


박비서관은 송민순실장이 (2006년 12월 외교부장관으로 영전), 청와대를 떠나고 후임 안보실장으로 부임한 백종천안보실장이 2007년 5월 노대통령임기가 끝나기전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백종천 실장과 박선원 비서관, 김만복 국정원장, 서훈등 4명의 비선조직[secretive enabling group]을 다시 가동시켰고 노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재추진했으면 한다는 뜻을 확인, 노대통령의 지침을 받아 이를 추진했다고 말한 것으로 돼있습니다

그러나 6자회담이 어느 정도 진전을 보기 전에는 불가능했고 2007년 7월 방코델타아시아 문제가 해결될때까지 기다릴수 밖에 없었다고 전했습니다

정상회담제의는 김만복국정원장이 김양건에게 편지를 보내는 식으로 공식접근했으나 백종천실장과 김만복국정원장이 아프간 샘물교회인질사태에 매달리느라 합의는 다소 지연됐으며 처음 남한은 7월 정상회담을 제의했으나 북한은 너무 이르다는 반응이었으며 마침내 8월 6일 북한이 8월말 정삼회담 개최에 합의했다고 박선원이 말했다고 보고했습니다
[실제 남북정상회담은 이때 합의보다 한달정도 연기돼 10월 2일부터 4일까지 평양에서 열렸으며 김만복국정원장은 8월 2-3일, 8월 4-5일 두차례 평양을 방문해 정상회담일정을 협의했습니다]


특히 박선원비서관은 한국정부의 모든 고위관료, 심지어 송민순 외교-이재정 통일- 김장수 국방장관까지 8월 8일 공식발표전까지 남북정상회담 개최사실을 몰랐다고 밝혀 주무장관들까지 철저히 배제한채 비선조직[핵심소그룹]이 정상회담을 추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박선원은 또 비핵화문제, NLL 북방한계선문제, 군사신뢰구축문제등이 정상회담의 의제가 될 것이라고 미국측에 설명했습니다
또 김정일이 남북정상회담을 수락할 것으로 기대하지 않았다고 강조하고 북한이 방코델타아시아 계좌동결로 미국과 최소한의 관계개선이라도 없으면 생존하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며 김정일의 건강이 좋지 않은 점등이 정상회담수락요인이었을 것으로 추측했습니다

이처럼 2007년 남북정상회담은 외교 국방 통일등 주무장관등을 배제한채 소수의 비선조직을 통해 추진됐으며 특히 자신이 그 비선조직이라고 스스로 밝힌 박선원비서관은 일심회간첩단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보도딘 인물입니다 

이 전문을 보면 간첩단 사건 연루 의심자가 노대통령의 비선조직으로서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했다는 의문이 제기됩니다 

김승규 전 국정원장은 일심회 간첩단 사건을 수사하며 핵심인물의 문건에서 자주 등장한 박선원 청와대 비서관으로 수사를 확대하려다 2006년 10월 25일 노무현대통령으로 부터 사퇴를 요청받고 이틀뒤 사표를 내게 됩니다

결국 김원장이 축출됨으로써 일심회 간첩단의 수사확대는 무산되고 박비서관은 청와대에 자리를 보전하며 비선조직으로 발탁돼 마침내 남북정상회담까지 기획했던 것입니다

충격적인 전문입니다 
만약 일심회 간첩단 수사가 철저히 이뤄졌다면 간첩단 연루의혹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사람이 남북정상회담 비선조직으로 활동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박선원 전비서관은 천안함 침몰원인에 대해서도 북한 소행이 아니라고 주장했었습니다 

또 하나 이전문의 보고일자는 9월 5일입니다.
2007년 8월 8일 남북정상회담 발표직후 이 사실을 백악관은 언제 통보받았느냐는 논란이 일었고 백악관은 이같은 질문에 대해 '한국정부와 협의해 왔다'며 사전통보됐음을 강조했지만 구체적 내용의 통보시기는 밝히지 않았었습니다
이 전문을 보니 사전협의와 통보가 있기야 했겠지만 자세한 내용은 아니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